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대 이보국과 정원진 그리고 어조은은 나라를 망친 간신 3인방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권력을 휘둘렀던 간신 어조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나라를 뒤흔들었던
최악의 개노답 3환관이 있는데요
그들은 바로 이보국과 정원진,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어조은 입니다
그들은 다 함께 뜻을 맞춰 황제와 당나라를
쥐락펴락 하는데 열심히 동참했던 인물들이죠
오늘은 이보국과 정원진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나서
그들의 빈자릴 꿰찬 어조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어조은은 어릴적부터 궁에 들어와
현종의 태자이던 이형을 모시게 되었는데
어릴적부터 간신의 싹이 보였는지
아부에 굉장히 능하고 눈치가 빨라 이형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죠
이후 755년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현종은 사천으로 피난을 가게되고
자신이 모시던 이형이 당숙종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숙종의 총애를 등에 업고
곽자의와 이광필 등 절도사들을 감시, 감독하는 직책인
관군용사에 임명되었죠
(관군용사 : 최측근 환관에게 장수들을 감시하도록 부여하는 전군 감찰/감독관직)
그렇게 조정 내에서는 이보국과 정원진
그리고 밖에서는 어조은이 개판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것입니다
이후 2년여의 혈투끝에 757년, 마침내 장안을 다시 수복하고
현종과 숙종이 돌아오자 그는 내시성의 책임을 맡았고
장군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죠
![](https://blog.kakaocdn.net/dn/FlHMc/btsEQd6IjO0/NSqIddf49P7hJl9sVXN5Qk/img.jpg)
그런데 어이없게도 불과 1년만인 758년에
항복했었던 안녹산의 부하 사사명이
당 조정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 즉시 반란을 일으켜 버렸는데요
사사명이 이끄는 13만의 병력에 비해
당군은 여러 절도사들이 반란진압에 참가해
병력이 약 60만명에 육박했죠
하지만 이들을 총 지휘하는 최고 사령관이 없었기 때문에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 13만의 반란군에 의해 60만 대군이 대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때 어쩔수없이 패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는데
어조은은 숙종의 신임이 두터웠던 곽자의를 모함해
유일하게 아무 문제 없었던 곽자의가 파면되고 말았죠
그러다보니 곽자의는 삭방절도사직을 이광필에게 위임하고
군권을 박탈당해 장안으로 소환되었고
그렇게 약 1년간 아무것도 할수없이 장안에 박혀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사사명의 공세를 이광필의 활약으로 막아내고
한동안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후 어조은은 반란군이 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해서
사기가 떨어졌다며 이광필에게 공격을 가하라고 명했죠
이때 이광필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했지만
복고회은 마저 어조은의 공격 주장에 동조하자
어쩔수없이 출진하게 되었고
이광필의 말대로 여전히 막강한 전력을 유지시키고 있었던
반란군에 의해 낙양 북쪽 망산에서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사사명이 아들 사조의에게 살해당하고
반란군은 사조의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죠
그런데 이렇게 밖에서는 반란군과 격렬히 싸우고 있는 와중에
당나라 조정내에서는 환관 이보국이 설치고 있었으며
장황후 역시 이보국 못지 않은 전횡을 저지르며
조정을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762년, 현종과 숙종이 연이어 죽은뒤 대종이 즉위하고
이때 이보국이 장황후와 황자들 역시 죽여버렸지만
이보국 역시 측근이던 환관 정원진의 계략으로 죽임당하고
이보국의 자리는 정원진이 차지하게 되죠
그렇게 당나라 조정 내에서 환관들끼리 권력다툼을 벌였고
오랫동안 지속된 전란으로 인해 국고가 바닥나기 시작했습니다
![](https://blog.kakaocdn.net/dn/c6qm9M/btsELqTj95Q/xVN7HaDv4XwbcnXuyvUEg1/img.jpg)
