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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고려 원종. 고려의 운명을 건 도박에 성공해 원나라의 속국이 될뻔했던걸 구해낸

by 사탐과탐 202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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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운명을 건 도박에 성공해 원나라의 속국이 될뻔했던걸 구해낸 왕
고려 원종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라의 운명을 건 도박을 성공시키며

자칫 잘못하면 원나라의 속국이 될뻔한 고려를 구해낸 고려의 24대 국왕 원종입니다

원종이 아직 태자이던 시절 수십 년간 몽골에 저항해 왔던 고려조정은

결국 몽골에 항복할 것을 결심하게 되는데요

 

그래서 당시 몽골의 대칸이었던 몽케칸에게 원종을 보내 항복의 뜻을 밝히려 했죠

그런데 원종이 한창 몽골로 가던 도중 몽케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몽케 칸은 평소 자신이 아끼던 막내동생인 아리크 부카를 후계자로 점찍어두었기 때문에

그가 죽은 후 카라코룸에서 대칸을 선출하는 회의인 쿠릴타이가 열렸을 때

아리크 부카가 몽골 대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칸으로 즉위했죠

 

그런데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원종은 갑자기 카라코룸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서

중국 남부의 악양까지 무려 6천 리나 되는 길을 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원종이 만난 인물은 바로 몽케칸의 넷째 동생인 쿠빌라이였는데요

 

쿠빌라이는 원래 남송을 정벌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대칸의 명령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부대를 움직이려다가

몽케 칸에게 밉보이면서 차기 황제 자리에서 멀어진 인물이었죠

그런데 원종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몽골의 황제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던 쿠빌라이에게 고려의 운명을 건 베팅을 하게 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원종을 만난 쿠빌라이는 고려가 자신을 지지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고려는 머나먼 곳에 있는 나라로 그 옛날 당 태종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정벌을 했음에도 굴복시키지 못한 곳인데

지금 그곳의 태자가 스스로 나를 지지하러 왔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

라고 크게 기뻐하면서 원종을 후하게 대접했다고 합니다

 

쿠빌라이의 입장에서는 고려 태자의 방문을 기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대칸의 자리를 놓고 동생 아리크부카와 격렬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수십 년간의 전쟁에도 몽골에 굴복하지 않았던 고려의 태자가

스스로 자신의 진영을 찾아와 제후국을 청했다는 사실은

그를 후계자경쟁의 명분에서 크게 앞설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인데요

때마침 당시 고려의 국왕이던 고종이 세상을 떠나면서

고려 국왕의 자리가 비어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쿠빌라이는 태자를 국왕으로 책봉한 후 고려로 돌려보냈고

그 길로 태자는 고려로 돌아가 24대 국왕이 되었죠

 

그리고 5년 후 쿠빌라이는 아리크 부카와의 긴 싸움에서 승리하며

몽골제국 전체의 황제로 즉위를 하게 됩니다

황제가 된 쿠빌라이는 사실상 후계자경쟁에서 밀려나있던

자신을 지지해 준 고려에 고마운 마음이 컸던지

 

고려에 있는 몽골의 군대와 다루가치를 모두 철수시키고

고려는 몽골의 제후국으로서 국호와 사직을 보존해 줄 것이며

의관과 풍속을 몽골식으로 고치지 않아도 좋다는 특혜를 내렸죠

당시 몽골은 다른 국가를 멸망시키거나 아예 흡수해 버리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는데

고려만은 예외라는 선언을 해버린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원나라의 초대 황제이자 몽골 제국의 제5대 대칸인 '세조' 쿠빌라이가

훗날 고려가 몽골의 속국이 되더라도 고유한 풍속을 고치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을 해버리면서

후대의 원나라 대칸들도 함부로 고려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유교문화권의 동양 왕조에서는 선대 군주의 제도나 유훈을

함부로 어겨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매우 강했는데

그중에서도 나라를 건국한 '태조'나 나라를 부흥시킨 '세조'처럼

왕조에서 중요한 군주들이 남긴 유훈은 절대 어길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죠

덕분에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는 시기동안에도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쿠빌라이는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자신의 막내딸인 제국대장공주를

원종의 아들 충렬왕에게 시집보내기까지 했죠

제국대장공주는 칭기즈칸의 직계혈족인 황금씨족의 일원으로

 

몽골에서도 웬만한 대귀족이 아니면 그녀와 결혼한다는 것은

감히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신분이 높은 황족이었기 때문에

쿠빌라이의 사위들 중 몽골인이 아닌 사람은 충렬왕 단 한 명뿐이었다고 합니다

이 결혼 덕분에 고려의 국왕은 몽골 황실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아서

다음 칸을 선출하는 쿠릴타이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죠

 

원나라 황실에서 연회를 열면 서열 순서대로 자리를 정해줬는데

고려의 국왕은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 쿠빌라이를 지지했던 데다

황제의 사위국이기도 한 점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원종의 아들인 충렬왕의 몽골제국 서열은 무려 7번째나 되었고

쿠빌라이가 죽은 후 그의 아들 테무르가 황제가 되었을 때는

충렬왕이 황제의 고모부가 되면서 몽골서열 4위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이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충선왕이었는데

승부사인 할아버지 원종의 피를 이어받았던 것인지

이 충선왕 또한 몽골을 상대로 한 일생일대의 도박에 성공하게 되는데요

 

그는 쿠빌라이 칸의 영향력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고려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고려가 무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원 황실의 일족이자 훗날 원의 3대 황제가 되는 '카이샨'

그리고 원의 4대 황제가 되는 아유르바리바드와 친해지려 노력한 끝에

그들과 형제이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후계자가 없던 원나라의 2대 황제 테무르가 병으로 죽자

몽골의 황실은 또다시 치열한 황위 다툼에 들어갔는데

황제가 될 것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바로 황후 불루칸과 좌승상 아쿠다이가 강력하게 지지하던 안서왕 아난다였죠

 

심지어 충선왕의 아버지인 충렬왕도 아난다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충선왕은 끝까지 형제처럼 지내던 카이샨과 아유르바리바드를 지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려의 이 두 번째 도박 또한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었죠

치열한 경쟁 끝에 카이샨의 세력이 최후의 승리를 거둔 것인데요

 

쿠빌라이가 원종에게 그랬듯 카이샨 또한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지지해 준 충선왕을 무한 신뢰하게 되면서

그에게 직접 반대세력을 숙청하는 일을 맡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카이샨은 원의 3대 황제인 무종이 되었고

무종이 즉위한 지 4년 만에 30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아유르바리바드가 4대 황제인 인종으로 즉위하게 되죠

 

일등공신이 된 충선왕은 만주의 왕인 심양왕에 봉해졌고

같은 해 아버지 충렬왕으로부터 고려왕의 작위까지 물려받게 되면서

한반도와 만주를 모두 다스리는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원종과 충선왕 모두 급변하는 정세에 맞춰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비록 고려의 멸망이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까지는 막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면

무기력하게 나라를 망하게 만든 다른 군주들과는 비교가 되는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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