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견과 왕맹사이를 유비와 제갈량과 같다고 불릴정도의 5호16국시대 최고 책략가이자 정치가이자 명장 왕맹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중국의 역사를 시대별로 분류할 때 5호 16국 시대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텐데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5호란 흉노족과 선비족 강족 저족 갈족등 다섯의 이민족들을 뜻하고 16국은 이민족들과 한족을 포함해서 화북 지방에 세운 수많은 나라들 중 주요 국가 16개를 뜻하는 표현입니다
이 16국 중 전량과 서량 북연이 한족의 왕조이며 나머지 13국은 다섯 이민족들이 세운 국가들이죠
이 5호 16국 시대는 중국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혼란기로 너무나도 많은 국가들과 막장 군주들이 넘쳐나던 시기라고 하는데요
오늘은 이 많은 나라들 중에서 전진이라는 나라의 북중국 통일을 이끌면서 5호 16국 시대를 넘어 위진남북조시대 최고의 책사 중 하나라 평가받는 왕맹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전진은 중국의 오호 십육국 시대 때 티베트계 저족에 의해 건국된 나라입니다
국호는 '진'이지만 같은 이름의 나라가 많기 때문에 구분하기 쉽게 가장 먼저 건국된 이 나라를 전진이라 부르게 되었죠
전진의 초대황제인 부건이 관중을 통일한뒤 1년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애꾸눈이었던 부생이라는 인물이 그 뒤를 잇게 되었는데 이 부생은 후삼국시대의 궁예처럼 사이코패스 기질이 강했기 때문에 온갖 폭정을 일삼으며 황족들과 공신들을 자기 마음대로 처형해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진의 수도인 장안에서 동해의 커다란 물고기가 왕이 된다는 동요가 떠돌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부생은 대신이었던 어준의 일족을 포함해 이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내 죽이기 시작했죠
그렇게 어 씨 일족이 멸문된 것을 본 동해왕 부견이 다음에는 자기 차례가 될 것을 예감하고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왕맹의 도움을 받아 부생을 계략에 빠트린 뒤 죽여버리고 전진의 3대 황제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왕맹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뛰어난 외모에 아는 것이 많은 데다 병법에도 밝으며 기개가 높고 도량이 넓어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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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화음산에 들어가 스승을 모시며 천하의 정세에 대해 공부하던 중 동진의 명장인 환온이 왕맹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와 그를 스카웃하려 했지만 왕맹은 자신의 스승과 의논한끝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전진의 황족인 부견이 왕맹의 소문을 듣고 그를 등용하게 됐는데 부견은 마치 유비가 제갈량을 대하듯 왕맹에게 정성을 쏟았다고 하네요
357년 수광정변을 일으켜 폭군 부생을 제거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부견은 왕맹을 중서시랑으로 삼았고 부견으로부터 실권을 부여받은 왕맹이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바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었습니다
왕맹은 전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당시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황제와 국법조차 우습게 보는 호족들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라 생각했고 부견도 호족을 숙청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황권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왕맹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죠
어차피 당시 전진의 지배층이었던 저족으로 이루어진 호족들 또한 별다른 경력도 없는 한족 출신인 왕맹이 벼락출세한 것을 질투하고 있었기에 양측 간의 충돌은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진의 공신이었던 번세라는 인물은 자신의 공을 믿고 왕맹을 질투해서 황제인 부견 앞에서도 대놓고 왕맹을 헐뜯는 일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더는 번세의 행패를 참기가 힘들어진 부견과 왕맹은 2대 황제인 부생을 제거했듯 이번에도 계략을 써서 번세를 제거할 준비를 했죠
하루는 부견이 일부러 번세의 앞에서 번세가 사윗감으로 점찍어놓았던 사람을 언급하며 자신이 그를 사위로 삼고 싶은데 어떻겠느냐는 말을 왕맹에게 했습니다
이에 번세가 그 인물은 이미 자신이 사위로 삼으려고 눈독 들인 사람인데 어째서 새치기를 하냐는 식으로 항의했고 왕맹이 어찌 신하 된 몸으로 감히 황제와 다투려 하냐는 식으로 번세를 비꼬았죠
이에 번세는 이번에도 자신의 공을 지나치게 믿었는지 온갖 욕을 퍼부으며 황제인 부견이 보는 앞에서 왕맹을 때리려고 들었습니다
이에 부견은 화를 내며 근위병들에게 명령해 감히 황제의 앞에서 함부로 행동한 번세를 체포했고 왕맹은 번세를 바로 끌어내어 참수해 버렸다고 하네요
전진의 초대 황제인 부건의 매부였던 강덕 또한 번세와 마찬가지로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고 다니다가 왕맹에게 걸려서 처형당한 후 그 목과 시체가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거리에 내걸렸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왕맹이 저족의 힘 있는 세력가들을 무려 20명이나 숙청하자 이때부터 조정의 모든 공경대신들이 부견과 왕맹을 두려워하게 되면서 늘 그들의 앞에서 몸가짐을 조심하게 되었으며 백성들은 길에 떨어진 물건조차 주워가지 않을 정도로 나라의 기강이 반듯하게 잡혔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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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본 부견은 왕맹 덕분에 이제서야 사람들이 이 나라에 법이 있고 황제가 존귀한 신분인 줄 알게 되었다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366년 12월에 농서의 이엄이 전진에 반란을 일으키자 왕맹이 직접 군을 이끌고 가서 이엄을 평정하고 동진을 격파했죠
