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역사상 최대 병력을 동원한 전쟁이었지만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 되어버린 통주전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한반도 역사상 최대규모의 패전 중 한번이
제 2차 고려거란 전쟁에서 일어나게 되는데요
이 전투가 바로 통주전투 이죠
통주전투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거의 천년의 시간이 흐르는동안 이정도의 병력이 투입된 적이 없을만큼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대병력을 투입했던 전투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때 고려군은 병력면에서도 거란과 꿀리지 않았고
심지어 여러번의 전투에서 승리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총사령관이 잡혀버리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되죠
오늘은 최악의 패전인 통주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994년 1차 여요전쟁이 끝이나고
표면적으로 고려는 송나라와의 국교를 끊은듯 했지만
사실 비밀리에 '우리는 송을 따르고 있고
요나라(거란)를 증오한다'라는 내용의 국서를 보내기도 했죠
이 사실을 요나라에서도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송나라와의 전면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요나라는 송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전연의 맹'을 맺게 되었고
송나라는 매년 막대한 양의 재물을 요나라에 바치는 신세가 되어버렸죠
그리고나서 뒤늦게 강동 6주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을 깨달았던 요나라는
고려와의 관계를 다시 설정할 필요를 느꼈지만
고려를 공격하기 위한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려내에서 강조가 천추태후와 김치양, 그리고 목종을 몰아내고
현종을 왕위에 올리는 강조의 정변이 일어났죠
그리고 고려는 거란에 '목종이 사망해 새로운 현종이 즉위했다'고 알렸고
이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여진족들에 의해 발생하게 됩니다
1010년 봄, 화주를 방어하고 있던 고려의 유종이라는 인물이
고려 조정에 조회를 가기위해 화주에 들어와있던
여진족 추장과 수행원 95명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사건이 일어난것이죠
그러자 고려에 원한을 품은 여진족이 요나라에 찾아가
강조가 정변을 일으켰다고 알려주면서 자신들의 원한도 갚아달라한것입니다
기회는 이때다 라고 생각한 요성종은 모반을 일으킨 강조를 처벌해야 하고
약속과는 다르게 송나라와 교류를 이어온것을 구실로 삼아
40만명의 대군을 일으켜 직접 고려로 침공해온것이죠
그리고 현종은 30만명의 병력을 동원하고
강조를 행영도통사에 임명해 전쟁의 전권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1010년 겨울, 요성종이 마침내 압록강을 건너
최전방 요새인 흥화진을 포위한뒤
그곳을 지키던 양규와 이수화 등 고려 장수들에게 항복을 권유했지만
실패하고 말았고 이에 요성종은 흥화진을 공격하기 시작했죠
당시 흥화진의 병력은 고작 3천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양규와 정성, 이수화 등이 이끄는 고려 방어군은
죽음을 무릅쓰고 거세게 저항해 몇차례에 걸친 요나라의 공격을 막아내 버리는데요
거란군은 고려군의 사기를 꺾기 위해
고려의 아이들과 노인들을 성밖에서 잔인하게 학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우노와 정노, 그리고 마름쇠 등으로 완벽하게 준비를 해놓았던 덕에
거센 거란군의 공격을 막아낼수 있었죠
그리고 재정비를 한뒤 다시 흥화진을 공격해 온 거란군은
이번엔 성문을 부수려고 했지만
양규는 거란군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버리면서
그들의 공격을 저지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13일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에서 결국 거란은
양규가 지키는 흥화진을 함락시킬수 없었고
이에 요성종은 흥화진을 버리고 고려의 주력이 있는 통주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죠
하지만 흥화진을 지키던 고려 군사들에게 뒤통수를 맞을까봐 두려워한 요성종은
흥화진 앞 무로대라는 곳에 20만명이나 되는 대군을 남겨둔채
통주를 향해 진격했습니다
양규가 흥화진에서 해낸 결사 항전의 성공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는데요
3천명 밖에 안되던 고려군이 거란의 40만 대군의 발을 묶어둔데다가
거란군 총 병력의 반을 남겨두고 내려갔어야 할 정도로
그들을 두려워 하게 만든것이죠
한편 고려군 총사령관이던 강조는
30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통주성 남쪽에 도착했고
