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나라를 멸망시켰지만 강유의 꼬득임에 넘어가 다시 부흥시키려 했던 독특한 인물 종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유비가 세운 촉나라는 삼국지 최고의 산악인이라 불리는 등애로 인해 다음인 유선대에서 멸망하고 마는데요
촉나라를 멸망시킨 주역 중에서는 등애 외에도 한사람이 더 있습니다
그는 바로 종회라는 인물이죠
등애는 유선의 항복을 실질적으로 받아냈었기 때문에 그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삼국지 후반 인물들 중에서 굉장히 유능하고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종회가 촉나라를 멸망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긴 했지만 훗날 촉나라를 다시 부흥(?)시키는데도 이용(??)당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죠
오늘은 이 종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종회는 조조, 조비, 조예까지 삼대를 섬긴 위나라의 참모이던 종요의 아들인데요
독특한 점은 종요가 75세의 나이로 27살이나 어렸던 장창포라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늦둥이 아들이 바로 종회였죠
장창포는 종회가 어릴적부터 엄격하게 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녀는 종회가 불과 4살의 나이에 효경을 가르쳤고 7살때는 논어, 8살때는 시경, 이후에도 상서, 주역, 춘추좌씨전 등 교육에 엄청나게 열정적이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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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에 종회는 어렸을때부터 머리가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22살의 어린나이로 조정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고 당시 현학의 대가이면서 조상의 측근이던 하안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하죠
그러던 249년 정월날, 조상은 황제 조방과 함께 조예의 무덤인 고평릉에 참배를 가게 되는데 이때 종회도 중서랑 신분으로 그들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낙양에서는 사마의가 고평릉 사변을 일으켰고 조상이 항복함으로써 사마씨 일족이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게 되었죠.
그렇게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하안도 죽임을 당하게 되었지만 다행히 종회는 살아남을수 있었고 그 이후 그는 사마씨를 섬기게 됩니다
사마씨가 위나라를 좌지우지하자 열받은 하후패는 촉나라에 항복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하후패는 강유에게 "종회라는 사람이 있는데 아직 어리긴하지만 훗날 촉나라에 걱정거리가 될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하죠
어쨌든 사마의가 얼마후 세상을 떠나고 사마사가 권력을 이어받게 되었는데 어느날 우송이라는 사람이 상소문을 적는걸 종회가 도와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상소문을 워낙 잘 적었다보니 결국 사마사는 그걸 종회가 적었다는걸 알게 되었고 이후 그의 재능에 감탄하며 그를 아꼈다고 하죠
그리고 훗날 사마사는 조모가 황제로 즉위했을때 종회에게 조모는 어떤 사람인지 물었는데 종회는 "재능은 진사왕(조식)과 같고, 무용은 태조(조조)와 비슷합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조모는 굉장히 능력이 출중했었다고 하는데요
조모의 나이가 불과 16세밖에 되지 않았을때 학문의 수준이 조씨 가문에서도 천재라고 여겨지던 조식과 비슷하다고 평가했을 정도라고 하죠
그리고 조모는 종회와 다른 여러 학자들과 함께 정치나 학문에 대해 토론하는것도 즐겨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255년, 관구검과 문흠이 사마씨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사에게 반란 진압에 대한 작전을 일러줘 더욱 큰 신임을 받을수 있었는데요
사마사가 회군중에 급작스레 사망하자 형을 이어 사마소가 군을 이끌고 돌아오게 되었죠
이때 황제였던 조모는 이참에 사마씨들을 권력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사마소에게 허창 방어를 위해 군대는 허창에 두고 혼자 낙양으로 들어올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종회는 사마소에게 "황제의 말대로 하다간 멸문을 당할수도 있다"고 조언했고 이에 사마소는 허창에 대군을 주둔시키지 않고 낙양으로 진군하게 되었죠
그렇게 결국 조모는 어쩔수 없이 사마사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직위를 그대로 사마소에게 물려줄수밖에 없었고 사마소가 다음 최고 권력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덕분에 종회도 황문시랑으로 승진하고 무정후로 봉해지게 되었죠
