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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쿠마리.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으로 숭배받다가 버림받는 어린 소녀들

by 사탐과탐 202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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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는 어린 소녀들을 살아있는 여신으로 숭배하는 종교 문화가 있습니다.
그 어린 소녀들은 '쿠마리' 라고 불리는데요.
살아있는 여신으로 숭배받다가 쿠마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버림받기도 했습니다.

 

 

네팔에는 옛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는데요.

옛날옛날 네팔에는 자야 프라카시 말라 왕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신 탈레주가 현신을 해 그를 찾아왔죠.

둘은 금세 친해져 밤새 트라파사 라는 주사위 게임을 했는데요.

주사위 게임이 너무 재미있었는지 매일 밤 탈레주가 찾아오는 것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말라왕은 자신의 끓어오르는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신 탈레주를 강제로 겁탈하려 했지만 여신은 왕의 행동에 격노하며 그 뒤론 왕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신의 노여움을 산 것이 두려웠던 말라왕은 탈레주 여신을 위한 사원을 짓고 거기서 밤낮으로 용서를 빌었죠.

그러자 탈레주 여신이 왕의 꿈속에 나타나 "초경을 겪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어린 여자아이를 뽑아서 나의 분신으로 삼아 섬기거라" 라고 말한 뒤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여신 탈레주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 이후로 네팔에서는 어린 여자아이를 선발해 탈레주 여신으로 여기며 섬기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이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말 그대로 쿠마리로 뽑힌 여자아이는 사람들에게 여신이 되었는데요.

살아있는 여신이 되어야 하는 만큼 쿠마리로 선발되는 과정은 꽤나 까다로운 편이었습니다.

네팔의 네와르족 중에서 석가모니의 후예라고 여겨지고 있는 성씨인 샤캬(Shakya) 가문이나 바즈라차르야(Bajracharya) 가문에서 태어난 2세에서 5세 정도의 여자아이만 쿠마리가 될 수 있죠.

 

그리고 피는 불경하고 불길하다 여겼기 때문에 쿠마리가 될 아이는 피가 났으면 안 됐고 그렇기에 몸에 흉터가 있어서도 안되며 월경을 시작해서도 안됐습니다.

또한 오리를 닮은 발과 손이라든지, 사슴의 허벅지, 사자의 가슴, 홍합같이 길고 매끈한 목, 참새 같은 목소리, 반얀트리 같은 몸 등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외모에 대한 32가지의 조건도 통과했어야 했죠.

 

외모 테스트를 통과한 쿠마리 후보 소녀가 기다리고 있는 두 번째 테스트는 바로 전임 쿠마리가 사용하던 도구나 장신구 등을 고르는 시험이었는데요.

여신과의 영적 교감이 원활하다면 당연하고 쉽게 고를 수 있기에 생긴 시험이었죠.

그리고 나서 세 번째 테스트는 자신의 감정을 잘 나타내지 않도록 담력 테스트 같은 걸 했는데요.

 

(쿠마리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머리가 없는 동물들의 시체나 아니면 동물들의 머리 등을 사원 마당에 널부러 트려 놓고 기괴한 형상의 마스크를 쓴 남자들이 괴상한 춤을 추는데 쿠마리 후보 소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하룻밤 동안 혼자 이 공포를 견뎌야 했죠.

이 모든 걸 다 견뎌낸 소녀는 비로소 쿠마리가 될 수 있었는데요.

이 쿠마리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로얄 쿠마리'와 다른 도시나 마을에 있는 10명의 '로컬 쿠마리'로 총 11명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각 지역의 쿠마리마다 자유도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죠.

심지어 카트만두에 로얄 쿠마리는 굉장히 엄격한 규율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데 그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사원에서 지내야 하고 특별한 행사가 아닌 이상 절대 사원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또한 교육은 개인 과외를 받는다 쳐도 학교를 다니지 못해 사회성 또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떨어지게 되죠.

 

그리고 파탄과 박타푸르 지역의 쿠마리는 비록 부모의 집에서 지내지만 종교 행사가 없으면 집 밖을 나가지 못합니다.

또한 학교도 다니지 못했죠.

이 세 지역의 쿠마리들은 네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법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어린 소녀들에게 감정을 잘 나타내지 않는 교육과 철저한 표정 관리도 시켰는데요.

 

(쿠마리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게다가 쿠마리가 크게 울거나 웃으면 심각한 병에 걸릴 것을 암시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눈을 문지르는 것은 죽음을 암시했죠.

또한 몸을 부르르 떨면 감옥에 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부자가 된다거나 건강해진다거나 하는 암시도 많지만 그런 암시들 때문에 쿠마리가 된 어린아이들의 행동이나 표정 하나하나가 신도들에게는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그렇다 보니 신도들 앞에서 함부로 감정을 나타내서는 안되고 표정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이었죠.

 

이는 한참 울고 웃고 해야 하는 어린 여자아이들에게는 참기 힘든 고역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원 안에서 또는 집 안에서만 자라는 쿠마리들이 어릴 때 부모나 또래 친구들과 지내며 익히고 배워야 하는 여러 가지 감정이나 행동, 사회성 등을 하나도 배우지 못하고 사회에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적응 또한 쉽지 않죠.

거기다가 더 큰 문제는 쿠마리로써 철저히 절제된 삶을 살다가 다쳐서 피가 나거나 초경을 하는 순간 살아있는 여신에서 부정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기도 하는데요.

 

20세기 때만 해도 네팔 정부에서 조차 이 문제에 대한 대처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쿠마리의 일을 마친 소녀들은 천대받기도 했고 부정 탄다고 가족들에게도 버려지기도 했으며 쿠마리였던 여자들과 결혼을 하면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는 속설도 퍼져 결혼하기도 쉽지 않았죠.

 

(쿠마리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다 보니 여러 국가들에서는 네팔 정부에 아동 인권침해에 대한 수많은 지적을 했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쿠마리가 학교도 갈수 있게 해주고 부모님과 함께 살수 있게 해주는 등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쿠마리였다가 은퇴를 한 소녀들은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는다고 하죠.

현재는 속설도 많이 사라져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평범한 삶을 사는 전 쿠마리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쿠마리들도 있기 때문에 인권 논란은 여전하죠.

여담으로 한 쿠마리는 월경을 하지 않아 30년이 넘게 쿠마리로 존재했다가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쿠마리 신으로 여겨 50살이 넘은 현재까지도 신도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믿는 신을 실제로 보지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실제로 볼 수만 있다면 그보다 감사한 일은 없겠죠.

그렇지만 실제로 보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일부로 그리고 강제로 만든 신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 같기도 하네요.

신을 실제로 보고 싶은 인간들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여신 쿠마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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