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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폭군 간신 탐구

문정왕후. 반대세력은 모조리 가차없이 죽여버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않은 조선 희대의 악녀

by 사탐과탐 2022.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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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들이 여왕이라고 부를 정도였던 조선시대 악녀 문정왕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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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다뤘던 중종편을 보면 중종이 처음에는 아끼던 신하들을 나중에는 가차없이 손절해버리며 마치 이중인격자같은 모습을 보여줬죠

그런데 중종의 왕비 또한 남편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세자였던 인종을 자신의 친아들처럼 아끼며 잘 대해줬지만 정작 친아들인 경원대군을 낳게된후부터는 권력에 욕심이 생겨 마치 인종을 잡아먹기라도 할듯 못살게 굴었다고 하죠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문정왕후의 이야기입니다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왕좌에 오른 조선의 11대 국왕 중종 그의 첫번째 왕비였던 단경왕후 신씨는 집안 식구들이 연산군과 엮이며 모조리 몰락한 끝에 그녀 자신도 일주일만에 왕비자리에서 쫓겨나게 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두번째 왕비였던 장경왕후는 중종의 맏딸인 효혜공주에 이어 적통대군이자 훗날 조선의 12대 국왕이 되는 인종까지 낳았지만 인종을 낳은지 6일만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장경왕후 윤씨가 죽고 새 중전후보를 찾던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는 자신의 집안인 파평윤씨 가문의 딸들중에서 간택을 하기를 원했고 같은 파평윤씨이자 장경왕후의 오빠인 윤임도 거기 동의하면서 새로운 중전으로 간택된 인물이 바로 문정왕후였죠

 

1517년 17세의 나이로 중전이 된 문정왕후는 처음에는 당시 원자였던 인종을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잘 대해줬다고 하는데요

이후 문정왕후는 아들을 낳기위해 노력했지만 연달아 4명의 공주만을 계속해서 낳았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문정왕후가 처음 입궐했을 때부터 그녀와 계속해서 갈등을 일으키던 후궁인 경빈 박씨가 자신의 아들인 복성군을 왕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꾸몄고 세자인 인종을 지지하던 문정왕후는 본격적으로 경빈박씨와 암투를 벌이게 되죠

 

이때 세자를 지지하던 또다른 세력인 김안로가 세자의 생일날 누군가가 죽은 쥐의 사지를 찢고 불에 태운 후 세자의 침실 창문에 걸어둔 작서의 변 사건의 배후세력으로 경빈 박씨를 지목하며 끝내 그녀를 몰아내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자를 보호하는 입장이었던 문정왕후였지만 1534년 자신의 친아들인 경원대군이 태어나면서부터 그녀는 숨겨왔던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요

 

사실 경원대군을 낳기 전까지만 해도 문정왕후는 항상 세자의 편에 서서 세자를 감싸주는 입장이었으며 작서의변 사건 때까지만 해도 문정왕후는 자신이 할수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세자를 보호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계속 아들을 낳지 못한채로 중종이 죽기라도 한다면 다음 왕으로 즉위하게 될 인종을 등에 업으려고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들을 얻게 된 문정왕후는 그때부터 180도 태도를 바꿔서 세자를 적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중종 말년에는 세자가 지내던 동궁에 의문의 화재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배후로 문정왕후가 지목받을만큼 세자와의 사이가 나빠졌다고 하는데요

문정왕후는 이때부터 자신의 친동생인 윤원로와 윤원형을 불러들여 당파를 만들었는데 이들 형제를 중심으로 한 소윤세력과 세자의 외숙인 윤임을 중심으로 하는 대윤세력이 그후로 사사건건 부딪히게 됩니다

 

문정왕후가 아들을 낳자 그녀의 친동생인 윤원로와 윤원형은 그녀의 아들인 경원대군을 세자로 책봉할 계획을 세웠지만 인종의 숙부인 윤임이 그들을 막으면서 끝내 성공하지는 못했죠

한편 경빈 박씨세력이 몰락한뒤 권력을 잡는데 성공한 김안로 일파는 자신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지위에 상관없이 모조리 숙청해 버리겠다고 위협하며 조정신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문정왕후가 세자를 지지할때는 김안로도 그녀와 뜻을 같이 했지만 문정왕후가 경원대군을 낳은후부터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앉히려고 하자 그때부터는 김안로도 태도를 바꿔 아예 그녀를 중전의 자리에서 내쫓아버리려 했죠

