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가 멸망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손권 희대의 뻘짓, 오나라 후계자 선발전 이궁지쟁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위나라의 조조, 촉나라의 유비 그리고 오나라의 손권이 나라를 이끄는 군주들이었죠
그런데 조조와 유비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무난하게 군주자리를 잘 물려주었던 반면 오직 오나라 손권만 후계자를 정할때 거의 10년이라는 오랜기간동안 굉장히 시끄러운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궁지쟁(二宮之爭)' 인데요
이궁지쟁에서 이궁은 태자 손화가 살고있던 궁과 노왕 손패가 살고있던 궁을 일컬어 이궁이라 하고 이 두 궁이 싸웠다고 해서 이궁지쟁이라 부르는 것이죠
오늘은 손권의 최악의 뻘짓이라 불리는 오나라의 후계자 다툼 이궁지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29년 황제로 즉위한 손권은 첫째아들이던 손등을 황태자로 세웠죠
그런데 3년후인 232년에 둘째아들 손려가 고작 2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태자인 손등마저 241년에 33살의 나이로 병에걸려 죽어버린것입니다
손등이 죽어가면서 셋째아들인 손화를 다음 태자로 추천했는데 손권은 그의 유언을 받아들여 손화를 태자에 임명했죠
이때 신하들은 다른 아들들도 번왕에 삼아야 한다고 하자 손권은 처음에 아들들을 왕으로 삼을 생각도 없었지만 신하들의 주청을 받아들여 넷째인 손패만을 노왕으로 삼게 되었죠
거기다가 손화가 태자가 되었으니 다른 아들들은 다른 궁에서 살게 했어야 했는데 손권이 태자 손화와 노왕 손패를 같은 궁에 살게하면서 난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나라 신하들은 예법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며 손권에게 상소를 올리기 시작했죠
사실 손권이 손화를 태자에 올렸으면 손패간의 차이을 분명하게 두었어야 했는데 서로 차별없이 애매하고 불분명하게 대하니 태자를 지지하던 신하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빗발치는 상소에 손패는 결국 다른 궁으로 가서 살게 되긴 했지만 손패만 번왕의 자리에 올리고 태자와 같이 살게 했다는 이유로 혹시 손권의 의중에는 태자로 손화가 아닌 손패를 생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신하들 머릿속에 남게 된것이죠
그리고 이때부터 오나라 신하들은 태자 손화파와 노왕 손패파로 나뉘어 후계자 자리를 두고 서로 오랜시간 치고받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손화는 형들이 죽어서 사실상 첫째 아들이었고 전 태자인 손등의 유언도 있었기 때문에 정통성에 아무 문제가 없는 태자였는데요
그런데 갑자기 신하들끼리 태자를 바꿀수도 있을것 같다며 서로 싸워댄것이죠
또한 승상이었던 고옹이 세상을 떠난뒤에 육손이 승상에 임명되었지만 육손은 형주를 방어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수도 건업에는 신하들의 우두머리로써 무리를 이끌고 어느정도 신하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통제해야할 재상이 부재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하들은 아무런 통제없이 두패로 나뉘어 손패파는 태자를 폐위시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손화파는 이를 막기 위해 행동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오나라 신하들은 양쪽 편으로 나뉘어 서로를 탄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떠받드는 신하들의 모습에 손패도 슬슬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손화파에 속해있던 신하들을 포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그렇게 오나라 조정이 시끌벅적한 가운데 손화가 손권의 총애를 잃을만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손권이 아파서 종묘에 제사를 지내로 못가니 어쩔수 없이 태자였던 손화가 제사를 지내게 된것이었는데요
그런데 종묘 근처에 손화의 아내의 숙부인 장휴가 살고 있었는데 손화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장휴가 그를 초대했던 것입니다
원래 손화는 종묘 안에서 지냈어야 했는데 장휴의 초대에 응했고 손화의 치부를 찾기위해 사람을 시켜 은밀히 그를 감시하게 했던 노왕파 전공주 손노반이 이 사실을 모두 손권에게 일러바친것이죠
사실 일반 가정집에서 제사를 지낼때도 예를 다하는데 하물며 황실제사를 지내러 간 손화가 자신의 명을 어기고 처갓집에서 지낸것을 알게된 손권은 굉장히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하들이 반반 나뉘어 싸움질 해대던것에 진절머리를 치던 손권이 태자 손화의 이런 행동으로 인해 그를 총애 하던 마음이 식어 버리고 말았죠
이 소식을 듣고 태자의 위치가 불안하다고 느낀 육손이나 고담 등은 그러지 않아도 스트레스 받아하던 손권에게 계속해서 손화를 옹호하는 상소를 올렸고 심지어 육손은 건업으로까지 찾아와 손권을 설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허구헌날 누군가를 옹호하고 누군가를 헐뜯는 말만 듣던 손권의 귀에는 육손의 말도 들어오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날 손패파는 과거 241년에 있었던 수춘전투에서 승리한 장휴와 고승이 거짓으로 자신들의 공을 늘렸다고 손권에게 고했는데 이에 손권은 그 둘에게 벌을 내렸고 연좌제로 고승의 친족인 고담까지 벌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손화파의 핵심 인사들인 장휴와 고승, 고담은 현재의 베트남 지역인 교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이들은 유배간지 얼마안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그리고 육손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 육손이 손권에게 지속적으로 상소문을 올리는데 일조했던 오찬이라는 인물도 손패파의 상소로 인해 투옥 당했고 이후 옥중에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손패파이던 양축은 육손에게 20가지나 되는 혐의가 있다며 그를 고발했는데 이에 손권이 환관을 육손에게 보내 고발된 20가지 사항에 대해 설명하게 하자 육손은 분노와 통탄을 금치못하고 결국 화병이 나 245년에 죽고 말았죠