또한 사조의의 반란군과 당군은 여기저기서 국지전이 벌어지긴 했지만
오랜기간 큰 전투 없이 고착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는데
위구르 제국이 10만의 병력을 동원해
당나라를 침공하면서 지지부진하던 전란은 드디어 끝을 맺게 됩니다
처음 위구르는 반란군측에 붙어 당나라를 공격했지만
당나라 장수 복고회은의 회유로 당나라로 돌아서게 된것이었죠
그리고 대종은 762년 10월, 아들인 옹왕 이괄을 천하병마원수로 삼아
반군 지도자 사조의를 치도록 하였는데
이때 이괄의 부원수로 곽자의를 삼으려 했지만
정원진과 어조은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763년 1월, 반란군의 수장인 사조의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드디어 기나긴 안사의 난이 평정되었죠
그리고 어조은은 관군용사로써 공을 세웠다며 풍익군공에 봉해졌습니다
사실 어조은은 장군들의 전투를 방해했으면 했지
한건 별로 없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반란을 진압하자마자 또 다시 큰일이 닥치는데
763년에 토번이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당나라를 침공한것입니다
이때 대종은 옹왕 이괄을 원수로 삼고 곽자의를 부원수로 삼아
토번을 막게 했는데요
병력 충원을 원하던 곽자의의 요청을
정원진은 대종이 알지 못하게 막는 바람에
당나라군이 위험해 쳐해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이런 정원진의 횡포 때문에 각지의 절도사들이 병력을 파견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토번군이 장안에 접근해오자
대종은 섬주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던 어조은에게 피난을 가게 되었죠
결국 장안은 토번군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지만
곽자의의 엄청난 활약으로 장안을 수복할수 있었습니다
어조은은 끊임없이 곽자의를 모함하고 괴롭혔지만
그의 인품에 감탄해 더이상 그를 모함하지 않는 사건이 벌어지는데요
한번은 어조은이 관군용사로써 곽자의군을 감사하기 위해
곽자의의 진영으로 찾아간적이 있었죠
병장기와 군량 등 물자에 대한 부정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것이었지만
사실 트집을 잡으려는 의도가 더 강했습니다
그러자 곽자의의 부하들은 어조은이 분명 음모를 꾸며 장군을 해하려고 할것이니
무장 병력을 대동해 겁을 주자고 말하는 것이었죠
이에 곽자의는 부하들의 말을 듣지않고
무장도 하지 않은 가벼운차림으로 부관만 데리고
어조은이 있는곳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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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어조은은 매우 당황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가벼운 차림으로 왔냐고 물으니
곽자의는 "군대의 물자를 점검할 뿐인데
전투병력을 데리고 올 이유가 있겠습니까?" 라고 말했던 것이죠
이에 어조은은 곽장군의 배포와 진심을 알겠다며
그의 군자다움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곽자의가 최전방에서 토번을 막아내고 있을때
어조은은 아무도 몰래 사람을 시켜
곽자의의 아버지 무덤을 파헤쳐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죠
이것은 유교사회였던 당시에는 있을수 없는 모욕이었던 것입니다
무덤을 파헤친 범인을 잡을수는 없었지만
곽자의는 어조은 아니면 정원진의 짓일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이후 토번을 물리치고 장안으로 돌아온 곽자의는
분노하지 않고 울면서 대종에게 말했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를 오가다보면
부하들이 수많은 무덤을 파헤치는것을 막지 못했는데
아버지의 묘가 파헤쳐 졌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게 다 하늘의 뜻이고 인과응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감히 누구를 원망할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했던 것이죠
그러자 어조은과 정원진은 곽자의의 반응에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조은은 이후부터 곽자의를 모함하지 않았다고 하죠
한편 토번군이 물러가고나서 어조은은 대종을 모시고
장안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요
때마침 정원진의 악행이 고발당해 신하들에게 엄청난 탄핵을 받게 되면서