다음 해에는 부견의 친족들인 부쌍과 부유 부무등이 5 공의 난을 일으키자 이번에도 왕맹이 여러 장수들과 함께 출격해 이들을 모두 진압해 버렸습니다
369년에는 동진의 명장 환온이 북벌을 시도하며 전연을 공격해 오자 전연의 마지막 황제인 모용위는 전진의 황제인 부견에게 구원을 청하며 그 대가로 전연의 영토 일부분을 전진에 내줄 것을 약속했죠
그런데 모용위는 막상 전진의 구원군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으면서도 약속한 영토를 전진에 내놓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맹은 이번에도 군사들을 거느리고 출격해 전연의 영토인 낙양을 포위해 버렸으며 모용위가 이를 구원하기 위해 보낸 병사들 또한 격파해 버렸습니다
환온이 전연에 쳐들어올 당시 그의 공격을 잘 막아낸 장수는 바로 모용수라는 인물이었는데 모용수가 큰 공을 세우면서 점점 그의 권위가 높아지자 당시 전연의 실권을 장악하던 모용평은 위기감을 느끼고 그를 암살하려 했죠
그렇게 목숨의 위협을 받은 모용수는 결국 전진으로 망명을 하게 되고 전진의 황제인 부견은 전연의 뛰어난 장수인 모용수가 망명해 왔으니 지금이 바로 전연을 칠 기회라 생각하고는 370년 왕맹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무려 10만이나 되는 대군을 거느리고 전연을 정벌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왕맹은 군사들을 크게 둘로 나눠서 자신은 호관으로 진공 했고 양안이라는 장군에게는 진양으로 곧장 밀고 올라갈 것을 지시했죠
왕맹은 큰 문제없이 호관을 공략하는데 성공하면서 이후 많은 군현들이 모두 전진에 줄줄이 항복하게 됩니다
반면 진양성에 있던 전연의 군대는 식량이 충분한 데다 병사들의 수도 충분했던 상황이라
양안군이 쉽게 진양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맹은 부하장수에게 호관을 지키게 하고 직접 진양을 치러 떠났죠
진양성의 방어가 생각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확인한 왕맹은 병사들에게 성 안쪽을 향해 땅굴을 파게 했고 땅굴이 완성되자 호아장군 장자에게 정예 병사 수백 명을 내주고 땅굴을 통해 성안으로 잠입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진양성에 있던 전연의 군대는 성 위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집중하느라 성안으로 전진의 군대가 잠입해 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죠
그렇게 무사히 성안에 잠입하는데 성공한 전진의 군대는 요란하게 고함을 지르며 적들을 혼란시키고는 성문을 열어버렸고 마침내 왕맹은 진양성을 함락시키며 연나라의 병주자사 동해왕 모용장을 포로로 잡게 됩니다
이때 전연의 황제인 모용위는 전진의 침공소식을 듣고 심복인 모용평에게 40만 대군을 주며 이를 막도록 했는데요
하지만 막상 왕맹군과 마주친 모용평은 전진보다 우세한 병력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왕맹의 능력을 두려워해서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수비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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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모용평이란 인물은 평소 무척 돈을 밝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나라에 운명이 걸린 전쟁터에 나와서도 적군을 물리칠 생각은 않고 산에서 나는 물을 독점하고는 병사들에게 돈을 받고 그 물을 팔았다고 하죠
그렇게 모용평은 물을 판 대가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지만 전연군의 병사들은 싸울 의지를 잃어버린 채 모용평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정찰을 통해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왕맹은 유격장군 곽경에게 기병 5천을 내주고 야간 기습을 해 산 옆에 있던 모용평의 진지에 불을 지르도록 했죠
그 후 결사대를 소집해 큰 공을 세워 나라에 보답하자며 병사들을 격려한 후 총공격을 시도해 모용평의 부대를 완전히 격파해 버리면서 15만 명 이상의 전연병사들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는 공을 세웠으며 모용평은 혼자 말을 타고 업성으로 도망쳤다고 하네요
이후 황제인 부견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출격해 전연의 수도인 업성을 점령했고 전연의 황제 모용위는 전진의 군사들에게 포로로 사로잡혔습니다
그렇게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전연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전진은 관중과 관동지역을 모두 제패하게 되면서 마침내 화북의 패자로 떠오르게 되었고 왕맹은 이 공로로 372년 승상의 직위에 오르게 되죠
하지만 거칠 것 없는 기세로 나아가던 전진에도 큰 위기가 닥쳤으니 바로 왕맹이 375년 7월에 병에 걸리면서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인데요
왕맹이 죽자 황제인 부견은 크게 슬퍼하며 태자인 부굉에게 이리도 빨리 왕맹을 데려가는 것을 보니 하늘이 내가 천하를 통일하는 걸 원치 않는 모양이라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왕맹은 죽음을 맞는 마지막순간까지도 나라를 걱정하며 그의 주군인 부견에게 아직 전진의 내실이 제대로 다져진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무리하게 다른 나라를 정벌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되고 특히 내부의 적인 선비족과 강족을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를 남겼죠
하지만 천하통일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부견은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왕맹의 유언을 무시한 채 동진을 정벌하기 위해 383년 11월 9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일으켜 정벌에 나섰지만 비수대전에서 동진에 대패를 당하면서 큰 손해를 보게 되는데요
이후 왕맹의 걱정대로 부견의 아래에 있던 선비족의 모용수와 강족의 요장이 전진을 배신한 뒤 각각 후연과 후진 등의 나라를 세우기까지 하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전진은 결국 394년에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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