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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후한 영제. 황제가 직접 황명으로 매관매직을 주도해서 후한을 멸망시킨 장본인(십상시는 세발의 피)

by 사탐과탐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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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의 영제는 본인이 직접 황명으로 매관매직을 일삼아서 후한이 멸망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장본인입니다
영제는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황제가 매관매직을 했던 황제라고 하는데 십상시 또한 그저 영제의 꼭두각시였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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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명나라 4대 암군 중 정덕제와 만력제를 섞어놓은 것 같은 한심한 황제라는 평을 받았던 한나라의 27대 황제, 영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영제는 사실상 후한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 제공한 인물로 그야말로 완전히 돈에만 미쳐버린 무능한 '상인 황제'라고 볼 수 있죠

 

황제라는 사람이 앞장서서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을 권장하는 정신나간 짓거리를 벌였기 때문인데요

사실 영제는 원래는 황실과는 거리가 있었고 집안이 가난했기에 장사꾼으로 큰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려던 인물이었죠

 

때문에 두씨 일족은 지지세력이 없는 영제가 다루기 쉬울 것이라는 이유로 그를 황제로 옹립한 것이지만 문제는 영제가 가난한 시절에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일에 완전히 미쳐있었기 때문에 황제가 되어서도 오직 돈벌이만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영제는 황제가 되면 돈을 실컷 쓸수있을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무리 군주라고해도 국가 예산을 쓰는 데는 엄연히 정해진 절차가 있었던 데다 이미 영제 이전부터 심해진 부정부패로 엉망이 되어가던 한나라의 국고는 황제가 마음대로 예산을 빼서 쓸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죠

 

마음먹은 대로 돈을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영제는 온갖 말도 안 되는 핑곗거리를 만들어 비자금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 걸로도 모자라 아예 모든 벼슬에 가격을 매기며 황제인 자신이 직접 돈 받고 벼슬을 파는 기행까지 벌이게 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당시 후한에서 이미 매관매직이 환관과 외척을 통해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기는 했지만 황제 본인이 대놓고 매관매직에 나선 경우는 기나긴 중국의 역사 속에서도 영제가 유일하다고 하네요

심지어 그는 일단 벼슬을 외상으로 팔고 관리로 부임한 후 정가의 2배를 내는 제도까지 도입했습니다

 

더욱 골때리는 사실은 마치 신용카드처럼 관직 매매가를 월단위 할부로 치를 수 있게까지 만들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돈에 미친 황제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겠죠

소설 '삼국지 연의'에서는 매관매직이 십상시들의 소행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전부다 돈에 미친 영제가 벌인 악행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가서는 신임관리는 물론, 자리를 옮기는 기존 관리들도 반드시 궁궐수리 명목으로 황제에게 돈을 바쳐야 부임할수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정직한 사람들은 황명이 떨어진 이상 새로운 자리로 가지 않는 것은 황제를 거역하는 대죄가 되며 그렇다고 당장 돈을 낼 재력도 없고 돈을 내려면 황제에게 외상으로 빚을 진 뒤 백성들을 수탈하는 방법 밖에 없었기에 차라리 관직에 부임하기를 거부하고 사직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그러자 영제는 사직하는 관리들에게 화를 내며 자신에게 돈을 바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협박까지 했고 견디지못한 관리들이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거록태수로 임명된 사마직이란 관리는 평소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는데 영제는 사마직이 청렴하다는 이유로 '특별히' 정가에서 300만전을 깎아주면서 자신에게 돈을 바칠 것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황제의 명령을 거절하는것도 불가능하고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것도 차마 못할 짓이라고 생각하던 사마직은 고민 끝에 임지인 거록으로 향하던 도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죠

