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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진비. 광서제의 유일한 안식처였지만 서태후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여인

by 사탐과탐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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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황제이던 광서제에게 유일한 안식처이자 그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 진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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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기 광서제가 서태후에 의해 강제로 황제로 옹립 된 후 광서제는 허수아비 황제로써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되죠

그는 아내도 서태후가 정해주는 여자를 맞이해야 했으며 아내의 감시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광서제에게 한줄기 빛같은 여인이 있었으니 그 여인은 후궁인 진비 타타라씨로 오늘 이야기 할 인물이기도 하죠

 

당시 후궁은 그저 황제의 후사를 잇기위한 도구에 불과했고 태후나 황후가 하라는대로 하는수 밖에 없는 그런 취급을 받았었는데요

광서제의 눈길을 끈 진비의 매력은 바로 황실예절이나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톡톡 튀는 성격에 자신이 하고싶은대로 해버리는 그런 독특한 진비의 모습이었죠

 

그녀는 1876년 2월에 중국 광저우에서 태어났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피부도 하얗고 굉장한 미녀였다고 하죠

거기다가 총명하고 똑똑한데다가, 성격도 밝으며 활발한 성격에 호기심도 강한, 굉장히 진취적인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광저우는 5구 통상지구 중 하나로 항구를 통해 서구 문물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기도 했으니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들도 많았고 그만큼 서구 문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고 하죠

 

그러다 진비가 10살이 되던해에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으로 오게 되었고 3년후 후궁 선발에 언니 근비와 함께 참여해 둘다 광서제의 후궁으로 뽑히게 된것입니다

하지만 진비의 어머니는 딸 둘이 모두 후궁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우 불안해하며 잠도 못자다 신경쇠약에까지 걸렸다고 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황궁안에서 말한마디 잘못해도 자신의 목숨 뿐만아니라 집안 전체가 멸문지화를 당할수도 있었기 때문에 귀하디 귀한 딸 둘을 모두 궁으로 보낸다는것이 너무나도 염려스러웠던 것입니다

사실 진비를 후궁으로 뽑은것은 서태후였는데 서태후도 처음에는 총명하고 똑부러지는 그녀를 마음에 들어했죠

 

그래서 언니 근비와 함께 이화원으로 불러 머물게 하기도 하고 진비가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 자신의 그림선생을 그녀에게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진비의 호기심을 가장 많이 자극한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진기였죠

사진기의 매력에 푹 빠진 그녀는 여러 전각들과 여러 사람들을 찍기도 했고 환관들에게 사진찍는 법을 가르쳐 주어 사진을 찍게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진비가 찍은 사진은 한장도 남아 있지 않는데요

 

일설에 따르면 진비가 어느 한 환관에게 시켜 사진관을 열도록 했는데 이 일을 알게된 서태후는 사진관 문을 닫으면서 사진을 다 태워 버렸고 사진관을 연 환관은 두들겨 맞아 세상을 떠났다고 하죠

그만큼 황궁은 진비에게도 호락호락한곳이 아니었습니다

궁내의 수많은 여자들이 서로 온갖 암투와 모략을 일삼았고 황궁내에서의 반드시 지켜야하는 복잡한 법도와 항상 똑같은 생활을 해야했는데 자유분방한 성격의 진비는 이 모든것이 자신과는 전혀 맞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다보니 점점 후궁으로써 하지말아야할 행동이나 궁중 예법들을 잘 지키지 않았고 그녀의 그러한 특이한 행동들은 점점 사람들에게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진비에게는 최악의 적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광서제의 정실부인인 융유황후 였죠

진비가 후궁으로 선발되기 1년전인 1887년, 광서제가 16세가 되었을때 전국적인 간택령이 내려졌는데 서태후는 자신에게 절대 복종할 사람이 필요했기에 광서제의 의중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자기 멋대로 조카이던 융유황후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간택된 융유황후는 성격이 괴팍했고 고집도 굉장히 쌔기도 했으며 심지어 서태후의 명을 받아 광서제를 감시하는 역할도 했기 때문에 광서제는 그녀를 굉장히 싫어했죠

광서제는 자신이 있던곳에 융유황후가 들어오면 신경질을 내면서 신발을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어느날 문안인사를 하러 광서제의 침전에 들어간 융유황후를 광서제는 쳐다보지도 않은채 나가보라고 하자 그녀는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에 열받은 광서제는 그녀의 머리 끄덩이를 잡고 밖으로 끌고나와버리기까지 했죠

그 정도로 광서제는 서태후와 그녀의 조카인 융유황후를 극도로 싫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광서제는 진비를 만나게 되고 자신과는 다르게 밝고 활발한 성격에 톡톡튀는 매력을 가졌으며 용모도 빼어나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광서제 앞에서도 화장은 커녕 남장을 하기도 하는 등 굉장히 독특한 매력에 빠진 광서제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자주 만남을 가지면서 그녀가 자신의 답답한 심정까지 이해해주자 광서제도 그녀에게 의지하고 위로받기 시작했으며 진비는 광서제의 힘든 궁중생활의 안식처가 되어주었습니다

또한 진비는 광서제가 외국어를 배우거나 개혁을 추진할때도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그에게 강한 황제가 되어야 한다며 힘을 북돋아 주기까지 했던 것이죠

 

광서제는 그런 진비에게 "천자인 내가 있으니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것이다!" 라며 큰소리 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광서제가 진비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융유황후는 더욱 진비를 시기 질투하기 시작했는데요

거기다가 워낙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궁중생활을 싫어하던 진비가 융유황후의 명령까지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기도 하는 등 무례한 태도를 보이자 융유황후의 활활 타오르던 질투심에 기름을 부어버린 격이었죠

