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명의 가족 전체가 동굴에서 숨어살면서 식X을 한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오늘은 15세기 무렵 스코틀랜드에서 산적 두목으로 있으면서 25년간 300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식인행위까지 한 것으로 유명했던 최악의 식인종 일가 알렉산더 소니 빈과 그의 가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소니 빈의 이야기는 에든버러의 필수 관광코스로 여겨질 만큼 유명하지만 실제 많은 역사학자들은 소니 빈이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니 그저 재미있는 썰 정도로만 생각해주세요
소니 빈은 1360년 무렵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동쪽으로 150킬로미터 떨어진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마을에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하수구를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소니도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곤 했었지만 평소 난폭한 성격에 게으름뱅이었던 그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게 되자 아버지처럼 지루한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결심을 하며 가출을 하게 되죠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여성을 만난 소니는 그녀와 평생을 같이 하기로 맹세했고 얼마 후 그들이 함께 살 집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두 사람이 살기로 한 신혼집은 평범한 가정주택이 아니라 무려 길이가 1마일(1.6킬로미터)이 넘는 거대한 동굴이었죠
소니 빈이 집으로 선택한 해변가의 동굴은 너무 깊고 길어서 내부가 넓은 데다가 이틀에 한 번 꼴로 입구가 물에 잠기기 때문에 숨어 살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평범하게 일을 하며 돈을 벌 생각이 전혀 없던 소니는 주변을 지나다니는 여행자를 습격해서 돈을 뺏는 산적 노릇을 하기로 결심했죠
이후 그는 근처의 마을로 이어지는 좁은 길중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습격해서 돈을 뺏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숨까지 빼앗았습니다
그들을 살려 보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이라도 나면 자신이 곤란해진다는 이유로요
하지만 그가 빼앗은 물건들 중 주인이 누군지 금방 알아볼 수 있는 비싸고 값진 물건은 근처 마을에 내다 팔 기가 어려웠고 티가 안 나는 옷가지나 잔돈 따위만으로는 먹고살기에 턱없이 부족했죠
때문에 먹고살기가 어려워진 소니 빈은 결국 동굴 구석에 방치해뒀던 희생자들의 시체를 식량으로 삼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렇게 소니 빈 부부는 동물을 잡아 도축하듯 아무런 죄책감없이 자신들이 죽인 희생자들로 식인행위를 했죠
소니 빈의 동굴이 있던 갤러웨이 해안 주변에서 계속해서 실종자가 발생하자 실종자 가족의 신고를 받은 당국에서 조사에 나서기도 했지만 소니 빈 부부가 숨어있는 천연동굴은 끝내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틀에 한 번씩 입구가 드러나는 동굴에서 젊은 부부가 사람을 죽여 인육을 먹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엽기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자신들의 은신처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안심한 소니 빈 부부는 동굴 속에서 무려 14명이나 되는 자식들(8남 6녀)을 낳았는데
그 자식들이 서로 근친상간을 거듭하면서 가족의 수가 더 늘어난 끝에 소니 빈 일가는 27명의 남자와 21명의 여자로 이루어진 대가족을 이루게 됐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는 받아 본적 없이 보고 배울만한 것이라고는 자신의 부모들뿐이다보니 이들 또한 소니 빈 부부를 따라 강도살인과 식인을 서슴치 않았으며 시간이 지난 후에는 아예 군대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희생자 무리를 앞뒤로 포위한 후 죽여서 잡아먹고 재물을 약탈하곤 했죠
웃긴 점은 그래도 가족이라고 같은 가족들끼리는 결코 잡아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자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큰 불안을 느끼면서 당국에서도 조사에 나섰지만 딱히 증거라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는 탓에 소니 빈 일가의 범행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니 빈 일가의 수가 수십 명 단위로 늘어나자 주변의 마을 주민들 또한 동굴 주변을 맴도는 어린아이들과 청년들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죠
그중 소니 빈 일가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긴 몇몇 사람들은 그들의 소굴 근처로 접근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정체가 무시무시한 식인 가족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무방비로 접근했다가 그들에게 살해된 후 잡아먹혀버렸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들의 이런 생활도 결국 끝을 보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어느 날 소니 빈 일가가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고 돌아가던 한 부부를 습격해 부인을 먼저 죽이고 남은 남편까지 죽이려던 순간 갑자기 무기를 든 용병들을 호위로 거느린 상단이 나타났죠
잠시 후 두 집단은 전투에 들어갔지만 각종 무기로 무장한 스무 명가량의 용병들을 이길 수는 없었고 상황이 불리하다는 걸 깨달은 소니 빈 일가는 자신들의 소굴로 도망을 쳤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남편과 용병들은 즉시 글래스고로 가서 영주에게 신고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영주는 4백 명이 넘는 군인들과 훈련된 군견들까지 동원해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했죠
소니 빈 일가의 은신처가 워낙 은밀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수색 초반에는 허탕을 쳤지만 그 주변을 지나던 도중 군견들이 동굴 안에 있던 시체의 냄새를 맡으면서 마침내 48명의 소니 빈 일당이 모조리 붙잡히게 되는데요
당시 동굴을 수색하던 군인들은 25년간 산더미처럼 쌓인 사람들의 시체와 뼈다귀들 그리고 벽에 걸린 인육들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체포된 소니 빈과 그의 일당들은 에든버러로 끌려왔고 그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참상에 당시 스코틀랜드 전체가 어마어마한 충격에 빠졌다고 하죠
이들의 범죄행각이 너무나도 잔인하고 악랄했던 탓에 국왕과 관리들은 특별법까지 적용해서 범인들을 모두 사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1696년에 출판된 너새니얼 크라우치의 책에 따르면 소니 빈 일가 중 남자들은 모두 능지처참을 당했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죽는 것을 지켜본 후 화형에 처해졌다고 하는데요
어린아이들도 한 살짜리 여자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형에 처해졌는데 유일하게 남은 생존자 여자아이는 훗날 자신의 가족사를 알게 되자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죠
소니 빈에 관한 이야기는 1188년 영국의 국왕인 헨리 2세의 명령으로 세워진 영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형무소 뉴게이트 감옥의 범죄 캘린더에 기록돼있으며 그의 이야기는 에딘버러의 관광상품으로 개발될 만큼 유명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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