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한반도에서 사람을 해치던 생각지도 못했던 짐승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1894년 2월 조선에 입국해 4년 동안 한반도를 답사한 후
조선말의 생활상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남긴 기록 중에 "조선사람들은 1년의 반은 호랑이를 쫓느라고 보내고
나머지 반은 호랑이에게 잡아 먹힌 사람의 문상을 가느라 보낸다"라는 말이 있죠
그만큼 호랑이 때문에 피해를 봤던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인데요
때문에 호랑이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툭하면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산골에 사는 사람들이나
지나가던 여행객들을 공격해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참다못한 사람들이 호랑이를 잡는 특수부대인 착호군을 만들 정도였다고 하죠
그런데 사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해쳤던 한반도의 호랑이들이
사실은 호랑이가 아니었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호랑이에게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던 사람들 중 무려 절반이나 되는 사람이
바로 호랑이가 아닌 표범에게 물려갔을 거라고 하는데요
표범은 아프리카나 인도에만 있는 동물인 줄 알았는데
조선에 표범이 있었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 한반도에도 1970년까지 서식했던 '아무르 표범'이라는 존재가 있었다고 합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표범이 동예의 특산품이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아무르 표범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죠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 사이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에도 줄무늬 호랑이와 꽃무늬 표범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봐서
표범이 그 시절에도 이미 한반도에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리고 조선왕조 실록에서도 표범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여말선초 시기에 김덕생이라는 무관이 있었는데
태조실록 1권을 보면 1395년 김덕생이 태종 이방원을 따라 사냥을 나갔다가
갈대 속에 엎드려있던 큰 표범이 갑자기 뛰어나와서 태종을 습격하려는 걸 보고는
활로 표범을 쏘아 죽여서 태종을 구해낸 공으로
태조에게 말 한필을 하사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네요
세조도 표범 사냥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공격을 받으며 목숨이 위험해질 뻔했는데
이때 자신을 구해준 낭장의 아버지에게 어의를 보내 그의 병을 치료해 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기록을 보면 조선의 조정에서는
확실히 표범이란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 같은데
어째서 우리에게는 표범과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도 전해지지 않은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옛날의 백성들이 굳이 호랑이와 표범을 구분해서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직 생물학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는
표범과 호랑이가 다른 종이라는 인식 자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과거부터 한반도에서 표범은 호랑이와 함께 '범'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고
민간에서는 표범과 호랑이를 같은 종으로 여기며
표범을 암컷 호랑이라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죠
때문에 예전 기록 중에 '범' 또는 '호랑이'라 기록된 것 중의 절반은
표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물론 교육을 많이 받은 지식층이나 역사기록물에서는 호랑이와 표범을 확실히 구분했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산골마을 같은 곳에서는
호랑이와 표범을 아예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때문에 각 지역마다 전해지는 설화 같은 곳에서 등장하는 호랑이들 중
진짜 호랑이가 아니라 표범을 두고 만들어진 이야기도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민화'라고 하죠
19세기 무렵 그려진 '월화송림호족도'를 비롯해서
호랑이가 등장하는 각종 민화들을 보면
의외로 쉽게 호랑이와 표범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민화 속에서 길다란 선 모양의 무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호랑이이고
점박이 무늬를 가지고 있는 게 바로 표범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실제 호랑이와 표범의 사진을 봐도 알 수 있죠
이렇듯 표범은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반도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었지만
일제강점기가 오면서 유해한 맹수들을 제거한다는 구실로
일본인들이 무자비하게 사냥을 해대면서 급격히 그 수가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잡힌 표범의 수는 기록상으로는 600마리 정도지만
실제로 잡힌 것은 수천 마리가 넘을 거라 짐작된다고 하죠
광복을 맞은 뒤로는 표범이 사는 서식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표범의 서식지가 파괴되었으며
이후로도 계속된 사냥으로 인해 천마리 이상이 잡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1962년 합천군 오도산에서 생포된 표범이
1973년까지 창경원에서 살다가 죽은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공식적으로 발견된 표범은 없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후로도 매년 표범을 봤다는 목격담이
강원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계속해서 들리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1999년 개마고원 지역과 2000년대 초반 함경남도에서도 표범이 확인됐는데
북한이 워낙 폐쇄적인 국가다 보니 이후로는 상황을 알 수가 없다고 하죠
참고로 조선시대에 호랑이의 가죽인 호피는 두껍고 거칠어서
딱히 쓰이는 곳 없이 덮개나 깔개 정도로만 사용되었지만
표범의 가죽인 표피는 무늬가 아름답고 부드러워서
시장에서도 비싼 값에 거래되는 품목이었기 때문에
19세기 초에 쓴 '만기요람'에 따르면 표피의 값이
호피의 값보다 더 비싸게 팔렸다고 합니다
표범가죽은 무늬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표범가죽에 잡귀를 쫓아버리는 신통력까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결혼식 때 신부가 타는 꽃가마의 지붕 덮개나
집안을 장식하는 용도로도 표범가죽이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죠
한반도의 최상위 포식자였던 시베리아호랑이가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상징 같은 존재로 취급받는 것과는 달리
표범은 불과 50~60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 살던 동물이지만
인지도가 너무 낮아서 다큐멘터리나 동물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대중매체에서 표범이 나오는 장면은 거의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표범은 아프리카 등 외국에만 사는 동물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표범이 대한민국에 있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옛날 그림에 등장하는 표범들을 당연히 호랑이로 여기게 된 것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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