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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폭군 간신 탐구

신돈. 부패한 고려를 개혁시키려 했지만 권력에 취해 타락해버린 요승

by 사탐과탐 2021.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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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은 고려 말에 혜성처럼 등장해 공민왕의 총애를 입어 절대 권력을 쥐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패한 고려를 개혁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좋은 정치를 하기 시작했지만 권력에 취해버려 본인 자신도 타락하게 되었죠.
개혁가이면서 동시에 요승이기도 했던 두 얼굴을 가진 신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고려말기에 공민왕이 망해가는 나라를 개혁하기 위해 등용한 인물이자 요승이라 불릴 정도로 요사스러운 인물, 신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는 고려 말기의 승려이자 정치가였는데요.

개혁가라는 평가와 요승이라는 평가가 공존하는 골 때리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닌 신돈의 아들이다 라는 소문도 있죠.

그러다보니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우왕을 '신우'라고 불렀다고도 합니다.

신돈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길래 우왕의 아버지가 신돈이라는 소문까지 났던 것일까요?

 

신돈은 1323년 현재 경남 창녕군 영산면인 영산현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려사>에는 아버지에 대해 적혀 있지는 않았는데요.

어머니는 옥천사라는 절의 노비였죠.

신돈은 어린 나이에 출가를 해서 '편조'라는 법명으로 승려가 되었습니다.

 

(드라마 대풍수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가 승려일 때 기록이 없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고려 말의 학자 이달충이 편조를 비판하는 시에 의하면 편조는 매골승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죠.

매골승이란 시신을 매장하는 일을 하는 승려였는데요.

아무래도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던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지 않았나 싶네요.

 

그런데 그는 승려 일 때 절로 찾아오는 신도들의 신분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도들과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죠.

그렇다 보니 그는 훗날 개경에 있던 현화사의 주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민왕은 한 가지 독특한 꿈을 꾸는데요.

꿈에서 자신을 해치려고 한 자객을 어떤 승려가 물리쳐 준 것이었죠.

 

그러고 얼마 후 신하인 김원명의 소개로 편조를 처음 보게 되었는데 꿈속에서 본 승려와 생김새가 너무 닮아있어서 한눈에 편조에게 빠져든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이 진행하려던 개혁 정책에 대해 편조 역시 공감해 주고 그의 현란한 말솜씨에 매료된 공민왕은 그가 다른 신하들과는 다르게 사리사욕이 없다는 점과 정치적으로 당파 같은 것에 속해있지 않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며 그를 등용해 개혁 정책의 전면으로 내세우게 된 것이죠.

 

(드라마 대풍수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다 1365년 2월 공민왕은 아내이던 노국대장공주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자 엄청난 충격에 실의에 빠져 버렸습니다.

이후로 정치에 뜻을 잃었으며 편조에게 개혁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고 자신은 불교에 심취했죠.

그러자 편조는 막강한 권력을 거머쥐게 되었는데요.

그는 법명이던 편조를 버리고 환속해 신돈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강력한 개혁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땅을 농민들에게 보급했고 노비안검법을 부활시켜 억울한 계기로 노비가 된 양인들을 풀어주기도 했으며 권문세족이 불법적으로 빼앗은 땅들을 원래의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기도 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권문세족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고 신돈을 굉장히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조정 내의 부패한 관리들도 축출해 내기까지 했죠.

 

그러자 백성들은 그의 공정한 정치에 성인이라는 칭송을 듣기도 했습니다.

또한 신돈이 불교 승려 출신이다 보니 유학을 공부하는 신진사대부들에게 엄청 욕을 먹었지만 정작 자신은 공자는 천하 만세의 스승이라며 성균관도 부활시켜 신진사대부들이 세력을 키우는데 알게 모르게 공헌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자신의 권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출신이 미천하며 승려 출신에 부패하고 탐욕스럽다는 이유로 그에게 불만을 품는 세력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대풍수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신돈은 과도한 권력욕 때문에 정도전의 스승이자 공민왕의 충신이던 '유숙'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를 모함해 죽이기까지 했는데요.

