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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수성부부인 김씨. 남편 양녕대군 때문에 평생 불안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던 여인

by 사탐과탐 202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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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양녕대군 때문에 평생 불안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던
여인 수성부부인 김씨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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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왕실에는 금슬이 좋았던 부부도 있었지만

반대로 최악의 배우자를 만나게 되어 매우 암울한 삶을 살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종은 아내였던 폐비윤씨를 정말 극혐하기도 했고

태종의 아내인 원경왕후나

세종의 아내인 소헌왕후는 남편 잘못만나서

가문이 몰락해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오늘 이야기 할 이 인물도 정말 남편 하나 잘못만나서

평생을 남편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죽게 된 비운의 여인인데요

 

그녀는 바로 수성부부인 김씨 입니다

 

수성부부인은 바로 양녕대군의 정실부인 이었죠

 

그녀의 아버지는 김한로로 태종 이방원이 고려에서 과거에 급제했을때

함께 과거를 치뤘던 동기라고 합니다

 

그러다 양녕대군이 김한로의 딸과 혼인을 하면서

그녀는 세자빈에 올라 숙빈에 봉작되었죠

 

하지만 그때부터 그녀의 운명은 비극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데요

 

왜냐하면 양녕대군의 그칠줄 모르는 똘끼 때문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양녕대군은 평생을 놀고 먹다 죽은 사람인데

허구헌날 매사냥에, 술 먹고 놀고

서연(왕세자에게 경전을 강론하는 자리)에 빠질려고 꾀병을 부리는등

온갖 말썽은 다부렸던 것이죠

 

하지만 부모였던 태종과 원경왕후는 그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양녕대군 위로 형이 3명 있었는데

다들 어린나이에 요절을 해버렸기 때문에

양녕대군을 너무 오냐오냐 하며 키웠기 때문이었죠

 

훗날 왕이 될 사람이 공부를 너무 안하는건 그렇다 치더라도

숙빈김씨 입장에서는 더 화딱질 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자문제였죠

 

궁내가 따분했던 양녕대군은 심심하면 궁밖으로 나가

기생들과 놀아나고 술을 먹고 난장을 피웠으니

숙빈김씨의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인 양녕대군은 기생들을 첩으로 삼아 궁안으로 들이기까지 했고

심지어 큰아버지 정종의 첩이던 기생 '초궁장'이 마음에 들었던 양녕대군은

그녀가 정종의 첩인줄 몰랐다고는 하지만

그런 그녀와 사통하기도 했으니 정말 골때리는 인간이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다보니 태종은 양녕대군을 불러

여색을 금하고 군주로써의 자질과 덕망을 쌓으라며

양녕대군이 들인 후궁을 궁밖으로 쫓아내기까지 하다보니

태종과 양녕대군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럴때마다 숙빈김씨도 마음 졸이며

남편에게 좀 적당히 하라고 말했지만 소귀에 경읽기나 다름없었죠

 

이후로도 양녕대군의 호색함은 멈출줄 몰랐는데요

 

어느날 전 중추부사 곽선의 첩이던 '어리'를

겁을 주며 협박해 결국 궁으로 데려와 그녀를 범했던 것입니다

 

세자라는 지위를 내세워 종2품 대신의 첩을 빼앗아 왔으니

이는 누가봐도 폭군의 전형적인 모습이었고

그러자 태종은 굉장히 격분했죠

그리고 태종은 양녕대군에게 어리를 소개해준 이들을 참형에 처하고

어리를 궁에서 내쫓아버렸는데요

 

어이없는건 어리를 양녕대군이

아내이던 숙빈김씨의 친정에 숨겨둔채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숙빈김씨 입장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꼴도보기 싫었을 어리였을텐데

친정에 숨겨둔 남편이 얼마나 어이없고 원망스러웠을까 싶죠

 

이후 양녕대군은 또 몰래 어리를 궁으로 데려와 살았는데

결국 어리는 양녕대군의 아이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태종이 어리를 궁 밖으로 내쫓자

태종에게 열받은 양녕대군은 아버지 태종에게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께서는 첩을 많이 두시면서

나는 왜 첩을 못두게 하냐"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하죠

 

이에 태종은 세자를 폐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그렇게 양녕대군은 세자 자리에서 폐위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양녕대군은 유배를 떠나게 되는데

아내였던 숙빈김씨 역시 남편을 따라 유배지로 떠나게 되죠

 

남편이 사사건건 한 성깔하는 시아버지에게 대들고 반항하는 모습과

날이 갈수록 비행을 저지르는데

숙빈김씨는 이를 말리지도 못하고 어찌해야 할지를 모른채

묵묵히 참는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다 결국 자신도 세자빈에서 폐위되어

삼한 국대부인이 되었죠

 

그런데 남편이 양녕대군이었기 때문에 다행인점은 한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폐위 되었던 덕에 친정 가문을 살릴수 있었던 것이죠

 

시동생이었던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자

아랫동서였던 심씨가 세자빈이 되었는데

외척을 굉장히 싫어했던 태종이 세자빈 심씨의 아버지인 심온을 고문하다가 처형시켰고

또한 심씨의 어머니와 자매들은 노비로 전락해 버린것입니다

 

그렇게 세자빈 심씨 집안이 완전 몰락하고 만것이죠

 

만약 폐위가 되지 않았다면

풍비박산이 날 집안은 자신의 친정집이 되었을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딱 이것만 빼고는 잘한것 하나 없는

남편 양녕대군에 대한 기대는 완전 막장으로 떨어지게 되는데요

 

남편은 폐세자가 된 이후로도 정신 차리기는 커녕

더욱 더 많은 사고를 치고 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말 숙빈김씨 입장에서도 굉장히 충격적인 일을 남편이 벌이고 마는데

그것은 자식이던 서산군 이혜의 애첩을 빼앗아 버린것이죠

 

바로 양녕대군이 며느리를 범해버린것이었습니다

 

이때 이혜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이후부터

노비를 그냥 죽이기도 하고 여종을 쇠못으로 찌르기도 하는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숙빈김씨는 남편 때문에 자식마저 잃었던 것입니다

 

또한 양녕대군은 어릴적 자신이 자란 외가를 아버지 태종이 탄압할때는

민무구, 민무질 등 외삼촌들을 '역적'이라고 하기도하고

'민씨 집안은 교만방자하여 화를 입어도 싸다' 라고 하는등

어머니 원경왕후 가슴에도 대못을 박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숙빈김씨는

그런 기회주의자 같은 모습에 많은 실망을 했을것 같긴하죠

 

그 이후로도 시도때도 없이 유배지에서 몰래 도망쳐

기생을 끼고 놀기도 하고 온갖 악행과 기행을 저지르는 남편의 모습을

더이상 꼴도 보기 싫었는지

숙빈김씨는 1456년 2월,

46세의 나이로 한 많던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숙빈김씨는 시집 오자마자 항상 사고만 치고 다니는 남편 때문에

언제나 시부모님 눈치를 보며 살았어야 했고

남편이 벌이는 기행 때문에 항상 맘 졸였어야 했으며

남편의 여자문제 때문에 평생을 속 썩여야만 했고

심지어 남편 때문에 자식까지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버렸던

정말 운도 지지리도 없는 비운의 여인 이었던 것 같네요

 

지금까지 양녕대군의 아내였기에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수성부부인 김씨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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