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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임인궁변. 명나라 가정제의 지독한 학대에 못버틴 궁녀들이 일으킨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

by 사탐과탐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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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가정제의 지독한 학대에 못버틴 궁녀들이 일으킨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 임인궁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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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2년 10월 21일 새벽, 명나라에서는 궁녀들이 황제를 시해하려는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발생합니다 

당시 명나라 황제는 최악의 암군 가정제 였죠

 

이 충격적인 사건은 훗날 '임인궁변'이라고 불리는데요

대체 궁녀들에게는 무슨일이 있었길래 황제를 시해하려고 까지 했을까요?

 

가정제는 명나라 11대 황제로 묘호는 세종이죠

원래 세종이라는 묘호는 그 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명군에게 부여하는 묘호인데 이 묘호를 받은 왕이나 황제 중 유일한 암군이라고 합니다

그는 정덕제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올랐는데 성격이 개차반인데다가 난폭하기까지 했다고 하죠

 

기록에는 성격이 잔혹하고 기뻐하고 화내는것이 순간순간 바뀌며 사람을 대할때도 그때그때 달랐다고 합니다

이 기록만 봐도 그는 확실히 좀 다혈질에 괴팍한 성격으로 보이긴 하죠

그리고 엄청난 호색한이기도 했는데 허구헌날 관리들을 보내 전국 각지의 미녀들을 잡아와 궁녀로 입궁시키라 명했던 인물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그는 8세부터 14세까지의 어린 여자아이들을 궁녀로 뽑았는데 한번 뽑을때마다 그 수는 천여명에 달했고 그걸 여러번했으니 어린 아이들 수천명이 황궁으로 잡혀오게 된것이죠

가정제는 황후나 비빈들, 그리고 궁녀들까지 누구든 가리지 않고 학대하기까지 했습니다

자신이 시키는 것을 거부하거나 싫어하는 티라도 내면 몽둥이로 두들겨패기 일쑤였으며 굉장히 자잘한 일로 궁녀들이 맞아 죽는 일도 허다했죠

 

가정제는 어릴적부터 병약했던 데다가 여색을 엄청나게 밝히다보니 건강상태가 나날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불로불사의 단약을 만들기위해 도교에도 심취하게 되었던 것이죠

가정제는 전국의 유명한 도사들을 불러 허약한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바꾸기 위해 온갖 도술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불로불사의 단약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궁녀로 잡아온 미녀들과는 자신의 욕정을 푸는것에도 이용했지만 불로불사의 단약을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들 이기도 했던 것인데요

가정제가 만들려는 불로불사의 단약에는 굉장이 특이한 재료가 필요했는데 그것은 바로 궁녀들의 생리혈과 수은 이었습니다

과거의 중국인들은 수은에 신묘한 힘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걸 복용하면 장수 할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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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정제도 단약을 만드는데 이 수은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불로불사의 단약을 만들기 위해선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했는데 첫번째 방법은 어린여자의 첫번째 월경혈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래서 가정제는 8세에서 14세의 어린 여자아이들을 궁녀로 잡아온것인데요

 

그렇게 강제로 궁녀가 된 아이들을 궁안에 가두어 놓고 다른 부정한 재료가 섞이지 않은 깨끗하고 순수한 월경혈을 얻기위해 아침 이슬만 먹이고 밥도 거의 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두번째 방법은 처녀의 월경혈을 이용한 단약을 만드는것이었는데 그는 더 많은 월경혈을 얻기위해 하혈을 하는 약을 궁녀들에게 복용시키기까지 했으며 그러다보니 수많은 궁녀들이 심할땐 과다 출혈로 세상을 떠나는 일까지 벌어진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뿐만아니라 가정제는 연단 제조 비법이 새어나가는걸 막기위해 이 행위에 이용된 궁녀들의 목숨을 일부러 빼앗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방금까지만 해도 내 옆에 있던 친구가 어느 순간 잔혹하게 죽임당하는 장면을 본 궁녀들은 언제 자신에게 이 일이 벌어질지 몰라 공포에 떨게 되었죠

그녀들이 할수있는 일이라고는 황제에게 맞아죽거나, 학대를 당하다 죽거나 둘중 하나였고 그저 그날이 언제 올지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결국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양금영 등 16명의 궁녀는 가정제가 자신이 총애하던 단비 조씨의 처소에서 잠을 잘때 그를 살해하자고 모의한 것이죠

