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때 유명했던 부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늘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는 존재들인데요
이들의 이야기를 보다 보니 갑자기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재산이 많기로 유명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오늘은 그중에서도 조선시대에 부자로 유명했던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인물은 개성의 인삼 무역건을 독점하면서 조선 최고의 갑부가 된 임상옥입니다
임상옥의 아버지 임봉핵은 의주부의 상인인 만상에게 돈을 빌린 후
밀무역을 하면서 돈을 벌다가 관아에 발각되면서 죽음을 맞게 되죠
이후 임상옥의 집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으며 임상옥은 만상의 집에 노비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임상옥의 재능을 알아본 만상이 그에게 밀무역을 시키기 시작하면서
임상옥 또한 아버지처럼 본격적으로 상인의 길을 걷게 되죠
1810년 순조 때 국경 지방에서 인삼의 무역권을 독점한 임상옥은
1811년에는 홍경래의 난으로 인해 의주부가 위험해지자
홍경래군을 제압할 의병을 모집하고 군수 물자를 사는데 들어가는 자금을 제공하면서
관의 인물들과도 친분을 쌓게 됩니다
1821년 청나라에서 베이징 상인들이 조선의 인삼을 사지 않겠다며 담합을 벌이자
임상옥은 교묘한 방법을 써서 오히려 그들의 동맹을 깨뜨리고
원가의 수십 배나 되는 비싼 값에 인삼을 팔면서 엄청난 돈을 벌게 되죠
베이징의 상인들은 어떻게든 인삼의 값을 떨어트리기 위해
단체로 짜고 임상옥의 인삼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뒤로는 은밀히 거래를 시도해 인삼값을 후려쳐서 싼값에 사려 했지만
임상옥은 오히려 자신이 가져온 인삼의 일부를 불에 태워버린 후
나머지 인삼들마저 모두 태워버릴 것처럼 쇼를 하면서
거꾸로 베이징 상인들의 똥줄을 타게 만든 끝에 수십 배로 비싸게 인삼을 파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임상옥은 자신이 그동안 벌어들인 돈으로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는 자선사업을 벌이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하네요
두 번째로 소개해드릴 주인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잣집'입니다
경주 최부잣집은 무려 4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선을 대표하는 부자가문으로 엄청난 재력을 가졌다고 알려졌죠
최부잣집의 시조인 최진립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장으로 참전해 세운 공을 인정받아
공조 참판과 삼도 수군통제사등의 관직을 지내며 부를 쌓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셋째 아들인 최동량에게 물려줬는데
최동량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어마어마한 넓이의 땅을 사들인후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지을 사람들을 모집하고는 소작료로 수확한 곡식의 절반만을 받았죠
그러자 수많은 일꾼들이 그의 땅에서 농사를 짓겠다며 몰려들었고
최동량은 그들에게 거름을 쓰는 시비법과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으로 농사를 짓게 하면서
수확량을 크게 늘리는데 성공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중간관리자인 '마름'을 두지 않으면서
마름이 중간에서 소작료를 빼돌릴 가능성까지 없애버린 탓에
최동량은 조선최고의 부자라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지게 되죠
최부잣집이 사람들에게 본격적인 선행을 베풀기 시작한 것은 3대인 '최국선' 때부터였는데요
최국선은 1671년 조선 현종 때에 큰 흉년이 들면서
농민들이 자신에게 빌려간 쌀을 갚지도 못할 정도로 힘든 형편이라는 것을 알고는
안타까워하며 그들에게 받은 담보문서를 모두 불태워버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창고에 있던 쌀을 꺼내 죽을 쑤어서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나눠주었으며
보릿고개인 3월과 4월에는 무려 100석이나 되는 쌀을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죠
이후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만들어
소작료로 받은 수입의 3분의 1을 빈민구제로 쓰는 풍습을
200년 후인 최준의 대에까지 계속해서 이어갔다고 합니다
때문에 최부잣집은 그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예로 여겨지고 있죠
