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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유비의 무덤 미스테리. 유비의 무덤을 둘러싼 중국 세지역간의 진흙탕 싸움

by 사탐과탐 202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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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의 무덤 미스테리 유비의 무덤을 둘러싼
중국 세지역간의 진흙탕 싸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삼국지에는 엄청나게 많은 영웅들이 등장해

서로 죽고죽이는 공방전을 벌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죽고나서 남아있는 무덤은 굉장히 극소수 이죠

 

삼국지 인물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여겨지는

조조나 유비, 관우, 제갈량 정도 되어야만 무덤이 남아있는데요

 

오늘은 그 중에서도 삼국지연의의 주인공

유비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삼국지 연의는 후대의 사람들이 1부의 주인공은 유비이고

2부의 주인공은 제갈량이다 라고 흔히 말을 하죠

 

그 중 1부의 주인공인 유비의 무덤은 현재까지도 남아있으며

그의 무덤은 현재 성도시 무후사라는 곳에 있습니다

 

성도시는 촉나라의 수도 성도를 말하는데요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참패하고난뒤에

백제성의 영안궁에서 세상을 떠났고

제갈량이 그의 시신을 성도로 옮겨

유비의 부인들과 함께 합장해주었던 것입니다

 

또한 무후사에서 나무를 심다가 유비의 묘 주변에서

촉나라때 만든 벽돌들을 발견했다며

이것을 근거로 정사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성도 무후사에 매장되었다'라는 기록을

사실이라고 여기고 있었죠

 

또한 유비의 무덤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단 한번도 도굴되었다는 기록이 없으며

지금까지도 발굴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무후사에 유비가 묻혀있는게 확실하냐며

논란이 일어났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바로 백제성은 현재 충칭시 봉절현인데

그곳 사람들이 유비의 무덤은 성도가 아닌 봉절현에 있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1985년 봉절현에서 호텔을 짓던 중 커다란 옛날 무덤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발굴을 했더니 삼국시대의 무덤 양식이었으며 부부가 나왔던 것이죠

 

유비는 감부인과 같이 매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유비는 감부인과 함께 합장되어 있는데

일부 사료에서는 감부인이 무후사 혜릉이 아닌

봉절현에 묻혀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죠

 

또한 성도와 봉절현까지는 굉장히 거리가 먼데

여름에 죽은 유비를 성도까지 옮기려면 다 부패해 버릴것이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근처에 유비의 시신을 묻고

성도에 묻어져있는 유비의 무덤엔

과거 유비가 생전에 사용했던 궁검(弓劍)를 묻은

궁검묘일뿐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봉절현에는 유비묘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는데요

 

당나라때 영안 (봉절현)을 다스리는 현관 허유라는 사람이 있었죠

 

그는 재물을 모으는데 혈안이 된 탐관오리 였는데

어느날 어느 기록을 통해 유비의 묘가 관아 지하에 있다는걸 알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허유는 그안에 엄청난 금은보화가 있을거라 생각했고

수많은 시도끝에 마침내 유비의 묘를 찾아 낸것이죠

이후 어느날 밤, 부하들을 모두 퇴근시킨 허유는

유비의 묘가 있는 지하로 내려갔고 드디어 유비의 관을 발견했죠

 

그리고 신나서 유비의 관 앞으로 걸어가니

관 위에는 한장의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그 종이에 적힌 글을 읽은 허유는 놀라 자빠져버렸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허유야 허유야, 너와 나는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사사로이 나의 묘를 열려고 하다니, 그 벌로 너는 등불에 기름을 채우도록 하라"

라고 적혀있었던 것이죠

 

이미 수백년전 죽은 유비의 관 위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고

자신이 도굴하러 올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라고 생각한 허유는

관앞에서 계속해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허유는 종이에 적힌대로 유비의 묘안에 있는 장명등에 기름을 부어놓고

지하에서 나와 통로를 다시 막아버렸죠

 

