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역사 탐구

남북전쟁의 진실. 흑인노예는 안중에 없고 오직 자신들의 승리만을 위했던 전쟁

by 사탐과탐 2022. 7. 19.
반응형
흑인노예는 안중에 없고 오직 자신들의 승리만을 위했던 남북전잭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노예 해방 전쟁으로 알려진 미국의 남북전쟁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1861년 4월 12일. 남북전쟁은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섬터요새를 향해 공격이 가해지면서 시작되었는데요

에이브러햄 링컨을 필두로 한 북부연방과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장으로 한 남부 아메리카 동맹이 대립했던 남북전쟁은 4년동안의 치열한 접전끝에 1865년 결국 북부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죠

 

하지만 피해는 어마어마했는데요

당시 미국인구의 8%에 해당하는 약 62만여명의 전사자가 나왔고 미국 국토의 약 30%가 초토화 되버렸습니다

거기다가 현재 돈으로 따져도 19조원에 해당하는 약 150억 달러의 피해액이 나왔을 정도로 남북전쟁은 여러모로 엄청난 피해를 끼쳤던 전쟁이었죠

 

하지만 200여년동안 처참한 삶을 살았던 흑인 노예들에게 자유를 준 역사적인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승리한 북군의 대장이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 최고의 대통령 중 한명으로 추앙받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링컨을 연구하는 미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칼 샌드버그'는 남북전쟁이 노예해방 전쟁이 아닌 목화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델라웨어, 캘리포니아, 미네소타를 비롯한 19개 주로 이루어진 북부와 앨라배마, 플로리다, 루이지애나를 포함한 11개 주로 이루어진 남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요

공업이 발전한 북부에서는 공산품을 생산해 미국전역에 팔면서 경제적 이득을 창출했었고 남부에서는 전통적인 목화 농업을 하면서 이 목화를 영국과 여러 나라에 수출해 이득을 창출했었죠

 

그러던 어느날 북부의 상원의원인 '새디어스 스티븐스' 공화당 의원이 유럽에서 들어오는 공산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당시 북부에서 생산되던 공산품이 유럽에서 들어오는 값싼 공산품에 의해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잘 팔리지 않게되자 그 해결책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정책을 시행하자고 한것이죠

 

이에 남부의 미시시피주 상원의원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는 이는 절대 시행되선 안되는 정책이라고 하며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영국과 자유무역을 하고 있던 남부는 만약 고관세 정책을 시행하게 되면 영국도 분명히 맞대응으로 고관세 정책을 내놓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목화 수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것이 자명했고 엄청난 손해가 발생할것이었기 때문에 격렬히 반대했던 것이죠

 

이렇게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발생한 북부와 남부의 갈등 속에 결국 참지못한 남부는 연방정부로부터 독립할것을 선언했고 그러자 결국 남북전쟁이 발발한것입니다

칼 샌드버그는 이러한 정황들을 근거로 들어 남북전쟁이 노예제 폐지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 아니라 남부와 북부가 서로의 경제적 이권을 지키기 위해서 발발한 전쟁이라고 주장했던 것이죠

 

게다가 콜롬비아 대학교 역사학자인 앨런 네빈스 교수는 남북전쟁은 연방정부를 유지하기 위한 전쟁이라고도 주장했는데요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은 뉴햄프셔, 펜실베니아, 메릴랜드 주를 비롯한 13개 주가 모여 연방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연방국은 다른주들을 섭렵해 가며 영토를 확장해 나갔는데 1848년이 되자 북아메리카 전체를 영토로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그 이후 공업위주의 북부와 농업위주의 남부로 나뉘게 된 연방국은 서로간의 산업기반과 문화의 차이로 시도때도없이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북부는 국론 분열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강력한 중앙정부를 두자고 주장했던 반면 남부에서는 스스로 자급자족이 가능했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힘을 최소화 하고 지방 자치를 우선시 해야한다고 주장했죠

 

이런 서로간의 입장차이 때문에 남부와 북부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었고 결국 1860년 12월,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주지사 였던 헨리 클락은 연방정부로부터 탈퇴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시작으로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주가 잇달아 연방을 탈퇴해버렸고 얼마안가 탈퇴한 주들끼리 남부 아메리카 동맹을 결성했죠

 

