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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엘 클라시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원수 지간이 된 숨겨진 이야기

by 사탐과탐 2021.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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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클라시코는 한일전 못지 않은 치열한 경기가 펼쳐지는데요.
우리들이 한일전을 무조건 이겨야만 하듯이 스페인의 엘 클라시코 또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왜 철천지 원수 지간이 되었을까요?

 

 

엘 클라시코라고 아시나요?

스페인 최고의 명문 축구 클럽인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축구에 대해 관심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데요.

바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이 두 팀이 하는 경기를 엘 클라시코라고 부르죠.

그런데 두 팀의 경기는 여느 축구 경기와는 느낌이 다릅니다.

 

바로 우리나라가 한일전을 할 때 만큼 경기도 치열하고 관중들 역시 눈에 불을 켜고 경기를 관람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서로 얼마나 승리를 갈망하면 한 팀이 시즌 1위를 하고 있어도 엘 클라시코를 졌다는 이유로 감독 자리가 흔들거릴 정도입니다.

2018-19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줄렌 로페테기 감독은 중위권 팀들에게도 패배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기도 했지만 엘 클라시코에서 1-5로 대패하자 다음날 바로 경질이 되어 버렸죠.

 

20세기 중후반까지만 해도 양 팀 선수들은 철천지원수에 가까웠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그나마 감정 싸움이 약해졌다고 하죠.

그러나 감정싸움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축구 외에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농구에서도 엘 클라시코가 치열하게 벌어질 정도이죠.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이 두 팀이 이렇게 된 이유는 바로 약 1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이슬람 세력이 장악하게 되면서 그곳에서 살던 다른 왕국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북쪽으로 쫓겨나게 되었죠.

그러자 8세기부터 13세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국토 회복 운동인 레콩키스타가 시작되게 되었는데요.

 

(레콩키스타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 발렌시아 왕국 그리고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 군주국 등이 이 이베리아 반도 북쪽에 포진해 있었죠.

그러던 중 아라곤왕국의 여왕과 카탈루냐 군주국의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바란게 4세가 결혼을 하고 또 발렌시아 왕국 등 여러 왕국들이 서로 연합하면서 아라곤 왕국은 아라곤 연합왕국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과 아라곤 연합왕국의 페르난도가 결혼을 하면서 두 나라가 합쳐지게 되었고 수백 년간 이슬람 세력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1492년에 마침내 그라나다 왕국까지 정복하며 레콩키스타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왕국 왕들의 결혼으로 두 왕국이 합쳐졌다고는 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완벽히 통일된 왕국은 아니었고 그렇게 따로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며 그렇게 지내고 있었죠.

 

아라곤 연합왕국의 실질적 실세인 카탈루냐 왕국 또한 카스티야 왕국의 간섭 없이 카탈루냐만 따로 정치적으로 분리가 돼있었고 문화나 언어가 다른 카탈루냐는 계속해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고 식민지 개척이 활발해지며 카스티야 왕국은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되었고 지중해 무역을 주로 하던 카탈루냐는 점점 힘이 약해지게 되었죠.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과 아라곤 연합왕국의 페르난도)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연합왕국은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고 각기 다른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중 외국인이라는 느낌이 강했던 카를 5세가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연합왕국의 왕이 되면서 카탈루냐를 포함한 스페인 각지에서는 카를 5세를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카를 5세는 반란군에 대한 무자비한 토벌을 감행했고 수많은 카탈루냐인들을 무참히 살해했으며 카탈루냐를 카스티야 왕국의 일개 지방이나 지역 정도로 만들어 버렸죠.

이후에 1635년 프랑스와 스페인 전쟁에서 카탈루냐는 프랑스 편을 들었을 정도로 독립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역시 카탈루냐의 반란군은 스페인 정부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당하고 말았죠.

시간이 지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승리한 펠리페5세는 카탈루냐의 전통 법 체제와 의회를 폐지해 버렸고 또한 카탈루냐어의 사용도 금지시켜 버렸습니다.

그렇게 카탈루냐는 마드리드 중앙정부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죠.

그러나 스페인 제국으로 통합이 된 카탈루냐는 식민지 무역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이는 급격한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19세기 이후에는 경제적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카탈루냐인들은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마드리드 중앙 정부의 간섭 없이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결정하겠다는 열망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 카탈루냐인들은 FC 바르셀로나가 축구 경기를 하면 열렬히 응원하는 것으로 카탈루냐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페인 제국이 점점 힘을 잃어가기 시작하면서 카탈루냐는 결국 자치 정부의 설립을 허가 받게 되었고 카탈루냐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완전히 스페인에서 통일한 것은 아니었죠.

그러나 오랫동안 광적으로 대립해온 두 개의 스페인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아 격하게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죠.

스페인 내전으로 권력을 잡은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카탈루냐를 포함한 스페인 모든 지역을 잔인하게 탄압했는데요.

그는 카탈루냐의 자치 정부를 없애고 심지어 카탈루냐기와 카탈루냐어의 사용까지 금지시켰습니다.

 

또한 FC 바르셀로나를 스페인어 식의 표기인 CF 바르셀로나로 바꿔버렸고 로고 역시 'F.C.B'에서 'C.F.B'로 바꾸면서 로고 속 카탈루냐기 또한 없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마드리드와 중앙 정부에 대한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스페인 국왕컵 축구 대회가 열리게 되었고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준결승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핍박 받아온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분노가 녹아 있었는지 FC 바르셀로나는 1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3:0으로 완벽하게 승리했죠.

 

그런데 2차전에서는 11:1이라는 엄청난 스코어로 충격적인 패배를 겪었습니다.

사실 2차전이 열리는 날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대기 중이던 라커룸에 프랑코의 부하가 찾아와 이기면 모두 죽여버린다는 협박을 했고 이 사실은 경기가 끝나고 나서 선수들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죠.

스페인 축구 협회에서는 이 2차전 경기를 무효로 선언했지만 이 이후로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사이가 더욱 틀어져 버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코가 죽고 난 뒤 카탈루냐는 다시 자치권을 되찾아 자치 정부를 설립했고 2014년에는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주민 투표를 하기도 했지만 스페인은 인정하지 않았죠.

2017년 9월에는 카탈루냐 주의회에서 주민 투표법이 강행 통과되면서 같은 해 10월 1일 분리 독립 주민 투표가 실시 되었습니다.

그리고 27일 카탈루냐 의회에서는 독립 선포안 투표에 따라 카탈루냐는 독립을 선포하며 카탈루냐 공화국이 건국되었지만 스페인 정부는 격하게 반발하며 투표 자체가 불법이라고 주장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역사상 카탈루냐 공화국은 총 4번이 생겼었지만 길게는 일주일 정도 짧게는 9시간 만에 망해버렸고 이번 카탈루냐 공화국 역시 불과 4일 만에 망해버렸습니다.

현재까지도 스페인 주 정부와 카탈루냐와의 사이는 좋지 않고 계속해서 카탈루냐는 독립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독립을 반대하는 스페인 측의 레알 마드리드와 독립을 원하는 카탈루냐 측의 FC 바르셀로나가 축구 경기를 할때면 서로 간의 앙금이 축구 경기에 표출되어 한일전 못지않게 선수도 관중도 격렬해지는 경기가 되었죠.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반해 어느 정도의 동기부여와 경기에 집중하는건 좋지만 경기 과열로 인해 이렇게 멋진 선수들이 다치거나 부상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 쿨한 경기를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엘 클라시코가 그렇게 치열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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