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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건문제. 조선의 단종과 비슷한 삶을 살다가 행방불명 된 명나라 2대 황제

by 사탐과탐 2023.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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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에게 제위를 찬탈당한 조선의 단종과 비슷한 삶을 살다가 행방불명 된 명나라 2대 황제 건문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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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약 45km 떨어진 창평구 천수산 기슭에는 거대한 무덤군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명나라 황제 16명 중 13명이 여기에 묻혀있죠

이를 '명13릉 (明十三陵)'이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이곳에 묻히지 못한 3명의 황제는 바로 홍무제와 건문제, 그리고 경태제가 있습니다

 

홍무제는 명나라 처음 수도인 남경에 묻혔고 경태제는 폐위되어서 이곳에 묻히지 못한것이죠

그리고 2대 황제인 건문제가 묻히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후 건문제에 대한 이야기와 전설들이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요

 

오늘은 이 건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건문제는 주원장의 첫째아들인 의문태자 주표의 아들이었는데요

형이던 주웅영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건문제 주윤문이 황태자가 됩니다

원래 홍무제 (주원장)는 주표가 죽자 넷째아들이던 연왕 주체를 황태자로 삼으려고 했지만 신하들의 반대와 만약 주체가 황태자가 되면 주체의 두 형이 반발하여 내분이 일어날것이 염려되어 계승 원칙을 지켜 주윤문이 10살의 나이로 황태자가 된것이죠

 

주윤문은 어릴때부터 성격이 차분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할아버지 홍무제가 명나라를 세울때 자신을 도와 엄청난 공을 세웠던 개국 공신들과 그 일족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는데 야사에 따르면 이때 주윤문은 홍무제에게 제발 피의 숙청을 멈춰달라고 간청했었다고 하죠

그런데 홍무제는 "황위는 가시나무와 같으니 내가 살아있을때 가시를 다 없애주겠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원장은 자신의 아들들을 여러 지역에 보내 번왕으로 삼았는데 그들은 군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1398년 홍무제가 세상을 떠날때, 다음 황제인 건문제에게 위협이 될까봐 번왕이던 아들들에게 자신의 장례식에는 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후 건문제로 즉위한 주윤문에게는 각지의 번왕들이 가지고있던 막강한 군권이 위협이 되었고 숙부(번왕)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삭번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죠

하지만 문제는 세력이 약한 번왕부터 제거했던것 이었는데요

이후 다른 번왕들이 습격당하는걸 본 주체가 자신도 언젠가는 제거될거라 생각해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버린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난의 변'이죠

정난의 변 당시 건문제의 전력이 연왕 주체에 비해 강력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건문제의 나약함과 우유부단함 이었습니다

건문제는 삭번정책을 실시할때 가장 강력한 세력이던 주체를 제일 먼저 제거 했어야 했는데 주체가 무섭다는 이유로 다른 약한 번왕을 먼저 제거하는 실책을 저질렀고 이에 주체가 이후 자신에게 닥칠일들과 전쟁을 준비할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것이 문제였던 것이죠

 

또한 전쟁 중 연왕 주체가 정찰을 위해 10여명의 부하만 거느리고 나온적이 있는데 이때 이를 알아챈 황제군은 그를 포위해 버렸던 것입니다

적군의 수장을 잡거나 죽일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황제군은 그에게 화살 한발도 제대로 쏠수가 없었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건문제가 "짐이 숙부를 죽였다는 책임을 지게 하지마라" 라는 조서를 내렸기 때문이었죠

 

주체는 이미 반역자였기 때문에 죽일 명분은 충분했으며 자신의 황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반란군 대장인 주체를 죽이지 말라고 생포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령을 내려버렸기 때문에 최고의 기회를 그냥 날려버렸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당시 주체의 아들들이 할아버지 장례에 아버지 주체를 대신해 왔다가 남경에 머물고 있었는데요

