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김두한, 시라소니 등과 함께 종로를 누볐으며 이승만 정부 시기 온갖 악행을 저지른 악명 높은 정치깡패 이정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해방 후 이승만 정부 시기 정치 깡패로 이름을 날렸던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는 요즘 가장 핫한 배우 중 한명과 이름이 같기도 한데요
동대문 상인들에게 돈을 뜯어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기도 했고 나중에는 정치에도 가담해 야당 정치인들을 향한 정치테러를 지시하는 등 악명높은 조폭이었죠
그는 바로 이정재라는 인물 입니다
이정재는 1917년 1월 6일 경기도 이천 호법면 유산리에서 태어났죠
그의 집안은 이 유산리에서만 13대에 걸쳐 살아왔던 부농 집안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어릴적부터 힘이 굉장히 셌는데 이천에서 씨름대회가 열리면 그날 상품인 황소는 죄다 이정재가 싹 쓸어왔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하죠
이정재는 힘이 센것 뿐만아니라 휘문고등보통학교 까지 졸업했을 만큼 당시의 교육 수준으로 따지면 엄청난 고학력자 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후 그는 다시 이천으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던 중 아버지와 형이 세상을 떠나자 고향의 가산을 다 정리하고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살았죠
그러던 중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일제는 조선인들을 징용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이정재에게도 징용장이 나왔고, 이정재는 징용을 피하기 위해 김두한이 조직하고 있던 '반도의용정신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김두한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죠
그리고 이정재가 고학력자인걸 눈여겨본 김두한은 그에게 서기 업무를 시켰고 나중에는 김두한의 추천으로 그는 특채로 경찰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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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된 이후로 그는 김두한의 세력을 비호하는 역할을 수행해 나갔고 그렇게 경찰 내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갔죠
그러던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드디어 독립을 맞았고 이후로도 그는 계속해서 경찰직을 수행했는데요
고향의 후배였던 곽영주가 경찰에 합격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죠
곽영주는 이정재, 유지광과 함께 이천 3인방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곽영주는 훗날 이승만의 비호아래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으며 물심양면 이정재를 도와주기도 하죠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에 이정재는 반민특위의 특경대 요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경찰이긴 했지만 친일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던 덕에 반민특위 요원이 되었고 친일 경찰들의 악행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반민특위 요원으로써 최선을 다해 친일파 색출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반민특위는 결국 해체 당하고 마는데 이때 그는 경찰직을 때려치우고 처갓집에서 살다가 동대문 시장에 점포자리를 얻어 포목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갑자기 남한을 공격해 들어와 순식간에 서울까지 함락되었는데 당시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한 이정재는 과거에 경찰이었던 경력이 문제가 되어 북한군에게 체포되고 말았죠
이때 훗날 매제가 되는 김기홍이 그를 가까스로 구해내 목숨을 건질수 있었고 그렇게 이정재 역시 부산으로 피난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는 부산의 깡패들과 시비가 붙어 싸우다 집단 구타를 당하던 상황이었는데 당시 최고의 싸움꾼이던 시라소니가 갑자기 나타나 이정재를 구해주었고 그렇게 시라소니와의 악연(?)도 시작되었죠
시간이 흘러 전쟁도 끝이나고 서울로 돌아온 이정재는 1953년 동대문 상인연합회를 조직해 회장에 취임하면서 건달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는 힘은 괴물같이 쎘는데 싸움은 별로 못했다고 하죠
어쨌든 이정재는 6.25전쟁 이후 파괴되어버린 동대문시장 일대의 땅 3000평을 매입해 그곳에 점포를 지었고 그곳에 상인들을 입주시키고 상인 모두를 동대문 상인연합회의 회원으로 가입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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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건달들이 상인들에게 여러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고 공갈과 협박, 폭력을 일삼았던 반면에 이정재는 상인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 그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해 주기도 했기때문에 상인들의 이정재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좋았죠
하지만 그는 사실 잘 보이지 않는곳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었는데요
헐값에 매입한 땅 3000평에 지은 상가들을 상인들에게는 굉장히 비싼 값에 팔아넘겨 엄청난 이윤을 남겼고 시장의 전기나 전화 등, 당시 한곳당 300환 정도에 불과하던 관리비를 거의 7~8배를 부풀려 2000~2500환 정도를 받아먹었습니다
거기다가 전화기 교환을 핑계로 수천환을 부과하기도 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남겼죠
이런 내막을 모르는 상인들은 이정재를 좋은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이런식으로 이정재가 영향력을 끼치는 점포가 종로 4가에서 종로 6가까지 약 2900개에 달했고 상인의 수는 약 120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동대문 광장에 현재 가치로 약 수십억에 달하는 3층짜리 건물을 지은 이정재는 그곳에 도장을 설치해 동대문파 부하들을 육성했죠
이정재의 동대문파는 하부조직만 10개파 이상이 될정도로 거대 조직이 되었고 문화예술계를 주름잡던 임화수가 자신의 부하였으며 자신과 호형호제하던 곽영주는 이승만 정권의 경무대 경찰서장으로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곽영주의 별명이 '부부통령'으로 이승만의 빽을 이용해 월권을 행사하면서 이정재에게 은혜를 갚는다며 그가 어떤 문제를 일으켜도 이를 무마해주었고 나중에는 경찰에 신고를 당해도 이정재는 체포되지 않고 오히려 신고한 사람이 잡혀가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죠
