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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우연히 발견된 무덤을 조조의 무덤이라고 박박 우기는 중국. 조조의 무덤 미스테리

by 사탐과탐 202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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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견된 무덤을 조조의 무덤이라고 박박 우기는 중국
조조의 무덤 미스테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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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고 일컬어지는 조조는

중국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삼국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도 죽을땐 소박하게 장례를 치루라는 명을 내리는데요

 

그가 죽기 1년반 전쯤인 218년 6월

그는 마지막 명령을 하게 됩니다

 

그 명령은 바로 "내가 죽으면 나의 무덤을

서문표의 사당 언덕 건너편에 만드는데

원래의 언덕 높이와 같게 무덤을 만들되

봉분을 쌓아 크게 만든다던가 나무 등을 심지마라" 라는 등의 명을 남긴것이죠

 

그리고 220년 1월, 죽기 직전에 조조는

"제발 장례를 간소하게 하라.

예법에 따라 장례를 치르지 말고

내가 죽어도 평소와 똑같이 입히도록 하라.

그리고 천하가 여전히 어지러우니 3일만 장례를 치르고

이후엔 바로 상복을 벗어라.

또한 무덤에 금은보화 등 진귀한 보물은 넣지 말라." 라며

자신의 장례를 간소하게 치루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조조가 죽고 난 이후, 그는 어딘가에 묻혔지만

천몇백년이 지나도록 그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고 있었죠

 

그런데 연암 박지원의 저서 열하일기에 있는 <구외이문>에

조조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그래서 건륭제는 병사를 풀어 강을 조사하라고 시켰고

물속에는 수많은 쇠뇌에 살이 메워져 있는 장치가 있었으며

놀랍게도 그 아래에는 무덤이 있었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래서 건륭제는 병사를 풀어 강을 조사하라고 시켰는데

물속에는 수많은 쇠뇌에 살이 메워져 있었고 그 아래에 무덤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무덤을 발굴해 관 하나를 물밖으로 꺼냈는데

그 안에는 면류관이 씌워진 시신이 발견되었고

그 시신이 바로 조조라고 한것이죠

 

그래서 건륭제는 관우의 사당에 있는 유비 조각상 앞에가서

조조의 시신을 무릎 꿇린뒤 목을 베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70개의 가짜무덤 의혹을 풀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 기록은 청나라 역사서인 청사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어서

허구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70개의 가짜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는 조조가 죽기직전

마지막 명령을 내리는데

'내가 죽으면 72개의 가짜무덤을 만들고

후대 사람들이 나의 무덤이 어디있는지 알지 못하게 하라.

내 무덤을 사람들이 파헤쳐버릴까 염려되는구나' 라고 말했던 것이죠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던 조조였기에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들이 자신의 무덤에 해코지를 할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 삼국지 연의의 내용을 조선의 박지원이 구외이문에 썼던 것이죠

 

그런데 조조의 72개 가짜무덤 설은 훨씬 과거에 이미 나왔었는데요

 

바로 남송시대 유응부라는 인물이 지은 <철경록>에

'조조의총'(조조의 가짜무덤)이라는 시가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살아서는 하늘을 속여 한나라의 통치를 끊고

죽어서는 사람을 속여 가짜무덤을 만들었구나

살아서는 지혜를 사용하고 죽어서는 그만두어야 하는데

어찌하여 남은 기술을 무덤에 썼는가' 라는 시였죠

 

그리고 이어서 말하는데

"나는 무덤을 찾을 방법이 있는데 조조는 이를 몰랐을것이다

72개의 무덤을 전부 다 파면

분명 한개의 무덤에서는 그대의 시신이 있을것이 아닌가"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 말이 남송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훗날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에 반영되었을거라고 추측하고 있죠

 

어쨌든 그렇게 조조의 무덤이 몇개냐, 위치가 어디냐 등등의

소문만 무성한채 찾지는 못하고 있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길고긴 시간이 흘러 2009년 12월,

중국 허난성 안양현의 가마터 일꾼들이 벽돌을 만들려고 진흙을 파는 도중

어떤 고분과 유물을 발견하게 되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고분 안에서는 금과 은으로 만든 공예품, 토기, 칼, 명문 돌판 등

여러가지 보물들과 남자의 시신 1구, 그리고 여성의 시신 2구가 나왔는데요

 

심지어 그곳에서는 '위무왕(魏武王)'이라고 적힌 명패까지 발견된 것이죠

 

그러자 중국 역사학자들은 이 무덤은 조조의 무덤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무덤의 주인이 조조 였다는것이 밝혀지자