12대손이자 마지막 최부자로 유명한 '최준'은
일제가 조선을 침탈해 오자 백산 '안희제'와 함께 백산상회를 설립해
독립운동가들에게 거액의 독립자금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임시정부의 활동자금 중 육 할이 넘는 엄청난 자금을 바로 백산상회가 댔다고 하네요
최준은 광복 이후 일제에 빼앗겼던 재산의 3분의 1을 돌려받았는데
그 돈마저 경북종합대학을 짓는데 모두 기부하면서 나라를 위한 인재를 기르는데 힘썼다고 하죠
그는 죽은 후 나라를 위해 세운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됩니다
세 번째 주인공은 최부잣집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관노 출신의 거부 김갑순입니다
1930년 말 대전 시내의 땅 중 3분의 2가
모두 그의 땅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만큼 엄청난 부를 자랑했다고 하는데요
어린 시절 관노출신이었던 김갑순은
자신의 돈을 떼어먹고 도망치는 노름꾼을 잡으러 가던 길에
겁탈당할 위기에 처해있던 한 여인을 구해주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김갑순에게 무척 고마워하며 의남매를 맺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후 이 여성이 충청남도 관찰사의 첩이 되면서
김갑순을 관노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도 모자라 하급관리로 만들어줬다고 하죠
그리고 하루는 김갑순이 허름한 차림을 당했던 선비를 도와준 일이 있었는데
훗날 그 선비가 나라의 재정을 총괄하는 탁지부의 고관이 되면서
김갑순은 그의 도움을 받아 서울의 중앙관직에 진출하는 데까지 성공을 하게 됩니다
이후 본격적인 출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부여와 공주의 군수 자리를 산후
그곳의 운영자금을 횡령하거나 세금을 무리하게 더 걷는 방식으로 많은 돈을 모으게 되죠
그리고는 관직을 그만둬버린 후 공주를 중심으로 여객사업과 군수사업
공중목욕탕과 극장 등의 다양한 사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인후
관직에 있었을 때 알아두었던 인맥들에게 얻은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큰돈을 번 김갑순은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시작했고
이후 일제의 보호를 받으면서 계속해서 사업을 번창시켜 나갔죠
1932년에는 김갑순이 가지고 있던 땅으로 충청남도청이 이전을 하게 되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땅값이 어마어마하게 오르면서 또다시 막대한 부를 얻게 됩니다
덕분에 김갑순이 서울에 갈 때 절반은 남의 땅을
절반은 자기 땅을 밟고 다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고 하죠
해방 이후에는 반민족 행위 처벌법에 따라 체포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네 번째 주인공은 나라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품질 좋은 말들을 나라에 바친 것으로 유명한 제주 말부자 '김만일'입니다
김만일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능력과 성품을 좋게 본
명문가 출신의 문시봉이라는 인물이 그를 사위로 맞아들이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죠
김만일은 처가에서 얻은 한 필의 말을 토대로 품종개량기술과 번식기술을 연구한 끝에
전국 최대의 말 공급지였던 제주에서도
품종이 우수한 말을 키우기로 소문난 대목장을 운영하게 되면서
제주 일대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평생토록 생산해 낸 말만 무려 1만필이 넘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런데 김만일은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값비싼 말들을 무려 수백필씩이나 나라에 바쳤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4년을 시작으로 1612년과 1618년
그리고 1620년에도 계속해서 전마를 나라에 바친 공을 인정받아
광해군이 직접 그를 지중추부사 겸 정 2품 오위도총부도 총관에 임명했을 정도라고 하죠
이후에도 1624년부터 5년 동안 우수한 말들을 계속해서 나라에 바치면서
그가 평생 나라를 위해 바친 말의 수만 1300필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1628년에는 종일품 순정대부의 벼슬까지 받게 되죠
김만일의 후손들 역시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대로 2만필이 넘는 군마를 나라에 바쳤다고 하는데
세계사에서도 이 정도로 많은 수의 말을 국가에 바친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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