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고요하고 평화로운 새벽을 깨트리는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바로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것인데요
이 최악의 참사가 일어나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고요하고 평화로운 새벽을 깨트리는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바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약 100km 떨어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제 4호기에서 폭발이 일어난것이죠
체르노빌의 4호기 원전은 만들어진지 불과 3년밖에 안되었던 원전이었는데요
대폭발이 얼마나 강력했냐면 원자로를 덮고 있던 무게 약 1000톤의 강철 반응로 뚜껑이 하늘로 날라가버렸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원자로에서는 무시무시한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았죠
그렇게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만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원자로의 노심이 완전히 파괴된 상황이었는데요
노심이란 핵반응이 일어나는 원자로의 중심부인데 당시 노심 안에는 약 200여톤의 우라늄 핵연료가 들어있었으며 엄청난 열을 발생했지만 열을 식히지 못하면서 노심이 녹아 내렸고 이에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안에 있던 방사능 물질들이 바람을 타고 체르노빌을 중심으로 아주 넓은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또한 곳곳에는 화재가 발생했고 수백톤의 방사능 핵 연료와 흑연이 뒤섞여 원전 4호기 근처는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죠
당시 체르노빌 원전 폭발로 인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400배가 넘는 방사능이
유출되었습니다
그런데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는데요
바로 원전이 폭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오늘은 이 끔찍한 참사가 일어날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합니다
인류는 20세기 초에 핵애너지를 알게 되면서 이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한 핵폭탄을 만들게 되죠
그렇게 1945년 7월 미국에서 최초로 핵무기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을 하게 되었고 이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실전 투입까지 하게 됩니다
그때 핵폭탄의 놀라운 위력을 보고 충격을 받은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소련의 독재자인 스탈린이었죠
그는 앞으로 전세계의 판도를 가르는 것은 바로 핵무기가 될것이라고 생각했고 이후부터 소련에서도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렇게 연구를 거듭한 결과 1949년, 드디어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죠
당시 미국과 소련은 전세계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던 냉전시대 였고 이때부터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핵폭탄 수를 늘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소련이 미국의 핵폭탄 수를 따라 잡기에는 너무 늦은감이 있었죠 (당시 핵폭탄 개수 미국 299개, 소련 5개)
그러자 소련은 핵 에너지를 폭탄말고 다른쪽으로 사용해 미국보다 더 빨리, 세계 최초로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인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954년 세계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오브닌스크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되기 시작했죠
이는 소련과 사회주의 체제의 자랑거리가 되었는데요
자신들은 핵을 평화적으로 사용하는 반면에 미국은 전쟁에 이용한다며 미국은 전쟁광이라는 등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전과 홍보를 이어나갔습니다
냉전시대에 사회주의 체제와 소련이 미국보다 더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소련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전력을 많이 생산 하는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화력발전소가 세워지면서 농촌에까지 전기가 들어갔고 호롱불 대신에 전구를 쓰게 된것이죠
하지만 당시 화력발전은 전력을 생산하는데 돈이 많이 들었던 반면에 원자력 발전소는 초기 건설비용은 비싸지만 한번 만들어 놓으면 오래 운영할수도 있고 많은 전력도 생산해낼수 있었기 때문에 소련은 매우 효율적이고 실리적인 이유에서 원전을 건설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원전을 건설하기 시작해서 1980년대까지 수많은 원전을 지어 나갔죠
그런데 소련 체제에서는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초과 달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소련은 당이 정한 목표는 어떠한 것이든 반드시 이뤘어야 했는데 더 어처구니 없는건 목표보다 초과 달성을 강요했으며 초과 달성을 하지 못하면 엄청난 질책을 받았던 것이죠
그러다보니 체르노빌 원전을 건설할때도 목표보다 더 빨리 했어야 했으니 원전 건설 일정을 무리하게 잡았던 것입니다
1977년 12월에 1호기 원전이 완공된 이후로 1978년 12월에 2호기, 1981년 12월에 3호기, 그리고 1983년 12월에 4호기까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만들어졌던 것이죠
원래 원자력 발전소 하나를 짓는데 지금도 최소 5년이나 걸리고 평균 15년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는 걸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속도로 원전을 지어댄것이었습니다
또한 여기서 인간들의 무서운 탐욕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 있는데요
모든 원전이 모두 12월에 완공된 이유가 당시 연말까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면 보너스를 줬는데 그 보너스를 받기위해 다음해로 넘어가기전에 무리하게 공사를 해버렸던 것이죠
특히 사고가 발생한 4호기의 경우엔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이 정해준 12월 말까지 완공 일자를 맞추기위해 부실공사는 두말할 필요 없고, 원전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시험까지 생략해 버렸던 것이죠
애초에 체르노빌 원전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불안정하게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심지어 원전을 만든 사람들은 공로를 인정받아 당으로 부터 포상을 받았으며 최고 책임자들인, 발전소 소장 브류하노프 와 부소장이자 수석 엔지니어 포민, 부수석 엔지니어 댜틀로프는 훈장까지 받았죠
당시의 이런 상황자체가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한 첫번째 이유가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이렇게 무리한 일정을 잡아야 겨우 목표를 달성하고 초과 달성까지 할수 있게한 것이 원전의 핵심인 원자로 설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당시에도 다양한 원자로 종류가 있었지만 소련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RBMK형 원자로 모델을 사용했습니다
