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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장합. 연의에서는 사마의 지시를 무시하다가 죽지만 실제 정사에선 오히려 사마의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명장

by 사탐과탐 2023.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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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연의에서는 사마의 지시를 어기다가 죽지만 실제 정사에서는 오히려 사마의 때문에 억울하게 최후를 맞이한 위나라의 명장 장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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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위나라의 대표적인 명장 중 하나인 장합인데요

연의에서는 삼국지에서 무력이 뛰어나기로 이름 높은 장수들과 일대일 대결에서 무려 수십 합을 겨루는 용맹한 인물로 각색됐지만 정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 장합은 무력이 뛰어난 맹장은 아니며 오히려 그는 유능한 지휘관이자 지력이 뛰어난 장수임을 알 수 있죠 

그렇다면 장합은 대체 어떤 장수였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장합의 자는 준예이고 기주 하간군 막현 사람이며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하죠 

장합은 후한 말 황건적이 날뛰기 시작할 때 황건적을 진압하는 군을 모집하는데 지원하면서 한복의 아래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한복 밑에서 연달아 황건적을 토벌하며 공을 세우던 장합은 한복이 원소에게 기주를 넘기자 자신이 이끌던 군대를 거느리고 원소에게 투항했죠 

 

기주를 손에 넣은 원소는 한복이 주인으로 있던 시절부터 계속해서 기주를 노리던 공손찬과 본격적인 충돌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후 역경루 전투에서 원소가 최후의 승리를 거둘 때까지 장합은 원소 밑에서 많은 공을 세우면서 영국중랑장의 자리에까지 오르지만 그가 다른 군주를 모시다 항복한 장수라는 이유 때문에 원소에게 큰 신임을 받지 못했으며 원소의 다른 부하들도 장합을 견제했다고 하네요

 

하북일대를 평정한 원소가 조조를 치기 위해 군대를 출격시키려 했을 때도 장합은 조조와 정면으로 맞붙는 대신 은밀히 기병을 보내 조조가 다스리는 지역의 남쪽 부분을 기습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원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관도에서 조조의 군대와 오랜 시간 대치하던 도중 원소가 순우경이라는 장수에게 군량을 쌓아둔 오소를 지키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조조는 병사들을 끌고 오소를 습격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오소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장합은 원소에게 조조군 정예병의 위력이 강하니 순우경이 이를 막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곳이 함락되면 우리 군이 위험해지니 급히 군사를 끌고 가서 오소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곁에 있던 원소의 책사 곽도는 장합의 계책대로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비어있는 조조의 본진을 공격하자고 주장했죠

이때 원소는 확실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병사를 둘로 나눠 순우경을 구원하는 것과 조조군의 본진을 공격할 것을 동시에 지시했는데요

 

그렇게 병사들이 나뉘면서 전력이 집중되지 못한 탓인지 원소군은 조홍이 지키는 조조군 본진을 함락시키지 못했고 반대로 조조는 순우경이 지키고 있던 오소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원소군이 대패를 하자 곽도는 원소에게 장합이 우리 군이 패한 것을 크게 기뻐했다며 그를 모함했죠

그 소식을 들은 장합은 화난 원소가 자신을 해칠까 봐 두려워하다가 결국 병사들을 끌고 조조에게 항복을 하게 됩니다

 

조조는 장합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자 매우 기뻐하며 그를 편장군에 임명하고 도정후의 작위를 내렸죠

장합은 조조의 아래에 들어간 뒤 조조를 따라 업을 공격해 함락시키는데 공을 세웠으며 발해군에서는 원담을 공격한 후 단독으로 군대를 이끌고 유주의 어양군 옹노현을 포위해 섬멸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원상과 원희가 버티고 있던 유성을 토벌할 때에는 장료와 함께 대군의 선봉이 되었고 백랑산 전투에서 적군을 격파하는데 큰 공을 세우면서 평적장군으로 승진했죠

