남편과 친오빠에게 버림받고, 일본인과 중국인에게 능욕을 당한 너무나도 비참하고 끔찍한 삶을 살았던 청나라 마지막 황후 완룽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청나라 마지막황제 푸이는 나라가 멸망하고 난 이후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가 일본의 꼭두각시가 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정원사가 되어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런식으로 망국의 왕이나 황제의 생애는 참 볼품없고 불쌍한데요
오늘은 푸이보다 더욱 비참한 삶을 살게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황후 '완룽'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완룽의 집안은 굉장히 유복한 귀족집안이었는데요
그녀의 어머니는 완룽을 낳고나서 얼마안가 세상을 떠났지만 아버지는 그녀에게 미국인 교사이던 이자벨 잉그램을 그녀의 가정교사로 붙여 영어와 여러가지 신식학문들을 가르치게 했다고 합니다
그덕에 완룽은 어렸을적부터 영어를 능통하게 했으며 부유한 가정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잘 살고 있었죠
그러던 1912년 신해혁명으로 인해 청나라가 멸망해버렸지만 중화민국의 예우 덕분에 푸이는 청나라 소조정의 황제가 되어 계속해서 자금성에서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후인 1922년 잘 살고 있던 완룽의 삶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일이 벌어지는데요
17세가 된 푸이는 황후를 맞이해야 할 나이가 되었고 원슈와 완룽이 후보에 오르게 된것이죠
이때 푸이는 원슈를 선택했지만 단강황귀비가 워낙 강력하게 완룽을 황후로 간택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완룽이 황후가 된것입니다
푸이가 처음에 선택했던 원슈는 간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사람에게 시집을 갈수도 있었지만 푸이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했었는지 그녀는 후궁이 되었죠
어쨌든 그렇게 1922년 11월 30일, 완룽은 이미 망해버린 청나라의 마지막 황후가 되었고 그렇게 완룽의 비극적인 삶은 시작되었습니다
완룽과 푸이의 결혼생활은 너무나도 불행했죠
금슬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을 가지지도 못했고 밖에서 자유롭게 살던 완룽은 자금성에서의 온갖 의식과 예의를 갖추며 살아야 했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황후로써 밤늦게까지 온갖 공부를 했어야 했다고 하죠
그나마 그녀가 숨을 돌릴수 있던 취미로 사진 찍기, 추리소설 읽기, 피아노 치기, 영어회화, 자전거 타기 등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 조차 자금성 내에서만 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황후가 된지 고작 2년이 되었을때 날벼락이 떨어지는데요
바로 베이징을 장악한 펑위샹이 청 황실 예우를 폐지하고 황제 푸이와 황후 완룽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자금성에서 내쫓아버린 핍궁사건이 발생한 것이죠
그때까지 그나마 편하게 살고 있었던 푸이는 강제로 쫓겨나게 되자 이때부터 성격이 어둡고 우울하게 변해갔다고 합니다
완룽과 푸이는 순친왕부에 잠깐 살았지만 이 부부를 찾아온 일본이 '둘이서 조용히 살수 있게 해주겠다' 라며 그들을 꼬셨고 그렇게 둘은 텐진의 일본 조계지로 떠나게 되었죠
텐진에서 살면서 푸이는 더욱 성격이 어둡고 난폭해졌다고 합니다
한편 텐진으로 함께 왔던 원슈는 완룽에게도 핍박을 받았고 푸이는 그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태감들까지 자신을 함부로 대하자 결국 푸이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텐진을 떠나버리는 일이 벌어졌죠
그렇게 푸이는 최초로 후궁에게 이혼을 통보받은 최악의 굴욕을 맞본 황제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푸이는 원슈가 떠난것이 완룽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완룽 때문에 자신의 체면이 완전 구겨졌다고 생각해 그나마 좋지도 않았던 완룽과의 관계는 더욱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죠
그런데 중국 국민당의 군벌들이 청나라 역대 황제들의 능묘를 도굴한 사건이 발생했고 분노한 푸이는 다시 청나라를 일으켜 세우는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때 또 일본은 푸이를 부추겨 "만주국의 황제가 된다면 청나라 복원을 이루게 해주겠다" 라는 제안을 했고 푸이는 또 다시 일본의 꼬임에 넘어가 1931년 만주국의 황제가 되었죠
하지만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국가에 불과했으며 푸이 역시 일본이 내세우는 꼭두각시 일뿐 아무런 실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당연히 완룽도 황후가 되었는데요