이후 허유는 마음을 고쳐먹고 청렴한 관리가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또한 유비의 무덤 위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성도에서 조금 떨어진 펑산현 연화촌이라는 곳에 있다는 주장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무후사에 있는 유비의 묘는 의관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화촌에는 황분(皇墳 : 황제의 무덤)이라고 커다랗고 오래된 무덤이 있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 80%는 모두 유씨 이며

이들은 황분이 유비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대대로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이었죠

 

또한 풍수가 가장 좋은 명당에 자리를 잡고 있고

제갈량이 직접 와서 골랐던 장소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연화촌 유비의 무덤에도 전해지는 전설이 있죠

 

촌민 중 몇명이 이 황분을 도굴하기 위해 어느날 밤 그곳을 찾아간것입니다

 

그렇게 무덤안으로 들어가니 나무로 만든 관이 2개 있었는데

굉장히 괴이하게도 하나는 엄청 크고 하나는 엄청 작았다고 하죠

 

어쨌든 도굴꾼들은 무덤 안을 뒤졌지만 금은보화는 없었고

이왕온거 헛걸음 하기 싫었던 도굴꾼들은

관이라도 들고가서 돼지 우리를 짓는데 목재로 사용하자 라고 생각했고

관을 열어봤더니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두개의 관을 들고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엄청난 바람이 불었는데요

 

뭐 이런 자연현상이야 얼마든지 있을수 있으니

도굴꾼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관을 들고 집으로가

그 관으로 돼지우리를 만들어 버렸던 것이죠

 

그 이후 관으로 돼지우리를 만든 촌민들의 집에서는

갑자기 사람이 미친다거나, 아니면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거나 하는

사건이 많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도굴을 한 촌민들은 그때서야 건들지 말아야할것을 건드렸다며

후회했다고 하죠

 

어쨌든 그렇게 펑산현 연화촌에 있는묘가

무조건 유비의 묘가 맞다고 주장하던 펑산현 주민들은

펑산현에 이 황분을 빨리 발굴 해보자고 요청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왜냐하면 삼국지 속 영웅들의 묘지는 엄청난 돈벌이 수단이 되기때문에

낙후된 중국 시골 마을에는 이보다 좋은 사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조의 무덤이 발견된 이후에

허난성 안양현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조조 무덤 입장료 수입만 연간 4억위안이 넘는데

이 돈은 원화로 환산하면 750억원 가량이나 되기 때문이죠

 

그외에 관광객들이 먹고 자고 하는 돈까지 합치면

안양현이 조조의 무덤하나로 벌어들이는 돈은

상상할수 없이 큰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봉절현과 무후사, 그리고 연화촌에서는

서로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는데

무후사에서는 "유비는 장무 원년 8월 혜릉에 매장됐다”는

확실한 문헌 기록이 있는것을 근거로 들며

더이상 다른곳에서 왈가왈부 하지말라고 주장하고 있고

봉절현에서는 유비가 여기서 죽기도 했으며

권위있는 역사학자였던 곽말약이라는 사람이

1961년 이곳을 찾아와 여기있던 무덤을 돌아보고

유비묘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고 주장했죠

 

심지어 펑산현 연화촌 사람들은

빨리 유비묘로 추정되는 황분을 파보자고 하는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싸우는 모습을 중국 사람들 역시 좋게 보지는 않았는데요

 

어떤사람은 차라리 유비가 세번 죽었다고 하라면서 그들을 비꼬기도 했고

또 다른사람은 지방정부에서 돈벌이만 생각해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들의

무덤을 무분별하게 파헤칠까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죠

 

근데 문화대혁명때 공자의 묘까지 다 때려부숴버린 중국에서

이제서야 삼국지 영웅들 무덤을 파헤칠까 두렵다는 말을 하는거 보면

좀 아이러니 하기도 하네요

 

근데 한편으로는 진짜 유비의 무덤은 어디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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