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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유근. 황제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을 정도로 탐욕을 부렸던 환관

by 사탐과탐 2023.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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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10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50인에 선정될 정도로 막장이었던 환관 유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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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선덕제는 명나라 명군 중 한명으로 일컬어지는데요

그런 선덕제에게는 크나큰 실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환관을 교육시키는 내서당을 만든것인데 이는 이후 환관들이 권력을 가질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죠

그리고 선덕제 이후 권력을 갖게 된 환관들이 말 그대로 명나라를 뒤흔들기 시작하는데 오죽하면 명나라는 환관의 나라라고 할정도였습니다

 

오늘은 명나라 환관 중 한명인 유근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하는데요

 

이 유근은 2001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선정했던 근현대 10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50인에 포함 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갑부 였는데 그 돈은 모두 유근의 악행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들이었죠

유근은 원래 유씨가 아니었지만 어릴적 태감이던 유순에게 입양 되면서 성이 유씨가 되었고 이후 환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훗날 황태자였던 주후조를 가장 측근에서 모시는 근시환관이 되었죠

그렇게 유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태자 주후조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주후조는 자신이 원하는건 모두 다 들어주는 유근을 마음에 들어 했던것 입니다

그러던 1505년, 홍치제가 세상을 떠나고 태자였던 주후조가 황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혼자놀기의 달인이자 부캐로 자신이 대장군 주수가 되어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었던 암군 정덕제 이죠

 

정덕제는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보좌했던 유근을 굉장히 중용했는데 이때부터 유근의 시대가 도래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홍치제가 죽기전 충신인 유건, 사천, 이동양 등에게 아들 정덕제를 부탁했지만 정덕제는 허구헌날 잔소리만 해대던 신하들이 너무 귀찮았기 때문에 그들을 멀리하고 유근을 비롯해 자신을 모시던 '8호(虎)'를 총애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8호란 유근과 함께 마영성, 구취, 고봉 등 정덕제의 총애를 받았던 8명의 근시 환관이었는데 호랑이 만큼 무섭다고 해서 '호(虎)'자를 붙였던 것입니다

이 8호의 우두머리가 바로 유근이었던 것이죠

어릴적부터 정덕제의 방탕한 기질을 잘 알고 있던 유근은 정덕제를 꼬셔 굉장히 화려한 별궁을 짓게 했는데 별궁의 다채로운 모습이 표범 무늬를 닮았다 해서 표방이라고 불렀는데요

 

이후 정덕제는 거처를 표방으로 옮겼고 죽을때까지 그곳에서 사치와 향락만 일삼으며 살았습니다

이에 부응해 유근은 항상 정덕제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온갖 놀거리를 준비해 주었고 수시로 정덕제와 미복차림으로 황궁밖에 있던 홍등가를 찾기도 했죠

그렇게 정덕제가 원하는건 무엇이든 해결해 주면서 정덕제의 총애를 받아 국정을 농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수록 조정 대신들은 점점 여러 조정 업무에서 배제되었고 그러자 대신들을 정덕제에게 상소를 올렸죠

유근에 의해 점점 조정 업무에서 배제된 대신들은 유근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고 천문과 역법 업무를 하던 양원이란 사람은 천문을 관찰한 이후 유근을 처단하지 않으면 장차 큰 변란이 일어날것이라고 간언했습니다

 

신하들의 상소와 충언이 계속해서 올라오자 가만히 있을수 없었던 정덕제는 고민끝에 유근을 유배보냈다가 좀 잠잠해지면 다시 부를 생각이었지만 대신들은 이번 기회에 유근을 처형시켜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고 다음날 황제에게 다같이 찾아가 유근을 죽여야 한다고 간언하려는 계획을 세웠죠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이부상서였던 초방이라는 사람이 곧장 유근을 찾아가 이 계획을 모두 말해주었고 다급해진 유근은 8호들과 함께 정덕제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대신들이 자신을 모함한 이유는 정덕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못하게 하고 궁 밖에서 난잡하게 노는걸 제한하기 위해서 그러는것이라며 눈물로 호소했는데 이 말에 넘어간 정덕제는 분노하여 유근을 사면해 주면서 사례감이라는 직책을 내려주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 사례감이라는 자리는 환관의 대장 자리였는데 황제의 일정 관리 및 황제 문서의 수발, 황궁 내 대소사를 관장했었습니다

이때 황제들은 신하들이 올리는 상소문 등 여러 문서들을 자신이 처리하기 귀찮으니 사례감에게 시켰는데 이를 통해 사례감이 된 환관은 국정을 마음대로 휘두를수 있었던 것이죠

 

말 그대로 황제 대신 국정을 처리 했던 것인데 사례감의 말이 곧 황제의 말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거기다가 정덕제는 유근에게 북경 황궁을 보위하는 군사조직 단영의 총지휘를 맡기기까지 하면서 그는 군권까지 쥐게 되었고 더욱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죠

유근은 정덕제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탓에 그가 가장 신나게 놀고 있을때까지 기다렸다가 흥이 최고조에 다다랐을때 불쑥 국정에 대해 물었는데요

 

그럴땐 흥을 깨기 싫었던 정덕제는 짜증을 내며 "니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너희는 놀고만 있느냐, 나를 방해 하지마라!" 라고 말하며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던것이죠

그렇게 대부분의 국정을 유근이 직접 처리 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아예 보고도 하지 않은채 혼자 독단으로 처리했습니다