원자로를 안정 시키려면 3가지 필수장치가 필요한데 바로 핵연료를 식히는 냉각수와 핵분열을 조절하는 제어봉과 감속재가 그것이었죠
그런데 당시 세계 대부분의 원전에서는 감속재로 물을 사용했지만 소련에서 개발한 RBMK의 경우 감속재로 흑연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흑연을 사용할시 안정성이 떨어졌지만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할수 있어서 값이 쌌고 원자로의 크기를 확장 하는데에도 빠르기도하고 쉬워서 크게 확장하고나면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수 있기도 했던 것이죠
한마디로 가성비가 좋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체르노빌 원전 4호기는 빠르고 값싸게 짓기위해 안정성이 떨어지는 RBMK형 원자로를 사용했고 너무나 거대한 크기로 원전을 지었기 때문에 핵분열을 줄여줄 섬세한 제어봉 조작이 어렵다는 단점도 존재했죠
이것이 바로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하게 된 두번째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련은 계속해서 RBMK 원전 건설은 늘려갔으며 설계상 문제가 있었던 원전을 짓다보니 소련 내부에서 원전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하기도 했죠
하지만 소련은 체르노빌 사고 이전의 원전사고들은 철저히 비밀로 감추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하게 된 세번째 이유가 되는데요
1975년 레닌그라드 원전에서도 원자로 내부의 연료봉이 녹으면서 많은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되었지만 소련 정부에서는 연료봉 하나가 파손된 단순 사고일 뿐이라 발표하면서 방사능 유출에 대한건 언급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원인을 조사한 결과 RBMK형 원자로 설계에 심각한 결함이 원인이었던 것이 드러났지만 소련정부는 이 사실마저 은폐해 버렸고 심지어 RBMK 원자로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걸 알면서도 체르노빌 원전 3,4호기의 건설 계획을 승인해버린 것이었죠
그렇게 체르노빌 원전 4호기가 만들어졌고 불과 3년만에 사고가 나버린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명백히 밝히고 대처해야 했지만 소련은 이 문제들을 감추기에 급급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당시가 냉전 시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최첨단 과학 기술인 원자력 발전에서 문제가 생겼다는것은 사회주의 체제와 소련의 체면이 크게 훼손된다는 이유에서 였죠
그러다보니 소련은 원전이 계속해서 안전하다고 선전했고 심지어 RBMK형 원자로는 주전자 만큼 안전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또한 소련의 에너지 장관은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신문, 잡지, 라디오, TV 방송은 불법이라며 처벌한다고 까지 했죠
그러나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당일에 있었습니다
바로 폭발이 일어나기 하루전에 예정된 안전 실험 때문이었죠
만약 정전이 되었을시에도 냉각수가 순환 하면서 원자로를 계속해서 식혀줘야 하는데 정전이 되면 냉각수를 돌리기 위한 비상발전기가 가동되기 전까지 약 1~2분간의 시간동안 텀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1~2분간이라는 짧은시간에도 원자로가 폭발할 위험이 있기때문에 원자력 발전소에 관성으로 돌던 터빈이 만들어내는 전기로 전기가 공급될때까지 냉각수를 돌려줄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었죠
이 실험은 사실 이미 3년동안 여러차례 실험을 진행했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간 상황이었는데 원전의 책임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안전 실험을 끝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폭발 하루전날인 1986년 4월 25일 금요일, 실험을 준비하던 원전 4호기 기술자들은 정전 상황을 가정해 원자로의 출력을 절반으로 낮춘 상태로 비상 발전기의 전원까지 꺼놓았죠
그렇게 전력생산량이 반이나 떨어지게 되자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의 전력담당 공무원이 체르노빌 원전에 전화를 걸어 당의 생산 목표량을 맞추려면 전기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전력 생산량을 낮추지 말아달라고 한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급했던 체르노빌 원전 책임자들은 날짜를 다시 잡지 않았고 원래 예정 시간보다 하루가 늦춰진 4월 26일에 절차와 규정, 안전까지 모두 무시된 상황에서 실험을 강행하게 되죠
거기다가 새벽 1시에 실험을 하다보니 밤 12시에 교대시간이 되자 실험을 진행하기로 했던 담당자들이 퇴근해버렸고 실험 방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실험 자체를 처음 해보는 신입 엔지니어들로 담당자가 바뀌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만큼 원전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이 중대한 일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데요
그리고 이런 위험한 실험을 하는데도 원자로 근처에서 일하던 직원들에게 실험 상황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채 안전 실험이 시작되었죠
무엇하나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험을 하려고 출력을 낮추려는 순간 반만 낮추려고 했던 출력이 생각과는 다르게 바닥을 쳐버린것입니다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실험 책임자 댜틀로프는 다시 출력을 높이기 위해 원자로 내에 있던 제어봉을 모조리 빼버리라고 지시했죠
원자로 안전 규정상 제어봉은 최소 15개 이상이 꽂혀 있어야 했는데요
실험을 최대한 빨리 끝내버리기 위해 이 안전 규정을 깡그리 무시해 버린것이죠
그러자 당시 직원 중 한명이 너무 위험하다며 실험의 중단을 요구했지만 댜틀로프는 이를 묵살해 버리고 실험을 강행했습니다
그렇게 핵분열을 제어하던 제어봉을 거의 다 빼버리니 결국 원자로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버렸죠
이에 댜틀로프는 원자로의 비상정지를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비상정지 버튼을 누르는 순간 원자로 안에서는 태양 표면 온도만큼인 6,000도의 열이 한순간 발생하면서 원자로 안에 있던 물을 순식간에 증발시켜 버렸고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한 원자로가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폭발해버린것 이었죠
그렇게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4분경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체르노빌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이후 소련의 대처는 정말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하는데요 하지만 몇몇 영웅들이 탄생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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