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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악진. 연의에서는 그냥저냥 장수였지만 실제로는 관우도 패배할 만큼 엄청나게 강했던 위나라의 명장

by 사탐과탐 2023.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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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진 또한 삼국지연의에서 별다른 공이 없는 인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관우도 패배할 만큼 엄청 강했던 위나라를 대표하고 조조가 신뢰했던 명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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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에서 진수는 위나라에서 조조를 도와 공을 세운 무장들 중 장료와 악진, 우금, 장합, 서황 이렇게 다섯 명이 으뜸이었다고 말했고 후세에 중국인들은 이들에게 오자양장이라는 호칭을 붙였죠 

하지만 이들 중에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악진은 최고의 공을 세웠지만 다른 장수들에 비해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많은 손해를 보게 된 장수라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악진은 대체 어느 정도의 장수였는지 지금부터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악진은 다른 장수들에 비해 키와 덩치가 작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가 처음 조조의 밑에 들어왔을 때는 조조도 악진이 그리 믿음직해 보이지 않았는지 그에게 장하리라는 직책을 내려 기록을 하는 임무를 맡겼죠 

하지만 머지않아 조조는 악진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악진은 뛰어난 무력과 배짱을 앞세워 연주에서 여포와 싸울 때 선두에서 공을 세웠고 조조가 안중에서 장수를 격파할 때 그리고 하비에서 여포를 사로잡을 때도 활약했으며 패현에서 유비를 상대로도 승리하는 등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죠 

 

이후 관도대전에서는 우금과 함께 병사들을 이끌고 원소군의 진영을 습격해 수천 명의 병사를 죽이거나 사로잡았으며 20여 명이나 되는 원소의 장수들에게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악진전의 기록에 따르면 악진은 조조가 오소를 공격할 때도 참가해서 순우경을 사로잡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고 하네요

원소가 죽은 후 조조가 하북을 평정할 때는 원담과 원상을 여양에서 공격해 대장인 엄경의 목을 베었으며 하북의 황건적을 쳐서 격파한 후 청주 낙안군을 평정하기도 했습니다

조조가 허도로 돌아간 후 악진은 장료와 함께 기주의 음안현을 함락시키고 그곳의 백성들을 황하 이남으로 이주시키기도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조조가 업을 점령할 때나 남피의 원담을 칠 때도 항상 선두에 서면서 자신의 용맹함을 뽐낸 악진은 원담을 격파한 후 따로 부대를 이끌고 유주 어양군 옹노현을 점령했습니다

때문에 조조는 206년 헌제에게 올리는 표에서 악진과 우금 장료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죠

"이들은 무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계략을 짜내는데도 능하며 적을 만났을 때는 빠르게 결단을 내리면서도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주군에 대한 충성심도 한결같이 뛰어나고 싸울 때마다 병사를 잘 지휘해서 어떤 강한 적이라도 모두 물리쳤으며 전쟁터에서는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직접 북을 치면서 모범을 보이기도 하니 멀리 원정을 갈 때도 이들이 이끄는 부대는 군법을 잘 지키면서도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조조는 그렇게 부하장수들을 극찬하며 우금을 호위장군, 악진은 절충장군, 장료는 탕구장군에 임명했습니다

문빙전에 따르면 남군 공방전에서 악진은 문빙과 함께 심구라는 지역에서 관우와 만나 그의 부대를 격파해 버렸고 이후 남군 일대의 산과 계곡에서 살던 남만인들이 악진에게 항복했다고 하죠

 

212년 손권은 조조에게 공격을 받자 유비에게 지원을 요청하게 되는데요

이때 유비는 한중의 장로로부터 유장을 지켜준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촉으로 와있었는데 손권의 요청을 받자 유장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게 되죠

유비는 유장에게 만약 조조가 손권에게 승리한다면 형주를 통해서 익주로 쳐들어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장로는 한중에 틀어박혀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장로보다 조조를 막는 것이 훨씬 급한 상황이니 우선 형주로 가서 조조를 막겠다고 전달하며 병사 1만과 보급물자를 부탁했죠

