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역사 탐구

기원전부터 명나라까지 계속해서 지어진 만리장성에 대한 이야기

by 사탐과탐 2023. 11. 19.
반응형
기원전부터 명나라까지 계속해서 지어진 만리장성에 대한 이야기 왜 중국은 천몇백년동안 기를쓰고 만리장성을 지었을까요?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만리장성은 수나라의 대운하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유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대운하는 그 옛날 중국 왕조시절에는 물론 현대에서도 중국의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됐다면 만리장성은 청나라시절 이후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과연 중국인들은 대체 어떤 이유로 만리장성을 쌓았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만리장성은 흔히 줄여서 장성이라 불리며 중국인들도 만리장성이라 부르지 않고 장성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죠 

중국 최초의 장성은 초나라 시절에 쌓은 것이 시작이라고 하는데요

남쪽 지역에 위치해 있던 초나라는 중원국가들의 영토를 빼앗으며 서서히 북쪽으로 진격했는데 그중에는 하남성 일대의 영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남성 일대는 국경으로 삼을 만한 산이나 강 같은 지형지물이 없었던 데다가 삼면으로 다른 국가들에게 둘러쌓인 방어에 취약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초나라는 자신들의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300km가 넘는 길이의 장성으로 영토 전체를 둘러싸기 시작했죠

이것이 바로 최초의 장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장성을 짓는 것은 마치 유행처럼 전국시대 강대국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죠

위나라는 강대국 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서쪽에 장성을 쌓았으며 제나라는 오와 월 그리고 초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남쪽에 장성을 지었습니다

한나라 또한 위나라와의 접경지대에 짧은 장성을 건설했죠

그중에서도 특히 조나라가 적극적으로 장성을 지었다고 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왜냐하면 조나라의 주변에는 유목민족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의 영토에도 앞에서 말한 초나라처럼 방어벽으로 삼을만한 지형지물이 없었기 때문에 영토의 안전을 위해서는 장성을 쌓는 것이 필수였다고 합니다

북방민족과 가까운 지역에 있던 연나라도 기동력이 우수한 유목민족을 견제하기 위해 북쪽 국경에 장성을 쌓았죠

만리장성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국가인 진나라 역시 전국시대 때부터 적극적으로 장성을 활용해 흉노족 등의 유목민족을 막아냈습니다

 

이렇듯 여러 나라들이 장성을 쌓은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새롭게 점령한 영토와 그곳에 사는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죠

전국시대에 접어들고 각 나라들의 경제력과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이제 단순히 가진 영토를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다른 영토들을 점령하는 정복국가와 경쟁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는데요

 

때문에 너도나도 주변국가를 침공해 그 영토를 빼앗는 전쟁이 계속됐는데 장성을 쌓아두면 단순히 영토를 보호하는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들이 침입했을 때 그들이 공격을 해올 수 있는 장소를 제한할 수 있는 데다 아군 병사들이 빠르게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었죠

둘째는 장성 그 자체가 북방 유목민족과의 경계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유목민족들이 감시망을 피해서 슬그머니 영역 안으로 들어와 그대로 눌러살게 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장성이 생긴 이후부터는 대규모의 병사들이 집단으로 공격을 하지 않고서는 영토 안으로 침범하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죠

오늘날 만리장성이라 불릴 만큼 거대한 규모의 장성이 쌓이게 된 것은 바로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 조나라와 연나라 진나라에 쌓여있던 장성을 몽염이라는 장수를 시켜 연결하도록 지시를 내리면서 시작됐는데요

 

이때의 장성은 서쪽으로 지금의 간쑤성 민현에 해당하는 임조까지 그리고 동쪽으로는 현재의 랴오닝성인 요동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한나라의 한무제가 다시 한번 대규모 공사를 하면서 장성의 위치가 옮겨졌으며 그 길이도 진나라 시절보다 더 길어졌죠

그 이후 후한대까지는 장성이 잘 유지되어 왔지만 후한 말 이후 사회가 무너지면서 제대로 손질이 되지 않은 탓에 장성 또한 서서히 무너지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다 명나라 시대에 오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완성이 되었는데 오늘날 만리장성이라 불리는 건축물은 바로 명나라 시대에 지어진 장성을 말한다고 합니다

사실 진시황이 연결해서 지은 장성은 지금처럼 벽돌로 지은 것이 아니라 흙을 이용해 지은 토성이었고 높이도 높지 않은 데다가 지켜야 할 범위가 워낙 넓다 보니 충분한 수의 감시병을 세워두지도 못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감시병의 눈을 피해 쉽게 넘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곡괭이 등의 도구로 성벽을 허물어 버린 다음에 우르르 몰려가서 장성의 아래를 지나간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나라 다음 왕조인 전한 시기에는 시도 때도 없이 북방의 흉노족들이 쳐들어와 한나라의 영토를 습격해 댔고 삼국시대와 서진 시대에는 북방지역이 아예 북방민족의 손에 넘어가기도 했죠

 

그 이후에도 거란족이나 여진족 몽골족들이 계속해서 황하 이북지역을 점령했던 시기가 길었기 때문에 대체 만리장성을 지은게 무슨 쓸모가 있냐며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각종 함정이나 해자 그리고 이중성벽 같은 것을 설치해도 완전히 적을 막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달랑 성벽 한 겹 둘러놓고 공격을 다 막아내겠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죠

 

애초에 만리장성을 지은 목적은 누구도 침입하지 못하는 철벽 같은 요새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세력과의 경계지역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실제로 한고제 유방이 흉노의 선우 묵돌에게 패배한 백등산 포위전 이후 유방과 묵돌이 협상을 할 때 만리장성을 흉노와 한나라 간의 국경으로 정하기도 했죠

그리고 일단 장성이 있으면 적들이 침공해 오는 속도를 어느 정도는 늦출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아예 적들이 통과하지 못하게 방어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정도 역할만으로도 만리장성은 그 가치를 충분히 해냈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요

 

일단 장성이 있으면 유목민이 침공해 오는 것을 발견하고 잠깐이라도 적들의 공격을 막으며 시간을 버는 동안 후방에서 방어를 위한 병사들을 추가로 소집하거나 요새의 수비를 강화하는 등 적들을 막아낼 방어 준비를 할 수 있지만 만약 장성이 없으면 그럴 시간조차 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에는 의외로 평야인 지역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특별히 방어를 위해 지어둔 몇몇 주요 지역들만 통과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중국영토를 적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장성이 없었다면 특히 화북지역은 유목민의 침공과 약탈에 더 많이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베이징을 점령하려는 일본군과 그것을 막으려는 국민혁명군이 베이징 근처의 만리장성과 산해관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고 국공내전 초기에도 만리장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만리장성은 중국 현대사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끼쳤죠

다만 현대에 와서는 방어요새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되었고 중국 정부에서도 세계문화유산에 만리장성을 등재시키는 등 중요한 역사적 문화재로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만리장성은 매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숫자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여행 명소가 됐는데 특히 베이징시 근처에 있는 4개 구역이 제일 유명하다고 하죠

서양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주로 거용관 코스를 많이 가는 편이고 한국인들은 팔달령 코스를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양 관광객들은 진짜로 등산을 하듯 아래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면서 즐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성질이 급한 한국사람들은 케이블카로 얼른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사진만 찍고 다시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하네요

지금까지 중국의 상징 만리장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사탐과탐 다른 포스팅은 어떠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