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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파격적으로 개방적이었던 고대 로마 성 이야기

by 사탐과탐 2021.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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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시대 성문화는 요즘처럼 헌팅도 하고 이성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매우 개방적이다 보니 동전에까지 성과 관련된 행위를 새겨 넣었죠.
성에 대해서 진심이었던 고대 로마 성문화 이야기입니다.

 

 

영국 런던에 사는 한 남자가 템즈강을 걷던 도중 진흙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워서 보니 그건 동전 같은 것이었고 깨끗이 씻어서 보니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동전이었죠.

그는 이 동전을 런던 박물관에 기증을 했는데 이는 '스핀트리아' 라고 불리는 동전으로 1세기 경 로마에서 많이 쓰이던 동전이라고 했죠.

 

동전 뒷면에는 1에서 16까지 숫자가 새겨져 있고 앞면에는 성관계를 할 때 하던 여러 가지 체위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일부 학자들은 '이 동전은 매춘을 할 때 사용되던 동전이었을 것이다'라고 추측하기도 했고 '동전의 문양과 숫자에 따라 매춘행위를 정해줬던 동전이다' 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죠.

또한 어떤 게임을 할 때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기도 합니다.

 

(로마 동전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이는 모두 추측일 뿐 이 동전이 언제 무엇을 할 때 쓰이는 건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죠.

아무튼 동전에까지 성행위를 묘사했을 정도로 고대 로마시대는 굉장히 성문화가 개방적이었던 것 같은데요.

 

고대 로마는 성을 아주 성스럽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겼고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한 부분으로 여겼죠.

그렇다 보니 학자들이 스핀토리아를 보고 '이는 매춘 동전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매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매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죠.

극장이나 경기장 근처라든지, 목욕탕, 평범한 음식점, 여관 등 아무 데서나 돈 만주면 매춘부를 구할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로마인들은 매춘부들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는데요.

여자이지만 남자들의 복장인 토가를 걸치고 있는 여자가 바로 매춘부였죠.

군중 속에 섞여 들어간 매춘부들은 사냥을 하듯 남자들을 유혹했습니다.

어쩔 때는 남자의 집으로 출장을 가는 매춘부들도 있었죠.

식당에서는 음식과 포도주 뿐만 아니라 노예와의 잠자리도 팔았습니다.

 

말 그대로 식당에서 밥 먹다가 그걸 원하면 돈을 더 주고 으슥한 뒷방이나 2층으로 안내되어 매춘을 했던 것이죠.

보통 매춘부들은 14살의 어린 나이에 매춘을 시작했습니다.

아니면 주인의 명령으로 노예들이 매춘을 하기도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심지어는 어머니가 딸들에게 매춘을 시키는 일이 왕왕 있었을 정도였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춘은 하나의 성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죽하면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아내 메살리나는 남편이 잠이 들면 황궁을 나와 매음굴에서 온갖 남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팔았을 정도였죠.

그리고 고대 로마의 남자들은 결혼 전 다른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여자와 성관계를 하지 않고 결혼하는 남자들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죠.

그렇다 보니 남자들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매음굴로 가서 매춘부와 잠자리를 가지기도 했고 아니면 집안의 여자 노예와 함께 성관계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대 로마시대에는 목욕탕도 많았었는데요.

중요한 건 그곳은 모두 남녀 혼탕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목욕을 하려고 가는 사람도 많았겠지만 남녀 서로가 원하는 상대를 만나러 가는 장소로도 사용이 되었죠.

또한 목욕탕에서도 원하면 매춘이 가능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클럽처럼 그냥 춤추러 가는 사람도 있지만 남녀 서로 꼬시러 가던 곳이기도 한 그런 곳이었죠.

 

게다가 이런 클럽 같은 곳은 또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극장이었습니다.

로마의 시민들은 한껏 꾸미고 극장을 향했었죠.

당시 여배우들은 굉장히 야한 복장을 하고 아주 에로틱한 공연을 많이 했었는데 공연을 보던 남녀가 서로 눈이 맞아 밖으로 나간 경우도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개선식때나 정원, 분수, 조각상들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남녀가 눈맞기 딱 좋은 곳이었죠.

게다가 교육 차원에서 남자들끼리 성적 관계를 장려하던 그리스와는 달리 로마에도 남자끼리의 동성애도 있긴 있었지만 로마 남자는 누굴 지배하면 몰라도 지배를 당하면 안 된다는 것이 뼛속 깊이 박혀있었기에 동성애에서 여자 역할을 하는 남자는 남자 취급도 안 해줬죠.

 

그런데 남자 노예였을 경우에는 주인이 원한다면 여자 역할을 해야 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의 성인 남자들은 10대 소년들과 성관계를 갖는 경우도 허다했는데요.

주로 그 10대 소년들은 노예 소년들이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워런컵에는 성인 남자와 소년의 관계 장면이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대 로마에는 자유시민이라는 일종의 계급 같은 것이 있었는데요.

