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역사 탐구

지구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어처구니없는 이유

by 사탐과탐 2023. 2. 6.
반응형
전 세계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알려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황당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유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울려 퍼진 몇 발의 총성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단 몇 발의 총알이 발사된 것 때문에 전 세계 강대국끼리 서로 잔인하게 죽고 죽이는 그런 세계대전으로 번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죠

도대체 왜 전 세계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라 일컬어지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것일까요?

 

이 이야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약 40년 전부터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 독일제국에는 두명의 중요한 인물이 있었죠

한 명은 당시 독일제국의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라는 인물이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빌헬름1세를 도와 보불전쟁에서 승리를 거뒀고 독일제국 건국을 이뤄낸 주역이었죠

 

1861년 빌헬름 1세가 프로이센 왕위에 오른 뒤 적극적으로 통일 사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는데요

빌헬름 1세는 매년 4만명으로 고정되어 있던 징병 인원을 6만3천명으로 늘리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가 군비 확장 문제로 의회와 대립하고 있을 때 비스마르크도 군비의 확장 없이 독일의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비스마르크는 반대파의 불만이나 협상 따윈 개나 줘버리고 의회라는 제도 자체도 개무시 해버렸으며 "문제의 해결은 '철과 피'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라면서 철혈 정책을 펼쳐 철혈재상 이라고 불렸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사람은 독일제국의 3대 황제이자 마지막황제 '빌헬름 2세'라는 인물이죠

 

그는 독일 제국의 국력을 향상 시키기위해 적극적인 군사력 증강을 주장하면서 제국주의 팽창 정책을 추진한 인물 입니다

하지만 44살이나 차이가 나던 비스마르크(당시 73세)와 빌헬름 2세(당시 29세)는 서로 생각이 많이 달랐고 그들의 외교정책의 차이가 훗날 벌어질 1차 세계대전의 신호탄이 된것이죠

 

당시 독일 주변에는 여러 강대국들이 많았습니다

서쪽에는 프랑스와 영국, 동쪽에는 러시아 그리고 남쪽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자리잡고 있었죠

이때 비스마르크는 이제 막 건국된 독일제국의 힘을 키우려면 주변 강대국들과의 정면 충돌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실을 잘 다져서 힘을 키우는게 우선이라고 주장했죠

 

반면 빌헬름 2세는 우리 독일제국도 강한데 주변 강대국들 눈치를 볼 필요가 뭐있냐고 하면서 더 강하게 국력을 키워서 다른 나라들처럼 식민지 확장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내실을 다지고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비스마르크와 힘을 키워 바깥으로 더욱 세력을 팽창시키려는 빌헬름 2세가 대립하게 되었던 것이죠

 

결국 두사람의 정치적 갈등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갈수록 깊어졌고 이에 빌헬름 2세는 비스마르크에게 사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비스마르크는 총리 자리에서 사퇴할 수밖에 없었고 그땐 그 누구도 알수 없었지만 비스마르크의 사퇴는 결국 유럽 전체를 피에 물들게 했던 것이죠

비스마르크 사퇴 후 더 이상 자신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반대할 사람도 없어지자 빌헬름 2세는 자신의 뜻대로 정책을 펼쳐 나갔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독일도 해외에 많은 식민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독일 역시 적극적으로 해외 팽창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비스마르크가 퇴임하기 전까지 독일과 러시아는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독일은 프랑스와, 러시아는 오스트리아 제국과 갈등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혹시 서로 전쟁이 났을때 독일과 러시아는 중립을 약속했었는데 빌헬름 2세는 그런 러시아와의 동맹을 깨버렸던 것입니다

이때 러시아는 독일과의 동맹이 깨지자 다른 동맹국이 필요했고 결국 독일과 원수지간이던 프랑스와 손을 잡고 만 것이죠

그렇게 독일은 서쪽의 프랑스와 동쪽의 러시아 양국의 견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은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다른 나라들보다 강력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빌헬름 2세가 외국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해군이 필요했고 그렇게 영국과 프랑스 등 다른 열강들을 뛰어 넘기위해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해군력을 증강시키기 시작했던 것이죠

 

독일의 해군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가장 신경이 거슬리는건 다름 아닌 영국이었고 그렇게 영국과 독일사이도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들의 패권이 독일에 넘어갈 것을 우려해 독일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국을 찾기 시작했죠

그렇게 영국도 프랑스와 동맹을 결성하면서 영국-프랑스-러시아 이 세 강대국은 서로 손을 잡게 된것입니다

 

빌헬름 2세는 외국에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별 관심도 쏟지 않은 채 오직 식민지 건설에만 혈안이 되어있었는데요

당시 프랑스는 아프리카 북쪽에 있는 모로코를 식민지로 삼기위해 스페인과 함께 모로코에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세력확장을 굉장히 못마땅해 했던 빌헬름 2세는 1905년 3월, 전격적으로 모로코를 방문해 모로코의 술탄과 회담을 가진뒤, 모로코에 지원을 약속했던 것이죠

