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료는 조조의 위나라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합비에서 800명으로 오나라 10만대군을 막아낸 손권과 오나라에 있어 재앙이었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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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위나라 장수들 중 장료와 장합 서황 우금 악진 이렇게 다섯 명의 장수를 두고 오자양장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 오자양장이라는 단어는 정사나 연의에 나오는 표현은 아니고 연의에서 촉한의 관우 장비를 비롯한 다섯 명의 무장을 오호대장군이라고 부르자 후세의 사람들이 거기에 맞춰 오자양장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죠
오늘은 이 오자양장 중의 하나로 우리에게 오나라의 손권 담당일진으로 잘 알려진 장료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장료는 한무제 때 있었던 섭일이라는 인물의 후예인데 이 섭일은 과거 흉노의 선우를 속여 성을 바치겠다며 거짓으로 항복을 하고는 오히려 흉노를 공격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장료는 흉노의 원한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성을 섭씨에서 개명했다고 하죠
젊은 시절 장료는 남다른 무력을 가지고 있어 병주자사인 정원의 눈에 들게 됩니다
장료의 능력을 높게 산 정원은 그에게 군을 이끌고 수도로 가게 했고 이후 하북으로 가서 하진이 내린 명령대로 병사들을 모집하던 장료는 다시 수도로 돌아온 후 하진이 죽자 군을 이끌고 동탁의 밑으로 가게 되죠
동탁이 죽은 후에는 여포의 아래에서 기도위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여포군 시절에는 장료의 활약상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며 조조에게 항복할 때도 연의에서는 주인을 배신하느니 차라리 죽이라며 호통을 치지만 실제로는 조조가 하비에서 여포에게 승리하자 자신의 병사를 이끌고 조조에게 항복했다는 기록이 전부라고 하네요
관우가 조조에게 부탁을 해가며 장료를 살렸던 것도 모두 창작이라는 소리죠
다만 관우가 조조에게 항복했을 때 조조가 장료를 시켜 관우의 마음이 어떤지 떠보았다는 일화는 실제 있었던 일로 관우와 장료가 친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200년에는 서주의 동해군에서 과거 장패와 함께 여포를 따랐던 창희라는 인물을 하후연과 함께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몇 달 동안이나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서 슬슬 군량이 떨어져 가는 중이었죠
때문에 성을 포기하고 물러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장료는 자신이 며칠 전 순찰을 돌다 창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에게는 자신을 공격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고 창희의 심리상태도 매우 불안해 보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혼자서 성 아래로 가서 창희를 불러낸 장료는 그를 설득해 조조에게 항복하도록 만드는 공을 세웠지만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조는 장료가 혼자 적군의 진영으로 간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며 그를 꾸짖었다고 하네요
조조에게는 창희같은 인물보다 장료가 훨씬 중요한 장수였기 때문이겠죠
관도대전이 일어났을 때 원소가 안량을 보내 백마를 공격하자 조조는 관우와 장료를 선봉으로 삼아 안량을 공격하게 했고 이때 관우와 함께 활약한 장료는 이후로도 계속 공을 세워 비장군으로 승진합니다
원소가 죽은 후 장료는 조조를 따라 여양에서 원담과 원상을 토벌했고 본거지인 업성을 공격했지만 워낙 수비가 튼튼한 데다 원상이 죽기 살기로 버텼기 때문에 결국엔 성을 함락시키는데 실패하면서 조조는 허창으로 돌아갔고 장료는 악진과 함께 업의 옆동네인 기주 위군 음안현을 함락시킨 후 그곳의 백성들을 황하강 이남의 지역으로 이주시켰죠
이후 다시 업성을 침공하는 조조를 따라 업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한 장료는 기주 조국과 조운의 고향인 상산군을 점령하고 조조가 청주의 원담을 격파할 때도 그의 곁에서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후 원상과 연합한 오환의 답돈을 장료와 장합이 적은 군대로 물리치자 조조는 장료가 복귀할 때 직접 마중을 나가 그와 수레를 같이 탔으며 이때 세운 공으로 장료를 탕구장군으로 임명했죠
하북을 평정하는데 많은 활약을 한 장료는 이후에도 형주를 공격해 강하의 여러 현들을 평정하는 공을 세우면서 도정후에 봉해지게 됩니다
208년 조조가 형주로 남하하기 직전 장료는 영천군 장사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장료의 부대 내에 반란을 계획했던 인물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장료의 부대를 혼란시키기 위해 밤중에 진영에 불을 질렀고 그의 예상대로 병사들은 점점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했죠
하지만 장료는 침착하게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가 몇 명 되지 않음을 눈치채고는 병사들에게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자는 침착하게 자리에 앉아 있으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병사들의 혼란을 잠재운 장료는 이후 측근 수십 명만을 데리고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들을 처단해 버렸죠