김안로는 대윤의 우두머리인 윤임과 짜고 문정왕후를 몰아내버리려 했지만 그들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오히려 김안로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한 중종이 김안로를 파직시켜버린후 사약을 내려 그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문정왕후 일파는 자신들의 경쟁자였던 윤임 또한 제거하고 싶었지만 윤임이 눈치빠르게 김안로를 숙청하는데 앞장서며 공을 세우는 바람에 그를 제거하지는 못했고 그저 서로의 세력을 비슷하게 만드는걸로 만족할수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1544년 중종이 죽고 세자였던 인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소윤은 그 기세가 약해졌고 그때까지 인종을 지지하던 대윤의 세상이 왔습니다

소윤의 중심인물인 윤원로가 대윤의 탄핵을 당해 귀양을 갈 정도였죠

자신을 지지하던 윤원로가 사라지자 위기감을 느낀 문정왕후는 아들인 경원대군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끈임없이 인종을 몰아세웠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특히 인종은 허약한 몸을 이끌고 중종의 장례를 치르느라 무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인종에게 계모 문정왕후가 잦은 타박까지 하면서 인종이 몸과 마음에 더욱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죠

다만 문정왕후가 인종을 몰아세우는 모습만 보인것은 아니었고 인종의 몸상태가 좋지 않으니 그를 위해 기도를 올릴 것을 지시하는 등 나름 인종을 위하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전까지 문정왕후가 인종을 대하던 모습을 봤을때 그녀의 이러한 행동들이 정말 인종을 위해서 한것은 아니었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마지못해 했을것이라는 추측이 많다고 하네요

안그래도 몸이 허약했던 인종은 아버지 중종의 장례를 무리하게 치르면서 왕위에 오른지 불과 9개월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죠

 

그렇게 또다시 비게된 왕자리에 결국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이 올랐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13대 왕인 명종입니다

즉위할 당시 명종의 나이가 12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왕대비인 문정왕후가 왕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게되죠

 

권력을 잡게된 그해에 문정왕후는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을 비롯한 대윤세력을 제거해버렸을뿐만 아니라 그녀의 동생인 윤원로를 귀양보냈던 대신들이 자신마저 길들이려고 하자 오히려 반격에 나서며 그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유배보내버렸는데요

2년뒤에는 양재역 벽서사건을 기회로 평소 마음에 들어하지않던 다른 왕족들과 사림세력까지 제거해버렸고 2년후인 1549년에도 충주에서 이홍윤의 옥사가 터지자 수십명의 목을 날려버립니다

 

그렇게 거침없이 반대세력을 날려버리는 모습을 보고 세상사람들이 문정왕후를 여왕이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하죠

이후 문정왕후는 자신을 지지하던 소윤세력의 핵심인 윤원형과 이기, 정순붕 등에게 주요관직을 내리고 윤원형의 첩인 정난정은 정경부인으로 봉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때부터 문정왕후 일파는 한양 각지에 호화로운 저택을 짓고 백성들을 강제로 노역에 동원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원성을 들었다고 하죠

게다가 시전을 장악하고는 시전상인들로부터 많은 뇌물까지 받아먹었다고 합니다

그외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던 시기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는 바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던 조선에서 '보우'라는 승려를 중용하며 불교를 부흥시키려 했다는 것인데요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승과와 승려의 신분을 국가에서 인정해주던 도첩제를 부활시키는 등 조선 왕조 500년을 통틀어서 가장 불교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시기가 문정왕후의 수렴청정 시절이라고 하죠

이런 정책을 편 이유는 문정왕후가 개인적으로 불교에 대한 믿음이 컸던것도 있지만 사사건건 자신에게 반발해대는 사림파들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불교를 밀어준것 또한 컸는데 이 사실을 알게된 사림들과 유생들은 크게 화를 내며 문정왕후에게 반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낙 문정왕후의 권세가 강했던 시기라 그런 반발 또한 얼마못가서 사그라들고 말았죠

1553년 명종이 20세가 되자 문정왕후는 수렴청정을 그만두고 뒤로 물러나면서 이후부터는 아들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도록 했지만 사실 이것은 형식적인 절차였을뿐 실제로는 윤원형등과 함께 계속해서 나랏일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러던 1565년 갑자기 병세가 심해진 문정왕후는 자리에 눕게되었고 그해 음력 4월 6일 오후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요

문정왕후는 여자의 몸으로 권력을 잡았다는 점과 유교사회에서 불교를 숭상했다는것때문에 필요이상으로 후대의 사람들에게 까인 부분도 분명 있지만 실제로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할때 그녀의 측근들이 심각한 비리들을 저질렀던것 또한 사실이라고 하죠

 

때문에 그녀가 죽은후 실록에서도 그녀에 대해 '사직의 죄인'이자 '집안을 망하게한 암탉'이라는 평가를 내렸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문정왕후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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