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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선덕제. 명나라의 몇 안되는 명군 중 한명이지만 뚜렷한 실책이 있는 황제

by 사탐과탐 202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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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몇 안되는 명군 중 한명이지만 뚜렷한 실책이 있는 황제 선덕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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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야기했던 홍치제는 명나라의 마지막 명군이었는데요

오늘 이야기할 이 인물도 몇없는 명나라의 명군중 한명입니다

이 인물은 바로 명나라 5대 황제인 선덕제 이죠

 

선덕제의 할아버지는 영락제이고 아버지는 홍희제 인데요

어릴적부터 총명하기도 했으며 무예 소질도 있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의 총애를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다보니 영락제가 여기저기 원정을 다닐때도 어린 선덕제를 데리고 다녔을 정도로 아들인 홍희제보다 더욱 마음에 들어했다고 하죠

 

오늘은 명나라 몇 안되는 명군 중 한명인 선덕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선덕제의 이름은 주첨기로 1399년에 태어났는데요

그가 태어났을 당시에는 아무런 작위도 없었고 황제가 될 가능성도 거의 없었죠

그런데 주첨기가 태어났을때 할아버지이던 연왕 주체가 기묘한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주원장이 나타나 "자손 대대로 영원히 번영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커다란 규를 주었다고 하죠

 

규는 종묘제례나 왕이나 황제 즉위식 때 문무백관들이 들고 있는 옥으로 만든 긴 판인데 이것은 권력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꿈에서 깬 영락제에게 곧바로 좋은 소식이 들렸으니 바로 손자 주첨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이었죠

 

아버지 주원장의 꿈을 꾸고 잠에서 깨자마자 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영락제는 이를 기이하게 여겨 얼른 손자를 보러 달려갔는데 그때 갓 태어난 주첨기를 둘러싼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대명의 복이 태어났다" 라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한편 주원장 이후 황제로 등극한 건문제는 강력한 군권을 가지고 있어서 황권에 위협이 되던 번왕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세력이 가장 약하던 번왕들부터 숙청을 단행했다는 것이죠

이 소식을 들은 연왕 주체는 언젠가 자신 차례가 올것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바로 '정난의 변' 입니다

그리고 약 3년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결국 연왕 주체가 승리했고 그렇게 주체는 영락제가 된것이죠

그러면서 주첨기의 아버지이던 주고치는 황태자가 그리고 자신은 황태손이 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주첨기는 어린시절부터 할아버지이던 영락제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게 되는데요

영락제는 직접 손자의 스승을 골라 주었고 시간이 날때마다 직접 제왕학을 가르치기도 했죠

또한 무예에도 소질을 보였던 주첨기를 원정을 갈때도 데리고 다니면서 군사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이때마다 들리게 되는 여러 고을의 백성들의 삶도 보여주며 황제가 갖춰야할 덕목들을 두루 가르쳤습니다

 

그러던 1424년, 몽골원정 중 영락제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아버지인 주고치가 홍희제로 즉위하게 되었죠

홍희제는 즉위하고나서 선정을 펼쳤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즉위한지 불과 8개월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렇게 다음 황제로 주첨기가 선덕제로 즉위하게 됩니다

선덕제는 즉위후 여러 황족들에게 하사품을 내렸는데 그중 숙부이던 한왕(漢王) 주고후에게는 다른 황족들보다 더 많은 하사품을 내렸지만 주고후는 굉장히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죠

 

영락제의 차남이던 주고후는 영락제가 처음엔 그를 후계자로 생각했을 정도였지만 워낙 난폭했던 성격탓에 후계자 자리를 넘겨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고후는 선덕제가 즉위하고나서 1년만인 1426년에 반란을 일으켜 버렸죠

이에 선덕제는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출진해 주고후가 있던 낙안주 성까지 밀고 내려왔는데 황제가 직접 출진하자 민심도 주고후를 따르지 않았으며 주고후의 부하 장수들과 병사들도 전의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붙잡힌 주고후를 대신들은 처형해야 한다고 했지만 선덕제는 주고후를 폐서인 시킨뒤 가족들과 함께 소요성에 감금하는것으로 끝내면서 숙부를 한번 용서해주었죠

그런데 얼마안가 주고후는, 결국 끔찍한 죽임을 당하고 마는데요

시간이 흐른뒤 선덕제는 문득 주고후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져서 소요성에 찾아갔는데 갑자기 주고후가 달려들어 선덕제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는 사건이 벌어진것이죠

 

이에 개빡친 선덕제는 300근(180kg)이나 되는 구리로 만든 항아리속에 주고후를 집어 넣어버렸는데 힘이 장사였던 주고후는 항아리를 밀치고 나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모습에 더욱 화가 난 선덕제는 항아리 위에 큰 돌을 얹어 눌러버린뒤 불을 피워버렸고 그렇게 주고후는 구리 항아리에 갇힌채 불에타 죽고 말았죠

