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에 황제가 되었지만 황제가 된 이후 29일만에 죽은 황제 태창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가정, 만력, 천계, 성덕 등 황제들의 연호는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고나서 새로 만드는데요
즉위한 그 해에는 전임 황제의 연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그 다음해부터 새로 즉위한 황제의 연호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1620년 만력제가 세상을 떠나 태창제가 다음 황제로 즉위했지만 1620년은 만력 48년이 되는것이죠
그런데 이듬해인 1621년부터는 원래 연호를 태창으로 써야하지만 그게 아닌 천계로 쓰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1620년 8월에 즉위한 태창제가 고작 1개월 후인 9월에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를 '한달 황제'라고 부르기도 하죠
하지만 기껏 만들어놓은 연호를 사용 안할수는 없으니 1620년을 태창 원년이라고 썼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아버지 만력제의 미움을 받아 굉장히 위태로운 태자와 황제 생활을 겪었으며 항상 살해 위협을 받으며 살았던 역대 명나라 황제 중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태창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태창제의 이름은 주상락으로 만력제의 장남인데요
그는 아버지 만력제에게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한채 살았습니다
만력제에게는 정실부인인 왕황후가 있었지만 둘 사이에 아들은 없었죠
그러던 어느날, 만력제가 어머니인 이태후를 만나러 갔는데 이태후는 외출중이라 만날수 없었고 그때 이태후의 궁녀인 왕씨를 보고 눈 돌아간 만력제는 그녀를 덮쳐버린것 입니다
이후 이 일은 비밀에 부쳤지만 궁녀 왕씨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소문이 나고 말았고 결국 이태후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죠
그러자 이태후는 드디어 명 황실의 대를 이을 원자가 태어났다며 굉장히 기뻐했던 반면 만력제의 생각은 달랐는데요
궁녀 왕씨는 미천한 궁녀 출신이었던데다가 그냥 한여름밤의 꿈처럼 원나잇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씨는 거들떠도 보지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태후 역시 궁녀 출신이었기에 이태후의 명에 따라 궁녀 왕씨는 공비로 책봉되었죠
그리고 그해 8월, 왕공비는 만력제의 장남인 주상락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만력제는 여전히 왕공비와 주상락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정숙빈만 총애 했던 것이죠
그리고 정숙빈과의 사이에서 차남인 주상서를 낳았지만 얼마안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1586년에 셋째아들인 주상순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만력제는 정숙빈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주상순을 태자로 삼으려고 했는데요
이에 정숙빈은 만약 자신의 아들이 황제가 되는 날에는 자신이 태후가 되어 엄청나게 강력한 권력을 휘두를거라 생각했고 만력제는 장남 주상락을 미워하고 있기 때문에 잘만 구슬리면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만드는것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이후 적극적으로 만력제에게 아들 주상순을 태자로 삼아야 된다고 어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대신들은 자칫 잘못하면 정숙빈의 간계로 인해 삼남인 주상순이 태자가 될수도 있을거라 생각해 얼른 첫째아들인 주상락을 태자로 책봉해야 한다고 주청했지만 만력제는 주상락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거부했으며 오히려 정숙빈의 품계를 귀비까지 올려 주었죠
귀비는 장남 주상락의 친모인 왕공비 보다 더 높은 품계였는데 이를 빌미로 만력제가 삼남 주상순을 태자로 책봉하려는것임을 대신들은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신들은 정귀비의 귀비 품계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청하는 동시에 만약 그러지 못하면 주상락의 친모인 왕공비의 품계도 귀비로 올려야 하고 장남인 주상락을 태자로 삼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죠