이후 사마소는 어디 갈때마다 종회를 데리고 다니며 그의 재능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훗날 제갈탄이 반란을 일으키자 종회는 사마소와 함께 진압군으로 출진하게 되었죠
그런데 종회가 잘하는것 중 하나가 남의 글씨를 똑같이 베껴쓰는 것이었는데요
종회는 제갈탄을 도우러 온 오나라 장수 전역을 항복시킬 묘안이 있다며 사마소에게 제안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마소는 곧장 종회에게 작전을 실행하라 명했죠
그것은 바로 전역의 조카이던 전휘와 전의의 글씨를 베껴써 오나라에 돌아가면 죽임당할것이라는 편지를 보냈고 그렇게 전역은 위나라에 항복해버린것입니다
전씨들이 항복한 이후 작위에 봉해지고 후한 대접을 받자 수춘성에 있던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결국 종회의 계책이 딱 맞아 떨어지면서 수춘성을 함락시키는데 큰 공을 세워버린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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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탄의 반란을 진압한 이후 사마소는 더욱 종회를 아꼈으며 많은 사람들이 종회를 사마소의 장자방에 비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종회에게 계책은 많았지만 좀 비열하기도 하고 인성에 문제가 많았는데요
과거 종회는 죽림칠현의 필두였던 혜강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자신이 지은 <사본론>을 혜강에게 보여주려고 했지만 그의 비판이 두려워서 그냥 도망쳐 버린적이 있었죠
이후 그가 출세한 다음 이름난 명사들을 거느리고 화려한 복장으로 혜강을 찾아갔는데 혜강은 종회를 본척도 하지않고 거만한 태도로 대하자 종회는 앙심을 품고 돌아간뒤 그가 관구검의 반란에 관련이 있다고 모함해 죽여버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사마소의 아내이던 왕원희는 사마소에게 종회를 중용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종회의 이복형이던 종육도 사마소에게 동생 종회가 반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중용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죠
그러자 사마소는 종육에게 "만약 니말이 맞다면 종회때문에 니가 피해를 입을일은 없을것이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마소에게 이 말을 한 덕분에 훗날 종육은 목숨을 구하게 되죠
한편 계속해서 촉의 강유가 침략해 들어오자 열받은 사마소는 촉나라를 정벌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대부분 반대를 했지만 오직 종회만 사마소와 의견이 딱 맞아 떨어진 것이죠
그렇게 촉나라 정벌은 확정되었고 263년, 종회는 진서 장군이되어 10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촉한으로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이때 위나라의 작전은 등애가 강유와 싸우고 있으면 제갈서가 얼른 강유의 퇴로를 차단하고 이후 종회는 순식간에 한중을 함락시킨뒤 촉나라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었죠
그런데 촉나라로 진군중에 종회의 더러운 성깔이 드러나는 일이 발생하는데요
위나라의 개국공신이던 허저의 아들 허의에게 선봉을 맡기면서 먼저 길을 잘 닦아놓으라 명령했던 것이죠
그런데 허의가 만들어 놓은 교량이 하필 종회가 건널때 부서져버리면서 종회가 탄말의 다리가 구멍에 빠졌고 이로인해 종회가 낙마하는 사건이 발생해 버린것입니다
이때 완전 빡친 종회는 모든 부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허의의 목을 베어버렸죠
나라에 그렇게 많은 공훈을 세운 허저의 아들이었음에도 기어이 죽여버린 이 일로 인해 모두가 경악을 금치못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미리 세웠던 작전과는 다르게 제갈서가 강유의 계략에 걸려 퇴로를 열어주고 말았고 그렇게 강유는 유유히 퇴각해 검각에 틀어박혀 결사 항전을 했던 것이죠
결국 종회도 강유를 뚫어내지 못하고 검각에 머무르는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등애는 제갈서에게 산을 타고 우회해서 강유를 위협하면 검각에서 퇴각할것이라며 함께하자 했지만 제갈서는 말도 안되는 계책이라며 병사들을 이끌고 종회에게 달려갔고 그렇게 그 말도 안되는 계책은 등애 혼자하게 되었죠
한편 종회는 제갈서가 적이 두려워 도망친것으로 모함해 제갈서를 벼슬에서 쫓겨나게 만들어 버렸고 그렇게 종회는 제갈서가 지휘하던 3만의 군사까지 빼앗을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유가 지키는 검각을 뚫지 못하는 상황에 보급에도 차질이 생기기 시작하자 어쩔수 없이 종회는 퇴각을 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뜻밖에 소식이 들렸으니 등애의 등산 계책이 성공을 거둬 촉나라 황제 유선의 항복을 받아냈던 것입니다
이에 종회는 헐레벌떡 다시 군사들을 촉나라로 진군시켰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강유도 종회에게 항복하게 된것이죠