209년에는 진란과 매성이 육안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장료가 장합 우금 장패등과 함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출발했는데 반란군이 있던 천주산은 워낙 산세가 험하고 깊어서 진입하기가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거침없이 진격하려는 장료를 보고 주변의 부하들이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오히려 장료는 길목이 좁으니 많은 병사들이 한꺼번에 나설 수 없어 적군에서는 내 용맹을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니 좋은 기회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망설임 없이 공격해 들어가서 진란과 매성의 머리를 베고 그 무리들을 포로로 잡아버렸죠
다음은 장료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합비전투입니다
합비는 장강을 남쪽에 두고 있어 강남의 군대가 중원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요충지였죠
215년 조조가 한중을 손에 넣자 위협을 느낀 손권은 10만의 대군을 일으켜 그동안 눈독 들이고 있던 합비를 공격했는데요
당시 합비를 지키고 있던 건 장료와 악진 이전 그리고 만 명이 채 되지 않는 병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믿을 것이라고는 조조가 그들에게 보내온 명령서뿐이었는데 그 내용은 황당하게도 장료와 이전은 성을 나가 적군들과 싸우고 악진은 남아서 성을 지키라는 것이었죠
손권의 군대는 자신들의 10배가 넘는 10만의 대군인데 나가 싸우라고 하는 명령서를 본 위의 장군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장료는 조조의 명령대로 성을 나가 싸우려고 했지만 악진과 이전은 자신들보다 나중에 조조의 밑으로 들어온 장료가 그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데 불만을 가지고 그를 질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료의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침묵했다고 하죠
그러자 장료는 크게 화를 내며 자신은 오직 나라의 위기를 해결할 생각뿐인데 공들은 이 순간에도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야겠냐고 호통을 쳤죠
잠시 후 장료의 호통을 듣고 반성한 이전은 그의 뜻을 따르기로 했고 이에 장료는 800명의 정예 결사대를 소집한 후 소를 잡아서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는 결사대를 끌고 제일 앞에 서서 손권의 진영으로 돌격했다고 하는데요
오 군과 마주친 장료는 순식간에 수십 명의 병사와 두 명의 장수를 베어버리고는 큰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손권의 바로 앞까지 돌파를 해냈죠
깜짝 놀란 손권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근처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 도망가 숨어있다가 장료가 끌고 온 병사가 얼마 안 되는 것을 발견하고는 장료와 그의 병사들을 포위한후 전멸시키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장료는 오 군의 포위망을 가볍게 돌파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중간에 낙오한 병사들이 자신들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외침을 듣고는 다시 적진에 뛰어들어 오군 병사들을 격파하고 낙오된 병사를 모두 구해서 돌아갔다고 하죠
장료와 이전 그리고 8백의 병사들에게 무려 10만이나 되는 오 군이 박살 나버린 것인데요
더욱 놀라운 것은 장료의 이런 활약이 나관중의 창작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정사 장료전에 모두 기록돼 있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장료에게 호된 선빵을 맞은 손권 군은 크게 기세가 꺾인 데다 병사들 사이에 풍토병까지 돌면서 손권은 결국 합비에서 군사를 물려 철수하게 되죠
하지만 장료는 순순히 손권이 돌아가도록 놔둘 생각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장료가 병사들을 끌고 소요진에서 후퇴하던 손권 군의 후방에 기습공격을 가하자 감녕과 여몽은 장료 군을 막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며 맞서 싸웠으며 워낙 위태로운 상황이라 손권 본인도 직접 활을 쏘며 싸웠을 정도라고 하죠
능통이 이끄는 3백 명의 친위대가 자신들의 목숨을 던져 장료 군을 막으면서 손권은 겨우 탈출에 성공했지만 오나라는 진무가 전사하고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는 대패를 당하게 되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대승을 거두고 크게 기뻐하던 장료는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는지 항복한 오나라 병사에게 전투 중에 보니까 자주색 수염을 하고 활을 잘 쏘는 장수가 있던데 그 사람이 대체 누구냐는 질문을 했고 병사는 그가 바로 손권이라는 대답을 해줬는데요
그 말을 들은 장료와 악진은 크게 놀라면서 다시없을 기회를 놓쳤음을 깨닫고 뒤늦게 다시 손권을 추격했지만 결국 손권을 찾지 못한 채 철수하게 되죠
조조는 합비의 승리에 매우 기뻐하며 장료를 안동장군으로 승진시켰고 오나라에서는 이후로 어린아이들이 울면 '장료가 온다!'라는 말을 해서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했다는 말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이릉대전 직후인 222년에 조비는 오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몸이 좋지 않던 장료를 해릉으로 보내 장강 근처에 주둔하도록 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손권은 매우 두려워하며 장료가 비록 병들었다고 하지만 절대 쉽게 대적할 만한 자가 아니니 신중하게 대처하라는 엄명을 내리기도 했죠
그렇게 손권과 오나라에게 커다란 두려움을 안겨준 장료는 222년에 병이 깊어져 결국 강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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