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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사건 탐구

치치지마섬 사건. 일본군이 미군포로에게 행한 끔찍하고 충격적인 만행

by 사탐과탐 2022.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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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치치지마섬에서 일어난 잔인무도한 사건인 치치지마섬 사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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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1월 13일. 고마에서 열린 전범재판에 제출된 마토바 진술서에는 믿기지 않을정도로 충격적인 사실이 실려있었고 일본군의 끔찍한 만행이 밝혀집니다

그 충격적인 내용은 바로 지난 1945년 2월, 일본군이 사람을 잡아 먹었다는 내용이었던 것이죠

 

사실 전쟁 중 고립된 부대에 식량이 떨어지면 사람의 시신을 먹는일이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먹을것이 다 떨어져 굶어죽기 직전까지 간 극도로 처참한 상황에 최후의 선택으로 어쩔수없이 행해졌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정상참작이 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이 사건은 식량이 부족한것도 아니었고 살아 있던 사람을 죽인 뒤에 먹었다는 점에서 방금 말한 시신을 먹는것과는 완전히 다른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훗날 '치치지마 사건'이라고 부르게 되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치치지마는 일본 본토에서 남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곳에 있던 섬이었습니다

이 섬은 이곳으로부터 약 200km 떨어져있는 섬인 이오지마 섬과 일본 본토를 연결해주는 중간 보급로인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였죠

그렇다보니 1945년 당시 치치지마섬은 다치바나 요시오가 지휘하고 있는 제 1 여단 병력이 주둔해 섬의 수비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해 2월이 되자 이오지마 섬을 공략하려던 미군은 이오지마를 고립시키기 위해 중간 보급로를 끊을 목적으로 치치지마를 공격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하지만 그곳에 많은 병력을 투입하기에는 아군의 피해가 클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치치지마섬은 그냥 폭격기를 보내 폭격만 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자 미군은 항공모함을 띄워 폭격기를 그곳으로 출격 시켰는데요

폭격은 성공적이었지만 항공모함으로 귀환하던 폭격기가 일본군 대공포에 의해 몇대가 격추되고 말았던 것이죠

이에 많은 미군들이 죽거나 바다에 빠지고 말았고 그 중 한 미군 중위는 간신히 낙하산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미군 중위는 2~3시간 정도를 치치지마 근처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다행히 근처에 있던 미군 잠수함에 의해 구조되었죠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때 구조된 미군 중위가 바로 조지 H. W. 부시 였는데요

미국의 제41대 대통령 그가 바로 이때 살아난 미군이었죠

 

그런데 나머지 살아난 미군 8명은 치치지마 섬에 주둔하던 일본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전년도인 1944년에 잡힌 포로가 한명 더 있었기 때문에 미군 포로는 합쳐서 총 9명이 있었죠

당시 일본군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국 군대 중에서도 포로를 향한 가혹행위나 학대, 구타 등이 가장 심했다고 하는데요

 

거기다가 일본은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양아치나 건달같은 사람까지 개나소나 아무나 막 병사로 뽑았었기 때문에 점령지의 국민들이나 포로로 잡은 적군들은 인간취급 안하기로 유명했었던 것이죠

그러던 1945년 2월 23일.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다치바나 요시오와 마치바 수이오 등 여러 사람들이 술을 먹고 있었는데 안주가 부족해 진것이죠

그러자 다치바나 요시오가 갑자기 미군 포로들의 인육을 가져오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바로 포로들을 안주로 먹기 위해서 였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미군 포로들은 죽임 당한뒤 그들에게 먹히게 되었는데요

인육은 연회를 열었던 카토 타케무네 대좌의 방에서 요리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이라도 먹도록 강요했다고 합니다

당연하겠지만 거기서 인육을 맛본 사람들 중 단 한사람도 그것이 맛있다고 하지 않았다고 하죠

 

모리쿠니조라는 인물의 증언에 따르면 희생자 중 한명인 플로이드 할은 간이 떼어내진뒤 야채와 간장과 함께 요리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포로 9명중 5명은 인육이 되어 먹혀 버렸고 나머지 4명은 먹히지는 않았지만 처형되거나 죽임 당했죠

 

이는 앞서 말했듯이 식량부족의 이유도 아니었고 단지 술 안주로 먹기위해 산 사람을 일부러 죽이고 그 시신을 먹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요시오는 부대원들에게도 강제로 인육을 먹였고 먹지 않겠다고 하는 부대원들은 엄청난 구타를 당하기도 했죠

 

또한 사카베 군의관에게는 간과 장기를 적출할것을 명령했는데 그는 이 끔찍한 일에 관여하기 싫어 자신보다 하급자인 테라키 중위를 보내고 자신은 그곳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다치바나 요시오는 미군의 인육과 내장등을 먹고나서 맛있다며 더 가져 오라고까지 했다고 하죠

 

그냥 처형을 당한 포로들 역시 너무나도 처참하게 목숨을 빼앗겼는데요

희생자 였던 마비 머숀은 일본군의 강요에 따라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팠어야 했고 다 판 이후 일본군은 그를 무덤위에 무릎 꿇린채 가차없이 그의 목을 쳤다고 합니다

그 일이 있고 시간이 흘러 일본이 패전을 하게 된 이후인 1945년 9월 2일 미군이 치치지마 섬에 상륙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다음날 다치바나 장군은 미 해군 전함에서 정식으로 항복을 했습니다

그때 미군들이 일본군에게 포로였던 9명은 어떻게 되었는지 묻자 그들은 방공호에서 수류탄을 터트려 포로 전원이 자폭했다고 둘러댔죠

이미 치치지마섬에 있던 일본군들끼리 전범으로 처벌받는것을 피하기 위해 서로간에 입을 맞춘 상태였고 그들은 미군을 속이기 위해 포로들의 묘지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말을 믿었던 미군은 일본군 패잔병들을 본토로 귀환시켰고 다치바나 요시오도 아무런 구속이나 제재없이 일본 본토로 돌아가게 되었죠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일부 일본군 병사들은 미군 조사관에게 미군 포로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에 대해 모두 증언했고 그러자 미군은 이 악독한 인간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열린 재판에서 다치바나 요시오 장군 외 4명은 포로 살해 및 시체 훼손 혐의로 사형에 처해졌으며 해군이던 모리 쿠니조 제독을 포함해 여러명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죠

이후 모리 쿠니조는 네덜란드에서 다시 기소 되었고 거기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고 합니다

원래 일본군의 포로들 대우는 잔인했었지만 치치지마 사건은 다른 일본군 전범들 조차 고개를 가로저었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고 하죠

 

그런데 이후 더 충격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데요

그것은 바로 다치바나 요시오가 에히메현 호국 신사에 있는 '순국 22 열사의 비'에 이름이 올라가 있고 호국 영령으로 모셔지고 있으며 심지어 일제의 전쟁범죄자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도 봉헌되어 있어 수많은 일본인들의 참배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일본의 극우들은 이들이 처형당했다고 하면 죄를 인정한것이나 다름없으니 '죄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뜻의 '법무사(法務死)'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 이들은 처형당한게 아니라 법무사 당했다 라는 이상한 말을 한다고 하죠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으로써 할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치치지마섬 사건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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