그렇게 그는 자연스럽게 자유당에 입당해 감찰부 차장이 되었는데 당시 이승만 정권의 2인자였던 이기붕과도 친분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정재는 이기붕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가 시키는 온갖 더러운짓을 모두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정치판에도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죠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이정재에게 어느날 명동파의 시라소니가 찾아오는데요
6.25 전쟁 이후에 서울의 조직폭력계는 김두한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가장 큰 세력이던 종로파가 해체 되었고 이후 이화룡이 이끌던 명동파와 이정재가 이끌던 동대문파로 나뉘어졌죠
당시 시라소니는 명동파 였지만 부산에서 있었던 인연 덕에 이정재와 친밀하게 지냈던 것이죠
시라소니는 이정재에게 찾아와 이북출신 특수부대였던 켈로부대원들이 먹고살기가 힘들다며 돈을 요구했던것입니다
이에 이정재는 부산에서 자신을 도와줬던 은혜를 생각해 시라소니에게 돈을 주었죠
하지만 부하들이 다 보는앞에서 돈을 삥뜯기는 느낌이라 이정재의 기분은 썩 좋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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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라소니는 몇차례 이정재를 찾아가 돈을 요구했는데도 그가 순순히 돈을 내주자 마지막에는 현재 약 5억원에 달하는 돈을 요구하면서 켈로부대원들에게 점포를 내줄것까지 요구했죠
이에 이정재와 동대문파 간부들은 결국 분노해 시라소니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시라소니가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오기로 한 날 약 20여명의 부하들이 사무실에 숨어있다가 시라소니가 사무실에 들어오자 모두 모습을 드러냈죠
심지어 이정재의 부하들은 손도끼와 몽둥이, 둔기 등으로 무장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20:1로 싸움이 벌어졌는데 시라소니가 얼마나 날래고 싸움을 잘하는지 박치기로 하나하나 때려눕히며 막상막하로 싸우던 중 시라소니가 전화선에 걸려 넘어지자마자 집단 구타를 당했고 거의 초주검이 된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지게 되었죠
이후 동대문파의 이석재는 후환을 없앴다는 이유로 시라소니가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가 다른 다리마저 부러뜨리려 했지만 간호사가 들어오는 바람에 그대로 도망가버렸고 임화수도 시라소니를 해치려 찾아왔지만 시라소니가 권총을 꺼내들며 호통치자 도망가버렸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평양출신 깡패이던 이화룡과 명동파는 동대문파와 대립하게 되어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죠
이때쯤 이정재는 정치 깡패로써 온갖 악행을 일삼고 있었는데요
아버지로 모시던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야당 인사들과 다른 방해자들을 제거하기로 하기도 했지만 이정재의 부하였던 김동진이 경찰에 밀고해 무마되기도 했죠
또한 이정재는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당시 국회방청객 난동, 그리고 1955년 자유당 창당동지회 방해, 단성사 저격 사건의 배후였고 1956년 대통령선거 당시에는 야당의 집회를 방해하고 테러를 가했으며 1957년에는 장충단 공원 정치 테러 사건을 저지르는 등 정치테러의 주요인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이정재는 정치에도 큰 야망을 보였는데요
자신의 고향인 이천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고 한것이죠
그는 이천의 각 마을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마을의 대소사나 애로사항 등을 모아 이를 해결해 주기도 했고 6.25전쟁때 죽은 마을사람들을 위해 위령비도 세워 해마다 제사도 지내주었으며 부하들에게는 길을 가다가 이천 사람이 곤란을 겪고있으면 무조건 도와주라고 할정도였습니다
거기다가 먹고살기 힘든 가난한 사람도 도와주고 이천군에 있는 학교들에는 재정지원 뿐만아니라 장학금도 지급했죠
이로인해 이천에서 이정재의 인기는 끝을 모르고 치솟았고 1958년 총선때 국회의원 당선은 거의 따놓은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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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는데 1958년, 이기붕이 자신의 선거구였던 서대문구에서의 국회의원 당선이 불확해지자 선거구를 다른곳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그곳이 바로 이천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이기붕은 이정재가 표밭을 잘 닦아놓았던 이천을 강제로 빼앗으려고 했고 이에 이정재와 마찰을 빚게 됩니다
이때 그는 이기붕의 아내 박마리아의 미움을 사게 되면서 결국 이천 선거구도 이기붕에게 반강제로 빼앗겨버렸고 이정재가 누리던 권력도 이때 이후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죠
이정재는 선거구를 빼앗긴 이후 동대문 상인연합회의 회장자리도 임화수에게 넘겨주고 은퇴한뒤 칩거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4.19혁명이 일어나자 4월 28일에 검찰에 자진출두해 정치 테러의 원흉으로 조사를 받고 풀려났지만 다음해인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이 일어나 군사 정부의 조직폭력배 척결 사업 대상으로 지목되어 체포되고 말았죠
그리고 당시 군사 정부는 시라소니 린치 사건, 단성사 저격 사건, 고대생 습격 사건 등 이정재가 연루되어 있던 수많은 범죄들을 재수사해 그를 혁명재판에 넘겨버렸습니다
혁명재판에서 임화수는 자신만 살아남으려고 각종 정치 테러와 여러 범죄들은 이정재의 지시가 있었다며 폭로해 버리면서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우겨댔죠
임화수의 뻔뻔스러운 행동에 옆에 있던 유지광은 포승줄에 묶인채로 분노하며 그에게 달려들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1961년 5월 21일 이정재는 12개의 죄목으로 범죄 단체 수괴로 인정되면서 사형 판결을 받았고 판결 이후엔 백주대낮에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읍니다' 라고 쓴 플래카드 앞에서 시내를 걸어가며 조리돌림을 당하기 까지 했었습니다
그리고 1961년 10월 19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나도 잘못은 있기에 억울하다는 말은 안 한다. 그런데 죄다 나에게만 책임을 넘기고 자신은 억울하다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적어도 자기 잘못은 인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라는 말을 남긴채 향년 44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당해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이승만 정부 시기 서울을 주름잡던 악명높은 깡패 이정재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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