자유시민 남성은 사회의 주체였고 만약 자유시민 남자가 강간을 당하면 살인에 버금가는 범죄로 여겨졌었기 때문에 가해자는 사형이 선고되었죠.

 

하지만 노예는 자유시민 남자의 사유재산 정도였기 때문에 그게 남자든 여자든 주인이 내키면 언제든지 성적인 행위를 할 수 있었고 심지어 노예는 주인 마음대로 죽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유시민 남자에게는 노예 외에도 아내나, 자녀 또한 거의 사유재산에 가까웠는데요.

사사롭게 아내와 자식들을 판매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유시민이라 할지라도 여성의 경우에는 노예와 마찬가지로 주인인 남편이나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죠.

성적인 측면에서도 노예와 거의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남의 아내를 강간하거나 불륜을 저지르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는데요.

여자를 보호한다기보다는 남자의 사유재산을 보호한다는 개념이었죠.

 

혹시나 여성이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에는 남녀 두 명 모두 사형에 처하는데 이때 여성 쪽 집안사람들이 사형집행을 했었습니다.

사유재산을 빼앗긴 남자가 복수를 할 수 있게 해준 것이죠.

피해자가 가해자의 형을 집행할 권한을 준 건 좀 괜찮은 것 같기도 하네요.

 

나중에 아우구스투스가 제정한 법에는 불륜을 하면 유배를 보내거나 재산을 압류하는 등 벌이 약해지기도 했었죠.

아무튼 고대 로마는 성에 대해 개방적이긴 했지만 여자들은 주로 남자들 몰래 바람을 피웠습니다.

 

(로마 동전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만큼 로마는 가부장적이고 철저한 남성주의 사회였는데요.

앞서 말했듯 남자는 결혼 전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맺지 않으면 부끄러워할 정도의 일이었으나 여자는 결혼 전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갖는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당시 여자는 단지 자녀를 생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혼도 사회적인 의무감에 하는 경우가 많았죠.

 

게다가 결혼한 여성들은 남편에게 의무적으로 키스를 했어야 하는데요.

여자가 와인을 마시는 것은 간통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여자가 술을 마셨는지 검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10대에 모두 결혼을 했었는데요.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면 미래의 남편집에 미리 보내서 살게 하기도 했죠.

 

서로 별 관심 없이 결혼을 하다 보니 부부가 되면 같이 자기도 했지만 귀족 가문의 부부는 서로 각방을 썼고 성관계를 하는 방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 성관계를 하는 방에서는 남편이 아내 외에 애인이나 여자 노예, 하녀, 또는 매춘부를 데려와 관계를 맺기도 했죠.

남자는 성적 충동을 주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들에게 해소 한 것입니다.

 

어쨌든 결혼이 굉장히 쉬우니 이혼 또한 굉장히 쉬웠는데요.

증인 7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대에게 이혼을 알리는 걸로 이혼이 된 것이죠.

하지만 이것도 남자에게 해당하는 사항이었습니다.

남자는 여러 여자들과 잠자리를 가져도 상관이 없었지만, 여자는 바람을 피워선 안됐죠.

 

다만 상류층 여성들은 엄격한 원칙에 크게 구애받지는 않았습니다.

다양한 애인들을 만났고 절제되지 않은 성행위를 하기도 했죠.

당시 검투사는 굉장히 인기가 많은 남성상이었는데요.

남편이 어디론가 멀리 출장을 가면 검투사 학교에 가서 원하는 검투사를 골라 사랑을 나누기도 했을 정도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로마의 황제들의 성생활도 화려했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남편이 있는 여자를 유혹해 빼앗기도 했고 나이 어린 사춘기 소녀와도 잠자리를 즐겼다고 하죠.

거기다가 연회 중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 신하 아내의 손을 잡고 그녀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는데 그 둘이 다시 연회 자리로 돌아왔을 때 여자의 머리카락이 엄청 헝클어져 있었다고 하죠.

 

또한 티베리우스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여자들과 동성애자들을 불러 자신의 별장에서 쾌락 파티를 벌였고 칼리굴라는 누이들과 근친상간에 궁으로 초대한 손님들의 부인들과도 관계를 가졌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고대 로마의 성문화가 얼마나 개방적이고 활발했는지는 이것 하나로 결론이 날 텐데요.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성관계 장면을 그린 그림들과 온갖 욕설과 음담패설로 뒤덮여있는 폼페이 사창가 유적지를 보면 알 수 있죠.

어떻게 보면 확실히 고대 로마나, 그리스, 이집트 등 고대 문명들은 성적으로는 부끄러운 것도 없었고 찐으로 진심이었다는게 느껴지긴 하네요.

오히려 요즘이 더 폐쇄적인 것 같기도 하구요.

 

재미로 알아본 고대 로마의 성문화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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