심지어 유근이 황제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장하면서 대신들은 황제를 만나는것조차 어려워졌으며 그가 병권까지 쥐게 되자 유근은 자신을 반대하던 대신들을 모조리 숙청하기 시작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유근의 처형을 주장했던 대신들 수십명은 목숨을 잃거나 귀양을 가기도 했고 관직을 박탈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유근과 8호 환관들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죠

유근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한여름에 자신을 비방하는 익명의 편지가 발견되었다고 대신들을 땡볕 아래에 하루 종일 세워놓는 단체기합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때 나이든 신하들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자 같은 환관이던 이영이 얼음물을 먹여줬는데 이후 유근은 이영을 타지로 추방시켜버렸다고 하죠

또한 1507년 3월에는 신하들을 모이게 한뒤 모두를 무릎 꿇게하고 간신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다 충신들의 이름이었다고 하죠

이런 짓을 한 이유는 미리 신하들에게 경고하고 겁을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금성에는 주씨 황제와 유씨 황제가 있다' 라는 말이 돌았고 유근을 '서있는 황제', 정덕제는 '앉아있는 황제'라고 부를 정도였죠

그리고 그는 매관매직을 일삼기 시작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관직이란것은 그저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정만이라는 인물이 자신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유근은 정만이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강제로 범했다고 모함했고 이에 정만은 능지처참형에 처해져 잔인하게 죽임당하고 말았죠

또한 지방관들이 북경에 오거나 북경에 부임하게 된 관리들은 황궁에 입성하려면 먼저 유근에게 뇌물을 바쳐야 입성이 가능했고 황제를 만나려면 돈을 바쳐야 했습니다

이를 '접견의 예' 또는 '배면례', '견면례' 라고 불렀는데 유근이 만나주는것에 대한 예의로 뇌물을 줬던 것이죠

 

뇌물은 양은 최소 백은 천냥에서 오천냥에 이르렀으며 유근에게 부탁했던 일이 성사되면 사례금을 또 바쳐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뇌물을 바쳐야 하는 관리들이 돈이 없으면 북경 부자들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바쳐야 했는데 이를 '경채(京債)'라고 불렀다고 하죠

만약 뇌물을 바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온갖 구실을 잡아 파면 시켜버렸습니다

 

고위 관리들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가는 탄핵을 받아 관직을 박탈당하거나 심지어 머나먼 변방으로 쫓겨나기까지 했죠

그렇게 긁어모은 재산은 무지막지했는데 당시 유근의 재산과 권력은 황제에 버금갔을 정도였습니다

사태가 이 정도이다보니 점점 더 조정은 파탄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죠

또한 유근은 비밀조직인 '내행창'을 만들어 나라의 모든 관리와 백성들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행여나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이면 즉시 제거해버렸습니다

 

이때쯤 '자기와 의견이 같으면 편먹고, 아니면 공격한다' 라는 ‘당동벌이(黨同伐異)’라는 말이 유행했죠

하지만 유근의 이런 막장행각은 결국 파탄을 초래하게 되는데요

여러 관리들이 유근에게 뇌물을 바치기 위해서는 결국 백성들을 쥐어짜야 했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 백성들은 전국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1506년에 일어난 '유육, 유칠 형제의 난'은 '뇌물의 난'이라고도 불리죠

또한 8호중 한명이었지만 유근과의 사이가 멀어졌던 장영이라는 환관이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와 정덕제를 알현하게 되었는데 이때를 기회로 삼아 유근이 모반을 꾀하고 있고 17가지의 대죄를 저질렀다며 정덕제에게 고해 바쳤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다른 신하들도 유근의 악행을 일러바쳤고 결국 모든 사실을 정덕제도 알게 된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유근의 만행이 상상을 초월하자 정덕제도 깜짝 놀라게 되었는데 즉시 병사들을 풀어 유근의 집을 수색하니 엄청난 금은보화는 말할것도 없고 그외에 충격적인 것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옥새와 곤룡포, 옥대 등 황제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유근이 항상 가지고 다니던 부채 안에는 두자루의 비수가 나오기도 했죠

그렇게 역모의 증거가 될만한 물품들이 나오자 격분한 정덕제는 그를 당장 체포하라고 명령했고 그렇게 그는 결국 능지처참을 당하게 됩니다

(능지처참 : 사형당하는 사람의 몸을 칼로 수없이 도려내면서 천천히 오랜기간 극심한 고통을 당하며 서서히 죽도록하는 형벌)

 

유근은 형벌이 시작되고 나서 극심한 고통을 참지 못해 결국 다음날 목숨을 잃고 말았는데요

그가 죽은 이후에도 칼질은 계속되어 수천번이나 온몸이 도려내졌다고 하죠

그렇게 오랜기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환관 유근의 마지막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가 뇌물을 받아 모은 재산은 황금 330톤(약 8800만돈)에, 백은 8050톤에 이른다고 하죠

 

훗날 이자성이 북경에 들어가서 숭정제의 1년 동안의 재정수입을 조사해보니 백은 200톤정도 였다고 하는데 이것에 비교하면 유근이 받아먹은 뇌물이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 놀랄만한 수준입니다

권력을 안가져봐서 모르겠지만 결국 권력의 끝은 비참하기 마련인것 같은데 왜 자꾸 권력을 얻으려고 발버둥 치는지 모르겠네요

 

지금까지 세상 가장 부자이자 최강의 권력을 가졌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처참하게 죽은, 환관 유근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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