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에서 활약했던 주요 인물 4인방들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고제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우면서 중국역사상 최고의 책사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장량은 천하를 통일한 후 유방에게 숙청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기 위한 도를 닦았다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죠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장량은 천하가 통일된 후에도 계속 수도인 장안에 남아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초한지의 주역들이 실제 역사 속에서는 어떤 마지막을 맞았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먼저 초한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한고제 유방부터 알아보죠
기원전 196년 영포가 반란을 일으키자 유방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난을 진압하러 떠났습니다
전투의 결과는 유방이 이끄는 군대의 대승으로 끝났지만 문제는 유방이 부하들이 말리는 것도 뿌리친 채 최전방에서 날뛰다가 눈먼 화살에 맞으면서 부상을 입어버렸다는 것이었죠
수술을 하면서 화살을 없애는 데는 성공했지만 유방은 이로 인해 큰 부상을 입었는데 한동안 움직이지 말고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말을 무시한 채 무리해서 수도로 돌아가면서 상처가 더욱 심해졌을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결국 장안으로 돌아온 후 실력 있는 의원을 불렀지만 유방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무리를 한 탓에 상처는 더 심해져 있었고 머지않아 그는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다음 이야기는 바로 서초패왕 항우의 최후인데요
평생 패배를 모르던 항우였지만 최후의 전투가 벌어진 해하에서는 한나라 군을 상대로 불리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사기가 떨어진 초나라 병사들이 탈영하기 시작하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음을 직감한 항우는 800명의 병사들만을 데리고 탈출을 시도했죠
항우의 무시무시한 무력을 앞세운 초나라군의 기세에 40만이나 되는 한나라군도 차마 맞서지 못한 채 그들에게 길을 내줬고 항우의 탈출 소식을 들은 유방은 정예 기병 5000을 보내 급히 항우를 뒤쫓게 했는데요
한편 무수히 많은 한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느라 항우의 곁에는 고작 28명의 병사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산 꼭대기에 있던 항우와 초나라 병사들의 눈에는 자신들을 잡기 위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는 한나라 군사들이 보였죠
이때 항우는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에게 "내가 군사를 일으킨 지 8년 나는 지금까지 70여 차례를 싸우는 동안 패배를 모르고 살아왔다 따라서 지금 나와 그대들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하늘이 나를 버렸기 때문이지 내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나는 지금부터 그대들과 함께 출진해 포위망을 뚫고 적의 장수를 벨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코 내가 약해서 진 것이 아니란 걸 증명하겠다"라고 말하고는 즉시 병사들을 끌고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한나라의 장수 한 명이 항우를 잡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항우는 단 칼에 그를 베어버리고 깃발까지 꺾어버린 뒤 고함을 치며 앞으로 돌격해 나갔고 한나라 병사들은 모두 땅바닥에 엎드려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하네요
이후로도 항우는 혼자서 백 명이 넘는 한나라 병사들을 죽이며 마침내 포위망을 뚫고 약속된 장소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는데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2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죠
잠시 후 항우는 병사들에게 "내 말이 틀렸는가?"라고 물어보았고 병사들은 모두 엎드리며 "과연 대왕의 말씀과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죠
이후 항우는 오강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정사에는 항우가 포위망을 돌파한뒤 오강에서 자살했다는 기록과 동성에서 전투를 하다가 사망했다는 기록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항우가 오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되어있는 기록에는 구체적인 전투과정이 써져 있는 반면에 동성에서 일어난 일은 전투에 관한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고 그저 항우가 그곳에서 죽었다는 기록만 있기 때문에 항우가 오강에서 같은 고향 사람인 여마통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목을 들고 가 공을 세우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록이 맞을 거라 생각됩니다
한신의 최후는 유명하죠
한신은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이전부터 몇 번이나 주군인 유방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한끝에 결국 초나라가 멸망한 후 왕의 자리를 잃고 회음후로 강등당하게 되는데요
자신을 강등시킨 유방에게 불만을 가지게 된 한신은 거록태수 진희라는 인물을 만나 그와 손잡고 반란을 일으키려 했죠
한신의 말을 믿은 진희는 실제로 반란을 일으켰고 유방은 그런 진희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병사들을 이끌고 떠났지만 한신은 병을 핑계로 유방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한신은 몰래 진희와 연락을 계속하면서 먼저 황후인 여후부터 공격하려 했는데 하필 한신의 밑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죄를 짓고 갇혀있다가 탈출해서 그 길로 여후에게 가서는 한신의 계획을 모두 폭로해 버리는 일이 일어났죠
하지만 여후로서는 한신과 정면대결을 해서 이길 방법이 없었기에 소하를 불러내 한신을 잡을 계책을 물어보았습니다
여후의 명을 받은 소하는 한신에게 이미 진희가 패배했다는 거짓정보를 흘리고는 한군의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하라는 편지를 보냈죠
소하의 말을 믿고 아무런 의심 없이 궁으로 온 한신은 여후가 준비해 놓은 무사들에게 사로잡히며 장락궁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다음 인물은 앞에서 잠깐 얘기가 나왔던 장량인데요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장량이 관직을 버리고 속세와 인연을 끊었다는 설이 많지만 실제로 장량은 그 후로도 유방의 곁에 남아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먼저 한나라의 수도를 어디로 할지 정할 때도 대부분이 관동출신인 유방의 신하들은 관중지역으로 가는 게 싫어서 낙양을 수도로 삼을 것을 청했지만 누경이란 인물이 낙양은 방어하기에 적절한 곳이 아니니 장안을 수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죠
고민 끝에 유방은 장량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가 장안을 추천하자 유방은 즉시 장량의 의견대로 장안을 수도로 정했다고 합니다
유방이 여후의 아들인 유영을 태자자리에서 폐하고 척부인의 아들을 새로운 태자로 임명하려 했을 때도 장량은 여후에게 계책을 알려주며 유영이 태자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도와주었죠
이후 장량은 유방이 대나라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하러 갈 때도 함께 출전했고 한신의 반란을 진압한 소하를 상국에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유방이 영포의 반란을 진압하러 떠날 때는 전장이 위험하니 앞장서 싸우지 말라는 조언을 그에게 해주기도 했지만 태자를 폐하려고 했을 때 자신이 아닌 여후의 편을 들어준 장량에게 서운했던 것인지 유방은 장량의 충고를 듣지 않았고 결국 전쟁터에서 화살을 맞고 부상을 당하면서 죽게 되죠
유방이 죽은 후 장량은 세상에 크게 미련이 없었는지 밥도 거의 먹지 않으며 지내고 있었는데 태자의 일로 장량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 여후가 그가 음식을 먹도록 간곡히 설득한 끝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한 장량은 그 후로 8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초한지 주요 인물들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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