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예수와 맞먹는 '아가'라고 칭하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사이비 종교 아가동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1979년 전북 익산에 있던 주현교회는 신도들과 나체로 '천국 댄스'라는 춤을 추는 기행으로 알려진 종교단체였죠
그런데 이 주현 교회의 목사인 이교부 씨가 폭행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그곳의 신도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될 상황에 처했을 때 갑자기 이교부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신도들을 불러 모은 사람이 있었는데요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아가동산의 교주 김기순이었습니다
아가동산은 1982년에 김기순이 창시한 대한민국의 신흥종교로 대법원 판결상 사이비 종교로 판정받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명백한 '사이비 종교'라고 보는 시각이 많으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들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죠
아가동산의 교주인 김기순은 1940년 11월 1일 경상남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교주가 되기 전엔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는 1978년 전라북도의 '주현교회'라는 사이비 종교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주현교회는 이교부라는 사람이 이끄는 교회로 신도들에게 머리를 밀게 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삭발교'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죠
그 황당한 별명에 맞게 주현교회에서는 갖가지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목사가 교인들을 폭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 건물 안에서 예배를 하던 중 함께 천국으로 가자면서 옷을 벗고 신도들과 껴안은 채 춤추는 나체 댄스 사건을 일으키면서 결국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는 일까지 생겨났는데요
게다가 자신에게 충고하러 온 동료 목사를 폭행하는 사건까지 일으키면서 결국 이교부는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서 지내게 되었고 1981년에 출소한 뒤에는 주현교회를 해산하게 되죠
이때 김기순은 1982년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일대의 땅 4천 평 정도를 사서 그 자리에 '아가농장'이라는 것을 세운 후 주현교회의 해산으로 갈 곳이 없어진 이교부의 신도들을 끌어모으며 신흥종교인 아가동산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설립 과정에서 김기순은 멀쩡히 살아 있는 이교부의 영혼을 자기가 계승했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자신이 이교부의 진짜 후계자라고 자처했죠
이러한 행동들은 당연히 이교부의 원한을 사게 되었고 이교부는 훗날 김기순이 재판 이후 감옥에 갇히자 아가동산의 기존 신도들을 다시 데려오는 것으로 복수를 했다고 하네요
아가동산은 언뜻 보면 그냥 일반적인 개신교 종파 중 하나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신교에서 예수를 빼고 그 자리에 김기순을 대신 집어넣은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라고 합니다
이 종교의 교리는 일단 김기순은 신이며 3살짜리 아기이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러한 교리를 '아가야 법'이라고 부르며 아가동산에서는 모두가 이 법을 따라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습니다
김기순은 신도들을 세뇌하기 위해 기존의 종교들에 대한 비난을 퍼부으며 오직 자신만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고 찬송가에 나오는 예수나 예수의 상징을 '아가' 또는 '아가야'라는 말로 바꿔버리면서 자신을 찬송하게 만들었죠
행사에서는 꽃가마를 타고 나타나거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등 일반적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행동을 보이곤 했습니다
게다가 아가농장이라는 노동착취형 농장을 짓고 수많은 신도들을 이용해 자신의 돈벌이에 이용하기도 했는데요
김기순은 농장관리와 장부관리, 의료관리, 세무관리 등의 역할을 맡은 관리직까지 따로 둬가면서 철저하게 신도들에게 공동체 생활 및 공동작업을 하도록 명령했고 덕분에 신도들은 매일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낮에는 농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장에서 CD나 테이프를 만들며 일하는 식으로 원치 않는 투잡을 뛰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이런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폭행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살해당한 후 암매장을 당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하죠
특히 이곳에서 신도 3명을 살해한 것이 밝혀졌는데 1987년 8월 14일에는 7살 어린이였던 최낙원 군이 교주 김기순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김기순은 최낙원 군을 돼지우리에 집어넣은 후 신도들에게 아이에게 붙은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1주일 동안 최낙원 군을 굶기고 폭행한 끝에 결국 죽게 만들었죠
치밀하게도 범행을 저지를 때 여러 명의 신도들이 돌아가면서 피해자를 몇 대씩만 때리고 나오도록 명령을 내리면서 정작 폭행을 저지르는 신도들도 자신들이 최 군에게 가하는 폭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짐작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1988년 1월 2일에는 과수원 관리책임자이던 윤모 씨가 교주의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이유로 살해당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21세 여성 강모 씨가 '교주의 아들을 유혹해서 교리를 어지렵혔다'는 명목으로 창고로 끌려가 그녀의 부모에게 따귀를 맞은 후 여러 신도들이 휘두른 각목에 맞아 살해당했는데 아가동산 교단 측에서는 그저 '가출'로 처리했다고 하죠