 

그러자 융유황후의 질투는 분노로 바뀌어 자신의 고모인 서태후에게 달려가 진비의 뒷담화를 까기 시작했습니다

진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서태후 역시 그녀의 특이한 성격과 태도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진비가 광서제에게 딱붙어 자꾸 그를 부추기는 말까지 한다는 것을 안 서태후는 언젠가는 그녀를 쳐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 이후부터 서태후와 융유황후는 더욱 심하게 진비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광서제가 특별히 진비의 신분으론 원래 탈수 없었던 8인교 가마를 선물했는데 이것을 타고 다니는걸 본 서태후가 분노하며 그 가마를 다 때려 부숴버리도록 명령했다고 하죠

또한 1895년, 서태후의 60살 생일을 맞이 했을때 관례에 따라 비빈들을 모두 승급시키면서 진비도 원래 진빈에서 진비로 승급이 되었어야 했는데요

승급 의식을 하기 위한 준비작업 도중 갑자기 서태후는 진비를 귀인으로 강등시켜버렸죠

알고보니 진비가 매관매직을 했던것입니다

 

이를 알게된 서태후는 그녀를 불러와 자백을 할때까지 구타를 가했고 얼마나 심하게 두들겨 팼는지 진비의 코와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이를 꽉 다문채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기절했다고 하죠

서태후는 진비가 매관매직을 할때 광서제도 도와줬다는 사실을 알고 그가 문안인사를 올리러 왔을때도 일부러 문안인사를 받지 않았고 그렇게 광서제는 2시간동안 무릎을 꿇은채로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나서 서태후는 광서제에게 니가 진비를 단속하지 못하니 내가 하겠다고 하면서 그녀가 가법을 무너뜨리게 할수 없고 조정에 관여하게 할수 없다고 소리쳤다고 하죠

결국 광서제도 진비를 커버 쳐주지는 못한채 진비와 근비는 귀인으로 강등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진비에게 더 큰 시련은 이후에 벌어지게 되는데요

 

광서제는 더이상 허수아비 황제 노릇을 그만두고 나라를 근대화 시키기 위해 1898년, 변법자강운동을 진행 시켰던 것입니다

이때 진비 역시 광서제의 근대화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으며 광서제에게 정신적으로 큰 의지가 되어 주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너무나도 급진적으로 진행된 근대화로 인해 서태후와 청나라 보수파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고 이들을 위안스카이에게 감시를 맡겼지만 오히려 그가 광서제를 배신하고 서태후에게 모든걸 일러바치면서 변법자강운동도 실패하고 광서제 역시 유폐되고 만것입니다

그렇게 광서제와 함께 지내던 진비도 유폐되어 그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죠

 

그렇게 진비는 냉궁에 갇히게 되었는데 모든 문은 굳게 잠겨버렸고 그녀에게 주어진 식사도 하인들이나 먹을만한 열악한 수준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자신외엔 아무도 없었기에 혼자 외로이 있을수 밖에 없었죠

또한 명절이나 보름날과 같은 모든사람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날에는 서태후의 명령을 받은 태감 한명이와서 진비에게 온갖 욕과 훈계를 퍼부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럴때마다 진비는 무릎을 꿇은채 오랜시간 온갖 욕설을 들었어야 했다고 하죠

 

그러던 1900년 7월, 의화단 사건이 벌어지면서 8국 연합군이 북경으로 쳐들어오자 서태후는 광서제를 데리고 급히 피난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서태후는 진비를 불러오라고 했는데 그녀는 유폐되어 있는동안 얼마나 심한 고통을 당했는지 과거에 생기발랄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너무 초췌한 몰골에 눈빛이 흔들리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고 하죠

 

그런 그녀에게 서태후는 "너는 너무 예뻐서 함께 탈출하다가 적들에 의해 몹쓸짓을 당할수도 있다" 라고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러자 진비는 서태후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무릎 꿇고 앉은채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했다고 하죠

하지만 서태후는 급하게 피난을 떠났어야 했기 때문에 "누가 저년을 죽여버려라" 라고 소리를 쳤고 이에 환관 최옥귀가 진비를 강제로 우물에 밀어 넣어버리면서 그렇게 진비는 24살의 나이로 서태후에 의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 내용은 정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모습을 목격한 한 태감의 회고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고 하죠

또한 이 이후로 진비에 대한 기록이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걸 보면 그녀가 이때 세상을 떠난건 확실한것 같다고 합니다

어쨌든 결국 청나라는 8국 연합군에 개박살이 나고 신축조약을 맺으면서 전쟁은 끝이 났고 그렇게 광서제와 서태후도 다시 북경으로 돌아올수 있었는데요

 

훗날 진비의 가족들이 우물에서 그녀의 시신을 건져 올릴때도 광서제는 유폐당한 상태라서 진비의 모습을 보지 못했으며 이를 안타깝게 여긴 광서제의 시종 중 한명이 그곳에 가서 진비가 생전에 썼던 낡은 휘장 하나를 숨겨와 광서제에게 갖다줬는데 광서제는 아무말없이 멍하니 이것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하죠

광서제는 사랑하는 진비를 위해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는 것과 진비가 세상을 떠났다는것에 큰 충격을 받아 자주 앓아 눕게 되었고 그 역시 젋은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비록 매관매직이라는 나쁜짓도 하긴 했지만 서태후에 의해 휘둘린 진비와 광서제 두사람의 불행한 삶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평생 꼭두각시 황제 노릇을 하던 광서제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준 여인 진비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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