이후 강조는 군을 셋으로 나눠 자신의 본대는 삼수채에
그리고 나머지 1개 부대는 통주 근처 산에
그리고 다른 한부대는 통주성 인근에 진을 치고
거란군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11월 24일, 마침내 삼수채 벌판에서 거란군과 전투를 치르게 되었죠
거란군의 주력인 기병의 강력한 돌격을 막기위해
고려에서는 검차(劒車)라는 것을 만들어 전투에 임했는데
이 검차 덕분에 거란군 기병은 전혀 힘을 발휘할수 없었으며
거란은 하루에 10번이 넘는 파상공세를 퍼부었지만
결국 거란 기병들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첫 전투는 고려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치뤄진 몇번의 전투에서도 거란군이 맥을 못추자
고려군 총사령관이던 강조는 점점 거란군을 얕보기 시작했는데요
방심한 강조는 지휘는 내팽개치고 부하와 바둑을 두면서 놀았는데
이때 거란군의 장수인 야율분노와 야율적로가
강조가 이끌던 고려군 본대를 기습 공격해왔죠
정면승부를 해서는 굉장히 어려운 싸움이 될거라 생각한 거란군은
고려의 진영을 빠르게 치고 빠지는 식의 기습작전을 펼쳤던 것입니다
이때 바둑을 두고 있던 강조에게도 적이 쳐들어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 강조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죠
심지어 강조는 보고하러온 병사에게
"입안의 음식처럼 적군이 적으면 좋지 않으니
많이 들어오게 놔두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강조는 거란군을 진영 깊숙히 끌어들인 뒤에
완전히 전멸 시킬 생각 이었지만
이때 고려의 본대를 공격한 거란군은 최고 정예군이던 우피실군이었고
고려군 본대는 다른 고려군 부대가 미처 도와줄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강조가 있던곳까지 돌파 당해버린 것이었죠
그리고 30만 고려군을 이끄는 총사령관 강조가
그만 거란군에 붙잡혀버리는 참사가 일어나버렸습니다
뿐만아니라 동시에 수많은 장수들이 포로가 되거나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죠
거기다가 지휘관을 잃은 고려의 병사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말았으며
병사들은 무기며 갑옷이며 다 집어던지고
다들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에 거란군은 집요하게 도망친 고려군을 추격해
3만여명이나 되는 병사가 전사해버렸고
이때 거란군에 빼앗긴 병장기와 군량이 어마어마했다고 하죠
강조가 거란군에게 붙잡히기 직전
죽은 목종의 혼령이 강조 앞에 나타나
"네놈은 천벌을 받는 것을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호통을 쳤고
강조는 즉시 투구를 벗고 무릎꿇은채 죽을 죄를 지었다며 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들이닥친 거란군에 붙잡혔고
강조는 담요에 말려 요성종 앞으로 끌려가게 되었죠
이후 요성종은 강조에게 항복을 권했지만
그는 항복하기를 거부했고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더 적은 피해로 거란군을 막아낼수도 있었을 전쟁을
강조의 어이없는 방심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고 만것이죠
이 통주전투로 인해 수많은 고려의 지휘관들이 삭제되다시피 해버렸으며
수많은 고려 병사들이 곽주 방면으로 도망치다가
최소 3만명 전사라는 뼈아픈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거란군은, 도망치던 고려군을 쫓아 완함령까지 내려왔는데
다행히 김훈과 김계부, 신영한 등이 완함령 인근에 매복해 있다가
고려군을 추격해온 거란군을 기습해 더이상의 추격을 막아낼수 있었고
그렇게 고려군은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오지 않고 퇴각할수 있었죠
고려군 본대를 쳐부숴버린 거란군은 기세등등하게 통주성을 공격했지만
고려군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결국 다시 개경을 향해 남하하게 됩니다
통주전투의 대패로 인해 이후 곽주성이 함락되어 버렸고
결국 현종은 수도 개경을 포기하고
나주까지 몽진을 떠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죠
결과적으로는 양규가 흥화진에서 거란군의 후방을 위협하기도 하고
곽주를 탈환하기도 하는등 맹활약한 덕분에
요성종은 개경을 잠깐 점령하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채 결국 요나라로 퇴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통주전투는 고려 역사상 가장 큰 패전이자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패전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죠
사탐과탐 다른 포스팅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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