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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폭군 간신 탐구

히노 도미코. 일본의 3대 악녀이자 전국시대를 초래한 장본인

by 사탐과탐 202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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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3대 악녀이자 전국시대를 초래한 장본인인 히노도미코는 나중에 마음대로 쇼군을 갈아치우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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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에서는 쇼군의 후계자 문제로 인해 오닌의 난이 일어나고 그 이후 천황과 쇼군의 권위가 엄청나게 실추되자 각 지방의 영주들과 사무라이들이 서로 최고가 되겠다며 싸웠던 전국시대가 도래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오닌의 난이 일어나도록 초래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히노 도미코' 라는 여인이었죠

 

이 여인의 어떤 행동으로 인해 전국시대가 시작한 셈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정실부인이기도 했는데요

오늘은 일본 희대의 악녀라고 불리는 '히노 도미코'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녀는 1440년 히로 시게마사의 딸로 태어났죠

히로 가문은 원래 평범한 유학자 집안이었는데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히노 가문의 딸과 혼인한 이후부터 대대로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가문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외척으로써 권력을 유지해 나가던 가문이었습니다

 

그렇게 1455년 히노 도미코 역시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와 결혼해 정실부인이 되었죠

그녀가 시집갔을 당시 이미 요시마사는 여러명의 첩을 거느리고 있었는데요

그에게 가장 총애를 받던 여인은 '이마마이리노 쓰보네'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원래 쇼군 요시마사의 유모 였는데 요시마사가 8살의 나이로 쇼군이 되자 그의 총애를 등에 업고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만큼 이마마이리노 쓰보네의 권력은 굉장했는데 심지어 요시마사의 생모인 히노 시게코를 뛰어넘을 정도였으며 그러다보니 그녀는 막부의 인사 문제에도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도미코에게 자신의 가장 큰 적인 쓰보네를 제거 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죠

도미코는 결혼한지 4년만에 요시마사의 아이를 출산했지만 태어난지 불과 몇시간 만에 세상을 떠나버리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이에 그녀는 남편인 쇼군 요시마사에게 찾아가 아이가 죽은 이유는 쓰보네의 저주에 의한것이라고 누명을 씌워버렸던 것이죠

그 결과 무녀 2명이 잡혀왔고 저주에 사용되었다는 인형까지 발견되는 등 말도 안되는 증거들로 인해 결국 유배를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쓰보네는 유배를 가는 도중 할복해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가장 강적을 무너뜨린 도미코는 나머지 4명의 첩들도 결국엔 쫓아내게 되었죠

 

이렇게 도미코는 남편의 첩들을 모조리 제거해버렸습니다

그런데 도미코가 날뛸수 있었던 이유는 쇼군 요시마사가 굉장히 나태하고 변덕스러운 성격이 한몫했는데요

요시마사가 쇼군이 되고나서 초반에 조금은 정치를 하긴 했지만 이후 다도와 정원꾸미기, 건축 등에 빠져 점점 정치하기를 싫어하면서 멀리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사치와 낭비가 심했으며 허구헌날 연회를 열어 놀고 먹는날이 많았죠

 

덕분에 아시카가 요시사마는 암군으로 평가 되기는 했지만 '히가시야마 문화(東山文花)'를 꽃피우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요시사마는 빨리 쇼군직에서 내려와 은거해 평생 놀고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쓰모토나 소젠 등 여러 유력한 부하들과 도미코 등이 막부 정치에 개입하는것을 많이 허용해주었고 그들에 의해 정치가 좌지우지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그 이후로 요시마사와 도미코 사이에서 후계자가 태어나지 않자 요시마사는 29살때 출가를 했던 동생 기진에게 쇼군직을 양위하기를 원했죠

그러자 기진은 만약 형에게 아들이 태어나게 되면 쇼군직을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질것이라며 요시마사의 요청을 거절했지만 요시마사는 동생에게 "만약 내게 아들이 생기더라도 너에게 쇼군직을 다시 내놓으라고 요구할일은 절대없다" 라고 여러번 설득한 끝에 결국 기진은 이름을 아시카가 요시미로 바꾸고 요시마사의 양자로 입적해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에 도미코는 극렬히 반대하고 나섰는데요

결국 자신의 여동생을 요시미의 정실로 들이는 조건으로 요시미가 요시마사의 후계자가 되는것을 받아들였죠

그리고 요시미는 장차 자신을 도와줄 후견인으로 당시 '관령'의 위치에 있던 호소카와 가쓰모토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문제가 터져버리는데 요시미가 후계자로 정해진 그 다음해인 1465년에 요시마사와 도미코 사이에서 아들 요시히사가 태어나버린것이었죠

그러자 도미코는 자신의 아들을 쇼군으로 만들기 위한 흉계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당시 호소카와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을만큼 강력한 가문인 야마나 소젠에게 자신의 아들을 부탁했죠

 

이때 쇼군이던 요시마사가 후계자를 누구로 할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요시미와 도미코는 자연스럽게 대립관계가 형성되었고 이 둘의 갈등은 원래부터 라이벌 이었던 두 가문, 호소카와 가문과 야마나 가문의 대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막부 쇼군 가문이 후계자 문제로 시끄러울 때 간토 지역을 지배하던 관령인 하타케야마 가문에서도 가독이었던 하타케야마 모치쿠니가 동생 모치토요를 후계로 삼았다가 친아들 요시나리가 태어나자 쇼군가문과 같은 이유로 후계자 문제가 발생했고 또 다른 관령 가문인 시바 가문에서도 가독인 시바 요시타케가 후계를 정해놓지 않은채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두 양자 요시토시와 요시카도 사이에서도 가독 분쟁이 일어났죠

