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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1차 세계대전 당시 너무나도 끔찍했던 병사들의 상황

by 사탐과탐 2023.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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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당시 너무나도 끔찍했던 병사들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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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 한 이후 프랑스로 기세좋게 쳐들어간 독일은 프랑스와 영국군의 격렬한 저항에 의해 파리와의 거리가 고작 50km 앞에서 더이상 진격을 못하게 되죠

심지어 패퇴하기 시작하는데요

 

서서히 밀고오는 프랑스와 영국군을 기관총으로 겨우겨우 막긴했지만 더이상 진격을 막기 위해서는 날아드는 총알과 대포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는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독일군은 더이상 뒤로 밀려나는것을 막기위해 참호를 파기 시작했죠 

 

그런데 문제는 당시 전투로 인해 생긴 사상자가 270만여명이었던 반면 질병으로 쓰러진 병사는 무려 350만명이나 되었습니다

전투로 인한 사상자보다 병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는데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전투중에 죽은게 아닌 병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일까요?

 

오늘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혹했던 병사들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수많은 신무기가 세상에 선보였죠

그렇다보니 엄청난 희생자를 낳아버렸습니다

하지만 무기는 아니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생긴 새로운 전쟁 양상으로 참호안에서 들어가 전투를 치르기 시작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병사들 키가 약 170~180cm 정도가 되었으니 참호의 깊이는 약 2m로 팠었습니다

그리고 참호는 적군이 쳐들어 왔을때 길을 잃고 헤메게 하기 위해

마치 미로처럼 만들었다고 하죠

그러나 기관총과 대포를 피하기 위해 참호를 팠지만 문제는 그 안에서도 병사들은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바로 참호안에서도 수많은 요소들이 병사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 중 최악이 바로 위생 문제였습니다

참호를 파기 시작한 날부터 약 150일이 지나는동안 비가 안온날은 고작 20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참호를 파다가 지하수를 잘못 건드려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참호 안에는 배수시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항상 참호 안에는 물이 가득했던 것이죠

 

비가 많이 왔을때는 허리와 가슴까지 물이 찰 정도였고 평소에는 발목 정도까지 차있었다고 합니다

병사들은 항상 진흙탕물에 젖은채로 참호안에서 생활을 했어야 했던것이죠

비에 젖은 군복에 외투에 총까지 들고 있으면 총 무게만 약 15kg에 달했습니다

 

그런 무거운 장구류를 항상 지니고 있었던 것이며 병사들의 체력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죠

여기서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화장실 이었습니다

화장실 역시 참호 안에서 기본 참호보다 약 1.5m 더 깊이 파놓았었는데 비가 많이 내릴땐 당연히 참호속 화장실도 역류했기 때문에 온갖 오물과 똥오줌이 뒤범벅되어 참호 안에 가득차버렸던 것이죠

 

심지어 참호안에는 병을 얻어 사망한 병사들의 시신도 있었고 적군 아군 할것 없이 대포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병사들의 시신도 있었는데 이들의 시신이 부패하면서 엄청난 악취를 풍겼습니다

오물들과 부패한 시신들의 악취가 참을수 없을정도로 지독하자 병사들은 더 많은 담배 보급을 상부에 요청했는데 바로 담배냄새로 이 지독한 악취를 덮어버리기 위해서였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참호안의 위생은 세상 어느곳보다 좋지 않았고 그러자 병사들은 하나둘 병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더러운 물에 발이 항상 젖어 있었던 상황에 군화까지 잘 벗지도 못한채 극악의 비위생적인 생활을 하다보니 병사들에게는 일명 '참호족' 이라는 병이 생기기 시작했죠

 

참호족에 걸린 병사들은 발의 색이 점점 변하다가 감각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발에서 엄청난 악취가 나기 시작하면서 나중에는 발의 색이 검푸르게 변하고 점점 썩어갔죠

