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할 정도로 굉장히 빡쎈 삶을 살아야했던 중국 궁녀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조선시대때 궁에 입궐한 궁녀들은 왕에게 승은을 입지 못하면 어릴적부터 죽기 직전까지 궁에서 외로운 삶을 살았어야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궁에 드나드는 다른 남자들과 연애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같은 궁녀들끼리 동성연애를 하기도 했죠
그러다 걸리기라도 하면 사형을 면치못할만큼 엄격하고 절제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 중국 궁녀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오늘은 엄청나게 빡쎈 삶을 살았던 중국 궁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명나라에서는 매년 궁녀들을 뽑았죠
10살쯤 되던 여자아이들을 모아놓고 환관이 그들 중에서 여러명을 차출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환관이 뽑았다고 해서 궁녀가 된건 아니었는데요
몸에서 악취가 나면 탈락, 몸이 허약하면 탈락되었죠
궁녀들은 함부로 신성한(?) 황궁에서 죽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에 건강한 여자 아이를 뽑았던 것입니다
또한 너무 외모가 예쁘게 생겼다면 바로 탈락되었죠
이 탈락 이유는 좀 의외이긴 한데요
외모가 아름다우면 황제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될수도 있었기 때문인데 만약 후궁이 되어 아들이라도 낳게 된다면 자칫 잘못하면 궁내에서 후계자 문제로 피바람이 불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황제가 너무 빠져들어 정사에 소홀해 질수도 있고 포사나 하희, 양귀비처럼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지고 나라를 멸망케 할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거기다가 주위 다른 나라에서도 공녀를 받아 궁녀로 들이기도 했습니다
조선뿐만아니라 삼국시대, 고려시대때도 공녀를 차출해 계속해서 중국으로 보냈는데 공녀로 보내지면 평생 부모, 형제와 헤어져 말도 안통하는 이역만리 중국땅에서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살아야 했었죠
그러다보니 기혼자는 공녀 차출 대상에서 제외 되었기 때문에 딸을 어릴때 결혼을 시켜버리기도 했는데 그런 이유로 10살이 조금 넘으면 시집을 보내버렸다는 설이 있기도 합니다
또한 몹쓸병에 걸린척 하기도 하고 집안 깊숙한곳에 숨겨놓기도 했으며 더 비극적인건 차출된 여자들 중 신세를 비관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비일비재 했던 것이죠
어쨌든 모든 과정을 다 통과해서 황궁에 입성을 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다른 궁녀들에게 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조선의 궁녀들은 궁에 들어오면 글도 배우고 궁내에서 지켜야할 예절 등 여러가지를 배웠던 반면 중국 궁녀들은 기본적인 예절 외엔 딱 자신이 할 일에 대한 것만 배우고 글 이든 뭐든 일체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자체도 금지시켜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고 하죠
그러다보니 서로간에 의사소통은 최소화 되었고 그마저도 손뼉을 치면서 했다고 합니다
궁궐내에서 보고 들은 것은 모두 기밀사항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는 곧 나라의 국운과 직결되기도 했었죠
그 이유로 자신이 본것이나 들은것을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쓰지못하게 하기위해서 일체의 공부도 시키지 않았고 아예 입을 닫도록 했던 것입니다
조선에도 이와 비슷한 '쥐 부리 글려'라고 하는 궁녀들만의 행사가 있었는데요
조선시대때도 마찬가지로 보고 들은것을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밤중에 아직 정식 궁녀가 되지 못한 어린 궁녀들을 불러모아 밀떡을 동그랗게 만들어 입에 붙인 후 흰 무명천에 고리를 만들어 마스크처럼 씌웠습니다
그러고나서 상궁들이나 내관들이 불을 붙인 긴 장대를 휘두르며 어린 궁녀들의 입을 지지는척 하면서 '쥐 부리 지져' 또는 '쥐 부리 글려' 라고 소리쳤다고 하죠
바로 입조심 안하면 입을 지져버린다는 충격요법을 썼던 것입니다
생전 처음 당하는 무섭고 황당한 일에 어린 궁녀들은 겁에 질려 울고 불며 난리가 나는데 이때 먼발치에서 구경하던 왕비나 고참 상궁들은 재미있어 하며 웃고 즐겼다고 하죠
이에 비하면 중국 궁녀들은 입을 여는것조차 금지시켰으니 조선보다 더 빡쌘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중국 궁녀들은 자신이 맡은 임무에 대해서만 교육을 받았는데 너무 엄격하게 시키다보니 조금만 잘못해도 무서운 처벌을 받았다고 하죠
또한 팔다리 쭉펴고 대(大)자로 자는건 재수없다고 해서 항상 옆으로 누워서 다리를 오므리고 잠을 잤어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규율을 어기거나 잘못했을때 처벌은 굉장히 강력했는데요
따귀를 맞는건 뭐 귀여운 수준이었고 구타는 기본에, 채찍이나 심지어 곤장까지 맞았으며 밥을 안주고 쫄쫄 굶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궁녀들 사이에서는 '황제를 모시는것보다 선배 모시는게 더 힘들다' 라고 했을 정도라고 하죠
그런데 황제를 모시는게 더 무섭고 힘든일도 당연히 있었는데요
명나라 제 11대 황제인 가정제는 궁녀들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었다고 하죠
이를 견디다 못한 궁녀 16명이 가정제를 암살하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16명의 궁녀들은 모두 처형당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명나라 시대의 궁녀들은 꽤 많은 월급을 받았지만 청나라 때 궁녀들은 월급이 너무 적었다고 하죠