하지만 일본은 완룽이 황후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녀를 배제하기 시작했는데 각종 행사나 의식 등에도 참여하지 못했고 심지어 황제 즉위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죠
그리고 계속되는 일본 군인들의 감시와 그런 일본의 꼭두각시로 전락해버린 남편에다가 먼 타지에서 의지할사람이 한명도 없는 그런 생활속에서 그녀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고 심각한 우울증까지 겪게 됩니다
아무런 자유도 없었고 감옥에 갇힌듯한 폐쇄적인 생활과 황후로써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자 결국 완룽은 해선 안될것에 손을 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아편이었죠
그리고 아편에 대한 의존은 계속 깊어져 얼마안가 그녀는 지독한 아편 중독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때쯤 그녀는 난데없이 출산을 하게 되는데요
그 아이는 바로 일본군 장교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였던 것입니다
완룽이 텐진을 떠나 다롄으로 오던 중에 그녀의 친오빠가 일본군에게 어떤 이권을 얻는 대가로 자신의 여동생이자 황후였던 완룽을 일본군 장교에게 팔아넘겨 버린것이죠
그렇게 그녀는 원치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결국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푸이는 이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황후의 칭호를 폐지하고 황궁 깊숙한곳에 완룽을 감금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완룽이 낳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화로에 던져 죽여버렸죠
자신의 아이가 그렇게 죽었다는 사실을 완룽은 죽을때까지 모르고 있었는데요
그녀는 자신의 오빠의 도움으로 아이가 어느 시골의 평범한 집에 보내져 잘 자라고 있는줄 알고 있었고 매달 아이의 양육비를 오빠에게 보내주었다고 하죠
완룽은 혈육에게조차 이용당하기만 했던 정말 비극적인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완룽이 감금당한 이후 푸이는 후궁을 들이는데 그녀가 바로 세번째 부인이던 탄위링 이죠
푸이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푸이는 탄위링을 총애했는데 그 덕분에 완룽은 더욱 외로워졌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만주국 말기에 완룽의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더욱 아편에 집착하게 되면서 누더기나 다름없는 옷을 거의 헐벗다시피 한 상태였으며 머리도 헝클어진채 제대로 씻지도 않았다고 하죠
심지어 두 눈을 정상적으로 뜰수도 없는 정도가 되어 앞도 거의 잘 안보이는 지경이었고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심각한 정신착란을 겪고 있었는데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죠
자신의 부인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푸이는 완룽과 이혼하고 그녀를 폐위시킬 생각만 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일본에서 완룽의 후임으로 일본인 여자를 넣으려고 하자 푸이는 이혼과 폐위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푸이는 일본으로 도망을 치려다가 소련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고 완룽은 사가 히로와 함께 도망치다 중국 공산군에게 잡히게 되죠
(사가 히로 : 푸이의 동생인 푸제의 아내. 일본 황실 집안 출신)
하지만 귀신같은 외모에 아편에 중독되어 제대로 거동조차 못하는 완룽을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렇게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이후 아편을 제공받지 못하자 그녀는 심각한 금단현상을 겪게 됩니다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미친듯이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을 뒹굴었다고 하죠
하지만 이런 완룽의 모습을 보기위해 중국 공산군들은 일부러 찾아와 낄낄대며 마치 동물원의 동물 구경하듯이 그녀를 대했다고 합니다
이후 석방허가가 났지만 그녀를 데려갈 인수자는 아무도 없었고 그렇게 여기저기 유치장과 교도소를 전전하다가 연길의 감옥에서 39살의 나이로 쓸쓸히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격변의 시대에 청나라의 황후가 되어 남편과 친오빠에게 버림받고 일본인과 중국인들에게도 능욕 당하며 결국 끔찍하고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버린 완룽의 인생은 정말 너무나도 비극적인것 같습니다
만약에 황후가 되지 않았다면 부유한 가정에서 조금더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을텐데 좀 불쌍하긴 한것 같네요
지금까지 비참한 삶을 살았던 청나라 마지막 황후 완룽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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