 

그런데 쇼군 후계자 문제로 대립하던 호소카와 가쓰모토와 야마나 소젠이 히타케야마 가문과 시바가문의 후계자 문제에도 개입하면서 양쪽의 대립으로 촉발된 이 문제가 나중에는 전국의 영주들까지 반으로 나누어 버렸고 결국 큰 전쟁으로 발전해버렸습니다

그렇게 1467년 5월, 야마나 가문이 이끄는 서군 11만과 호소카와 가문이 이끄는 동군 16만이 교토에 모여 전면적인 전투상태로 돌입했습니다

 

이 전쟁은 약 11년에 걸쳐 벌어졌으며, 이것이 바로 '오닌의 난' 이죠

도미코가 악녀라고 평가 받는 두번째 이유가 바로 막부 정치에 깊숙히 관여하고 후계자 문제를 일으켜 오닌의 난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 것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오닌의 난으로 인해 주요 전장이던 교토는 황폐해졌고 결국 쇼군은 호소카와나 야마나 등과 같은 강한 힘을 가진 가문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고 말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 때문에 도미코는 나라를 말아먹은 여자이자 악녀로 취급받고 있는것입니다

또한 도미코는 난리가 난 상황에서도 개인의 돈벌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는데요

그녀는 고리대금업을 벌여 동군 서군 가리지 않고 돈을 빌려주고 엄청난 이자를 받아 챙겼으며 심지어 쌀을 사놓았다가 비싸졌을때 내다 파는 등 쌀투기 까지 하면서 거액의 재산을 모을수 있었죠

 

어쨌든 치열한 전투는 11년이나 계속되었는데 1473년에 양군의 대장이었던 야마나 소젠과 호소카와 가쓰모토가 연달아 세상을 떠나자 양군사이에서는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원래 쇼군가문은 전부 동군에 있다가 요시미만 서군에 합류하게 되었었는데 이에 요시마사는 아들 요시히사에게 쇼군직을 넘겨주었고 그렇게 요시히사는 8살의 어린나이에 9대 쇼군이 되었죠

 

요시히사에게 쇼군을 양위한 요시마사는 새로 지은 저택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곳에 틀어박혀 예술에 몰두했죠

그러자 막부의 권력은 오롯히 도미코에게 쏠리게 되었고 그녀는 오빠인 히노 가쓰미쓰와 막부를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호소카와 가문과 야마나 가문 사이에는 화해가 성립되었고 양군의 화해 무드에 반대하여 마지막까지 교토에 계속 진을 치고 있던 하타케야마 요시나리와 오우치 마사히로도 1477년에 결국 자신의 영토로 물러나자 마침내 양군 사이에 화해가 성립하였고 11년간 이어진 난은 종식되었죠

이후 도미코는 무너진 막부 재정을 재건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교토에 들어오는 입구에 관문을 설치해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통행세를 징수하기 까지 했을 정도로 재산을 늘리는데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확실히 막부 재정에 도움이 되긴 했지만 당시의 기록에는 '천하의 돈이 모두 도미코에게 몰려있었다' 라고 그녀를 맹비난했죠

마침내 아들 요시히사를 쇼군으로 만들고 오닌의 난을 종결 시키긴 했지만 점점 도미코와 요시히사의 관계도 벌어졌는데요

요시히사가 나이가 들면서 너무 향락만 일삼았고 도미코의 명령에도 불복종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자 도미코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위해 과거의 적이었던 요시미와 손을 잡고 요시미의 아들인 요시타네를 다음 쇼군으로 옹립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1489년 요시히사가 롯카쿠를 정벌하러 떠났다가 갑자기 병으로 사망하게 되면서 요시미와 자신의 여동생 묘온인의 아들인 요시타네를 다음 쇼군으로 추대했죠

하지만 그녀에게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요시타네가 쇼군이 되자 요시미가 쇼군의 아버지로써 권력을 쥐게 되면서 도미코와 또 다시 대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491년에 요시미가 세상을 떠나고 요시타네가 모든 정치를 하기 시작하자 도미코와의 사이는 더욱 악화 되었죠

마침내 그녀는 요시타네에 의해 쫓겨나버렸고 그녀는 관령인 호소카와 마사모토에게 찾아가 그에게 빌붙어 살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권력의 달콤한 맛을 잊지못했던 그녀는 요시타네가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 출진한 사이에 자신도 호소카와 마사모토와 함께 병력을 일으켜 반란을 성공시켰죠

그렇게 결국 요시타네는 폐위되고 남편 요시마사의 이복형 아시카가 마사토모의 아들 요시즈미가 11대 쇼군에 올랐습니다

그만큼 도미코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않으면 아들 마저 제거했으며 몇번이고 쇼군을 갈아 치워 버렸던 것이죠

 

그 이후 도미코는 계속해서 막부의 정치에 관여하면서 지내다가 1496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 이후로 이미 천황의 권위가 떨어져 있던 상태에서 쇼군의 막부까지 권위가 떨어지자 지방에서 힘깨나 쓰던 영주들과 사무라이들은 자신이 최고가 되겠다고 들고 일어났고 수많은 각 세력들간의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은 시대인 전국시대의 혼란을 초래 했죠

 

중국 악녀들에 비해선 그나마 좀 괜찮은 편이지만 가히 악녀라 할만하긴 한것 같네요

지금까지 오닌의 난을 통해 전국시대의 스타트를 끊은 일본의 3대 악녀 중 한명인 히노 도미코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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