종회는 강유를 얻은것을 매우 기뻐하며 그를 후하게 대접했고 심지어 강유와 밖에 나갈때는 같은 수레를 타고 어디 앉을땐 같은 자리에 앉을 정도로 강유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이 촉나라 토벌군의 본대였는데 촉나라 멸망의 공을 등애가 가져가자 자신의 공이 더 크다며 장황한 보고서를 써서 사마소에게 보냈다고 하죠
덕분에 종회는 촉을 완전히 멸망시킨 공으로 사도에 봉해질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끝났다면 모든것이다 해피엔딩이 될수 있었지만 종회에게는 다른 여러사람들의 예상과 같이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강유 또한 촉나라를 다시 부흥시키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잘 맞았던 것이죠
이후 종회는 강유를 포함한 촉나라의 인사들과 교분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반란을 일으키기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당시 촉을 다스리고 있던 등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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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종회는 그를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등애는 자신이 촉나라를 다스리고 오나라를 정벌하겠다는 글을 사마소에게 보내고 있었는데 사마소는 등애의 이 행동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종회는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등애와 사마소가 주고 받던 편지를 가로채 등애의 편지는 굉장히 오만불손한 내용으로 고친뒤 사마소에게 보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마소는 등애를 의심하게 되었고 동시에 종회는 사마소에게 등애가 모반을 할 조짐이 있다고 상소를 올렸죠
그렇게 결국 264년 1월, 사마소는 등애를 잡아 들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종회는 곧장 위관을 보내 등애가 자고있는 새벽을 틈타 그를 잡아들였습니다.
이로써 눈엣가시였던 등애가 없어지자 종회는 반란을 일으키기로 하고 강유와 작전을 구상했죠
그리고 순식간에 위수와 황하를 건너 단시간에 장안을 먹고 낙양까지 빠르게 진격한다 라는 작전을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종회의 재주만 높이사 그를 이용했던 사마소는 그가 언젠가는 배신을 때릴거란걸 알고있었기에 대군을 거느리고 장안으로 향했던 것이죠
그리고 사마소는 가충을 보내 자신이 대군을 이끌고 장안에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자 종회는 매우 당황하며 장안 공격 계획을 포기해버렸습니다
자신의 야심이 간파당한걸 알았지만 모반 자체를 포기할순 없었던 종회는 결국 속전속결로 끝내기로 마음먹고 만약 실패하더라도 촉나라에서 독립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죠
그리고 측근에게 "만약 잘되면 천하를 얻을 것이고, 잘못되면 유비가 될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64년, 촉과 위의 관리들을 모두 성도로 불러 모은뒤 자신의 반란에 찬동하지 않는 위나라 장수들을 모두 가둬버렸죠
이에 강유는 위나라 장수들을 모두 죽여서 후환을 없애고 그들의 병권을 모두 빼앗아야 한다고 했지만 종회는 쉽게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가 결국 위나라 장수들이 갇혀 있다는 소식이 위군 전체에 퍼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갇혀있던 호열이 아들 호연에게 편지를 보내 종회가 반란을 일으켰고 위군 장수들을 죽이려 한다고 알리자 호연은 얼른 군사들을 이끌고 종회가 있는 곳으로 공격해 들어왔죠
이에 종회는 놀라 우왕좌왕 하면서 강유에게 어떻게해야 하냐고 물으니 강유는 당연히 싸워야 한다고 말했고 그제서야 종회는 병사들을 보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난전속에서 결국 종회는 병사들의 칼에 의해 겨우 40살의 나이로 죽임당하고 말았고 반란은 실패로 끝나게 되었죠
역모죄로 죽임을 당했으니 그의 일족은 멸문을 당하는것이 맞았지만 종육은 과거 사마소에게 말한것이 있어서 종육과 그의 아들 종준, 종천은 살아남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종회의 부하였던 상웅이 종회의 시신을 거둬가 장사지내주었죠
종회는 여러 일화로 봤을때 인성이 완전 더러운 인간에 가까웠고 능력면에서도 문제가 좀 있는것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반란을 일으킬 명분이 전혀없었고 이후 무슨일을 처리할때마다 강유에게 물어봤을 정도였으니 진짜 그가 똑똑한게 맞나 싶을 정도이긴 했습니다
이후 등애도 보복이 두려워 죽임을 당했으니 촉나라를 멸망시킨 두 주역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것 같네요
지금까지 촉나라를 멸망시킨 장본인이자 강유와 함께 촉나라를 부흥시키려던(?) 골때리는 인물 종회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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