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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고려 만고의 충신 정몽주는 충신이 확실한가!!???

by 사탐과탐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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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만고의 충신 정몽주는 충신이 확실한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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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도전이나 육룡이 나르샤 태종 이방원 등

여말선초를 무대로 하는 사극들이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죽음을 맞는

정몽주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알게 되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흔히 정몽주를 두고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라고 말하는 얘기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정몽주 또한 그저 대세를 따라 줄타기를 했던 것에 불과할 뿐

충신이라고 불릴 정도의 인물은 아니라는 의견 또한 있죠

그래서 오늘은 정몽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먼저 정몽주가 충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쪽의 의견을 들어보면

정몽주는 단지 대세를 잘 살펴서 줄타기를 잘한 노련한 정치인이었을 뿐이기 때문에

충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왜냐하면 정몽주는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했을 때

그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군 결정에 대해서 찬성을 하는 입장이었으며

최영이 죽었을 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고 하죠

 

심지어 이성계가 우왕과 창왕이 신돈의 자식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을 폐위하려 했을 때도

이를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공양왕을 옹립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정몽주가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했던 건

고려에 대한 충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 본 것인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어차피 역성혁명에 찬성해서 거사를 성공시켜 봤자

이방원과 정도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더 높게 평가를 받을 뿐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이 크지 않다고 생각한 정몽주가

차라리 고려 왕실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자신이 권력을 잡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고 계산한끝에 행동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정몽주가 충신이냐 아니냐 하는 논점과는 별개로

그가 인품이 고결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물이라는 평가도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성계가 낙마한 틈을 타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려 시도할 당시 정몽주가 했던 행동을 보면

 

간관들을 조종해 공양왕에게 정도전 일파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관원들을 시켜 정도전 일파를 고문해 죽여야 한다고 엄명을 내리는 등

도덕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대단히 냉혹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새롭게 들어선 조선왕조가 이런 정몽주를 만고의 충신으로 만든 이유는

역성혁명으로 건국된 조선왕조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또 다른 역성혁명에 의해 조선이 무너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실제로는 조선왕조의 건국을 가장 반대했던 정몽주를 마치 충신의 대명사처럼 만들어서

그를 통해 다른 신하들과 백성들에게도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죠

 

이번에는 이와 반대로 정몽주가 충신이라고 보는 쪽의 관점에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정몽주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찬성하고 최영의 죽음에 대해서 침묵했으며

우왕과 창왕을 차례로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찬성한 것은 맞지만

 

위화도 회군과 최영의 죽음 그리고 우왕과 창왕의 폐위와 공양왕의 옹립은

당시 나라를 좀먹던 친원파 권문세족들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으로

어디까지나 고려와 고려왕실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끝까지 고려를 배신하지 않았던 변안열 등의 신하들도

당시 정몽주와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을 들며

정몽주의 그런 행동들은 오히려 나라를 위하는 것이었다는 주장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애초에 위화도 회군의 원인을 제공한 제2차 요동정벌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성공할 확률이 너무나 낮았던 계획으로

오히려 섣부른 공격으로 인해 고려가 명나라에게 멸망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습니다

 

정몽주가 회군에 찬성했던 것 또한 나라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려에 대한 충성심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이죠

때문에 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던 잘못된 선택을 한

최영과 우왕을 제거할 때도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우왕은 굳이 요동정벌이 아니더라도

워낙 폭군으로 악명이 자자한 왕이었기 때문에 그를 폐위시킨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그리고 우왕의 아들인 창왕이 그대로 왕위를 물려받은 것도

폐위된 폭군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공양왕을 옹립하는 것에 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정몽주에게 있어 충성의 대상은 '고려'와 '고려왕실'이었지

우왕과 창왕 같은 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신하들이 진정으로 충성해야 할 대상은 백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정몽주는 부정할 수 없는 충신이 맞다고 합니다

 

정몽주는 당시 포악하기로 유명했던 왜구들에게 잡혀간 고려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다른 대신들을 설득하고 자신의 개인재산까지 털어서 포로들을 돌려받을 돈을 준비한 후

혼자서 왜구들을 찾아가 설득을 한끝에 수백 명의 고려인 포로들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죠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까지 찾아봐도 외국에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구해오기 위해

발 벗고 뛰어다니며 노력한 정치가는 정몽주 외에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은 남조와 북조로 갈라져서 남북조 시대와 무로마치 막부의 혼란기를 겪는 등

극도로 혼란한 시기였기에 거기에 가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만 했는데

정몽주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고 하네요

때문에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많은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비록 우왕과 창왕을 폐위하는데 동의하기는 했지만

새롭게 옹립한 공양왕도 결국 왕 씨 성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정몽주는 이성계 일파와 힘을 합쳐 고려의 썩은 부위들만을 잘 도려내고

어떻게든 나라를 살려볼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죠

 

하지만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신진사대부들은

정몽주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정몽주 입장에서는 계속 왕씨성을 가진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고려라는 나라의 형태가 유지되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타협을 할 수 있었지만

 

이후 조선을 건국하게 되는 신진사대부들은

아예 고려의 왕실 자체를 폐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했기 때문에

고려라는 나라를 지키고 싶어 했던 정몽주와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만약 정몽주가 이방원의 설득에 넘어가서 이성계의 편에 붙었다면

이성계 측에서도 고려 왕조를 지키는 마지막 충신 중 하나인 정몽주가

자신들이 나라를 세우는데 협력하기로 했다는 좋은 홍보수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몽주에게 최고의 자리를 내어줬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때문에 만약 정몽주가 고려 왕실에 충성하는 신하가 아니라

자신의 부귀영화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었다면 이방원의 손을 잡았을 확률이 높죠

하지만 정몽주는 끝내 이방원의 제안을 거절한 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정몽주가 고려의 충신이라고 보는 쪽에서는 이러한 근거들을 들며

그가 고려 최후의 충신이 맞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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