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우며 중국 대륙을 두번이나 지배했던 만주족, 여진족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사는 세상을 세계의 중심인 중화로 그 외의 나머지 민족들은 오랑캐라 부르며 멸시하곤 했죠
하지만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국은 그들이 무시하던 오랑캐에게 침략당해 자신들의 터전을 내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요
때문에 중국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이민족들을 경계하고 그들이 뭉치지 못하게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 이민족들 중에서도 가장 두려워하던 대상이 바로 여진족이었죠
때문에 중국에는 여진인 10만이면 중원을 점령하고도 남는다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여진은 만주일대에 자리 잡으면서 농사와 사냥을 하던 집단으로 역사 속에서 이들은 물길, 읍류, 말갈, 여진, 만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하는데요
이들은 단순히 떠돌아다니며 유목민 생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정착해서 생활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중국은 끝없이 이들을 견제하고 이간질시키며 그들이 통합되면서 큰 세력을 이루는 것을 막았다고 하죠
여진족은 북만주부터 한반도북부까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존재했으며 우리 역사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고구려와 발해의 피지배층 백성으로 등장했고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까지 계속 등장합니다
이들은 부족마다 각각 생활방식이 달랐으며 유목을 하는 부족과 농업을 하는 부족 심지어 바다에 나가 항해를 하는 부족도 있었다고 하죠
11세기에는 여진족의 해적이 울릉도를 침략해 섬을 초토화시키기도 했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관직생활 초창기 임무도 바로 두만강 유역의 여진해적을 소탕하는 일이었죠
이렇게 여진족이 위협적인 존재이다 보니 중국과 그 주변국들은 항상 여진을 경계하고 이간질시켰는데 12세기 거란이 지나치게 자신들에게 간섭을 해대자 분노가 폭발한 여진족이 각 부족들의 세력을 통합하고 금나라를 세우게 되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지게 됩니다
국가단위로 뭉친 여진족의 저력은 생각보다 더 강력했죠
먼저 그들은 북송과 동맹을 맺고 거란의 요나라를 박살 내더니 그다음에는 동맹국이었던 북송으로 눈을 돌려 정강의 변을 일으켜 수도인 개봉을 함락시키고 북송의 황제일가를 포로로 잡아가버렸습니다
이는 금나라가 만들어진지 불과 20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는데요
물론 금이 북송을 공격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 했죠
송나라는 애초에 금과 함께 요나라를 공격할 때에도 10만의 군사로 수천 명의 요나라 군사에게 패배하는 등 동맹군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도 못한 데다가 연달아 패배를 당하자 아예 병사들의 진군을 멈춰버린 채 눈치만 보면서 금나라를 분노하게 만들었죠
게다가 요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태도를 바꿔 원래 금에게 바치기로 약속했던 공물을 바치지도 않고 오히려 금나라에 내분을 일으키기 위한 음모를 짜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여진족이 북중국과 만주를 지배하게 되면서 고려에서도 그들을 대하는 눈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강동 6주를 돌려달라고 징징거리기 바빴던 야만인들이 순식간에 화북일대의 지배자가 됐으니 서경천도운동을 일으킨 묘청처럼 금나라를 적대하는 세력이 생겨나기도 했죠
하지만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몽골의 원나라가 등장하면서 금나라는 결국 멸망했고 중원에 살던 여진족은 대부분 죽음을 당하거나 몽골인들의 부림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그중 일부는 거란으로 넘어가거나 고려로 귀화했으며 끝까지 자신들이 여진족이기를 원하며 남은 세력은 만주에 남아있던 소수에 불과했다고 하죠
이후 여진족의 일부는 이성계의 동북면세력에 흡수되기도 했으며 조선을 적대하던 일부 여진족 세력은 조선과 끊임없는 전투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분열된 씨족사회 형태로 명나라와 조선에 눌려 기도 못 펴고 지내는 세월을 보내던 여진족에서 누르하치라는 영웅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만주족은 후금을 세워 명을 압박하고 몽골을 점령했으며 정묘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공하기도 했죠
이후 나라의 이름을 청으로 바꾼 홍타이지는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굴복시키는 한편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한 명나라의 수도 북경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그렇게 청나라는 현재 중국의 영토보다도 더 넓은 땅을 지배하게 됐지만 30만도 안 되는 만주족이 수억 명이나 되는 한족을 지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기에 청은 변발과 치파오등 자신들의 문화를 법으로 제정하면서까지 강력하게 한족말살정책을 시행했죠
하지만 그런 청나라도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면서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자 이후 만주족들의 존재감은 급격히 사라졌고 1930년대 일본의 괴뢰국으로 등장한 만주국 이후부터는 역사에 거의 등장하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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