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거둬준 맹상군을 다시 일으켜세워준 식객의 레전드 풍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군자라고 이름난 4명의 인물이 있었는데 세상사람들은 이들에게 전국사군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죠
그 사군자 중 으뜸으로 꼽히던 맹상군이라는 인물은 제나라의 왕족 출신으로 수많은 식객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내용은 이 맹상군의 식객 중 하나이자 춘추전국시대의 전설로 남은 풍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경제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그들을 식객으로 삼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맹상군은 일단 무슨 재주든 자랑할만한 것이 있는 자는 별다른 조건 없이 받아주기로 이름이 나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고 그 결과 그의 집에는 수많은 식객들이 바글바글했다고 하죠
적게는 1000명이었다고 하고 많게는 3000명이라는 설까지 존재합니다
그렇게 젊은 시절부터 식객을 잘 대접하던 맹상군은 아예 집안살림을 거덜내면서까지 더 많은 식객들을 모으는데 열중했고 나중에 가서는 도저히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에 이르렀을 정도라고 하죠
오죽하면 그가 혼인을 못한 이유는 식객들을 대접하느라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그중에는 자질이 뛰어난 이도 많아서 식객들이 맹상군에게 큰 도움을 준 일도 많았다고 하죠
어느 날 진나라의 소양왕이 맹상군을 자신의 신하로 삼으려 그를 초청했는데 소양왕의 신하들은 맹상군이 제나라 사람이라 위험하다며 반대했고 결국 불안감에 빠진 소양왕은 맹상군을 옥에 가둬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옥에 갇혀버린 맹상군은 소양왕의 후궁인 연희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연희는 그의 청을 들어주는 대가로 여우의 가죽으로 만든 옷인 호백구를 요구했죠
하지만 그 옷은 이미 소양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로 줘버린 후였기 때문에 맹상군이 좌절하고 있을 때 한 식객이 갑자기 자신이 호백구를 구해오겠다며 자리를 벗어나서는 정말로 다음날 호백구를 들고 나타났다고 합니다
대체 어떻게 왕궁의 철통 같은 경비를 뚫고 밖에 갔다 왔는지 사람들이 묻자 그는 개 흉내를 내서 들키지 않고 왕성에 잠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죠
그렇게 연희에게 호백구를 준 대가로 감옥에서 풀려난 맹상군은 언제 소양왕의 마음이 다시 바뀔까 두려워서 진나라를 탈출하려 시도합니다
사기꾼 출신의 식객이 위조해 준 출입허가증을 이용해 함곡관까지는 겨우 올 수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한밤중이었고 함곡관은 새벽에 첫닭이 울기 전까지는 절대 관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었죠
뒤늦게 그의 탈출소식을 알게 된 소양왕이 추격대를 보냈다는 소식을 들은 맹상군은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이때 식객 한 사람이 갑자기 닭 울음소리를 흉내 냈고 그 소리를 듣고 아침이 된 거라 착각한 수문장이 함곡관의 문을 열어주면서 맹상군은 간신히 탈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들이 맹상군의 집에서 식객으로 지낼 때 다른 사람들이 당신들은 가진 재주가 무엇이냐고 묻자 각자 개 흉내와 닭울음소리를 잘 낸다고 대답했는데 다른 식객들은 정말 쓸모없는 재주라고 비웃었지만 맹상군은 그런 재주라도 나중에는 쓸 일이 있을 것이라며 그들을 위로했다고 하죠
그런 그들이 정말로 맹상군에게 큰 도움을 주면서 계명구도라는 사자성어가 생겼다고 하네요
이렇게 재주가 많은 맹상군의 식객들 중에서도 가장 큰 공을 세우며 식객의 전설로 남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풍훤입니다
제나라 사람인 풍훤은 맹상군이 식객을 우대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게 되죠
맹상군은 식객을 들일 때마다 그 사람의 특기를 물어보는 버릇이 있었는데 풍훤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는 특기 같은 건 없고 그냥 그쪽이 선비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냥 이 집에서 신세를 좀 지러 왔다는 뻔뻔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천명이 넘는 식객을 받으며 별의별 사람을 다 경험해 본 맹상군은 풍훤이 그저 입만 살아있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는 그를 하급 숙소인 '전사'에 넣고 얼마 후 그곳의 관리인에게 풍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근황을 물어보았다고 하죠
그러자 관리인이 말하길 "풍훤이라는 자는 꼴에 장검을 한 자루 갖고 있던데 하는 일 없이 앉아서는 그 장검의 칼집을 두드리며 장검아 돌아가자! 밥상머리에 생선 한 마리가 없구나!라는 노래를 부르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맹산군은 풍훤을 급식에 생선이 나오는 중급 숙소인 '행사'로 옮겨줬죠
그런데 얼마 뒤 중급숙소의 관리인에게 풍훤의 근황을 물어보니 "그자는 여전히 칼집을 두드리며 장검아 돌아가자! 나가려 해도 수레 한 대가 없구나!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맹상군은 풍훤을 상급 숙소인 '대사'로 옮겨주고 외출할 때마다 그에게 수레를 제공하는 편의까지 봐주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런데도 풍훤은 5일 뒤 다시 칼집을 두들기면서 "장검아 돌아가자! 여기 있어 봤자 내 집이 없구나!"라는 노래를 불러대서 식객을 잘 대접하기로 유명한 맹상군도 결국에는 짜증을 냈다고 합니다
어쨌든 맹상군 덕분에 식객 중에서는 최고급의 대우를 받게 되었음에도 풍훤은 1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백수 생활로 시간을 보내다가 처음으로 일을 하나 맡게 되었는데 바로 빚쟁이들에게서 돈을 받아오는 일이었죠
