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오래된 노포 가게가 많은 이유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일본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텐데요
몇 세대에 걸쳐 운영되는 오래된 가게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료칸들, 그리고 대를 이어 같은 기술을 전수하는 장인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죠
왜 일본에는 이토록 오래된 가게들이 많은 것이며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일본의 오래된 가게들의 현황은 실로 놀랍습니다
2018년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에는 100년 이상 된 기업이 무려 33069개나 되는데요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100~200년 된 기업이 3만 1136개, 200~300년 된 기업이 822개, 300~400년 된 기업도 639개나 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 세계 통계인데요
블룸버그의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200년이 넘은 회사 8785개 중 무려 3937개가 일본에 있습니다
이는 44.8%에 해당하는 수치로 일본에 오래된 기업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있는지 알 수 있죠
그리고 일본에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들도 존재하는데요
그 중 대표적인 예가 578년에 설립된 '곤고구미'입니다
이 회사는 사찰과 신사, 성곽과 문화재 건축물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건설회사로, 14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인정받았죠
하지만 2006년에 파산하고 현재는 브랜드만 남은 상태입니다
숙박업계에서는 야마나시 현에 위치한 '게이운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705년에 설립되어 1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여관은 무려 52대에 걸쳐 가업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숙박업소로 등재되었죠
음식점 분야에서는 교토의 '이치몬지야 와스케'가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이 식당은 전통적인 일본 과자인 '아부리모찌'로 유명하죠
숯불에 구워 꿀을 발라 먹는 간식으로, 천년의 세월 동안 그 맛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일본의 오래된 가게들이 단순히 많다는 것을 넘어서, 그 역사의 깊이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래된 가게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일본의 '와(和)' 문화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와' 사상의 기원은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스이코 천황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이 시기에 활약한 쇼토쿠 태자는 일본 고대 국가의 정치체제를 확립한 인물로 알려져 있죠
그는 백제의 혜총과 고구려의 혜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유교와 불교를 배웠으며, 이를 바탕으로 '와' 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쇼토쿠 태자가 주창한 와 사상의 핵심은 '화합'과 '조화'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자는 의미를 넘어서 사회 각 계층이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자는 의미를 담고 있죠
이는 당시 일본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철학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후 '와' 문화는 일본 사회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죠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회 구조와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 반영될 정도였는데요
먼저, '와' 문화는 일본의 엄격한 신분제 사회를 형성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계급 구조에서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명확히 정해졌고 이를 벗어나는 것은 사회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또한, '와' 문화는 일본인들의 일상생활 방식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죠
예를 들어 옷과 음식, 그리고 주거 형태 등이 모두 신분에 따라 엄격히 구분되면서 사회적 조화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더 나아가 '와' 문화는 일본의 경제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면서 장기적으로 일본의 장인 정신과 뛰어난 제조업 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하게 되었죠
그러다보니 '와' 문화의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일본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오래된 가게들이 많은 이유는 '와' 문화의 직접적인 산물이라고 할 수 있죠
'와' 문화에 기반한 일본의 사회 구조는 오래된 가게들 유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에도 시대에는 엄격한 신분제와 함께 이주의 자유가 제한되었죠
중앙에는 천황을 모시는 쇼군이 실질적인 권력을 가졌고, 지방에는 다이묘라 불리는 영주들이 각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자신이 태어난 번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는데요
이러한 제도는 사람들이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같은 직업을 대대로 이어가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죠
그리고 '와' 문화는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관념을 강조했습니다
일본인들에게는 가업을 계승하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의무로 여겨지게 된 것이죠
예를 들어, 라멘 가게를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그 자식은 당연히 라멘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해야 한다고 여겨진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가족끼리 가업을 잇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역할이었죠
더욱이 '와' 문화는 사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억제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성공한 라멘 가게 주인이 다른 지역에 분점을 내는 것은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었고 만약 이랬다간
왕따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무라하치부'라는 마을 공동체의 집단 따돌림이나, 심한 경우 사무라이에 의한 처벌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은 가게들이 규모를 확장하기보다는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같은 업종을 유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죠
그렇다보니 오늘날 일본의 오래된 가게들이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와' 문화는 단골 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같은 업종을 유지하는 가게는 자연스럽게 단골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죠
단골 손님 비율이 높은 덕분에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했고 불경기에도 가게가 쉽게 망하지 않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단골 관계는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부모가 다니던 가게를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이용하게 되는 식이었죠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일본에서는 100년, 200년, 심지어 1000년 이상 된 가게들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일본에서 100년 이상 된 가게는 이제 겨우 기본 자격을 갖춘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하네요
그만큼 수백년 된 가게들이 엄청 많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의 오래된 가게들, 즉 노포들은 단순히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일본의 노포는 '와' 문화라는 일본 특유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일본의 정체성을 확립시킨 '와' 문화와 오래된 가게들의 의미는 현대 일본 사회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데요
글로벌화, 기술의 발전,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 등은 전통적인 '와' 문화와 함께 노포를 운영하는 장인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죠
첫째, 가업 계승의 문제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데요
개인의 꿈과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고, 이는 수백년 된 가게들이 후계자가 없어 문을 닫게 되는 원인이 되고 있죠
둘째, 경쟁의 심화입니다
글로벌화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더이상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것이 무기가 되는 시대가 아니기 떄문이죠
셋째, 소비자 취향의 변화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전통보다는 새로움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으며 수백년 된 가게들도 젊은 세대들의 입맛을 어떻게 사로잡을지가 중요할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오래된 가게들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수백 년간 이어온 기술과 전통은 그 자체로 소중한 문화적 자산인 것이죠
'와' 문화와 노포들은 일본인들에게 자부심의 원천이 되며, 일본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어떻게 보면 시대를 못따라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면 단기적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신뢰와 품질을 중시하는 노포들의 경영 철학은 현대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급변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과제일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유독 일본에만 오래된 가게가 많은 이유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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