정원진은 결국 모든 관직을 빼앗긴채 시골로 쫓겨났고
가는도중 세상을 떠나게 되죠
하지만 당시 위급한 상황에 대종을 모셨던 어조은은
장안에 돌아온 이후 대종의 총애를 받게 되는데
정원진이 죽고나서는 그의 빈자리까지 꿰차게 되었고
대종 역시 항상 나라일을 어조은과 의논을 하니
그렇게 그는 당나라에서 최고의 권력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후 어조은은 금군까지 장악하면서 병권을 좌지우지 했으며
권력을 누렸던 다른 환관들과 마찬가지로
오만방자하게 굴면서 조정의 중신들을 업신여기기 시작했고
자기 마음대로 관리들 인사에도 개입하는등 전횡을 휘둘렀죠
특히나 그가 했던 최악의 행동은 바로
대종의 신임을 얻기위해 종교를 이용했던 것인데요
바로 대종이 하사했던 자신의 별장을 절로 고친뒤 이름을 장경사 라고 지어
대종의 어머니인 장경태후 오씨의 명복을 빌겠다며 주청을 올렸던 것이죠
그래서 절 이름을 장경태후의 시호와 똑같이 썼던 것입니다
그러자 대종은 어조은의 그런 마음에 감동을 받아 굉장히 흡족해 했는데
이후 어조은은 장경사가 황제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장경사의 규모를 더욱 크게 키우기 시작했죠
그렇게 대대적인 토목공사가 시작 되었는데
막대한 양의 건축 자재들이 들다보니
목재가 모자라면 멀쩡한 백성들의 집을 허물고 큰 나무를 빼앗아
장경사를 증축하는데 쓰였고
공사에 필요한 인력은 당연하게도 백성들이 강제 동원되었습니다
그렇게 국고까지 메말라 갔고
제대로 일을 하면 가차없이 매질을 당했기 때문에
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의 비명이 그치질 않았죠
거기다가 어조은의 측근들 역시 어조은의 권세를 믿고
백성들의 땅을 빼앗기도 하고 매관매직을 일삼아
그렇게 모은 돈을 다시 어조은에게 바치는 등
온갖 횡포를 부리다보니 백성들의 원성이 엄청났습니다
거기다가 어조은은 매번 어디론가 이동을 할때
경호관 주호와 100명의 병사들이 자신을 호위하게 했고
자신의 측근인 섬주절도사 황보은에게는
궁 밖에서 병사들을 거느리고 기다리도록 했을만큼
혹시나 있을 위험에도 항상 대비를 했다고 하죠
권력에 흠뻑 취해버린 어조은의 태도는 점점 더 오만방자해졌는데요
뭔가 대종의 윤허가 필요한데 대종의 대답이 느리면 화를 내기도 했죠
![](https://blog.kakaocdn.net/dn/Wrj0H/btsEHH84L5j/BMSTUG721faBTJ04kawOw0/img.jpg)
거기다가 어조은은 대종에게 "천하의 일이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은것이 있습니까?"
라고 묻기도 하고
자신의 양자인 어령휘가 비교적 낮은계급의 관리가 입는 녹색옷을 입고
다른 사람들과 트러블이 생기자
어령휘는 아버지인 어조은에게 모든 사실을 일러바쳤는데
다음날 어조은은 대종에게 찾아가
"신의 아들이 또래의 관리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으니
그에게 3품 이상의 고관이 입는
자의(紫衣 : 자줏빛 관복)를 내려주십시오" 라고 청했다고 하죠
그런데 어이없는 점은 대종이 허락을 하기도 전에
어령휘가 자의(紫衣)를 입고 오더니 감사하다며 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대종은 억지로 웃으며 넘어갔지만 마음속으론 불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죠
한편 대종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재상 원재가
대종을 찾아가 어조은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후 대종은 원재와 함께 어조은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죠
이후 원재는 어조은을 제거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던
경호관 주호와 황보은을 잘 구워삶아 같은편으로 만든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대종이 궁궐에서 연회자리를 만든 어느날이었습니다
신나는 연회가 끝나고 모두 돌아갈때
대종은 어조은을 조용히 부른뒤 딴마음을 가지고 있냐며 그에게 호통을 쳤죠
그러자 어조은은 오만한 태도로 변명을 했는데
그때 포섭되어있던 주호가 갑자기 어조은을 습격해 죽여버린 것입니다
이후 대종은 신하들에게
'어조은이 조서를 받고 얼마안가 스스로 목을 맸다' 라고 발표했다고 하죠
이에 신하들은 어조은이 대종에 의해 제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모두 오히려 잘됐다며 아무런 문제도 삼지않고 그냥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권력을 가지고 국정을 농단하며
황제까지 업신여기던 환관 어조은은
다른 이보국, 정원진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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