하북이 평정된 이후에는 진란과 매성의 반란을 장료와 함께 진압하기도 했습니다

조조가 마초 한수 연합군과 싸웠던 동관전투에서는 조조군이 강을 건너던 도중 마초의 습격을 받는 일이 있었는데 병사들은 물론 조조마저 혼란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장합이 침착하게 나서서 조조를 배에 태우며 피신시켰다고 하네요

 

이후 조조군이 황하를 건너는 데 성공하자 장합은 서황과 함께 마초와 한수 군을 위수 남쪽에서 격파하고 양추의 항복을 받아내는 공을 세웁니다

동관전투에서 패배한 마초는 양주로 달아났다가 그곳에서도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하며 한중의 장로 밑으로 가게 되죠

이후 장로에게 군대를 받은 마초는 북쪽으로 진군해 기산을 포위해 버렸는데 이때 장합이 5천의 병사를 끌고 마초군과 붙어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한중의 장로를 물리치는데도 큰 공을 세운 장합은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중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죠

이후 장합은 군사들을 끌고 파서와 파동지역을 점령한 후 그곳의 백성들을 모두 한중으로 조조를 옮기라는 명을 받게 되었고 유비는 파서태수 장비를 보내 장합과 맞서게 했습니다

장합은 장비보다 먼저 높은 지대를 선점하면서 기선을 제압하는듯했지만 장비가 장합군에게 가는 보급로의 길목을 막아버린 후 1만 명의 병사들을 끌고 샛길을 통해 장합의 부대를 기습하면서 혼란에 빠진 장합군은 크게 패했고 장합은 말까지 버린 채 부하들과 함께 산을 타며 겨우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고 하죠

 

그렇게 장비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했음에도 장합은 이후 광석이라는 지역에서 유비가 이끄는 정예병 1만의 야간기습을 잘 막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얼마 후 하후연이 유비에게 목숨을 잃으면서 양평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총대장이었던 하후연을 잃고 위나라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있을 때 하후연의 사마였던 곽회가 나서서 지금의 위급한 사태는 오직 장합만이 해결할 수 있다며 추천한 끝에 장합이 군의 우두머리 자리에 올랐고 이후 혼란에 빠진 병사들을 빠르게 안정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조조도 이런 장합의 공을 인정해 장안에서 사자를 파견해 그에게 가절(일정 직위 이하의 관리를 보고 없이 처벌할 수 있는 권리)을 내렸다고 하네요

 

조조가 죽고 조비가 위왕에 오르자 좌장군의 작위를 받은 장합은 조진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안정군의 동강족들을 토벌했습니다

이릉대전에서 촉이 크게 패하자 조비는 3갈래 길로 대군을 일으켜 오나라를 공격했고

장합은 이때 하후상을 따라 조진과 함께 강릉을 공격했는데 손권이 강릉을 구원하기 위해 손성이라는 장수를 보내자 장합이 병사들을 이끌고 손성을 공격해 그의 부대를 격파해 버리는 등 계속해서 크고 작은 공을 세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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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년 1차 북벌을 시도한 제갈량이 기산으로 출격해 오자 장합은 가정에 있는 촉군을 공격했는데 이때 가정을 지키고 있던 장수가 바로 마속이었습니다

연의에서는 사마의가 가정을 함락시키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마의는 이때 북벌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실제로 전투를 벌인 것은 장합이었죠

장합은 과거 장비에게 패배했을 때 당했던 방식 그대로 가정에 있던 촉군의 보급로를 끊어 적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뒤 지친 촉군을 공격해 가정을 점령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과거의 굴욕을 밑거름 삼아 중요한 전투에서 써먹은 것을 보면 장합이 굉장히 사고가 유연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장합의 승리 덕분에 위나라는 천수와 남안 안정의 3군을 얻는 데 성공하게 되는데요

2차 북벌 때는 제갈량이 기산이 아닌 진창을 기습하자 깜짝 놀란 조예는 급히 형주에 있던 장합을 수도로 불러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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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을 걱정한 조예는 장합을 은근히 독촉했지만 제갈량에게 군량이 부족한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던 장합은 태연한 말투로 "신이 계산해 보니 제갈량의 군량은 10일 치도 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우리 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제갈량은 이미 달아났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라며 조예를 안심시켰습니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실제로 장합이 진창에 도착하기도 전에 제갈량은 병사들을 퇴각시켰다고 하네요