당시 맹상군은 제나라의 재상이라는 신분임에도 워낙 먹여 살리는 식객이 많아서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 고향 땅인 '설'에서 대부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놀고먹기만 하는 풍훤에게 맹상군은 빚쟁이들의 수금을 부탁했고 이번에는 풍훤도 흔쾌히 맹상군의 청에 응하며 길을 떠났죠
그렇게 설 땅에 도착한 풍훤은 빚쟁이들의 집을 돌아다니면서 그중에서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은 끝에 10만 전이라는 거금을 수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사실을 보고받은 맹상군은 풍훤에게 지금 우리 집에 부족한 게 많으니 무엇이 부족한지 잘 알아보고 그 물품들을 사 오라는 지시를 내렸죠
그런데 맹상군의 편지를 받은 풍훤은 맹상군이 시킨 일은 하지 않고 그의 동의 없이 사고를 쳐버리기까지 했는데요
풍훤은 갑자기 맹상군의 빚쟁이들을 모두 한 자리에 불러 모아서는 받아낸 이자 10만 전을 가지고 큰 잔치를 벌이더니 잔치가 끝날 무렵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일정기간 내에 그 빚을 갚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어떻게 이해해 볼 수도 있지만 그 후 풍원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빚문서를 모두 불태워버렸죠
경악하는 백성들에게 풍훤은 "맹상군께서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준 건 백성들이 걱정 없이 생업에 종사하길 원해서였고 이자를 받는 것은 더 많은 빈객들을 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처음부터 다 여러분들이 잘됐으면 하는 뜻에서 한 일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빚을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빚문서를 그냥 태워버리라는 명을 내리셨소
맹상군께서는 오로지 여러분을 위해서 이런 명을 내리신 것이니 절대 그분을 배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겼죠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모두 절을 하면서 맹상군을 칭송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풍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던 맹상군은 그가 설에서 돌아오자마자 즉시 그를 불러내서는 따져대기 시작했죠
"내가 백성들에게 대부업을 하는 것은 내가 수입이 적은 형편에 3천 명이나 되는 당신 같은 식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모으기 위해서인데 10 만전이나 되는 이자로 소를 잡고 술을 사서 잔치를 벌인 것도 모자라 사람들의 차용증까지 불태워버렸다니 도대체 무슨 이유요?"
이에 풍훤은 "일단 빚을 갚을 여유가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분하기 위해 잔치를 벌여서 사람들을 빠짐없이 불러들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빚을 갚을 기한을 정해줬지만 어차피 여유가 없는 사람은 10년을 기다려도 이자를 받기 힘들어 보였고 괜히 독촉했다가 도망이라도 가면 큰일이니 차라리 공의 명성을 위해서 그와 같은 일을 벌였습니다"라는 대답을 했고 할 말을 잃은 맹상군은 결국 풍훤의 말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죠
그 후 세월이 흘러 제나라 왕의 미움을 사게 된 맹상군은 벼슬자리에서 쫓겨났고 더 이상 맹상군에게 얻어먹을 것이 없어진 식객들은 대부분 그를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풍훤은 끝까지 그의 곁에 남아 모든 것을 잃은 맹상군에게 고향인 설 땅으로 가면 반겨주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며 그를 설득했죠
설에 도착한 맹상군은 정말로 그곳의 백성들이 자신을 열렬히 환영해 주는 걸 보고는 크게 감동해서 "일전에 공이 했던 일 덕분에 아직까지도 나를 반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라며 풍훤을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풍훤은 우쭐대는 기색 없이 갑자기 맹상군에게 수레 한 대를 달라고 하더니
"약삭빠른 토끼는 위험을 대비해 굴을 세 개 파둔다고 합니다
이제 내가 이것 말고도 굴을 두 개 더 파서 공을 두 다리 쭉 뻗고 잠들게 하겠다"라는 큰소리를 쳤죠
풍훤의 이 말 때문에 교토삼굴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겼다고 하네요
하지만 맹상군은 속으로 풍훤도 이제 자신을 떠나갈 핑계를 찾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 여행비까지 쥐어주며 웃는 얼굴로 그를 보내줬죠
그런데 풍훤은 그 길로 위나라 왕을 만나러 가서는 위나라와 제나라 두나라가 모두 강대하니 서로를 이기기가 쉽지 않지만 자신에게는 제나라를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자신의 주특기인 혓바닥 놀리기를 시전 했습니다
그의 말빨에 넘어간 제나라 왕이 어떻게 하면 제나라를 이길 수 있겠냐고 묻자 지금 제나라가 그곳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맹상군을 버렸기 때문에 버림을 받은 맹상군이 제나라를 몹시 원망하고 있는데 만약 그를 얻으면 제나라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대답했고 그 말을 들은 위왕은 즉시 사신에게 금을 잔뜩 쥐어주고는 맹상군을 설득하기 위해 제나라로 보냈다고 하는데요
그러자 풍훤은 이번에는 제나라로 가서 왕을 만나고는 당신이 버린 맹상군을 위나라에서 귀한 대접을 해가며 데려가려고 한다 적국인 위나라에서 그를 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빨리 맹상군을 다시 불러들이는 게 좋을 것이라며 왕을 설득했죠
제왕이 확인을 해보니 정말로 금을 실은 수레가 위나라와의 국경지대에서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깜짝 놀란 제왕은 맹상군을 다시 불러들여 원래의 자리에 앉힌 데다 1천 호의 식읍까지 추가로 내줬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동안의 밥값을 제대로 치른 풍훤은 춘추전국시대 식객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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