강모 씨는 신도들 사이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교주의 집에 드나들며 그녀의 집안일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교주의 아들이 강모 씨에게 먼저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교주인 엄마에게 부탁해 '그녀를 식모로 부리자'는 부탁을 하면서 강 모 씨가 교주의 집에서 집안일을 하게 됐던 것인데 이후 이를 다른 신도들에게 들키자 반발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교리를 어지럽혔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폭행해 끝내 목숨을 뺏은 것이죠
강 모 씨 전에 살해당한 윤 씨의 경우 그의 아들이 이천경찰서에 진정서를 냈지만 윤 씨의 아내가 "남편은 음독 자살했다"고 주장을 하는 바람에 수사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병원 의사들도 사체를 검안할 당시 최낙원 군의 사인은 '선천성 심장질환' 그리고 윤 씨는 '음독자살'등으로 처리해 버렸는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수사에 나선 일부 경찰관과 병원 의사들의 부실한 사체검안 그리고 아가동산의 신도였던 유족들마저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서 수년간 그 사건들이 숨겨져 왔던 것인데요
게다가 목격자들도 피해자들이 폭행을 당하는 광경은 봤지만 실제 살해당하는 과정을 보지는 못했다고 하죠
김기순은 교인들에게 1년에 딱 4번만 휴가를 줬는데 바로 신정과 광복절, 크리스마스, 그리고 교주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황당하게도 교주 생일에 쉬는 이유는 교주 김기순을 우상으로 하는 연극을 관람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당연히 주말과 추석, 설날 연휴에도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텔레비전이나 신문등을 보는 것을 금지시키고 외부 출입이나 가족 면회 등도 금지시키는 등 신도들이 바깥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막아버렸다고 하죠
가족이 모두 신도인 경우에는 오직 김기순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유로 가족들을 모두 뿔뿔이 흩어 놓았는데 아버지는 아저씨라 부르고 어머니는 아줌마라고 부르면서 마치 서로 남인 것처럼 대하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부부끼리 같이 자는 것조차 금지했고 신도들이 데려온 아이들도 대부분이 중졸정도의 학력까지만 쌓도록 하면서 병역의 의무까지 고의로 피할 수 있도록 강요했다고 합니다
또 김기순은 지상천국을 세운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신도들의 재산 50억 원 정도를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에 1996년 수사를 할 당시 김기순의 은신처에 있는 금고에 만 원권 지폐로 현금 7억 원과 당시 환율로 1,600만 정도 되는 달러가 보관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고 하죠
이렇게 신도들의 인권 따위는 개나 줘버린 착취 끝에 6년 만에 4천 평이었던 땅이 13만 평으로 대략 32배나 늘어났고 1994년 유리하우스 등을 세우며 정부와 경기도청 등으로부터 23억 5천만 원이나 되는 국고를 지원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쌓은 권력이 오래갈 리가 없었죠
1995년 8월에 아가동산을 탈출한 신도들이 교단 측의 탈세와 사기 등 온갖 비리에 대해 경찰에 진정서를 냈지만 경찰에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20일 만에 내사 종결처분을 내 버렸습니다
그러자 신도들은 1996년 7월 15일 경기도청에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고 이천경찰서에서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나섰죠
그리고 12월 1일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은 이천경찰서로부터 아가동산과 관련된 수사자료를 넘겨받은 후 김기순과 관리책임자 김 씨 등 핵심신도 3명을 구속하고 공개수사로 전환해 검경 합동수사에 들어갔습니다
김기순은 자신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실을 전해 듣고는 남편과 함께 시골지역을 돌아다니며 도피생활을 하다가 12월 16일에 결국 검찰로 자진 출두를 했고 자신에게 쓰여진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부인했지만 결국 구속됐습니다
19일에는 교주의 아들을 유혹했다는 누명을 쓰고 살해당했던 강 씨의 유해발굴에 착수했지만 결국 그녀의 유골은 찾지 못했고 27일에는 김기순 외 10명이 살인 및 사기 혐의로 기소됐죠
1997년 4월 28일 김기순에게는 사형이 구형됐고 나머지 간부들에게도 모두 중형이 구형됐지만 그 사이 1996년 노동법 날치기와 한보 사태, 김현철 스캔들 등 숱한 사회적 이슈들이 잇따라 터지며 아가동산은 사람들에게서 점차 잊혀져간데다 검찰조사과정에서 당시 신도들의 사체를 암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던 굴삭기 기사 윤 씨가 진술을 번복한 사실이 밝혀지고 폭행당해 죽은 최낙원 군의 친모까지 자신의 아들은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선천성 심장병으로 죽었다며 교주를 감싸는 바람에 결국 제대로 된 피해 사실을 증명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최근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재판 전날 김기순이 피해자의 친모를 직접 불러 그녀를 설득했으며 재판 당일에도 아가동산 관계자들이 와서 그녀를 감시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김기순은 조세 포탈과 횡령 등의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4년과 벌금 56억 원을 선고받는데 그쳤으며 이후 보증금 1억 원을 내는 조건 하에 보석으로 석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신도 살해와 폭력은 위와 같은 이유로 무혐의로 판결되었지만 이후에도 이에 대해 증언하는 피해자들이 적지 않았기에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과 관련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아가동산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한 피해자들 또한 그동안 김기순이 사람들을 착취하고 중노동 시킨 죄에 비해서 너무나도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죠
그렇게 김기순이 수많은 신도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세운 아가동산은 김기순이 구속되고 난 후 그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해 점점 신도들이 줄어들면서 사실상 해산되었고 2000년 8월에 완전히 출소한 김기순은 교주로서의 권력을 잃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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