이때 제갈량의 의도는 정말로 진창을 함락시키는 것보다는 관중을 직접 치는 척하면서 옹과 량주를 손에 넣기 위한 페이크였다는 의견이 많지만 어쨌든 장합이 제갈량을 물러나게 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 공으로 장합은 수도에 돌아와 정서거기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4차 북벌 때 제갈량이 또다시 기산으로 출병하자 조예는 사마의에게 조서를 내려 장수들을 이끌고 제갈량을 막을 것을 지시했죠

사마의가 군사들을 이끌고 기산으로 진격할 때 그를 따라간 장합은 병사들을 나눠서 옹성과 미현을 지키자고 했지만 사마의는 만약 우리 부대 하나가 혼자서 제갈량을 상대할 수 있다면 장합의 말대로 하는 게 좋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그게 불가능하다면서 병사들을 나누지 않은 채 기산으로 진군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마의는 제갈량을 상대로 섣불리 싸움을 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제갈량이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그저 중요한 길목을 지키기만 할 뿐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고 하죠

그러자 장합은 사마의에게 "저들이 계속 싸움을 걸어와도 우리가 응하지 않았으니 저들은 분명히 우리가 싸움을 피한채 시간을 벌려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병사들을 나누어 기습부대를 만들어서 그들의 뒤를 공격할 것처럼 꾸미면 군량이 부족한 제갈량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후퇴할 것입니다"라는 의견을 냈죠

 

하지만 그럼에도 사마의는 장합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싸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허나 위평 등의 장수들까지 위나라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겠다며 사마의를 비난했습니다

위군의 사기가 계속해서 떨어지는 걸 느낀 사마의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병사들을 나눠 장합에게는 왕평을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제갈량과 직접 맞붙었지만 사마의는 제갈량이 보낸 위연과 고상의 부대에게 패배를 당했고 장합 또한 왕평을 이기지 못하면서 위군은 상규 지역으로 후퇴하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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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상황이 점점 촉한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듯했지만 촉나라의 이엄이 장마로 인해 군량을 제때 보내지 못하면서 제갈량은 결국 병사들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들이 물러나는 것을 본 사마의는 장합에게 추격을 명했지만 장합은 천하의 제갈량이 아무런 대비 없이 그냥 물러날 리 없다며 추격을 반대했죠

하지만 사마의는 장합의 의견을 무시한 채 그에게 추격을 명령했는데 장합의 생각대로 제갈량은 추격군을 대비해 이미 함정을 파놓은 상태였습니다

 

제갈량은 적군이 추격해 올 것으로 예상되는 길목에 미리 수천의 강노를 준비시켰다가 장합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동시에 강노를 발사시켰고 쏟아지는 화살비속에서 장합 또한 오른쪽 다리에 화살을 맞아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연의에서는 사마의가 추격을 말리는데도 장합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가 목숨을 잃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던 것이죠

삼국지연의와 정사에서 장합이 참여했던 전투나 전공기록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그가 실제로 전쟁터에서 싸우는 스타일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연의에서 장합은 장료나 마초 조운 등의 장수와 맞설 수 있을 만큼 무력이 뛰어난 장수지만 실제 장합은 저 장수들과 싸운 기록이 없으며 그의 무력이 뛰어나다는 기록도 없다고 하죠

조조군 내에서 항상 선봉에 섰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무력은 갖추고 있었겠지만 사실 장합은 뛰어난 지략으로 승부를 보는 사령관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천하의 유비 또한 한중공방전에서 장합을 높게 평가했고 제갈량도 장합이 진영을 잘 세워서 상대하기 두려운 장수라는 말을 하기도 했죠

 

장합이 단독으로 부대를 끌고 공을 세운 일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는 중요한 전장에서 조조나 장료, 서황, 우금 등 위나라의 다른 인물들과 함께 서로 협조하며 작전을 세워 군대를 승리로 이끄는 능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전공을 세우며 위나라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되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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