그러면 결국 발을 절단할수 밖에 없었는데 이 참호족에 걸려 발이나 다리를 절단한 병사들이 수만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병사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쥐떼들 이었죠

이 쥐들이 병사들의 시신을 먹은뒤 살이 찌고 덩치가 커져서 강아지만한 쥐도 있었다고 합니다

비가와서 물이 찰때는 온갖 오물 뿐만 아니라 쥐도 헤엄치면서 돌아다녔던 것이죠

문제는 오염된 쥐가 자고있던 병사들을 시체로 착각해 그들을 물어 뜯어 버렸던 것인데요

 

쥐에 물려 상처가 날 경우에는 온갖 병균에 감염될 위험이 컸고 심지어 쥐에 물린것이 원인이 되어 세상을 떠나는 병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병사들은 잠을 잘때 쥐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철로된 망사 마스크를 얼굴에 쓰고 자기도 했다고 하죠

 

또한 쥐 뿐만 아니라 각종 해충들도 넘쳐났는데 부패한 시신과 똥오줌들 각종 오물들 때문에 파리 역시 엄청나게 많았으며 잘 씻지도 못하는 병사들의 몸에도 파리들이 수북히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머릿니까지 창궐해 병사들의 살을 파고 들었고 병사들은 너무 가렵기도하고 나중에는 아프기까지 하니까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버리는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병사들은 이런 지옥같았던 참호속에서 생활할수밖에 없었는데요

참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간 상대편 저격병들에게 총맞아 죽기 십상이었기 때문이죠

결국에는 1차 세계대전도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이때 동원된 병사들의 수는 6천 5백만명에 달했고 죽거나 다친 사상자의 수는 3천 7백만명이나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충격과 고통은 끝나고 나서도 병사들의 몸과 마음에 짙은 상처를 남기게 되죠

바로 참전 군인들의 정신도 피폐해진 상황이었던 것인데요

수많은 동료들과 전우들이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는걸 보게된 병사들은 감정이 무뎌지고 사람이 죽는것에 무덤덤해지기 시작하면서 친한 사람이나 가족이 죽더라도 감정의 변화를 느낄수 없게 되었죠

 

또한 '셸 쇼크 (shell shock)' 라고 해서 별다른 부상을 당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신체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셸 (shell) 은 포탄이라는 의미로 전쟁 당시 적군의 포격등의 공격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와 충격을 받아 생긴것인데 극심한 공포심과 극도의 긴장상태를 계속 이어나가다 보니 정신이 무너져 버려 심할경우엔 PTSD로 발전했다고도 하죠

 

전쟁의 비극은 병사들 뿐만아니라 가족들 마저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당시 병사들을 징집해 부대를 구성할때 한 마을이나 같은 지역 청년들을 한 부대로 편성 했는데 이 부대가 전투에 투입되었을때 전멸을 하기도 했고 엄청난 사상자가 나오기도 한것이죠.

한 부대가 전멸한다는것은 한 마을의 청년들이 몰살 당한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지역으로 같은날에 수많은 전사 통지서가 도착하게 되는데 이런 비극이 한 가족에 국한되지 않고 한 마을 전체가 겪는 일이 되었죠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이런 병사들과 그 가족들을 치료하기 위해 의학기술들이 굉장히 발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전쟁으로 다친 얼굴을 치료하기 위해 성형수술이 발달했으며 정신이 망가진 병사들과 가족들의 치료를 위해 심리학과 정신치료도 발전을 이룰수 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서 유행하는 필라테스도 이때 발명되게 되었는데 요제프 필라테스라는 사람이 영국군에 잡혀 구금되었을때 다친 아군 병사들의 재활을 목적으로 개발했던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이 필라테스는 일반인들에게 확산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아무튼 어떤 전쟁이든 발발하면 최전방에서 전투를 하는 병사들이 가장 큰 전쟁 피해자가 되는것 아닌가 싶네요

지금까지 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혹했던 병사들 상황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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