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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인원왕후. 영조에게 유일하게 조롱하듯 말대꾸할 수 있었던 왕실 웃어른

by 사탐과탐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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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왕후는 연잉군이 훗날 영조가 될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었던터라
영조에게 말대꾸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던 왕실의 웃어른이었던 여인이었습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사도'를 보면 영조가 어떤 대비마마에게 찾아가

"왕 노릇 못해먹겠다" 라고 하면서

"세자에게 양위 할테니까 윤허하세요!" 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나오죠

 

그때 김해숙 배우가 연기한 대비는 "윤허하오~" 라고 말합니다

 

그 무서운 영조가 역정을 내는데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약간 조롱하듯 대꾸하는 연기가 일품이었죠

 

이 강인한 면모를 보이는 대비마마는

바로 인원왕후 김씨 입니다.

 

인원왕후는 영조가 즉위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인물이기도 한데요

 

오늘은 인원왕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녀는 1687년 11월 김주신과 임천조씨의 딸로 태어났죠

 

그리고 1701년 숙종의 왕비이던 인현왕후가 죽자

곧바로 간택 되어 16세의 나이로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때 숙종의 나이는 41살이었고

훗날 경종이 되는 세자는 자신보다 1살 연하이던 15살

그리고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은 9살로

명목상 아들들과 나이차이가 얼마나지 않았죠

 

그런데 인원왕후가 간택될때 약간의 논란이 있었는데요

 

그 이유는 양반들조차 정실부인이 죽으면 3년상은 치르고

다시 재혼을 하는게 관례였는데

숙종은 인현왕후가 죽은지 1년도 되지않은 시점에

인원왕후를 새 왕비로 들였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왜 숙종은 새로운 중전을 들이는것을

이렇게까지 서둘렀는가에 대한 추측이 있는데

연잉군을 중심으로 한 숙빈최씨와 노론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것을 견제 하기 위해서

소론 집안의 여식인 인원왕후를 왕비로 들였을거라는 주장이 있죠

 

그만큼 노론의 세력이 급부상함에 따라

시도때도 없이 환국정치을 해대던 숙종이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왕비를 들이자 판윤이던 이인엽이

인현왕후 상은 제대로 다 치르고나서 중전 간택을 하라는 상소를 올렸고

이에 빡친 숙종은 괘씸하다며 바로 이인엽을 파직시켜버리는 일도 있었죠

 

사실 만약 갑자기 숙종이 죽어버렸을때 왕실 웃어른도 없는데

연잉군과 노론세력이 반란이라도 일으키게 되면

계유정난 같은 일이 벌어질수도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갑자기 죽는다 하더라도

왕실의 질서를 정리해줄

왕실 웃어른의 존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세조가 계유정난을 성공으로 이끌수 있었던 이유가

세종의 왕비이던 소헌왕후도 죽고 없었고

문종의 왕비이던 현덕왕후가 죽은 이후에도

문종이 새 중전을 들이지 않았었기 때문에

어린 단종을 보호해주고 그를 대신해 수렴청정이라도 해줄

왕실 어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인원왕후가 중전이 되었을 당시에도

숙종의 어머니였던 명성왕후나

인조의 계비이던 장렬왕후도 죽고 없었기 때문에

인원왕후의 존재는 숙종 입장에서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런 숙종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왕비가 되었다보니

숙종은 인원왕후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있지는 않았던걸로 보이죠

 

왜냐하면 그녀는 인경왕후 (약 9년)나 인현왕후 (폐비시절 제외 약 15년) 보다

더 긴 18년이라는 세월동안 숙종의 왕비로써 살았는데

단 한번도 자식은 커녕 임신조차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숙종은 가장 긴 시간동안 함께지낸 인원왕후가 아닌

인현왕후와 같이 묻히길 원했을 정도로

숙종에게 있어서 인원왕후는 빈자리를 채운 사람 정도로 생각되었던것 같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거기다가 인원왕후는 궁중 생활도 쉽지 않았는데요

 

입궁하자마자 천연두와 홍역, 종기, 피부병, 치통 등

많은 병을 달고 살다시피 했고

그러다보니 실록에 숙종이 인원왕후에 대해 한 말은

"중전이 병을 앓다가 나았다니 기쁘다" 라는 기록이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내명부 수장으로써의 역할은 굉장히 잘 수행했죠