그리고 미시시피주 출신 정치가 제파슨 데이비스를 남부 아메리카 동맹의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1861년 3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부 아메리카 동맹의 결성은 명백한 반란행위라고 주장했고 그렇게 남북의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되었죠

그로부터 약 1개월 후인 1861년 4월 13일, 남부 아메리카 동맹이 북부의 섬터요새를 공격하면서 남북전쟁이 시작된것입니다

 

또한 링컨은 뉴욕 트리뷴지의 편집장에게 한통의 편지를 보냈는데요

이 편지에는 전쟁의 목표는 연방을 보존하는것일뿐 노예제도를 보존하거나 폐지하는것은 아니다 라고 쓰여있었던 것이죠

즉 링컨은 연방의 보존에만 관심이 있었을뿐 노예해방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남부의 대통령이던 제퍼슨 데이비스는 미시시피안 신문에 사설을 실었는데 "남부의 독립을 성취하는데 노예제도가 방해가 된다면 노예제도를 당장 폐지해 버리자" 라는 내용이었다고 하죠

남부 역시 노예제의 존폐는 크게 관심이 없고 오직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1863년 1월 1일,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링컨은 남부 여러주의 노예를 해방한다는 선언문을 발표 했죠

노예 해방선언이 발표되고 2년후인 1865년에 흑인 인권에 관련된 헌법이 개정되었는데 이것은 바로 미국의 수정헌법 13조항 '미국 전지역에서 노예제도를 불법화 한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은 남북전쟁의 그 어떤 결과보다 중요한 의미를 담고있었고 역사적으로도 기념이 될만한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남북전쟁이 노예해방전쟁으로 기억하게 된것이죠

 

그런데 흑인 역사학자인 '존 호프 프랭클린'은 노예제 폐지는 사실 치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전략이라고 말했는데요

노예 해방 선언을 하기 약 5년전인 1858년 9월에 있었던 상원의원 선거토론에서 링컨은 "백인과 흑인간에는 신체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평등하게 함께 사는것은 영원히 어려울 것이다. 어울려 살더라도 지위 구분이 되어야 하고 나도 백인에게 우위가 주어져야 한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라고 했다고 하죠

 

그만큼 링컨 또한 노예해방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남부의 흑인노예들은 전쟁에 필요한 군량이나 군복 등의 물자 조달을 모두 떠안고 있었고 거기다가 철로와 교량 등을 만들거나 고치고 요새 등을 축조 하는것 또한 흑인노예들의 몫이었죠

그만큼 남부에서는 흑인노예들이 전쟁에 기여한 부분이 굉장히 많았던 것입니다

 

이에 북부에서는, 남부의 흑인노예들을 풀어준다고 하면 분명히 흑인노예들도 흔들리게 될것이며 그러면 남부는 아마도 전쟁을 지속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그렇게 단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던 것이죠

실제로 노예 해방 선언 이후 남부의 흑인 노예들은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으며 남부에서 북부로 탈주하는 흑인들마저 생겨나면서 남부에는 극심한 혼란이 초래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거기다가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에게는 '북부군은 노예들의 해방과 자유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해방군' 이라는 이미지도 각인시켜 유럽 열강들의 지지도 받으면서 대의명분까지 확보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존 호프 프랭클린은 이러한 예들을 근거로 들어 노예해방령은 남부의 노동력을 없애고 유럽 열강의 지지까지 받는 목적의 고도의 전략에 불과했다라는 주장을 했던 것이죠

 

결론은 남북전쟁은 북부와 남부 모두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했기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었을뿐 흑인노예들의 자유와 해방은 양측 다 별 관심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벌써 150년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남북전쟁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자 노예해방을 놓고 벌어진 전쟁으로 남아있으며 링컨 역시 위대한 해방자로 추앙받고 있었죠

 

그러나 최근 아이비리그 명문대인 코넬대학은 링컨의 흉상과 게티즈버그 연설을 기념하는 명판을 철거했는데요

누군가가 불만을 제기 했기 때문에 철거하게 되었다 라는 답변 외엔 구체적으로 무슨 불만때문에 철거를 했는지는 답하지 않았다고 하죠

또한 요즘 미국의 많은곳에서 링컨의 동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마냥 추켜세우기엔 애매한 인물인것 같긴 하네요

 

노예 해방 전쟁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 남북전쟁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