하지만 여전히 만력제는 이런저런 핑계만 대고 주상락을 태자로 삼지는 않은채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태자 책봉 문제로 인한 만력제와 신하들간의 갈등이 무려 15년 동안이나 이어졌는데요
이 일을 바로 '국본의 쟁' 이라고 부르고 있죠
그런데 이 국본의 쟁은 조선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시 조선은 왕이나 세자가 즉위할때는 명나라에서 책봉을 받아야 했는데 이때 조선의 세자는 광해군이었던 것이죠
광해군은 서자 출신에다가 둘째아들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광해군을 정식 세자로 책봉하게 되면 셋째아들인 주상순이 황태자로 책봉 될수 있는 명분이 주어질수도 있었기에 명나라 대신들은 광해군의 왕세자 책봉을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죠
그렇게 결국 광해군은 한참뒤에야 겨우 명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을수 있었고 훗날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입지가 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것입니다
어쨌든 주상락은 그렇게 태자가 되지 못하고 오랜기간 황제가 되려면 받아야 했던 교육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죠
그리고 황제의 눈에서 벗어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환관들도 주상락을 개무시 했다고 합니다
그가 개무시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만력제도 들었지만 들은체만체만 했지 조금의 동정도 하지 않았다고 하죠
또한 정귀비는 주상락을 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온갖 음모를 꾸몄습니다
정귀비는 주상락이 매일 궁녀들과 놀아나기만 한다고 모함하기도 했는데 주상락과 왕공비는 평소에 이런 모함을 당할것이 두려워 항상 조심하고 살았기 때문에 어떠한 혐의점도 찾아내지 못한채 정귀비의 모함은 실패로 끝났죠
그러던 1601년 새해 아침 만력제가 어머니인 이태후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갔을때 였습니다
이태후는 만력제에게 장남인 주상락이 20살이나 되었는데 왜 태자 책봉을 미루느냐고 물었는데요
그러자 만력제는 왕공비가 미천한 궁녀출신이라서 그렇다고 했고 궁녀 출신이었던 이태후는 크게 분노해 "황상 또한 궁녀의 아들이란것을 잊지 마십시오" 라며 호통쳤다고 하죠
그러자 만력제도 더이상 시간을 끌지못하고 결국 주상락을 태자로 책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상순은 복왕으로 책봉 했는데 이 결정에 참을수 없었던 정귀비는 아들 주상순을 태자로 옹립하기 위해 훗날 다른 일을 벌이게 되죠
주상락은 겨우겨우 태자가 되었지만 만력제는 여전히 왕공비와 주상락에게 차가웠습니다
그리고 4년후 장손인 주유교가 태어났을때도 나몰라라 했는데 대신들의 압력에 못 이겨, 그때서야 왕공비를 귀비로 책봉했고 이는 총애하던 정귀비보다 20년이나 늦은 결정이었죠
또한 만력제는 둘을 만나지 못하게 멀리 떨어트려 놓기도 했는데 결국 왕공비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이 멀고 말았고 얼마안가 우울증과 병에 걸리고 말았으며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주상락은 얼른 달려왔는데 어머니의 거처가 문이 잠겨있는걸 보고 화가 나 문을 부순뒤 들어갔지만 이미 눈이 멀어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통곡했다고 하죠
이후 여러 신하들이 태자의 어머니 신분이니 장례를 후하게 치러야 한다고 주청했지만 만력제는 허락하지 않았고 왕귀비의 장례는 초라하게 마무리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죽고나서 3년후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할머니 이태후 역시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태자였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하죠
그러던 1615년 5월 어느날, 충격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장차라는 남자가 몽둥이를 들고 주상락이 거주하던 자경궁에 난입해 문을 지키고 있던 이감이라는 사람을 때려눕히고 자경궁으로 들어와 눈에 보이는 사람은 모두 몽둥이로 두들겨 팼던 것이죠
그러자 황태자를 호위하는 사람인 한본용이 그를 사로 잡았고 그의 심문이 시작되었죠
그러자 장차는 미친척하며 난동을 부린것도 그냥 미쳐서 날뛴것으로 마무리가 지어질뻔 했는데 왕지채라는 사람이 장차에게 너는 굶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장차는 갑자기 정귀비의 측근이던 환관 방보와 유성이 태자를 죽이면 큰 보상을 해주겠다고 해서 그런것이라고 자백했습니다
