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 라는 희대의 망언과 악녀 이미지로 유명한 프랑스 왕비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모두 날조되고 거짓된 사실이라고 하는데요.
그녀는 왜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해 끝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을까요?
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악녀로 평가되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바로 루이 16세의 아내이자 프랑스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 이죠.
그녀는 허구헌날 파티를 벌이며 사치와 향락에 빠져 엄청난 국고를 낭비하고 굶주린 백성들이 뭘 먹고 사는지는 관심도 없던 아주 못된 왕비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데요.
사실 그녀의 악녀 이미지는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미지였습니다.
프랑스의 왕비로써 특별히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사치는 다른 여왕들보다 덜 부렸으며 딱히 부적절한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그 시대가 원한 것은 왕정시대가 아니었고 혁명이 필요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비극으로 다가온 것이죠.
심지어 마리 앙투아네트가 말한 것 중 최고로 개념 없는 말로 여겨지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 라는 말은 사실 그녀가 한말이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루소의 <참회록>에 나오는 한 구절이라고 하죠.
그러나 이 말 한마디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악녀가 되어버렸고 백성들이 굶어 죽든 말든 별 관심 없던 철딱서니 없는 여왕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어쩌다 그녀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욕을 들어먹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1755년 11월 2일 오스트리아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로렌 공작 프랑수아 3세와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에서 태어난 마리 앙투아네트는 쇤브룬 궁전에서 춤이나 그림, 피아노 등을 배우며 무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죠.
미인이었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유전자를 잘 물려 받아서 그랬던 걸까요.
피부가 아주 하얗고 예뻤다고 하죠.
또한 그녀의 가슴둘레는 D에서 F컵 정도 되었고 당시 기준으로는 다른 왕족들과는 달리 마른 몸매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심하지는 않았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의 유전병인 주걱턱과 매부리코를 물려받아 치아교정을 했고 부채로 가리고 다녔다고 하죠.
당시 독일 지방에 프로이센이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이를 견제할 필요를 느꼈고 그 동맹의 증표로 1770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결혼시켰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 15세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남편이 왕위에 오르자 그녀는 10대의 어린 나이로 왕비가 되었죠.
그러나 그녀는 당시 왕비답지 않게 신분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줬습니다.
어느 날 루이 16세가 사냥 중에 어느 한 농민을 다치게 한 적이 있는데요.
그러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직접 그에게 달려가 간호를 해주며 피해를 입은 만큼 확실한 보상을 해줬다고도 하죠.
그리고 딸인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 공주가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로 비싼 선물을 달라고 떼를 썼을 때는 "궁전 밖에는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많으니 따뜻한 잠자리와 먹을 음식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라고 말했다고 하죠.
또한 그녀는 프랑스 역대 왕비들에 비해서는 매우 검소한 편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왕족들은 베르사유 궁전을 지은 뒤 엄청난 사치를 부렸는데요.
이런 프랑스 궁정 환경과는 잘 맞지 않았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쁘띠 트리아농 궁으로 거처를 옮겨 가구도 원래 있던걸 그대로 쓰고 인테리어 하는데도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고 하죠.
또한 그곳에서 가축들을 키우기도 하며 조용한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사는것 조차 대중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했죠.
이유는 그녀가 친한 사람들 조금만 궁으로 불러 파티를 열었었는데요.
그러다보니 국민들은 '외국인 출신 왕비라서 저런다' 라는 비난의 소리가 흘러나왔고 초대되지 못한 귀족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왕비가 친한 사람들만 챙기면서 지네들끼리 권력을 나눠먹는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가 결혼할 때 쯤에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사이는 별로 좋지 못했었는데요.
새로운 강국 프로이센의 견제를 위해서 손을 잡긴 했지만 오랜 시간 피 튀기며 싸워온 감정의 골은 쉽게 메워지질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국민들에 대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여론은 애초에 시집올 때부터 그다지 좋지 못했죠.
평생 동안 오스트리아의 스파이, 오스트리아년 등의 욕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최악의 이미지로 굳혀지고 있을 때쯤 이미지가 완전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1785년에 일어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이죠.
라모트 백작 부인이 마리 앙투아네트와 친하다며 로앙 추기경을 속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게 만든 후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중간에서 가로챈 사기 사건이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지만 이미 국민들에게 사치스러운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사기 사건 배후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있을 거라고 믿어버린 것이죠.
심지어 재판을 통해 진범이 누군지 알려지면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무 연관이 없는 것까지 밝혀졌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소문들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고 왕비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매일 밤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파티를 여는 방탕한 여인으로 만들어버렸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789년 7월 14일, 무능했던 루이 16세의 정치와 여러 가지 불만들이 쌓이다 결국 폭발한 프랑스 국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며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게 됩니다.
사실 혁명 초반에는 루이 16세도 혁명을 지지 했었지만 점점 실권을 하나씩 빼앗기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군대조차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기에 이르자 생명에 위협을 느낀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1791년 6월, 몰래 베르사유 궁전을 빠져나가 오스트리아 근처로 도망을 가다 바렌에서 붙잡혀버렸고 결국 남편인 루이 16세는 반역죄로 1793년 1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죠.
마리 앙투아네트는 온갖 혐의를 다 받게 되었는데요.
국고를 낭비한 죄와 오스트리아와 결탁한 죄, 부패한 죄, 루이 16세를 타락시킨 죄, 백성들을 기만한 죄, 프랑스를 멸망시키려 한 죄, 전쟁을 유발시키려 한 죄 등 별의별 혐의가 다 씌워졌죠.
또한 아들 루이 17세를 근친상간했다는 혐의도 제기되었는데요.
재판 내내 여왕으로써 품위를 잃지 않으며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 혐의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답했다고 하죠.
그러자 재판장에 있던 여성들이 마리 앙투아네트에 동조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대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있던 아들 루이 17세가 어머니에게 겁탈 당했다는 증언을 해서 이 어처구니 없는 혐의까지 추가되며 사형이 확정되었죠.
왕실 전용 황금마차를 타고 정중한 호위를 받으며 단두대로 이동했던 루이 16세와는 달리 그녀는 정말 초라한 대우를 받게 되는데요.
머리카락을 잘리고 허름한 옷을 입게 되었으며 가축을 수송할 때 쓰이던 마차에 실려 프랑스 국민들에게 온갖 욕을 먹으면서 단두대로 향하게 되었죠.
그렇게 단두대에 오른 그녀는 실수로 사형집행자의 발을 밟고 말았는데요.
그러자 "미안해요, 일부로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라고 사과했다고 하죠.
그렇게 그녀는 1793년 10월 16일.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아들 루이 17세 또한 불과 2년 후 감옥에서 결핵으로 사망하게 되었죠.
후대의 역사가들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지은 잘못에 비해 너무나도 큰 벌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미 사이가 좋지 않던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온 것 자체가 비극의 시작이었고 그 때문에 프랑스 국민들은 그녀가 뭔 짓을 해도 욕하기 바빴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프랑스 혁명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말 나쁜 인물들이 되었어야 했기에 시대의 흐름상 자신들이 다르게 바꿀 수는 없었을 거라고 봐야 하겠네요.
사실 사치스러운 악녀가 아니었으며 적국에 시집을 와, 여왕이었지만 국민들에게 인정은 커녕 욕만 먹다가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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