그렇게 1542년 10월 21일, 가정제는 한 도사가 준 단약을 먹고 단비 조씨의 처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안가 가정제는 잠이 들었고 조씨는 황제를 모신후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밖으로 나간 후였죠

이 기회를 틈타 양금영과 궁녀들이 달려들어 몇몇은 가정제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잡고 몇몇은 상반신과 하반신 위에 올라탔으며 누구는 준비해온 끈을 목에 묶은채 당겼고 누구는 그의 얼굴을 준비해온 천으로 덮어버렸습니다

 

이때 잘 자던 가정제는 너무 놀라 까무라치며 격렬히 저항하는데 십수명이 달려들어 있는 힘껏 잡고있는 바람에 꼼짝달싹 할수 없었죠

그런데 양금영이 묶은 끈이 잘못 묶인 탓인지 제대로 가정제의 목에 졸리지 않았고 마음이 급해진 몇몇 궁녀들은 자신의 비녀로 가정제를 찌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도 황제가 죽지 않는것을 보자 궁녀 중 일부는 겁을 먹기 시작했죠

 

진짜 하늘이 내리신 천자라서 죽지 않는건가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그러자 그를 죽일수 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는데요

결국 장금련이라는 궁녀가 뭔가 잘못되었다는걸 느끼고 그곳에서 빠져나온 뒤 황후에게로 달려가 이 사실을 고해 바친것입니다

 

깜짝 놀란 황후 방씨는 급히 그곳으로 달려갔는데 이미 두려움에 떨게된 궁녀들은 황제를 내버려둔채 모조리 사방으로 도망치게 되었죠

하지만 얼마안가 모두가 잡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가정제는 너무 놀라 혼절하긴 했지만 목숨을 건질수 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붙잡힌 궁녀들은 잔혹한 고문을 받았는데요

결국 16명의 궁녀들은 황제를 시해하려한 죄로 능지형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능지형은 죄인의 살을 산채로 포를 뜨는 것인데 뼈와 내장 등이 드러날때까지 최소 1000여회 이상의 칼질을 해서 죽이는것이라 하죠

 

사형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형벌입니다

또한 단비 조씨와, 영빈 왕씨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에 처해졌죠

이때 영빈 왕씨와 단비 조씨가 사형에 처해진걸 보고 훗날 영빈 왕씨가 배후라는 주장이 나왔는데요

영빈왕씨는 가정제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지만 빈에서 비로 승격 해주지 않은것에 앙심을 품은 그녀가 가정제를 살해하려고 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미 황제의 자식을 낳은 비빈이 목숨걸고 이런짓을 한다는것과 십수명의 궁녀들이 왕씨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가능성도 낮아 억울하게 연루되었을뿐 그들이 배후일것 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또한 가정제는 자신이 황제로 즉위 하고나서 친아버지 흥헌왕을 황제로 추증하고자 했던 가정제와 명나라 9대 황제인 홍치제의 양자로 들어가야한다는 신하들의 논쟁에서 결국 가정제가 승리(?)하고 신하들을 모조리 숙청해버린 사건(대례의 의)이 종결되자 마자 임인궁변이 발생했다보니 이는 황제와 신하의 정치투쟁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죠

하지만 배후가 있다기 보다는 궁지에 몰린 궁녀들이 두려움에 떨다 이렇게 죽을 바엔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벌인 사건으로 보여지네요

 

야사에서는 궁녀들이 처형당한날 이후로 며칠동안 북경에는 엄청나게 짙은 안개가 끼었다고 합니다

사실 당시엔 양력으로하면 11월이라 초겨울쯤이었기 때문에 안개가 끼는게 당연할수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임인궁변으로 인해 비참하게 죽임당한 젊은 궁녀들을 하늘이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겨 생긴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죠

 

이후 명나라는 계속된 암군의 등장으로 결국 청나라에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가정제가 궁녀들에 의해 세상을 떠나고 다른 황제가 명나라의 황위를 이었다면 명나라의 운명은 더 오래 갈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온갖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황제를 시해하려까지한 궁녀들 사건 임인궁변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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