삼국지를 사랑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한바탕 난리가 났죠

 

삼국지 이야기의 한축을 담당하던 엄청나게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고

무려 약 1800여년간 찾지 못하고 있었던 조조의 무덤을

드디어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중국학자들이 조조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여러가지를 들었는데

유물의 연대가 후한에서 북위 시대라는 것과

조조의 유언대로 부장품이 소박하고

발견된 남자의 시신의 연령이 60대 전후로

조조가 죽었을때의 나이(65세)와 거의 일치하며

시신의 키(150~160cm)도 조조(161cm)의 키와 비슷했던 것이죠

 

또한 위무왕이 바로 조조를 뜻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고분의 위치 또한 문헌에 남아있던 것과 차이가 크지 않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여성의 시신 2구중 한구는 조비 조식의 어머니인 변씨와

조앙의 어머니이던 류씨 인걸로 추정되었죠

 

그리고 조조의 무덤 바로 옆에 시신은 없고 옷만 있는 무덤이 있었는데

그 무덤은 조조보다 일찍 죽은 맏아들 조앙의 무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무덤의 윗부분이 잘려나가 평평해져 있었는데

이것은 조조의 유언과 맞지 않게 크게 봉분을 쌓았다는 얘기 였는데요

 

중국 고고학자들은 '조비가 조조의 유언을 거슬러 크게 봉분을 쌓았다가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무덤의 윗부

분을 잘라냈을것이다' 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중국 학자들의 주장에는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죠

 

방금 말했던 '무덤의 윗부분을 잘라냈을 것이다' 라는 것도

아무런 근거도 없는 추측일 뿐인데다가

이런식으로 그냥 말만 갖다붙이면

어떤 것이든 다 조조의 무덤이라고 주장할수 있는 말을 만들어 낼수 있는것입니다

 

거기다가 이 무덤에서 발견된 여성의 유해 2구는

40대 여성과 2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데

변씨는 사망 당시 70세였기 때문에 발견된 시신과는 나이대가 맞지 않았으며

또한 변씨의 태황태후 인새도 발견되지 않았죠

 

거기다가 기록에 의하면 조비가 조조의 유언을 받들어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았지만

무덤 앞쪽에 석실을 만들어 금으로 된 인새를 보관했다고 하는데

인새와 석실도 이곳엔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조는 죽을때 포상의 의미로

큰공을 세운 공신들이 죽으면 자신의 무덤 옆에 묻어주라고 했는데

그들의 무덤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 무덤에서는 진주와 마노 같은 보석들이 발견되었지만

기록에 의하면 조조의 유언에 따라 보석 종류는 전혀 넣지 않았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조차 석연찮은 부분이죠

 

또한 조비는 아버지 조조의 장례를 천자의 예를 갖춰서 치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발견된 무덤은 후한시대 무덤 양식이 맞긴하지만

황제급 보다는 기껏해야 귀족급 무덤 양식이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많은사람이 이 무덤에서 발굴된 '위무왕'이라고 적힌 명패가

가짜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조조가 살아있을때는 위왕이었고 죽고나서는 무왕이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위무왕이라는 호칭은 조조에게 단한번도 쓰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외에도 한나라가 멸망하기 전에는 무왕이었고

위나라가 멸망하기 전에는 무제라 칭했으며

멸망한 이후에 위무제라고 불렸는데

이것을 조조의 무덤을 만들때 위무왕이라는 칭호를 쓴 명패를

같이 묻었다는게 말이 안된다는 것이었죠

 

조조를 위무제라고 불리긴했지만 위무왕이라는 호칭을 쓴적은

과거부터 지금껏 어느시대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위무왕이라고 적힌 명패는

후대의 조작이라는 주장을 했던 것이죠

 

이런 의심스러운 정황이 넘쳐났지만

중국 국가문물국에서는 2010년 1월,

이 무덤은 조조의 무덤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2018년 3월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와 부장품들을 연구, 분석해

남자의 유해는 조조이고

여성의 유해 2구는 변씨와 류씨라는 결론까지 내려버렸다고 합니다

 

이에 한국의 수많은 누리꾼들은

'진짜 조조의 무덤이 아니지만 이미 우겨놓은 상태라서

번복하기 쪽팔리니까 그냥 밀어부치는것 같다',

'조조의 무덤이라고 믿고 싶은거겠지' 라고 했다고 하죠

 

시청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조의 무덤이 진짜라면 삼국지 팬 입장으로써 한번 가보고 싶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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