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범죄사를 영원히 기록될 희대의 연쇄 살x마 유영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약 20명의 생명을 빼앗은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70년 4월 18일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유영철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계모에게 밤만 되면 폭력을 당했다고 하죠
불우한 가정환경이 그를 이토록 끔찍한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만들었던 것일까요
그의 초등학교 시절은 비교적 평범했지만 동물 해부실험을 할 때 개구리를 잡아 목을 비틀고 해부하는 것을 유난히 즐겼다는 걸 보면 이때부터 그의 가학적인 성격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유영철은 화가를 꿈꾸며 예술고등학교에 지원했지만 색맹을 갖고 있던 탓 입학에 실패했고 이후 국제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남의 물건을 훔친 죄로 구속돼 소년원에 들어간 뒤 결국 학교를 자퇴했죠
3년 뒤인 1991년까지 여러 차례 절도죄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유영철은 1993년 황 씨라는 여성과 결혼했지만 결혼한 지 몇 달이 되지 않아 또다시 절도죄로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해에 아들을 얻은 그는 아침에는 웨딩숍 사진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불법 퇴폐업주들을 상대로 자신이 경찰이라 사칭하며 그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생활을 했다고 하죠
그러다 1998년에는 공무원 사칭, 2000년에는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결국 이혼을 당하게 됩니다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하자 극도로 분노한 유영철은 처음에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마음을 바꿔 다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죠
당시 월간조선에는 1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정두영에 대한 기사가 연재되고 있었는데 유영철은 교도소에서 정두영을 롤모델 삼아 그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범행수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9월 11일 전주교도소를 출소한 유영철은 서울로 돌아와서 어머니 집에 잠시 머물렀다고 하죠
그는 그곳에서 칼로 큰 개를 찔러보는 살인 실험을 해보면서 범행도구로 피만 많이 나올 뿐 곧바로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칼을 쓰기보다는 망치로 머리를 세게 때리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곧바로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모방범죄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 자세한 방법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는 범행을 저지를 시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흉기에 특수한 처리를 한다거나 자신의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범행도구를 준비해 다니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고 하죠
이후 유영철은 출소 13일 후인 9월 24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에서 숙명여자대학교 이모 교수와 부인을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 달 9일 종로구 구기동에서 주차관리원 고모씨의 집에 침입해 고씨의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지체장애를 앓고 있던 고씨의 아들을 둔기로 살해했습니다
불과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10월 16일 유영철은 강남구 삼성동의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그곳에 살고 있던 69세 유 모 씨를 둔기로 살해했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장감식을 해본 결과 일주일 전 구기동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걸 알게 됐죠
이때부터 언론에서는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고 경찰에서도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당시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 측에서는 피해자가 노인이고 둔기를 이용한 잔인한 범행이라는 것은 같지만 피해자의 상처의 깊이나 폭의 넓이 등이 다른 점으로 봤을 때 다른 범행도구를 사용한 것으로 짐작되며 두 사건은 서로 다른 인물이 일으킨 것이라는 헛다리를 짚었다고 합니다
한 달 뒤인 11월 18일 유영철은 종로구 혜화동에서 또다시 둔기로 87세의 노인 김 모 씨와 그 집의 가사도우미까지 살해했는데 신고를 받고 수색을 하던 경찰은 가까운 건물 입구에 CCTV 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녹화된 테이프를 분석 한끝에 범인의 뒷모습이 찍힌 화면을 찾아냈죠
이후 경찰은 168cm의 키에 금강제화 버팔로 캐주얼화를 신고 다니는 20~30대 남자를 찾는다는 수배 전단을 전국에 뿌렸습니다
경찰이 자신을 수배하자 한동안 몸을 사리던 유영철은 다음 해인 2004년 4월 14일부터 또다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죠
그는 서울 중구 황학동의 도깨비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안모 씨에게 위조한 경찰 신분증을 들고 가 그를 승합차 안으로 유인한 후 그 안에서 잭나이프로 안모 씨를 수차례 찔러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그리고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안모 씨의 사체를 잔인하게 훼손한 후 그의 승합차마저 불 질러 버렸죠
유영철은 이후로도 2004년 3월부터 7월까지 마포구 일대의 오피스텔에서 전화방이나 마사지 도우미로 일하는 여성들을 불러들여 총 11명이나 되는 사람을 살해하고 그들의 시체를 훼손했습니다
그는 주로 전화를 이용해 여성들을 불러낸 후 위조한 경찰관 신분증과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수갑을 보여주며 경찰인척 사칭해서 그녀들을 협박해 오피스텔로 데려갔다고 하죠
그렇게 오피스텔에 들어간 유영철은 피해자들에게 샤워를 하게 시킨 후 욕실로 따라 들어가 둔기로 그녀들을 기절시키고 살해해버리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반복되는 살인행위에 점점 무뎌진 그는 자신의 비뚤어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피해자들의 사체를 마구 절단하거나 식인행위까지 하는 인간이하의 행위까지 저질렀죠
그러던 2004년 7월 15일 특정번호로 불러낸 마사지사들이 자꾸 실종된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유영철을 현장에서 검거했는데 처음 유영철을 잡았을 때 경찰은 그를 단순한 납치범 정도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영철은 실종된 여성들을 어디로 빼돌렸냐는 경찰의 질문에 갑자기 자신이 최근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말하며 그들을 혼란에 빠트렸죠
그리고는 시체를 숨긴 장소를 알려주겠다며 경찰서를 나서다 도망을 쳐버렸는데 다행히 11시간 만에 영등포역에서 경찰에 다시 붙잡혔다고 하네요
유영철은 처음 조사에서 4건의 살인혐의만을 인정하더니 이어진 현장검증에서는 26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했죠
말이 오락가락하는 그의 말을 믿기 힘들었던 경찰은 추가적인 조사를 이어나갔고 그 결과 유영철이 총 20명을 살해했으며 그중 일부 피해자를 상대로는 식인행위까지 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2005년 6월 9일 대법원에서 유영철의 사형이 확정되었지만 대한민국은 1997년 12월 30일 이후로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영철은 현재까지도 구치소에 갇혀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19년 10월 27일 그것이 알고 싶다 1188회에 나온 유영철의 근황을 보면 그는 교도관에게 자신이 사이코인 것을 모르냐며 너 하나 죽여도 난 어차피 사형이라고 당당하게 한밤중에 난동을 부리거나 교도관들에게 커피를 마실 물을 끓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는 등 교도관들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고 있다고 하죠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표창원 등의 범죄심리분석가들 또한 유영철은 어떤 반성이나 후회를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냈고 유영철이 수감돼있는 교도소의 관계자는 교도관의 팔까지 부러뜨릴 만큼 행패를 부리는 유영철을 두고 마치 법 위에 사는 거 같다라며 한탄을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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