신하들은 이들을 인질로 잡아야 한다와 풀어주고 주체가 방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는데 결국 건문제는 그들을 풀어줘버린 것입니다

 

건문제의 우유부단함은 결국 연왕 주체에게 승기를 건네주게 되었고 그렇게 수도 남경마저 함락되고 말았죠

이에 건문제는 궁에 불을 지른뒤 이후 행방불명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연왕 주체가 건문제 다음 황제인 명나라 3대황제 영락제로 즉위하게 되죠

그런데 사라진 건문제의 행방은 현재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남경이 함락된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주장도 있고 궁에 불을 지른뒤 자신도 불에 타 죽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의 시신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죠

또한 민간에서 떠돌던 전설이 있는데 홍무제가 죽기 전 건문제에게 상자 하나를 주면서 위기에 처했을때 열어보라 했던 것입니다

이후 남경이 함락되고나서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홍무제가 탁발승일때 쓰던 목탁과 공양그릇이 나왔고 이에 건문제는 스님으로 변장해서 그곳을 탈출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한 1978년에 남경의 황궁이 있던 자리에 건물을 짓기위해 공사를 하던중 지하 통로가 발견되었는데 건문제는 이곳을 통해 도망갔을것이다 라는 이야기도 있죠

또한 자신을 절대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건문제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에 도망치는걸 영락제가 눈감아줬다는 설도 있으며 이와 반대로 건문제가 살아 있어서 다시 재기를 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영락제는 신하들을 중국 곳곳에 파견해 건문제를 찾게 했는데 정화의 원정 역시 건문제를 찾기위한 행동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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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영락제가 조카이자 황제이던 건문제를 죽이는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비밀리에 그를 죽이고 행방불명 되었다고 한것일수도 있다는 설도 있죠

또한 건문제는 조선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긴 한데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뒤 자신을 조선 국왕으로 책봉해 달라며 사신을 보냈는데 홍무제(주원장)는 이성계의 칭호를 권지국사로 기록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조선에서 서신에 '조선국 권지국사' 라고 적어보내도 홍무제는 '고려국 권지국사'라고 답장을 보냈다고 하죠

 

그렇게 이성계는 명나라의 고명과 인신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정난의 변이 일어나자 건문제는 조선에 원군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는데요

그러자 조선에서도 명나라 조정에 고명, 인신을 요청했고 연왕 주체의 세력 뒤쪽에 나라가 있던 조선은 얼마든지 주체의 위협을 끼칠수 있었기 때문에 건문제는 태종에게 고명과 인신을 주었던 것이죠

그렇게 태종은 명나라의 책봉을 받을수 있었는데 이후 눈치를 보다가 건문제가 전쟁에서 패배하자 얼른 영락제의 즉위를 축하하면서 건문제에게 받은 고명과 인신을 반납하고 영락제에게 새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는 영락제를 황제로 인정하는 의미였기 때문에 영락제도 흔쾌히 새로운 고명과 인신을 보내주었다고 하죠

여담으로 건문제는 경태제, 숭정제와 함께 자신의 실록이 만들어지지 않은 황제이기도 한데요

그의 기록은 영락제의 실록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죠

또한 그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6살이었던 주문규는 건문제와 함께 행방불명 되었고 둘째 아들인 주문규는 당시 1살이었는데 영락제가 아기였던 그를 살려는 주었지만 이후 56년동안 유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정통제가 그를 유폐에서 풀어주긴 했는데 워낙 오래 갇혀 살았던 탓인지 풀려난 이후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얼마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건문제가 이후 살아남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살았다면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없이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 같은데 그도 그렇고 가족들도 모두 처참하게 살거나 죽은걸 보면 권력이 없는 황제보다 차라리 평범하게 사는것이 가장 좋은것 같네요

 

황태손이 되어 명나라 2대 황제가 되었지만 삼촌에게 황제자리를 빼앗기고 이후 행방불명 된 비운의 황제 건문제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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