 

이에 술탄은 프랑스의 내정간섭을 쌩까버렸는데 그렇게 프랑스와 독일 사이는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모로코를 두고 발 한짝을 스윽 끼워 넣은 독일은 자신들도 모로코에 이권이 있다며 프랑스와 대립각을 세웠고 결국 이 모로코 문제는 알헤시라스 회담을 통해 결정이 나게 되는데 이때 오스트리아 제국 외에 다른 어떤나라도 독일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빌헬름 2세는 분노하여 더욱더 적극적으로 팽창정책을 추진하게 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독일은 베를린과 터키의 비잔티움, 그리고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잇는 철도를 건설하면서 독일의 영향력은 동유럽에서 중동까지 크게 확장되고 있었죠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굉장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 당시 전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패권국이던 자신들에 대한 독일의 도전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강대국들 사이에 고립되다시피한 독일은 오스트리아 제국과 동맹을 체결할수 밖에 없었죠

 

이렇게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긴장된 상황에서 1914년 6월 28일이 되었습니다

이날은 일요일 이었는데요

이날 오전,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국빈으로 초대를 받아 오픈카를 타고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이곳에 방문을 했던 것입니다

 

사라예보의 중심부에 도착해 오스트리아 대공 부부가 탄 차가 잠깐 멈췄을 때 한 청년이 품에서 권총을 꺼내 대공부부에게 총을 쐈던 것이죠

이 대공부부 암살범은 현장에서 바로 체포 되었는데 그의 정체는 세르비아 인으로 이름은 '가브릴로 프린치프' 라는 19세밖에 안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세르비아의 비밀조직 검은손의 멤버였고 이 검은손은 세르비아와 보스니아가 독립하는 것을 오스트리아 제국이 이를 반대한다고 여겼으며 세르비아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다 대공 부부가 국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세르비아의 독립과 성장을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로 암살을 계획한 뒤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이 사건이 바로 '사라예보의 총성' 사건이죠

그렇게 오스트리아 제국 제위 계승 1순위 후보자가 다른 나라에서 암살당하자 오스트리아 제국은 나라가 발칵 뒤집혔는데요

하지만 오스트리아 제국은 보스니아에 섣불리 쳐들어 갈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세르비아인들이 슬라브계 민족 이었는데 그런 세르비아의 뒤를 봐주는 나라가 바로 러시아 였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러시아는 당시 스스로를 슬라브 민족 국가의 맏형 정도로 생각했고 세르비아는 귀여운 동생 정도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오스트리아 제국이 세르비아를 침공한다면 러시아가 가만있지 않을거라 생각해 참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만약 전쟁을 하게 되면 동맹국인 독일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했는데 이때 독일의 빌헬름 2세는 오스트리아 제국에게 자신들이 뒤를 봐줄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무조건적인 지원을 약속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 제국은 독일의 전폭적인 지원을 믿고 세르비아에게 전쟁을 선포 했죠

 

그러자 러시아 역시 군대를 동원해 오스트리아 제국을 침공한 것입니다

이에 지원을 약속했던 독일은 즉시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니 러시아의 동맹국이던 프랑스가 독일을 침공했던 것이죠

그러자 독일 역시 프랑스에도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느닷없이 여기저기서 분쟁이 발생하고 전 유럽이 휘말려들어 대규모로 전쟁이 커지려고 하자 자신들은 중립을 지켰는데요

 

그런데 독일이 중립국이던 벨기에를 먼저 침공해 프랑스에 쳐들어가면서 국제 협약을 위반했다는 명분으로 영국도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이에 독일도 영국에 맞대응으로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죠

일본 제국 또한 영일동맹에 근거하여 독일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했으며 당시 영국에게 전함 사기를 당해 영국에 개빡쳐있던 오스만 제국도 독일과 손을잡고 이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불가리아는 과거부터 세르비아와 국경분쟁이 있었기 때문에 세르비아에 쳐들어 가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대규모의 전쟁으로 확대되어 버린 것이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선전포고가 이어지다가 전쟁은 독일제국, 오스트리아제국, 오스만제국, 불가리아 왕국의 '동맹국'과 러시아제국, 프랑스, 대영 제국, 벨기에왕국, 세르비아왕국의 '연합국' 이 두 진영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있던 미국과 삼국동맹을 깨고 중립을 선언했던 이탈리아 그리고 포르투갈, 루마니아 등 거의 모든 유럽국가들이 나중에 참전하면서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것이죠

단순히 오스트리아 제국과 세르비아 간의 분쟁으로 끝날수 있었던 전쟁은 당시 강대국들 끼리의 이해관계가 복잡히 얽혀 있으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대규모 전쟁으로 번져버린것입니다

 

만약 비스마르크가 사퇴하지 않고 외교수완을 발휘했다면 이런 대참사는 없었을 것 같네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이유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