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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상나라. 중국 최초의 고대국가, 중국 문명의 중심

by 사탐과탐 202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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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고대국가, 중국 문명의 중심 상나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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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대 중국의 문명중에서도 중심에 해당하는 상나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상나라는 '은나라'라는 명칭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한데 그 이유는 기원전 13세기경 반경이라는 왕이 나라의 수도를 지금의 하남성 안양에 해당하는 '은'이라는 땅으로 옮겼기 때문인데요

 

그 이후로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가 무려 270여 년 동안이나 은이라는 곳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죠

우리나라에서도 상나라보다는 은나라로 알고 계신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당시의 상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상이라고 불렀죠

 

유적지에서 발굴된 갑골문을 살펴봐도 '상'이라는 글자는 있지만 '은'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상나라는 그 건국자 성탕이 '말희'라는 여자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던 하나라 '걸왕'을 몰아내고 세운 나라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갑골문에는 하나라와 걸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걸왕이 정말 폭군이었는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하나라가 정말로 있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때문에 오늘날 학계에서는 하나라와 걸왕의 존재를 전설상의 이야기 정도로 취급한다고 하죠

 

상나라 하면 빠질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황하인데 황하의 강물은 높고 험악한 산악지대로부터 흘러나왔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땅에 인공적으로 물을 대는 관개농업이 발전했고 잦은 홍수로 인해 토양까지 비옥했기 때문에 상나라는 농업발전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상나라는 농업의 발전에 힘입어 수공업과 상업도 어느 정도의 발전을 이루어내면서 그 주변세력들을 대표하는 맹주 노릇을 했지만 사실상 그들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닿는 범위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상나라가 주변국들보다 발전하는데 유리했던 또 한 가지 조건은 바로 교통조건이 편리했다는 점이라고 하는데요

상나라는 당시 정치와 군사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중국의 하북, 하남, 호북, 호남, 강서 등 1/3의 지역을 편리하게 오갈 수 있었기 때문에 금속화폐가 일찍부터 유통되는 등 상나라를 중심으로 교환업이 발달했는데 상인이나 상품 상점등 오늘날 사용되는 상업과 관련된 '상'(商) 자가 바로 상나라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상인'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게 된 이유 또한 슬픈 배경스토리가 있는데 상나라가 주나라에게 멸망한 이후 상나라 유민들이 생업을 위해 각지를 떠돌면서 물건을 팔던 것에서 '상인'이라는 단어가 생겼다고 하죠

하지만 그렇게 상업이 발달한 나라였음에도 당시 상나라에서는 농업을 국가의 근본으로 여겼기 때문에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 상업에 종사하는 상인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졌다고 하네요

 

그리고 상나라 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갑골문이라고 하죠

갑골문이란 거북이의 배껍질이나 동물의 뼈에 새긴 글자를 말하는데 상나라에서는 날씨나 전쟁의 승패 사냥의 성공 여부 등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는 반드시 점을 쳐서 먼저 하늘의 뜻을 살핀 후에 그 일들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 방법은 바로 거북이의 배딱지나 동물의 뼈를 태운 후에 그 갈라진 모양을 보고 점을 쳤는데 매번 점을 칠 때마다 날짜와 길흉 등의 결과를 갑골에 새겨 두었다고 하죠

 

이 갑골문과 그동안 발굴된 유적들 덕분에 상나라 문명의 매우 어두운 부분을 알 수 있게 됐는데 바로 상나라는 노예나 주변 부족들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을 하는 나라였다는 것인데요

한때는 상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이 사람을 마구 죽인 것 때문에 폭군의 대명사처럼 불린 적도 있었지만 상나라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다 보면 다른 왕들은 멀쩡했는데 주왕만 폭군이 된 것이라기보다는 갑골문에서 인신공양에 대한 내용이 자주 나오는 것으로 봤을 때 상나라 자체가 주변국가들의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포악한 국가였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갑골문의 기록에 따르면 오히려 주왕은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인신공양을 줄이려고 했던 왕이라고 하죠

하지만 훗날 상나라가 망한 후 그들의 횡포에 당했던 사람들은 그 원한을 모두 주왕에게 쏟아부었기 때문에 주왕이 역사에 길이 남을 폭군으로 기억된 것이라고 합니다

상나라의 유적을 발굴하다 보면 불과 몇 미터 지하에 사람의 해골들이 무더기로 발견되는 일이 많다고 하죠

 

사람을 순장하고 희생양으로 쓰는 일은 고대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상나라는 사람을 제물로 바친 수에서 압도적이었다고 하는데요

지금까지 발견된 갑골문의 기록에 따르면 상나라에 의해 제물로 바쳐진 희생자의 수가 270년이라는 기간 동안 무려 13,0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상나라 사람들은 단순히 희생되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은 것뿐만 아니라 사람을 산채로 땅에 생매장시켜버리거나 산채로 물에 빠트려 익사시켜 버리는 등 그들을 죽일 때도 굉장히 잔인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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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은 부리는 노예들의 다리나 생식기를 자르거나 한쪽 눈을 못쓰게 만들면서 전쟁터에서 제대로 된 병사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농사를 짓거나 노역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만들어버렸다고 하죠

그렇게 수많은 노예들을 필요로 하는 형태로 국가를 운영하다 보니 상나라는 시도 때도 없이 주변의 국가들을 약탈했고 결과적으로 주변에 너무 많은 적을 만들면서 몰락을 하게 되죠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상나라는 주왕이 달기라는 미녀에게 빠져 온갖 사치를 부리며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는 횡포를 저지르다가 그의 폭정을 견디지 못한 제후들이 난을 일으키면서 주왕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나오지만 갑골문을 보면 아예 달기라는 이름은 나오지도 않고 주왕도 상나라의 다른 왕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최근 들어서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상나라의 멸망 원인은 바로 상나라의 주왕이 동쪽으로 잦은 원정을 가면서 동방과의 전쟁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서쪽에 있던 주나라가 갑작스럽게 상나라의 뒤를 치면서 상이 멸망했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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