인원왕후의 성격은 온후하면서도 엄격하고 강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실의 법도를 엄하게 가르쳤다고 하죠

 

또한 윗사람 앞에 앉을때는 아랫사람이 정면으로 앉지않고

옆으로 살짝 틀어서 앉아야 한다는 곡좌라는 예법이 있었는데

인원왕후는 이를 엄격히 지키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에 혜경궁 홍씨도 한중록에 인원왕후에 대해

'궁중예법을 잘 지킨사람' 이라고 기록했죠

 

그리고 영조의 옹주들과 혜경궁 홍씨가 함께 자리를 할때면

인원왕후가 나서서 훗날 왕비가 될 혜경궁 홍씨를

항상 상석에 앉혀 위계질서를 철저히 지켰다고 합니다

 

그녀는 영조의 후궁이던 숙의문씨가 영조의 총애를 믿고

사도세자의 어머니이던 영빈이씨에게 개기자 크게 격분했고

곧바로 숙의문씨를 불러다가

세자와 영빈이씨가 보는 앞에서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렸다고 하죠

 

그만큼 그녀는 숙종과의 사이는 소원했지만

왕비로써의 할 일은 제대로 하는

굉장히 엄격하기 그지없는 여인이었습니다

 

1720년 숙종이 세상을 떠나고 경종이 왕위에 즉위하자

그녀는 왕대비가 되었는데

당시 자신보다 더 높은 대비들이 없었기에

34살의 젊은나이로 왕실 최고 서열에 오르게 되었죠

그러나 조정내에서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는데요

 

경종이 즉위한지 고작 1년도 안되서

노론에서는 빨리 후계를 정해야 한다고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당시 경종에게는 자식이 없기도 했고 병약한 모습을 보이자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노론의 요구는 동생인 연잉군을 세제로 삼으라는 것이었죠

 

이때 경종의 나이는 고작 30대 초반밖에 되질 않았었고

그의 왕비인 선의왕후 역시 17살 밖에 되지 않았던 젊은 나이였기에

아무리 병약하긴 하더라도 자식 낳을 생각하지말고

동생을 세제로 삼으라는 말을 해대는 것은

완전 왕의 권위를 개무시하는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러자 경종의 왕비인 선의왕후는 마음에 안들던 연잉군 대신

소현세자의 증손자였던 밀풍군 이탄이나

아니면 밀풍군의 아들인 이관석을 양자로 들여

그를 후계자로 올리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에 노론은 선의왕후의 계획이 더욱 구체화 되기전에

빨리 연잉군을 세제로 만들기 위해 더욱 경종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새벽 2시에 노론 대신 13명이 창덕궁으로 몰려와

빨리 국본을 정해야 한다며 경종에게 강력하게 요구했는데

이에 경종은 결국 노론의 말을 들어주게 되었죠

 

하지만 노론은 증거까지 남겨야 한다며

인원왕후에게 찾아가 제대로 허락을 받자고 경종을 들볶아댔습니다

 

그렇게 인원왕후는 경종에게 직접 쓴 글을 2장 주었는데

한장에는 '연잉군'이라고 적혀있었고

한장에는 "효종 대왕의 혈맥과 선대왕의 골육으로는

주상과 연잉군뿐이니, 어찌 딴 뜻이 있겠오?" 라고 써있었다고 하죠

 

과거 정희왕후나 순원왕후, 그리고 신정왕후 등

대비들이 왕실의 가장 큰 어른으로써

왕의 후계자를 지명하는 경우는 있긴 했었는데요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모두 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때

어쩔수없이 대비가 정했던 것이기 때문에

멀쩡이 왕이 살아있는데 대비에게 허락을 받아놓자는 말 자체가

경종을 대놓고 무시하는 행동이었죠

 

어쨌든 인원왕후는 연잉군을 양자로 삼았고

그렇게 연잉군은 세제가 됩니다

 

또한 인원왕후는 그 이후로도

연잉군의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 주게 되죠

 

하지만 경종은 이런 오만방자한 노론의 행태를

가슴 깊이 담아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론은 날이 밝은뒤에야 노론이 새벽에 궁으로 쳐들어와

경종에게 강요해 연잉군이 세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광분하여 경종에게 달려와

왕을 협박한 노론 대신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하지만 결국 이미 연잉군은 세제가 되었기에 번복할수는 없었죠