그리고 주고후의 아들들 역시 모두 처형되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킨것까지 용서해줄만큼 굉장히 너그러운 성격이었지만 주고후의 그런 미친짓을 참을수는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주고후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자 영락제의 셋째아들이던 조왕 주고수를 비롯한 다른 번왕들도 나중엔 자신들도 죽임당할까봐 걱정했는데요

선덕제는 그들에게 병권만 자진반납하면 아무일도 없을거라고 말했고 이에 번왕들은 얼른 병권을 반납했죠

이로써 선덕제는 반란의 우려도 없애고 영락제의 아들들인 번왕들도 목숨을 보전할수 있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즉위 초반에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울뻔한 반란 사건이 있었지만 슬기롭게 해결해버린 선덕제는 이후 '3양(三楊)'이라 불리던 양사기, 양영, 양부를 필두로 한 명신들을 중용하면서 선정을 펼치기 시작했죠

그는 황제치고는 굉장히 검소하게 살았고 황무지를 개간하는데 힘써 엄청난 경작지를 확보했으며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1431년에 메뚜기떼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자 직접 나서서 메뚜기 퇴치를 지휘하고 피해입은 백성들은 적극지원해 줬으며 다른 여러 자연재해로 피해입은 지역은 세금을 감면해 주기도 했죠

이로써 원나라 시절에 비해 경작지와 생산력이 2배나 커졌을 정도였으며 그만큼 거둬들이는 세금도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 배부르게 해주면 성군이니 명군이니 하던 시절이니 농업생산력 2배 향상은 백성들이 그를 칭송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뿐만아니라 각지에 어사들을 수시로 파견해 백성들에게 횡포를 일삼던 탐관오리들과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들을 처벌하면서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펴 나갔습니다

또한 영락제 시절 지나칠정도로 원정이 잦았던 탓에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있었지만 그는 더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 시작하면서 전쟁터에서 죽어나가던 백성들도 없어지게 되었죠

심지어 안남(베트남)에서도 군사들을 철수 시키면서 더이상 백성들이 전쟁터에서 희생당하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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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북방 민족인 올량합(兀良哈) 부족(정확한 발음은 우량카이, 오랑캐라는 말의 어원)이 침입해왔을땐 직접 기병 3천명을 통솔해 적군 기병 1만명을 격파하기도 하면서 군사적인 능력을 보이기도 했죠

거기다가 선덕제는 개인적인 예술감각 또한 굉장히 뛰어나 많은 글씨와 그림을 남겼는데 재미있는 점은 스스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항상 그림 한 모퉁이에 '심심해서 그려봤다'던지 '그냥 써봤다' 라던지 하는 별거 아니라는 듯한 글을 써놨다고 합니다

 

이는 그만큼 명나라의 문화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뜻이기도 했죠

하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선덕제 역시 여러 실책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환관 문제였는데요

주원장은 외척이나 환관들이 절대 정치에 나서지 못하도록 철저히 배제했으며 당시 환관들은 글을 배우지도 못하게 했었죠

 

하지만 선덕제는 내서당이라는 기관을 만들어 환관들에게 글을 가르치게 했는데 이러면서 점점 환관들이 정치에 개입하고 권력을 가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훗날 선덕제의 아들인 정통제 시기에도 환관 왕진으로 인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게 되죠

또한 그는 귀뚜라미 싸움을 굉장히 좋아했었다고 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선덕제는 크고 싸움 잘하는 귀뚜라미를 구하기 위해 환관들을 여러 지방으로 보냈는데 지방 관리들과 백성들은 귀뚜라미 잡는데도 정신이 없었을 뿐만아니라 선덕제에게 특혜를 받고 파견된 환관들이 부리는 온갖 횡포 때문에 이중고를 겪었다고 하죠

또한 그는 명나라에서는 명군이었던 반면 조선에서는 굉장히 짜증나고 귀찮은 스타일의 황제였습니다

그는 사냥도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조선의 토종 매였던 해동청을 계속 잡아다 바치라했고 한확의 여동생이던 한씨는 억지로 명나라에 공녀로 끌려가 선덕제의 후궁이 되기도 했죠

 

조금 독특한 점은 그는 조선의 두부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조선의 사신이 데려온 두부장인이 만든 두부의 맛을 본 선덕제는 이 맛에 매료되어 사신에게 벼슬까지 내렸다고 합니다

또한 나중에는 조선에 사신을 파견해 두부를 만들어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했다고 하죠

어쨌든 선덕제는 재위 약 10년만인 1435년에 고작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요

 

그의 죽음에 대해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할아버지 아버지와 다르게 유달리 거무죽죽한 피부에 너무 일찍 죽은것으로 보아 무언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죠

선덕제가 죽고나서 그의 아들인 주기진이 고작 9살의 나이에 황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정통제 입니다

그리고 토목의 변을 겪으면서 명나라의 명운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죠

명군이라 일컬어지는 홍희제나 선덕제가 더 오래 나라를 다스렸다면 명나라의 명운이 더 오래갔을수도 있었을것 같네요

 

지금까지 명나라의 몇 안되는 명군중 한명인, 선덕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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