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시절부터 명종때까지 권세를 누리며 온갖 비리를 저질렀던 희대의 악녀 정난정의 남편이자 조선시대 탐욕의 끝판왕 윤원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예전에 중종시절부터 명종때까지 권세를 누리며 온갖 비리를 저질렀던 희대의 악녀 정난정에 대해 다룬적이 있었죠
그런데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맞는것인지 정난정의 남편또한 그녀 못지않게 권력을 탐하며 온갖 나쁜짓은 다 저지르고 다녔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정난정의 남편이자 조선시대 탐욕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윤원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윤원형은 1503년에 경기도 파주군에서 파산부원군 윤지임과 전의이씨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죠
그의 위로는 윤원로를 포함한 4명의 형과 2명의 누나가 있었는데 그중 둘째누나가 바로 중종의 왕비가 되는 문정왕후였습니다
그는 1528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5년후 별시문과에 급제해서 사관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벼슬살이를 하게됐죠
중종의 두번째 왕비였던 장경왕후가 사망한 후 새로운 왕비로 윤원형의 누이인 문정왕후가 간택되고 1534년에 문정왕후가 아들 경원대군을 낳으면서 윤원형은 자신의 형인 윤원로와 함께 외척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원대군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당시 조정의 중신이던 김안로와 문정왕후는 둘 다 세자인 인종을 지지했기 때문에 같은 배를 탄 입장이라고 할수 있었죠
하지만 문정왕후는 아들을 낳게된후부터 세자가 아닌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했고 이에 김안로 또한 입장을 바꿔 그녀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김안로는 1537년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을 파직시켜버린후 유배를 보내버렸는데요
이후 김안로는 문정왕후마저 중전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했지만 이때 지나치게 권세를 휘두르는 김안로에 대해 위협을 느낀 중종이 도승지 양연에게 김안로를 없애야겠으니 여론을 조성하라는 밀지를 내렸죠
자신들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지위를 가리지 않고 제거해버리던 김안로 일파의 공포정치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던 조정 관료들은 기다렸다는듯 김안로에 대한 상소를 올리기 시작했고 중종은 결국 김안로를 탄핵시킨 후 사약을 내려 그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그렇게 김안로가 죽자 윤원형은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돌아오게 되었죠
중종시절에는 윤원형과 윤원로 형제를 중심으로 한 소윤세력과 세자의 외삼촌인 윤임을 중심으로 하는 대윤세력이 계속해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1544년 중종이 죽고 세자였던 인종이 뒤를 잇게되자 그때까지 인종을 지지하던 윤임을 중심으로 한 대윤의 세상이 오는듯했습니다
기세가 죽은 소윤은 윤원형의 밑에 모여서 대윤에 반격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1545년 7월 인종이 병약한 몸으로 중종의 장례를 치르느라 무리한탓에 재위 8개월만에 세상을 떠났고 문정왕후의 아들인 경원대군이 조선의 13대왕인 명종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명종의 나이가 아직 어린탓에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되면서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어버렸죠
예조참의로 있던 윤원형은 평소 대윤과 사이가 좋지않던 병조판서 이기, 호조판서 임백령등과 함께 상소를 올리는한편 자신의 첩인 정난정을 시켜 문정왕후와 명종을 부추겨서 윤임과 그의 일파들을 반역죄로 몰아 귀양 보낸후 죽여버리는 을사사화를 일으켰습니다
1547년에는 '문정왕후와 그녀를 따르는 간신들이 날뛰는 탓에 나라꼴이 엉망이며 조선은 곧 망할것이다'라는 내용이 써진익명의 벽서(벽에 쓰거나 종이에 써서 벽에 붙이는 글)가 발견되는 양재역 벽서사건이 발생하자 윤원형은 이 사건또한 윤임의 잔당이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때까지 조정에 남아있던 윤임의 남은 세력들마저 모두 쓸어버렸죠
그렇게 모든 적대세력을 제거하고 공신이 된 윤원형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쌀이 기본화폐로 쓰였기 때문에 그가 뇌물로 받은 쌀이 창고에 넘쳐나서 썩을 지경이 되자 그때부터는 쌀대신 놋그릇으로 받게되었는데 그마저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고 하죠
이외에도 많은 농장을 가지고 있었던데다 한양에만 윤원형 소유의 대저택이 10여 채나 있었으며 그 모든 저택에서 일할 노비들과 그들이 먹을 곡식이 모두 준비돼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명종 6년에는 왕이 그를 우의정으로 임명하려 하자 권력을 쥐고있는 자신이 높은 지위까지 가지면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것을 두려워한 윤원형이 예의상 거절을 했는데요