심지어 밥도 적게 주기도 했고 음식의 질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청나라 궁녀들은 항상 굶주리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궁녀들은 달리 자신이 의지할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늙은 환관 중 한명을 양아버지로 삼아 의지하고 살았다고 하죠
궁녀들은 한번 들어오면 궁밖으로 외출이 불가능 했기 때문에 이 양아버지 환관에게 부탁해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 받기도 했고 아주 가끔은 양아버지 환관의 도움을 받아 가족들을 궁궐 내로 데리고 들어와 겨우 만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몰래 들어오는 것이라서 긴 천막을 사이에 두고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채 한정된 공간 내에서만 조용히 만날수 있었다고 하죠
이런 극도로 절제되고 규율에 얽매인 중국 궁녀들은 너무나도 외롭고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또한 궁녀가 된다고해서 모두가 황제의 승은을 입는것은 말도 안되고 그 많은 궁녀들 중에서 황제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는것도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웠던 것이죠
이에 궁녀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의 욕구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궁녀들은 조선의 대식처럼 궁녀끼리 서로 동성연애를 하기도 하고 아니면 궁 밖에서 비구니나 과부들을 가족으로 속여 궁내로 몰래 들여와 연애를 하기도 했죠
심지어 환관이나 내시, 궁을 지키는 병사나 군관들과 연애를 하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궁녀들은 무술실력이 뛰어나고 남자다운 군관들을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연히 들통나는날엔 궁녀와 상대방 남자의 목이 여러개라도 모자랐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처형되었을 정도로 목숨걸고 했던 연애였죠
하지만 사람의 본능을 막기엔 당연히 힘들었기 때문에 나중에 이런식으로 연애를 하는 궁녀들이 너무 많아졌고 조정에서는 알더라도 그냥 모른척 봐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훗날 궁녀와 환관이 결혼을 하기까지 하는데 이를 채호라고 불렀다고 하죠
채호는 채소를 심고 가꾼뒤 판매를 하는 채소 장사라는 말인데 이땐 궁녀는 채소를 뜻하고 환관은 채호가 되는데 서로의 사랑을 맹세하고 부부가 되는것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궁녀들의 성욕은 궁궐 내에서 더 굉장한 일도 벌였는데요
바로 흑차라고 불리는 검은 수레에 궁밖의 젊은 남자들을 태우고 밤에 몰래 궁으로 들여와 궁녀들과 사랑을 나누었다고 하죠
사랑을 모두 나누었으면 남자들은 다시 흑차를 타고 날이 밝기 전에 바깥으로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본능이 뇌를 지배해버렸는지 참 대담하기도 하죠
하지만 궁녀들이 가장 원하던것은 바로 황제의 승은을 입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황제의 눈에 들기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죠
어쩌다 황제의 눈에 띄어 황제의 침소로 들게된 궁녀가 있으면 그날밤 그녀를 깨끗히 씻긴후 알몸으로 이불을 둘둘 만채 황제의 침소로 보내졌습니다
옷을 입고 들어갔다간 흉기를 소지할수도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하죠
그러다 만약 황제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 환관이 황제에게 이 아이를 낳아도 되는지 물었는데요
이때 만약 황제가 낳지 말라고 하면 그 궁녀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스스로 유산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부터는 황제와 잠자리를 가질수도 없었다고 하죠
하지만 허락이 떨어지면 궁핍한 자신의 가문을 일으킬 정도의 초대박이 난 것이었고 운이 좋으면 후궁이 될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명나라때 궁녀들은 한번 입궁하게 되면 죽기 직전까지 밖으로 나갈수는 없었는데요
심지어 황제가 죽으면 황제와 함께 순장을 당하기도 했죠
황제와 함께 순장 당하게 된 궁녀들에게는 최후의 만찬을 준비해주고 산채로 황제와함께 묻힐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목을 매고 난 뒤 묻힐것인지 선택을 하게 했는데 거의 모든 궁녀들은 후자를 택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토목의 변으로 몽골의 포로가 된적이 있던 정통제가 명나라에 전해지던 몽골 악습을 제거하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후궁과 궁녀의 순장 풍습을 그때 없애버렸다고 하죠
그외에 가끔씩 끔찍한 자연재해가 발생하게 되면 여자의 한 때문에 발생한것이라고 생각해 궁녀들을 출궁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명나라 이후 중국땅에 들어선 나라인 청나라는 그런 명나라의 궁녀들을 불쌍하게 여겨 궁녀들의 나이 제한을 걸어버렸는데 10세 무렵에 입궁해서 25세까지만 궁녀로써 일을 하고 25세가 되면 퇴사하고 궁밖으로 나갈수 있었죠
이후엔 결혼도 할수 있었는데 비록 양민의 신분으로 궁녀가 되었지만 나올때는 황궁에서 일했던 경력 덕분에 신분이 상승했고 그래서 귀족들과 결혼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확실히 조선의 궁녀들 보다는 명나라, 청나라 때의 궁녀들이 더 빡쎄긴 했던것 같네요
지금까지 명나라, 청나라의 궁녀들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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