그렇게 손화파의 핵심 멤버들이 하나둘 숙청당하고 말았고 이후 손패파인 전종이 우대사마, 보즐이 승상이 되면서 손패파가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안가 전종과 보즐이 잇따라 사망했는데 손화파는 다시 주도권을 잡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지 못한채 다시 두 세력은 팽팽하게 맞서게 되죠
그리고 250년이 되자 마침내 손권이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241년부터 시작된 정쟁이 마침내 종지부를 끊는듯 했죠
손권은 이제와서 손화와 손패 중 한 사람을 고르는것으로는 약 10년간 이어진 이 상황이 해결될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손권의 마음에서 손화와 손패는 떠나있기도 했고 누구를 선택하던 간에 결국 신하들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손권은 손화와 손패 둘다 쳐내는 선택을 하고 마는데 이 손권의 결단은 결국 오나라를 파국으로 몰게 됩니다
손권은 손화를 폐위 시킨뒤 남양왕으로 봉해 쫓아냈고 손패에게는 자결명령이 내려졌죠
그리고 이에 대해 반발하는 양측 측근들을 모조리 제거해버립니다
진정과 진상은 진헌공과 해제의 고사를 들면서 손권을 말렸지만 열받은 손권은 이 둘은 물론 그들의 일족까지 모두 죽였으며 주거와 굴황에게는 곤장 백대를 때렸는데 이때 굴황은 곤장을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태자를 폐위하면 안된다고 간언했지만 이미 눈 돌아간 손권은 그를 고향으로 내쫓아버렸죠
결국 주거와 굴황도 좌천되어 가는 도중에 손홍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손권이 이렇게 까지 피의 숙청을 단행하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손권이 노망이 난것이 아니냐는 의심마저 하게 되었죠
그리고 250년 11월, 손권은 고작 7살밖에 되지 않았던 막내아들 손량을 태자로 세웠습니다
당시 삼국의 한 축을 담당했던 오나라에는 자신들의 나라를 언제나 위협하던 위나라와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권의 뒤를 이을 군주는 카리스마 있는 강력한 군주가 필요했지만 7살 밖에 되지않았던 손량이 그럴것이라고는 기대를 전혀 할수 없었죠
그런데 얼마안가 손권이 병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는데요
251년 11월, 손권은 풍질에게 손화를 다시 태자로 삼아야 할것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 손권은 손량을 태자로 삼은뒤 자신이 십몇년 더 황제자리에 있다가 죽으면 손량이 장성해서 국정을 이어 나갈것이라 예상했는데 손량이 태자가 되자마자 자신이 병에 걸려 쓰러지게 되자 향후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장성한 아들인 손화를 다시 태자로 세우는게 맞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손노반, 손준, 손홍이 이를 반대하고 나서며 제갈각을 보정대신으로 세우는게 어떻겠냐고 진언하자 손권은 이를 받아들였고 결국 이듬해인 252년 4월, 손권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오나라의 실권을 잡은건 제갈각이었지만 253년 합비 신성 공략 실패로 세력이 약해졌을때 손준에 의해 제갈각과 그의 일족들이 죽임당했고 이후 손준이 실권을 잡았지만 3년후인 256년에 갑자기 죽는바람에 그의 종형제이던 손침이 다시 오나라의 권력을 잡게 되었죠
손준 못지않게 손침이 전횡을 일삼자 손량은 그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결국 들키게 되었고 이후 손침에 의해 손량은 폐위 되고 말았으며 손권의 여섯번째 아들이던 손휴가 다음황제로 옹립되었습니다
이후 손휴에 의해 손침이 죽임 당하고 마는데 오나라 내부에서 이런 혼란이 거듭 되는 도중에 결국 촉나라는 위나라에 의해 멸망해 버렸죠
손휴는 촉나라가 위나라에 공격을 받자 구원병을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 멸망하고 말았고 촉나라가 멸망하자 근심 걱정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일찍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264년, 손화의 아들인 손호가 황제가 되었는데 손호가 황제가 되고나서 16년후인 280년, 사마염의 진나라에 의해 오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죠
252년 손권이 세상을 떠나고나서 불과 28년만에 오나라가 멸망하고 만것인데요
만약 손화가 계속 태자로 남아 손권 사후 황제로 올랐다면 아마 더 오래 갈수도 있었을 것 같지만 손권 최악의 뻘짓인 이궁지쟁으로 인해 오나라의 명이 당겨진것 같습니다
조선의 태종 이방원이 왕이 되기위해 왕자의 난을 일으켰을때 처럼 과거 어느나라든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경우엔 그야말로 지독한 피바람이 부는것 같네요
지금까지 손권의 희대의 뻘짓 오나라 황태자 선발전, 이궁지쟁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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