이렇듯 관리들은 영제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백성들에게 온갖 불법행위를 하면서 돈을 긁어모아 황제에게 바치게 되었고 영제 그 자신도 관리들의 이런 행태를 더욱 부추겼기 때문에 황실의 부정부패는 막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그 와중에 영제는 마치 장사를 하듯 관직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관리들의 임기를 1년 이하로 대폭 줄여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매관매직이 황제의 인정 아래 공식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자 백성들을 다스릴 기본적인 능력도 갖추지 못한 인물들이 그저 한몫 잡아볼 생각으로 관직경매에 끼어들게 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덕분에 죄없는 백성들만 고스란히 그 피해를 받아야 했는데 당시 최고 실세였던 환관 왕보의 양자 왕길은 패국상으로 재임하던 기간 중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넘는 만 명 이상의 백성들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왕길은 관직을 사는데 들어간 돈을 회수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과 요역을 부과했는데 만약 백성들이 제때에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모조리 잡아들여 매질해 죽여버린 것인데요

 

이러다보니 가진 것을 모두 뺏긴 백성들은 굶어 죽거나 맞아 죽었고 죽지 않은 백성들은 착취를 견디지 못해 고향을 버리고 각지를 떠도는 유랑민이 되거나 아예 도적떼로 변신해 버렸습니다

때문에 그시절 매관매직이 아닌 방법으로 관리가 된 사람은 도적퇴치 전문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손견과 장거와 장순의 난을 진압한 공로로 현위가 된 유비 정도에 불과했다고 하죠

 

이렇게 매관매직으로 생긴 수익의 일부는 부족한 국고로 들어가긴 했지만 대부분은 영제 개인의 비자금이 되었고 서원의 창고에 돈이 꽉꽉 들어차다 못해 넘쳐나자 영제는 아예 황궁 밖의 십상시들의 창고에 나눠 보관하게 하는 꼼꼼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십상시들은 영제의 비자금 마련이라는 목표에 따라 영제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그를 충실하게 보필하면서 떠오른 비선조직이 되었죠

 

이런 영제의 행태를 보다못해 충언을 올리는 신하들도 많았지만 영제는 바른말을 하는 신하는 모두 내쫓거나 죽이며 영제 자신의 권력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철저히 숙청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영제가 관심을 기울인 대상은 오직 자신의 권력과 돈이었을뿐 정작 자신이 해야 할 나랏일은 완전히 내팽개쳐둔 채 그저 벌어들인 돈으로 술과 여자에 빠져지내기만 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게다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대토목공사를 벌여 스프링클러로 도로를 청소하는 첨단설비를 만들어놓고 즐거워하거나 스스로 장군복장을 하고 무상장군이라 칭하며 군대를 사열하면서 놀거나 아예 자기는 상인으로 차려입고 작은 모의시장을 만들어 궁녀들을 저잣거리 여성들로 삼아서 장사놀이를 했는데 궁녀들이 사치품들을 놓고 서로 자기가 갖겠다며 아귀다툼을 벌이자 그 꼴을 본 영제는 매우 즐거워하면서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영제가 돈벌이와 사치스러운 생활에만 빠져사는 동안 후한은 각지에서 도적떼가 백성들을 약탈하는 가운데 그들을 지켜야 할 관리들마저 백성들을 수탈해 댔기 때문에 참다못한 백성들은 토지를 버리고 떠돌이 신세가 되었죠

게다가 엎친데덮친격으로 기근과 질병까지 발생하면서 각지에서 굶거나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아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변방에 숨어 살던 선비족, 강족 등의 이민족들까지 기회를 엿보아 침입하여 변방을 약탈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렇게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당시의 후한 조정은 그들을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가진 것을 뺏는데만 열중했으니 한나라는 스스로 망한 것이지 다른 누가 멸망시킨 것이 결코 아니며 말 그대로 황제와 대신들이 모두 벼슬하는 도둑놈들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황건적의 난이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니었죠

그렇게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영제는 술과 여자에 빠져지낸 탓인지 34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요

 

영제는 장사꾼 마인드로 황제 짓을 하면 나라가 쫄딱 망한다는걸 잘 보여준 아주 훌륭한 사례이며 위진남북조라는 중국사 최악의 혼란기가 열린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 중국 역사상 최악의 황제 중 한 명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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