그러자 성균관 유생들과 신진사대부들이 격분하며 그에게 등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거기다가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이나 인물들은 모조리 죽이거나 관직을 박탈했습니다.

 

신돈은 환속한 이후 자신의 집을 얻어 그곳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급속히 사치와 향락, 주색에 빠지며 타락하기 시작했죠.

수많은 여자들을 집으로 불러 놀아나기도 하고 첩들 또한 많이 거느렸습니다.

게다가 "여자들과 잠자리를 갖는 것은 그 여자의 기운을 끌어다 자신의 기를 기르는 것일 뿐 사통하는것은 아니다" 라는 개소리를 하기도 했고 도성 안에만 자신의 호화로운 대저택을 일곱채나 짓기도 했죠.

 

그리고 불교 행사와 제사, 축제를 열기 위해 백성을 엄청나게 수탈해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또한 굉장히 위선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술과 고기, 음악, 여자를 너무나도 좋아했지만 공민왕을 만날 때만큼은 채소와 과일, 차만 마시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위선에 수많은 신하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죠.

 

(드라마 대풍수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거기다가 정력 보충을 위해 오골계를 자주 먹었으며 흰말의 거시기까지 먹었을 정도로 호색한 이였습니다.

어느 날 이달충이라는 사람이 신돈에게 "많은 사람이 공은 주색을 너무 밝힌다고 말하더라" 라고 그를 지적한 적이 있는데 이달충은 즉시 파면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이존오라는 신하는 공민왕에게 신돈을 비판한 상소문을 올렸을 때는 바로 붙잡혀 하옥되기도 했죠.

 

그의 행동이 날이 갈수록 기괴해지면서 그가 사냥개를 무서워하고 사냥을 싫어하는 점을 들어 사람들은 그의 본모습은 사실 구미호 아닐까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죠.

신돈의 사치와 향락, 주색에 빠진 것, 또한 부정축재, 부패 등 온갖 쓰레기 같은 막장 행보를 보인 것과 동시에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것, 급진적인 개혁정치로 인한 권문세족들과의 충돌과 신진사대부들과도 마찰, 심지어 최영 같은 무신들 조차 그를 싫어하다 보니 모든 신하들의 타겟이 되어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제 공민왕 조차 신돈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이를 눈치챈 '이인'은 신돈이 반역을 꾀한다는 거짓 편지를 써 재상이던 김속명의 집으로 보내버렸는데요.

이를 공민왕에게 보고하자마자 신돈은 붙잡혀 감옥에 갇혀 있다가 1371년 7월, 4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당해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거기다가 신돈의 머리는 효수되어 백성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었고 사지는 잘려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드라마 대풍수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의아한 점은 아무리 반역죄라도 죄인 심문이나 고문은 있기 마련인데 심문 한 번도 하지 않고 갇혀 있다가 참수를 당한 것을 보면 신돈의 숙청은 공민왕의 뜻이었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긴 하죠.

신돈이 최고의 권력을 가졌을 때 자신이 총애하던 '반야'라는 여종을 공민왕에게 바쳤는데요.

훗날 반야는 나중에 고려 우왕이 되는 '모니노'를 낳게 되죠.

 

이 때문에 이성계 일파는 조선을 건국한 것이 정당했다는 의미로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아들과 손자라는 뜻의 '신우', '신창' 이라고 불렀는데요.

조선시대 500년 동안 우왕은 신우라고 불렸으며 현재도 우왕의 진짜 혈통은 알 수 없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성계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모함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왕의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공민왕과 신돈 밖에 없었고 공민왕에게는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우왕이 신돈의 자식임을 숨기고 이 사실이 들통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신돈을 없애버리기 위한 공민왕의 술책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신돈이 승려일 때의 기록이 없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홀연히 나타난 한 남자에 의해 나라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던걸 보면 그가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네요.

 

그가 죽지 않고 고려의 혁명을 계속 이어갔으면 고려의 멸망은 조금 더 늦춰질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최악의 간신으로써 어짜피 고려의 멸망은 막을 수가 없었을까요?

고려의 최고의 혁명가이자 최악의 간신, 요승 신돈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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