그러자 조정은 또 다시 정쟁에 휩쌓였는데 주상락을 밀고있던 관리들은 정귀비가 자신의 아들인 주상순을 태자로 세우기위해 벌인짓이라며 정귀비와 그녀의 아버지 정국태를 사건의 배후로 지목했죠
이에 반대파이던 관리들은 장차가 미쳐 날뛴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고 만력제는 장차, 방보, 유성만 처형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어버렸습니다
이후 만력제는 주상순을 태자로 삼으려는 계획을 포기했고 태자 주상락을 해치려고 하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그렇게 정귀비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고 주상락의 태자 지위는 굳건해졌죠
이 사건을 '정격안' 이라고 부르는데요
태자를 해치기 위해 칼도 아니고 몽둥이만 든채 혼자 궁내로 침입했다는것 자체가 너무 말이 안되기도 하고 이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태자인 주상락이다 보니 그의 자작극이라는 설이 있기도 합니다
이 일이 있고나서 얼마후인 1620년 8월, 만력제는 재위 48년만에 세상을 떠났고 이후 주상락이 비로소 태창제로 즉위하게 되었죠
그런데 만력제가 세상을 떠나기 전 유언을 남겼는데요
그것은 바로 정귀비를 황후에 책봉하라는 것이었죠
정귀비를 황후에 책봉한다면 그녀는 자연스레 태후가 되고 황실 최고 어른으로 모셔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온갖 모략을 일삼았던 원수 같은 정귀비를 태후로 삼고 어머니처럼 모셔야 하는것이었죠
하지만 수많은 대신들이 과거 이런 전례는 없었다며 강력하게 반대했던덕에 결국 정귀비는 황후가 될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태창제는 즉위 이후 만력제가 펼치던 온갖 만행들을 바로잡기 위해 애썼는데요
온갖 명목으로 징수하던 세금을 없애버렸으며 사비를 털어 국경 부근에 살던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해 주었죠
또한 은자 백만냥이라는 거금을 들여 국경을 방어하던 병사들에게 나눠주면서 병사들을 위로해주었습니다
또한 만력제가 일절 정치를 하지 않다보니 생긴 각 부처에 인원을 채워 넣으면서 조정의 기강을 바로 잡는데 애썼죠
태창제가 정신차리고 계속 좋은 정치를 이어갔다면 명나라의 멸망을 늦출수도 있었겠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태창제가 고작 한달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었죠
태창제는 평소 여색을 엄청 밝혔었는데요
태후가 되는데 실패한 정귀비는 살아남기 위해 태창제에게 8명의 미녀를 선발해 선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이에 태창제는 굉장히 흡족해 하며 정귀비의 선물을 받았고 밤마다 난잡한 생활을 즐겼죠
하지만 이는 곧 그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태창제는 황제로 즉위한지 10일만에 갑자기 쓰러져 병석에 눕게 되었죠
하지만 태창제를 치료한 사람은 태의원의 어의가 아닌 정귀비가 보낸 환관 최문승이었습니다
최문승은 태창제에게 지사제를 제조하여 바쳤는데 그 약을 먹은 태창제는 하루에 34번이나 설사를 하는 등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혼절하고 말았죠
심지어 재상이던 방종철에게 나라의 뒷일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신하들은 의술도 모르는 최문승이 태창제를 돌보고 있는것에는 분명히 음모가 있다고 생각해 그를 쫓아내야 한다고 상소했고 그렇게 최문승은 쫓겨났죠
하지만 죽을날이 얼마 안남았다고 느낀 태창제는 마지막으로 단약에 희망을 걸고 이가작이라는 사람이 신선의 술법으로 만든 선약이라며 바친 붉은 단약을 먹었는데 어느정도 병세가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알을 더 먹었는데 그 다음날 새벽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이것을 '홍환안'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까 말한 정격안과 홍환안 그리고 훗날 발생하는 이궁안을 일컬어 명나라 말기에 있었던 의심스러운 3개의 사건인 '만명3대의안', '삼대안' 등으로 부르죠
그리고 태창제의 장남이던 주유교가 16세의 어린나이로 목공황제 천계제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청나라의 명군인 강희제는 명나라가 망한 책임은 만력, 태창, 천계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이들에게는 제사도 지내지 말아야 한다며 태창제를 극딜하기도 했죠
지금까지 겨우겨우 황제자리에 올랐지만 겨우 29일의 재위기간을 거치고 세상을 떠나버린 비운의 황제 태창제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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