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들이 잘생기기도 했었던 조선시대 엄친아 꽃미남들이야기 입니다
그 옛날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 현상이었다고 하는데요
기록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미남들이 조선시대에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그래봤자 제대로 꾸미지도 않는 그 시절 사람들이
잘생겨봐야 뭐 별거 있겠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의친왕 이강의 차남이자 조선의 꽃미남 왕자로 유명한 이우 왕자의 사진만 보더라도
타고난 미남미녀들의 외모는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럼 지금부터 조선시대에 미남으로 유명했던 사람들은 과연 누가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세종대왕의 맏아들이자 조선의 5대 국왕인 '문종'은
아주 잘생긴 호남형의 인물이었다고 하는데요
기록에 따르면 문종은 수염이 매우 풍성해서 마치 삼국지의 '관우'와 같은 풍모가 있었고
얼굴 또한 매우 잘생겼다고 합니다
그가 세자시절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들 중
문종의 외모에 대해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라고 하네요
조선의 10대 국왕인 '연산군'은 요즘 기준으로 보면
늘씬한 몸매를 가진 꽃미남이었던 것으로 짐작되죠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10년의 기록을 보면 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지금 임금인 연산군은 허리와 몸이 가늘어서 위엄이 없다"
"얼굴이 희고 마른 체형에 키가 컸으며 눈가가 붉었다"라고 말한 기록이 있습니다
야사에서는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 씨를 닮아 고운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마치 여인네 같다며 수근대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자신의 외모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죠
아버지 성종을 닮아 큰 키에 얼굴에는 수염이 적고 피부가 몹시 하얗다는 기록을 봤을 때
지금 기준에서 보면 충분히 꽃미남으로 불릴만한 외모가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성종과 중종 때의 문신이었던 '조광조'도 당대의 미남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조광조가 밖에 나갈 때마다 그의 외모에 반한 여인들이 상사병을 앓았으며
조광조를 사모하는 마음이 너무나 컸던 그의 이웃집 여인은
한밤중에 몰래 담을 넘어 책을 읽고 있는 조광조의 방에 들어갔다고 하죠
하지만 정작 조광조 본인은 자신의 외모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을 보면
조광조가 어느 날 세수를 하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이것이 어찌 남자의 얼굴이란 말이냐"라고 한탄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징비록을 쓴 서애 '류성룡' 또한 그 시절 한국과 중국, 일본을 모두 합쳐서
가장 잘 생긴 미남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이라고 하죠
선조실록을 보면 선조가 류성룡을 가리켜
"금옥처럼 아름다운 선비다"라고 그의 외모를 극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류성룡은 평소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밖에 나갈 때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고 하네요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은
류성룡 이덕형과 함께 선조 시절 3대 미남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이항복의 얼굴이 워낙 잘 생기고 풍채가 좋아서
밖에 나갈 때마다 여자들이 그를 너무 쳐다보는 바람에
이항복의 아내가 몹시 질투를 하면서 바가지를 긁어댔다고 하죠
아내에게 시달리던 이항복은 결국 나갈 때마다 부채로 얼굴을 가리게 되었는데
잘 생기지 않은 사람도 이항복을 따라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면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밖을 다니는 행동이 마치 유행처럼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조선의 21대 국왕인 '영조'는 쌍꺼풀이 진 길쭉한 눈을 가진 데다
오똑한 코와 조그마한 입술을 가진 외모로
그야말로 조선시대 남자들이 추구하는 미남상의 얼굴이었다고 하죠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 씨가 무수리 출신에서 정 1품 빈까지 올라간 것으로 봐서
그녀의 외모가 무척이나 뛰어났을 거라 짐작되기 때문에
영조가 어머니의 외모를 물려받아 미남이 되었을 거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영조의 손자인 '정조'는 오똑한 콧날에 큰 눈과 갸름한 얼굴을 갖고 있어서
지금 시대로 치면 아이돌상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할아버지인 영조가 미남으로 유명했던 데다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도
영조의 후궁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영빈 이 씨의 외모를 물려받아 엄청난 미남이었다고 하니
정조 또한 미남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 같죠
정조의 오른팔이었던 '홍국영' 역시 미남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가 얼마나 잘생겼으면 평소 홍국영을 싫어하던 혜경궁 홍 씨마저도
한중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길 정도였다고 하죠
"잘생겼다 홍국영이 너무 잘 생기고 말재주까지 뛰어난 탓에 내 아들을 홀려버렸다"
"홍국영은 키가 크고 수려한 용모에 언변까지 좋아서
그에게 빠진 동궁(정조)을 보고 있으면 마치 첩에게 푹 빠진 사내 같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심낙수가 쓴 '은파산고'에도
홍국영이 눈치가 빠르고 민첩했으며 외모가 준수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승정원일기'를 보면 말년에 시력이 극도로 나빠진 영조가
옆에 있던 사관에게 홍국영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본 일이 있었는데
이때 사관이 영조에게 매우 준수하다고 대답한 기록이 있다고 하네요
조선의 23대 국왕 순조의 맏아들인 '효명세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정조를 빼닮은 외모로 주위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고 하죠
'순조실록'을 보면 효명세자는 이마가 솟은 귀한 상으로
용의 눈동자에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워서 궁궐 안의 모든 이들이
효명세자가 정조와 닮은 미남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효명세자의 아들인 '헌종'은 역대 조선의 왕들 중에서도 가장 잘생긴 미남왕으로 유명하죠
'헌종실록'을 보면 그가 아름다운 외모에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기록돼 있는데
자신이 잘 생겼다는 걸 본인도 잘 알고 있었는지 매일 거울을 보며
"대비마마는 어찌 나를 이리도 잘 생기게 낳으셨다는 말이냐"라고 한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헌종실록 외에도 헌종의 외모에 대해 극찬하는 기록들이 상당히 많으며
당시에도 잘생긴 외모 때문에 수많은 궁중여인들의 선망과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죠
다만 17살 때 천연두를 앓았다는 기록이 있어서
그 이후에 헌종의 피부가 조금 안 좋아졌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있다고 합니다
고종의 다섯 번째 아들 의친왕 이강의 둘째 아들이자
조선의 마지막 왕자인 '이우'도 헌종 못지않은 미남으로 유명하죠
이우 왕자의 사진이 2007년에 처음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외모를 보고 정말 미남이 맞다며 인정했다고 합니다
그는 현대의 관점에서 봐도 상당히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 외국 공사들도 한결같이 그의 외모를 칭찬했다고 하죠
고종의 시종이었던 김황진의 조카로 이우 왕자를 직접 만났던 '김을한'도
"이우 왕자는 과연 소문으로 듣던 것처럼 왕실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얼굴은 백옥같이 희고 두 눈에는 광채가 도는 것이
밤중에 만나보아도 귀공자임이 틀림없었다"라고 묘사한 것을 보면
이우 왕자가 과거와 현재의 기준으로 모두 미남으로 평가받을 만큼
잘생긴 외모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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