그러자 영의정을 비롯한 3사에서 '윤원형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라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고 그제야 윤원형은 마지못해 자리에 오르는척하며 우의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해프닝은 보통 왕이 세자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거나 대리청정을 명하면 신하들이 반대하는 경우에나 볼수있었는데 신하의 몸으로 이런 사건을 일으킨것으로 봐서 당시 윤원형이 가진 권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수 있죠
당시 관료들의 임명과 진급은 물론이고 죄인들을 처벌하거나 용서해주는 일까지 모두 윤원형의 손을 거친후에 처리될 정도였으며 윤원형에게 보내는 뇌물이 너무나도 많아서 뇌물을 가득 실은 배가 수도인 한양까지 정기적으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윤원형은 바다를 메워 땅을 넓히는 간척 사업을 진행한 후 그 땅을 자신의 사유지로 사용했고 나라의 소유로 된 땅도 사유지처럼 사용하는 등 그야말로 탐욕의 끝판왕다운 모습을 보여줬죠
명종실록의 명종 20년 8월 15일자 기록을 보면 윤원형은 자신을 조금 화나게 했다는 이유로 첩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인 두리손이라는 아들을 살해하고 그 시체를 강물에 던져 버렸으며 과거 친하게 지내던 친구 이희손의 형편이 좋지못한 틈을 타 그의 집안 대대로 전해져내려오던 가보를 빼앗아버리기도 했습니다
윤원형의 첩인 정난정 또한 만만치않게 악독한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그녀는 1550년에 윤원형의 정실부인이었던 김씨를 몰아낸걸로도 모자라서 다음해에 김씨를 며칠동안 굶긴뒤에 독이 든 밥을 먹여 독살까지 해버렸죠
뿐만 아니라 기우제를 지낸다면서 굶주린 백성들 앞에 쌀밥을 지어놓고 그 쌀밥을 물고기들에게 던져주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품종이 개량된 젖소가 없어서 우유를 얻으려면 암소의 젖을 짜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되면 송아지가 먹을게 없어지면서 농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소를 키우기가 어려워졌죠
때문에 우유가 워낙 귀해서 왕실에서밖에 먹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정난정은 우유를 잔뜩 구해와서는 집에서 부리는 종들까지 실컷 먹게하는 등 실록에 기록된 그녀의 악행이 헤아릴수없이 많다고 하네요
심지어 그들 부부가 부리던 노비들마저 주인의 권세를 믿고 기고만장해져서는 대낮에 민가를 약탈하고 부녀자를 강간하는 일마저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늘높은줄 모르던 윤원형의 권세도 서서히 끝이 다가오기 시작했죠
1565년에 문정왕후가 불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목욕재계를 하던중 갑자기 오한이 들어 중병에 걸리게 되었고 얼마 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것인데요
그때까지 윤원형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던 문정왕후가 죽자 그에게 당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탄핵하기 시작했습니다
명종 20년 8월 3일 홍문관 부제학 김귀영의 소를 시작으로 8월 27일까지 매일 홍문관과 양사에서 윤원형을 귀양보내라고 난리를 쳤고 그외에도 좌의정 심통원을 비롯한 대신들이 연달아 계속 상소를 올려댔죠
단순히 귀양을 보내는것뿐만 아니라 그동안 윤원형이 저질렀던 죄상을 모두 보고하며 그를 엄히 처벌하라는 상소가 올라왔지만 명종은 이를 계속 거부하다가 결국에는 버티지 못하고 윤원형을 파직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그후에도 윤원형을 처벌하라는 요구는 그치지 않았고 파직된 윤원형의 뒤를 이어 새롭게 영의정이 된 이준경이 백관들을 이끌고 명종에게 윤원형의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죠
그러다가 그해 9월 8일에 정난정에게 억울하게 독살당한 윤원형의 전처 김씨의 어머니인 강씨가 딸이 억울하게 죽은 사건의 범인으로 정난정을 관아에 고발하면서 대신들의 공격대상이 정난정으로 바뀌었고 윤원형의 처벌을 요구하던 사람들이 그때부터는 정난정을 처벌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왕인 인종은 끝까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며 침묵했습니다
결국 그해 11월 13일이 되자 더이상의 희망이 없음을 깨달은 정난정은 남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것이 났겠다고 말하며 독을 먹고 자결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집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안 윤원형은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기만 하다 5일후에 정난정의 뒤를 따라 자결하게 되죠
임금보다 더한 위세를 부리며 하늘높은줄 모르던 모습에 비하면 그들의 마지막 순간은 참으로 보잘것없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윤원형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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