 

그런데 강경 소론 인물 중 몇몇은

박상검을 이용해 연잉군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바로 박상검 사건이 일어난것이죠

 

이 사건을 대충 요약해 보자면

내시이던 박상검은 소론이던 김일경으로부터 은화 수천냥을 받아

내시와 궁녀들을 매수한뒤

연잉군의 궁궐 출입을 막고 경종에게 연잉군을 헐뜯는 등

경종과 연잉군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연잉군을 제거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연잉군이

자신은 죽기 싫다며 세제 자리를 내놓겠다고 말하자

경종이 명을 내려 관련자들을 모두 잡아들여 버렸죠

 

결국 연잉군으로 부터 지목을 받은 박상검과 환관 문유도,

그리고 나인이던 석렬과 필정까지 모두 목숨을 잃었던 사건 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인원왕후는 경종과 연잉군 사이에 불화가 생기자

둘 사이를 다시 원만하게 만드는데 많은 힘을 썼다고 하죠

 

그러나 경종을 너무 만만히 보던 노론에게 엄청난 일이 닥치게 되는데요

 

병약하긴 했지만 30대 초반의 젊은 왕인 경종을 두고

별 이유도 없이 왕세제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라고 강요했던 것이죠

 

그러자 소론에서는 이때다 싶어 노론 대신들을 탄핵하기 시작했고

예전 세제를 책봉할때 노론의 막장 행태를 가슴 깊이 담아두고 있었던 경종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쌓여있던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탄핵을 당한 노론 대신들은 모조리 삭탈 관직 및 문외출송 되어

(문외출송 : 조선 시대 죄인의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한양 밖으로 추방하던 형벌)

영의정과 좌의정이 모두 한번에 바뀌는 등

아버지 숙종 처럼 환국을 해버렸죠

 

또한 얼마후 지관이던 목호룡이

노론의 어린 자제들이 경종을 살해하고 이이명을

(이이명 : 세종의 서자 밀성군의 8대손)

옹립하려 한다라고 고변하는 일이 벌어졌고

그렇게 노론 인사들은 굴비엮이듯 줄줄이 엮여

이때 사형을 당한 사람이 20여명에

고문과 장을 맞다가 죽은 인물이 30여명

이 일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이 10여명

유배간 사람이 100여명을 넘었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대리 청정 논란으로 유배되어있던

노론 4대신(이이명·김창집·조태채·이건명)이 유배지에서 사사되는 등

노론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죠

 

이 사건이 바로 '신임옥사' 인데요

 

심지어 이때 연잉군의 처조카 서덕수가

독약을 사용하여 경종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잡혀 들어갔는데

이때 서덕수의 추대 제의를 연잉군이 거절하지 않았다는 증언이나와

연잉군도 역모죄로 엮여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버렸죠

 

그러자 인원왕후가 적극적으로 나서 그를 비호해 주었고

경종도 연잉군을 죽일수 있었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경종은 재위에 오른지 불과 4년만인 1724년 8월에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연잉군이 영조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죠

 

인원왕후는 영조가 세제시절부터 적극적으로 그를 보호해주었고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덕분에

이후 영조와 정성왕후로부터 극진한 효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인원왕후는 사도세자가 태어나자 무척 아끼고 사랑해 주었으며

사도세자 역시 영조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자

자신을 아껴주던 인원왕후를 굉장히 잘 따랐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심지어 인원왕후가 사도세자를 끼고 밥을 하도 많이 먹여서

뚱뚱해지자 영조가 투덜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영조와 사도세자의 대립이 굉장히 심해졌을때도

인원왕후는 정성왕후와 함께 두사람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기도 했죠

 

하지만 결국 며느리이던 정성왕후가 1757년 3월에 64세의 나이로 죽고나서

불과 약 40여일후인 1757년 5월에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요

 

이에 사도세자는 영조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던

인원왕후와 정성왕후가 거의 동시에 사망하자

정신병은 더욱 심해졌고 결국 부자 사이는 막장으로 치닫게 되었죠

 

만약 인원왕후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사도세자는 미치지도 않았고 죽음을 면했을지도 모를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도세자는 자신을 아껴주던 할머니 인원왕후가 그리웠는지

뒤주에 갇히기 직전 인원왕후의 빈소인 통명전의 부속건물에서 머물렀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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