 

이때 편지의 내용 중에는 위나라의 장수 악진이 청니에서 관우와 서로 대치하고 있는 중인데 만약 자신이 지금 가서 관우를 구원하지 않으면 악진이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기로 소문난 유비가 만약 악진과 관우가 다시 붙으면 악진이 이길 것이라는 놀라운 평가를 내린 것인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물론 유비가 유장에게 그런 편지를 쓴 것은 그만큼 사태가 위급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 않으면 관우가 패배할 거라는 식으로 말한 것일 확률이 높지만 어지간한 장수 같았으면 천하의 관우가 패할 거라는 말자체를 믿지 않았을 테니당시 유비와 유장 세력에도 악진이 얼마나 뛰어난 장수인지 잘 알려져 있었다는 증거가 되겠죠

다만 기록으로 봤을 때 청니에서 관우와 악진의 전투가 실제로 벌어지지는 않은 거 같고 서로 대치하며 눈치만 보다가 악진이 합비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유수구에서 손권과 전투를 벌인 조조는 허도로 돌아가면서 악진과 장료, 이전을 남겨 요충지인 합비를 지키게 했는데요

215년 유비와 동맹을 맺은 손권은 10만의 병사를 이끌고 합비를 공격했는데 당시 합비를 지키는 것은 7천의 병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나라로서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조조는 사자를 보내 조금 황당한 명령을 내렸죠

만약 손권이 오면 장료와 이전은 성을 나가 싸우고 악진은 남아서 성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장수들이 조조의 명령을 받고 혼란에 빠졌는데 오직 장료만이 조조의 뜻을 짐작한 듯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죠

만약 우리가 성에서 오군이 오기만을 기다린다면 우리는 준비를 모두 끝낸 10만의 병사를 상대해야 하니 이기기 힘들겠지만 적들이 준비를 끝내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을 기습한다면 오히려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장수들을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이전은 자신의 숙부인 이건이 과거 여포군에게 죽었기 때문에 여포의 부하였던 장료를 그리 좋지 않게 보고 있었고 악진은 자신보다 한참 뒤에 조조 밑에 들어간 장료가 이제는 더 높은 지위에 있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때문에 악진과 이전이 장료의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장료는 지금 나라에 위기가 닥쳤는데 어찌 공들은 개인적인 감정만을 앞세울 수 있냐며 그들을 꾸짖은 후 정 그러면 자기 혼자만이라도 병사들을 이끌고 기습을 하겠다 말했죠

장료의 말을 듣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악진과 이전이 장료를 도와 싸우면서 합비전투는 위나라의 대승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후 악진은 그때까지 세운 공을 인정받아 조조에게 5백 호나 되는 식읍을 받고 우장군의 직위를 받게 되죠

 

그 후에는 악진에 대한 별다른 기록이 없고 218년 세상을 떠났다는 기록만이 있습니다

조조군의 초창기 때부터 조조의 밑에 들어온 악진은 활약상만 따지면 조인, 우금과 함께 조조군의 쓰리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장수였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관도대전 때 조조와 함께 오소를 습격해서 대장인 순우경을 사로잡은 건 조조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큰 전공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연의에서는 순우경이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한 찌질한 장수로 나오지만 실제 순우경은 원소군 내에서도 평가와 지위가 상당히 높은 장수로 원소군에게 가장 중요한 기지인 오소를 단독으로 지키는 임무를 맡은 것만 봐도 원소군내에서 그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죠

물론 원소의 세력이 조조에게 멸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원소가 후계자를 제대로 정하지 않은 채 병에 걸리며 죽어버렸기 때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조조가 자신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원소를 상대로 치른 가장 큰 전투인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악진이었습니다

 

악진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초창기부터 조조군을 지탱해 준 든든한 존재였지만 그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데다 연의에서는 그저 이전과 세트로 묶여버린 존재감 없는 장수로 나오다 보니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서 저평가를 받는 비운의 장수가 되어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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