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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부라쿠민. 일본인들에게 더럽고 불결하다 생각되어져 인간취급 못받은 일본인

by 사탐과탐 2022.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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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에게 더럽고 불결하다 생각되어져 인간취급 못받은 일본인 현재까지도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일본의 천민 부라쿠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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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분제도가 없어진 현재까지도 사실상 이어지고 있다는 일본의 천민계급 부라쿠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또한 전근대시절에는 신분제도가 존재했죠

 

그중에서도 최하층에 위치했던 것이 바로 부라쿠민 또는 히사베츠부라쿠민이라고 불렸던 이들인데요

이들은 당시 가장 불결하고 금기시되던 곳인 부라쿠(부락)에 거주했던 집단으로 가축을 도살하거나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 가죽세공을 하는 사람 등 불교의 영향으로 생명을 해치는 것을 꺼려 하던 일본인들에게 천대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죠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 천민 계급의 기원이 언제부터인지 확실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근대 일본이 군국주의화 되면서 당시의 일본 정부가 가까운 지역들을 두고 '사실 이곳은 원래 전부 일본 땅이었다' 라는 억지 주장을 펴기 시작했고 이후 그 지역들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는 과정에서 피해자인 소수 집단의 역사를 부정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많은 자료들이 사라졌고 이에 따른 연구도 힘들어졌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에도시대(1603~1868) 이전에도 천민에 해당하는 신분 계층은 있었지만 계층 간의 구분이 확실해진 것은 에도 시대 이후였다고 하죠

에도시대에는 각각 병사와 농민, 장인, 상인을 가리키는 병농공상의 4단계로 나눠서 신분이 세습됐는데 이 4단계의 신분중 어느 것에도 들지 못하는 신분이 있었으니 바로 앞에서 말했던 천시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최하층 천민들은 두가지 계층으로 나뉘었는데 그중 에타라는 계층은 가축의 도살, 형장의 사형 집행인 가죽 가공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죠

에타의 에는 더러움을 뜻하며 문자 그대로 더러운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라쿠민들을 멸시하는 감정이 담긴 표현이었습니다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목숨을 빼앗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꺼렸던 당시 일본인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죠

또 다른 계층은 '히닌'이라고 불렸는데 주로 사형 집행을 보조하는 사람들과 백정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시체매장인과 도로 청소부, 광대 등 여러 직업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히닌은 불교 용어로서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라는 뜻을 가진 차별적 단어였죠

이들은 그렇게 일종의 빈민 거주 지역을 만들고 다른 신분 계층과는 분리된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차별당하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차별받는 부락이라 부르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피차별 부락민이라고 부르게 되면서 부라쿠민의 역사가 시작됐죠

 

메이지(1868~1912)시대에 새로운 정부가 세워진 후부터 일본 정부는 세금을 내지 않았던 천민을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양민으로 만들기 위해 부라쿠민 해방령을 발표했습니다

기존의 사농공상 신분제를 폐지하는 동시에 그때까지 에타나 히닌으로 불리고 있었던 천민 집단에 대해서도 일반국민(평민)의 지위를 부여한 것이죠

하지만 부라쿠민에 대한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의식은 하루아침에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평민들은 부라쿠민과 동등한 지위가 된다는 사실을 거부하며 해방령 반대 운동을 곳곳에서 일으켰고 부라쿠민들에게 '신평민'이란 호칭을 붙여 차별했죠

심지어 성난 일부 평민들이 부라쿠민들을 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여기까지는 천민 신분이 유지되던 시절의 여러 전근대 국가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문제는 이런 천민 거주 집단을 차별하는 사회적 풍토가 일본에서는 현대까지도 계속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이 차별받는 것처럼 말이죠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한 가지는 현대사회에서 대체 어떻게 그들이 부라쿠민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냐는 것인데요

일본 사회는 한 가문이 같은 지역에서 대를 이어 같은 직업에만 종사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문화 속에서 사람들이 꺼리는 질병이나 죽음에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을 사회적으로 천대하는 분위기까지 합쳐지면서 직업이 곧 계급이 돼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런 차별의식이 가장 잘 나타난 부분이 바로 혼인인데 많은 수의 일본인들이 격의 차이가 나지 않는 가업을 가진 가문끼리만 결혼을 하게 되면서 계급이 대물림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죠

이러한 폐쇄적인 신분 차별은 가족단위를 넘어 마을 단위로까지 커지면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을 가진 마을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높은 격을 가진 마을로 취급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 시절의 일본만 해도 출신지와 이름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정도의 삶을 살았는지 대충은 파악을 할 수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일본인들은 바로 이 점을 악용해서 부라쿠민들을 차별했죠

일본 사회에서 최하위층에 속하는 부라쿠민은 같은 부라쿠민 이외에는 혼인을 맺지 않고 당연히 사는 곳도 제한되기 때문에 출신지를 보면 단번에 부라쿠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점을 이용해서 이력서 등에 적힌 출신지를 보고 부라쿠민을 불합격시키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죠

190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일본에도 헌법이 만들어졌고 정부에서 부라쿠민을 비롯한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면서 사람들의 차별의식은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졌습니다

 

과거에는 부라쿠민들을 아예 같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일본 사회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지난 수백 년간 내려왔던 뿌리 깊은 차별의식은 아직까지도 드러날 때가 많아서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1963년 사이타마현에서 여고생이 납치된 후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범인을 잡지 못하자 경찰이 근처 부라쿠 지역에서 이시카와 카즈오라는 사람을 체포한 후 고문한 끝에 자신이 범인이라는 거짓 자백을 받아냈죠

그렇게 이시카와 카즈오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감옥생활을 하다가 1997년이 돼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75년에는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 부라쿠민에 대한 신상정보를 모은 블랙리스트가 거래해온 것이 발각됐는데 이런 부라쿠민 블랙리스트 관행은 현재까지도 몰래 이뤄지고 있다고 하죠

 

그 외에도 2009년 구글어스에서 옛 일본 지도와 현재 지도를 겹쳐보는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라쿠 지역이 발견되자 일본의 네티즌들이 인터넷상에서 더러운 동네라는 이름을 붙여 해당 지역의 정보를 퍼뜨려버리는 일이 있었으며 일본의 정치인 아소 다로는 한 부라쿠민 출신 정치인에게 "부라쿠민 따위는 일본 총리가 될 수 없다"라는 폭언을 날리는 등 아직까지도 부라쿠민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하네요

 

지금까지 부라쿠민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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